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못 꿰어진 공공 이니셔티브
한주 잘 보내고 있지?
요새 그 어느때 보다도 백신이 활발히 보급되고 있고 예약도 많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 여러 경로로 밝혀진 것처럼 적어도 코로나에 있어서 만큼은 백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니, 모두 백신을 떠나서 각자 건강 관리 잘 하기를 바래
오늘은 문 정부 들어서 오랜 기간 추진해 오고 있는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에 대해 이야기를 좀 나누어 보고자 해.
요새 주택시장이 말도 아니잖아? 김현미 전 장관이 예전에 "아파트가 빵도 아니고"라고 언급한 사실에서 드러나듯이, 주택은 하루아침에 공급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닌 만큼, 정부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아주 일찍부터 공급을 착실히 준비해 왔어야 했는데 아쉽게 그러지 못한 것들이 곪아서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된 것 같아. 사실, 정부가 여러 방면으로 공급을 확대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그 공급에 물리적으로 시간이 소요될 뿐 아니라 그나마 빠르게 공급될 수 있는 3기 신도시 등의 물건, 또는 도심 내 숙박시설을 용도변경한다든지 하는 상품들은 현대인들이 선호하는 (1) 도심 접근성이 우수한 (2) 양질의 공동주택 이라는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기는 어려워 사실 진정 파급력이 있는 공급이라고 하기에는 제약이 존재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
정부는 사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양질의 주택을 신속하게 공급하는 데 제약이 따른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은 것 같고 (옛날처럼 주공아파트가 흔했던 시기에는 사실 큰 차이가 없었는데, 민간에서 워낙에 공동주택을 좋은 퀄리티로 공급하기도 했고, 공공보다는 민간의 공급량이 월등히 많았던 관계로 지금은 공공이 공급한 주택들이 천대를 받는 것 같아. 그것이 "임대"주택이라는 것에서 비롯되는 부정적인 사회적 인식도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민간도 정부가 의도하는 바와 같이 안정적인 임대주택을 공급하도록 유도하기 위해서 다양한 방식으로 고민을 한 것으로 보여.
이전 박근혜 정부 때는 뉴스테이 라고 명칭을 붙여서 시행하던 사업들이, 문 정부 들어서 공공지원민간임대주택이라는 명칭으로 바뀌어 추진되어 오고 있고, 그 중의 하나의 방식으로 서울시에서 추진해 온 "역세권 청년주택"이라는 상품이 생겼고 그 동안 나름 많은 단지가 공급되었어.
역세권 청년주택은, 민간 기업으로 하여금 (1) 보유 부지에 대한 용적률을 완화시켜 사업성을 높여주고 (2) 건설자금보증 인센티브 등으로 사업비 부담을 완화시켜 주되, (3) 준공 후 일부를 공공에 매각하고(부속 토지는 기부채납), (4) 민간 보유 분량은 준공 후 장기간(8년 또는 10년) 안정적으로 (4)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임대를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한 상품이야.
시세보다 저렴한 가격에, 장기간 임대목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는, 임차인 입장에서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들릴 거야.
지금과 같이 전월세가 불안한 시장에서, 시세보다 낮은 가격에 들어간 후, (임대인이 의무임대기간 동안에는 실거주를 할수도 없으므로) 최소 4년(최초 2년 + 갱신청구권 행사 후 2년)간은 안정적으로 임차가 가능한 것이지. 그리고 사실 4년 후에도 갱신청구권은 없으나, 임대인 입장에서 볼 때 어차피 세입자인 나와 새로 계약하든, 새로운 임차인을 받든, 인상할 수 있는 폭은 마찬가지이다 보니, 내가 굳이 눈엣가시같이 불편한 임차인이 아니라면 의무임대기간 내내 내가 세입자로 남아있게 해줄 수 있는 충분한 유인이 있어.
여기까지 보면 너무 매력적이지?
그런데 공급자의 눈으로 바라보면 사실 이 청년주택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어.
1)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해주는 대신 늘어난 용적률의 20~50% 수준에 상응하는 부분은 공공(지자체)에 매각해야 하는데, 이 때
- 지자체에서 매입가로 지급하는 금액은, 어떤 자재를 써서 어떻게 만들든, 표준건축비에 해당하는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되어 있어. 참고로 표준건축비는 2021년 기준 평당 약 340만원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일반적으로 많이 지어지고 있는 청년주택이 보통 오피스텔 한동 규모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을 고려하면, 요새 기준으로 그래도 우량한 시공사에게 위탁하여 안정적인 품질의 건물을 공급한다는 전제 하에 단순 공사비만 대략 연면적 평당 550~600만원은 발생하는 것 같아. 거기에 설계비, 감리비, 기타 사업비 등을 모두 고려하면 더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런거 다 무시하고 표준건축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금액밖에 받지 못할 것을 생각하면, 굳이 민간업체에서 우량한 시공사에게 위탁하여 좋은 품질의 상품을 공급할 이유가 있을까? 거기에, 건설자금보증까지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다 보니, 프로젝트 파이낸싱을 해주는 대주 입장에서 (어차피 시공사가 약속을 못지키거나 해서 공사가 지연되는 등으로 인하여 제때 대출상환을 받지 못하더라도 주택금융공사에서 지급보증을 하는 셈이니) 시공사를 보는 기준이 덜 까다로울 수밖에 없고, 그러면 적당히 싼 가격에 해줄수 있는 순위권 밖의 시공사가 위탁받을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아. 실제로 나중에 기회될 때 청년주택 시공한 시공사 살펴보면 이쪽 업계가 아닌 사람 입장에서 잘 들어보지 못한 시공사가 많을 거야.
