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기 위함인 걸까
글을 쓰는 것은 마치 나무가 되는 것 같았다.
순간에 뿌리를 박은 채 생각의 줄기를 따라 흰 바탕에 글을 써내려 간다. 가끔은 그 줄기가 막히거나 터지기도 하지만 출혈을 감내하며 끝끝내 써내려 가는 것. 나에겐 그것이 글쓰기다.
나무처럼 굳게 뿌리박는 내 모습이 보고 싶어 글을 썼다. 왜냐하면, 일보단 사람에게 상처 받는 게 더 익숙한 터라 사람을 멀리하는 기술을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생활’엔 그리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 회사에선 일한 지 며칠 되지 않아 다음과 같은 말을 들었다.
‘손은 왜 떠니’
어릴 적부터 그렇습니다.
‘너 술은 마시니?’
‘못 마십니다’
‘왜? 안 마시는 거야? 못 마시는 거?’
‘B형 간염이고 마시면 바로 잠듭니다’
‘그럼 담배는 피니?’
‘안 핍니다’
‘... 그럼 할 줄 아는 게 뭐니?’
나에겐 참으로 이상했던 그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게 너무도 적응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더더욱.. 게겼다. 단순한 예로.. 전무가 따른 술도 안 마시고 뒀다. 부장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과는 다르게 살아서 그런지 받아들여지는 것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주로 혼자였고 그래서 외로웠다. 겁이나 죽지 못하고 살아야 했기에 버티기 위해선 힘차게 땅에 발을 디뎌야 했다. 그 순간순간의 어려움엔 글이 함께 했다. 나는 고통과 절망, 외로움과 희망을 동시에 느끼며 순간의 뿌리에 감정을 투여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 어느 작가도 부럽지 않았다. 왜냐면 나라는 나무의 뿌리를 뻗치는데 다른 사람이 생각날 리 없었다. 하지만 모든 게 좋았던 건 아니었다.
상처가 투여된 뿌리로 세워진 나무의 가지와 잎새는 모두 푸르진 못했다.
버티기 위한 글쓰기였으나, 때론 뿌리의 상처로 인해 추락하는 썩은 가지와 잎새를 보며 적적한 슬픔과 함께 나도 추락하곤 했다.
버티기 위한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