탈출구를 찾기 위함인가....
글을 쓴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많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누군가에겐 고백의 글이 되고, 또 누군가에겐 상상의 글, 다른 누군가에겐 비통함의 글, 누군가에겐 죽기 직전의 글이 될 수도 있으니까. 무엇보다 글이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런 생각들을 표현한다는 것은 각자의 용기와 인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용기와 인내가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나라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경쟁상대가 타인이라는 이런 진부한 설정의 현실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버린 우리에게 낯설 수도 있는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실제로 마주해보면 그렇게 낯설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 나를 정면으로 마주한 채 기억들과 생각들을 떠올리며 함께 작업한다는 것. 나에게는 그것이 글쓰기였다. 나와 함께 이야기하는 것.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 일기는 흔히 생각하는 하루하루 일과를 적는 것이 아닌, 스스로 완벽한 정서적 고립상태에 있을 때부터였다. 쳇바퀴 같은 대학생활이 싫어 군대로 갔었던 때 새벽에 당직을 서면서 썼던 일기, 유럽 유학 시절, 조그마한 기숙사 방 안에서 써 내려갔던 외로움과 고통, 걱정들. 아프리카라는 미지의 땅에서 원초적인 밤하늘에 잠겨 써 내려갔던 생각들.. 그렇게 스스로를 익숙한 것과 완전히 분리시킨 후, 거기서 찾아오는 감정들을 글로 표현했고 그것들은 나만의 글쓰기 형식이 되었다.
지금 읽어보면 그렇게 불쌍할 수가 없다. 힘들다는 단어는 수시로 나오고, 좋은 일들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작가병이라도 들었는지 내가 세상에서 제일 괴로운 존재며 그 고독과 슬픔과 비통함을 구구절절 표현함으로써 마치 굉장한 기록이라도 될 듯한 느낌, 실제로 그럴 것 같다는 희망 아닌 희망을 품으며 글을 써내려 갔던 그 시절의 일기들이 나의 글쓰기 시작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은 어떨까라며 고민하고 공부하기보단, 스스로의 시야에 갇혀 착각 속에 써 내려갔던 글들은 큰 감흥으로 다가오지 못했다. 잔인하지만 그랬다. 가끔 이런 멋진 글도 썼구나 싶지만, 100개에 하나 정도랄까..
생각과 손가락이 연결되어 문자로 생각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굉장히 새롭고 신기한 일이다.
백수 생활을 하면서도 글을 썼다. 모든 것이 무의미해질 때쯤, 해왔던 모든 것의 소중함에 무신경해질 때쯤, 달려왔던 길들을 돌아보지 않게 될 때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글 속으로 들어갔다. 물론 그렇게 큰 의미를 찾진 못했다. 아니면 둔함에 그 의미들을 놓쳐버렸거나..
하지만 매번 느끼는 것은, 글을 쓸 때, 그 속으로 들어간다는 건 언제나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 기억 속을 헤집는 듯한 느낌부터, 뿌연 연기에 갇힌 것 같은 막연함에 손가락이 굳어지는 느낌까지 온갖 느낌에 둘러싸였다. 저명한 글쓴이가 된 듯, 쓰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창작의 고통이 오기 시작했던 적도 있다. 어떤 주제를 선택해야 할까, 무엇을 써야 할까, 어떻게 재밌게 써야 할까 등 쓰기 전부터 생기는 고민들은 그날그날 나의 글쓰기 열정을 쉽게 무너뜨려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