- 치명적인 것은 (사실 서울시는 바람직한 소셜 믹스를 위한 목적이라고 하지만) 구체적으로 준공된 자산의 어느 부분을 매입할 것인지가 전산추첨에 의하여 무작위로 정해지게 되고, 이런 면에서 공급자 입장에서 (재개발로 공급된 아파트 보면 있는 임대아파트 동 처럼) 임대 물건을 별도로 분리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 그럼 어떻게 될까?
1. 사전에 어떤 물량이 공공에 매각될지 알수 없고, 그 매각되는 물건은 말도 안되게 낮은 가격으로 양도되어야 하기 때문에, 전체 건물에 대해 굳이 좋은 자재를 써서 비용을 많이 들여서 지을 이유가 없어.
2. 민간이 보유하면서 임대운영하게 되는 물건마저도, 아무리 좋은 자재를 써서 퀄리티 있게 만든다 하더라도, 내가 책정할 수 있는 임대료의 수준이 달라지는 것이 아니니 (건물의 스펙 품질에 관계 없이, 인근 시세 대비 80~95% 수준 책정), 비용을 넉넉히 들여서 좋은 물건을 공급하고자 하는 유인이 없는 것 같아.
2) 건설자금보증을 제공해주면서도 레버리지를 굉장히 많이 쓸 수 있도록 배려(?)해주다 보니, 극단적인 상황으로는 전체 사업비의 10%만 갖고도 사업을 진행할 수 있어. 사실 여기에, 여러 가지 사전 작업들을 통해 실질 사업비의 5% 정도 또는 토지계약금 정도만 가지고도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
그렇다 보니, 영세한 개인들도 청년주택 시행에 많이 뛰어들게 되었고,
문제는, 이들이 (어차피 시세 대비 낮게 임대료를 책정해야 하는것은 정해진 사실이니)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좋은 물건을 공급할 이유도 없어서 순수 민간상품 대비 품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개인들이 몇백세대를 원활하게 임대운영할 수 있을까? 사실 일단 사업비가 적게들고 인센티브가 많으니 다들 뛰어들고 보지만, 대규모 주택의 임대운영이라 하는게 (B2C 사업이기도 하고 주거는 개인의 민낯이 드러나는 영역이다 보니) 굉장히 고도화된 스킬을 필요로 하는것 같아. 그렇다고 전문 운영업체를 들이자니 불필요하게 비용이 새 나갈 것 같고... 그래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 것 같아.
거기에 위에 언급한 것처럼 랜덤식으로 정해진 호실은 또 지자체가 매입해서 운영하잖아? 그럼 완전히 뒤죽박죽인거야... 나와 내 옆집의 집주인이 다를 수 있고, 서비스도 다를 수 있는 것이지. 이상하지 않겠어?
이렇다 보니 당장의 임대운영이 제대로 돌아갈 지도 걱정이거니와, (우량한 품질로 공급되지 않은 것을 가정 시) 또 이렇게 20년 정도 지나면 급속히 노후화되어서 다시 멸실 후 신축해야 하는 등 장기적으로는 효율이 떨어지는 결과가 나오지 않나 예상돼
조금 더 촘촘하게, 외부 감정업체를 활용해서, 건물의 상세 스펙을 보고 그에 맞춰서 공공에서 매입가액을 결정해 준다면, 그리고 건축물의 상세 스펙에 따라 임대료를 조금이라도 달리 책정할 수 있도록 세부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준다면, 조금 더 다양한 스펙트럼의 품질을 가진 청년주택이 공급될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의 매커니즘에 따르면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로 보여서.
기왕 민간업체가 공급하는 것을 장려하고자 했다면, 조금 더 멀리 내다보고 정책을 이 마련되었다면 좋지 않을까 싶어. 물론, 공무원님들 몇 분이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것을 고려하면 충분히 그 고민의 흔적이 느껴지기는 하나, 민간 업체들의 의견도 적극적으로 청취하고, 불편한 진실은 조금씩 개선해 나가면서 보완하는 방식을 취하면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