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프란시스코, 상하이, 베이징보다 국내총생산이 더 크고, 서울이 사실상 우리나라 경제를 대표한다고 해도 무방합니다. 우리나라는 점점 하나의 거대한 도시국가에 가까워지고 있어요. 모든 자금과 예산, 인프라, 그리고 사람이 서울로 몰려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집중의 힘은 언제나 밝지만은 않은데요, 기회가 한곳에 모인 만큼, 그 기회를 잡으려는 경쟁 또한 치열해지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은 점점 더 많은 피로를 느낍니다. 서울의 삶이 팍팍한 느낌은 인구밀도로부터 느낄 수 있죠. 도시가 성장의 엔진이라는 사실은 분명하지만, 그 성장의 대가가 개인의 삶을 압박하는 구조로 나타나고 있어요.
성장의 엔진이 주는 댓가
도시 집중은 경제적 효율성을 높입니다. 의사결정이 빨라지고, 정보와 기회가 흘러넘치며, 혁신이 일어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지요.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개인이 치러야 할 대가 또한 막중합니다.
무엇보다 주거비의 부담이 큽니다. ‘집 근처의 일자리’가 아니라 ‘일자리 근처의 집’을 찾아야 하는 현실은 서울의 집값을 끝없이 밀어 올렸습니다. 대출이자와 보증금,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월급의 상당 부분이 이미 고정비로 선행 배분됩니다. 이런 구조 속에서 휴식이나 여유는 사치가 되어버려요.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현실에 이게 사는건가 싶은 생각이 종종 듭니다.
시간의 피로도 만만치 않습니다. 긴 출퇴근과 교통 혼잡은 하루를 잘게 쪼개고, ‘쓸 수 있는 시간’을 줄여버립니다. 체력이 부족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더 큰 고통입니다. 여기에 비교와 경쟁의 압박은 정신적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옆자리 동료의 연봉, 같은 나이대의 주거 수준, 자녀 교육까지 끊임없이 비교되면서 ‘평균에 맞추기 위한 소비’가 늘어나죠. 직장을 인증하는 블라인드 커뮤니티만 봐도 ‘내 나이 몇인데 이 정도면 평균인가?’하는 글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타인과의 거리가 짧기 때문에 자꾸 가시거리 안에 있는 사람과 나를 자연스럽게 비교하게 되는 거죠. 이미 피로합니다.
도시의 시스템은 이렇게 기회와 피로를 동시에 증폭시키는 장치처럼 작동합니다.
우리가 지치는 이유
도시에서의 피로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내면, 결국 돈·시간·주의라는 세 가지 축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돈의 피로입니다. 집값과 교육비, 교통비 같은 고정비가 커지면 선택의 자유가 줄어듭니다. 여가나 취미도 ‘돈이 드는 활동’으로 변해버리고, 휴식마저 비용으로 계산하게 됩니다.
둘째는 시간의 피로입니다. 이동과 대기, 일정 조율에 쓰이는 보이지 않는 시간이 많을수록 진짜로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듭니다. ‘남는 시간’이 아니라 ‘쓸 수 있는 시간’이 문제라는 말은 그래서 도시 생활의 본질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셋째는 주의의 피로입니다. 알림, 광고, 소셜미디어, 끊임없는 비교가 우리의 집중을 산산조각 냅니다. 깊이 몰입하지 못한 채 흩어진 주의는 에너지를 더 빨리 소진시킵니다. 돈의 피로가 커지면 더 많은 시간을 일에 쓰게 되고, 시간의 피로가 커지면 주의 회복이 어려워지고, 주의가 무너지면 다시 돈을 써서 해결하려 드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도시에 지지 않고 살아가는 법
도시는 단기간에 바뀌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내가 통제 가능한 것들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생활 반경을 줄이는 겁니다. 생활 반경 12km 안에 운동, 서점, 카페, 병원, 마트를 배치하면 이동에 쓰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어요. 한 달 8시간에서 16시간만 회복해도 체감 피로는 크게 줄어듭니다. 서울에서 산다면 이 점은 크게 어렵지 않을 수 있어요. 교통도 잘 되어있고 편의시설이 많으니까요.
돈의 피로를 줄이는 방법도 있습니다. 집과 차, 교육비 같은 큰 비용 항목에 상한선을 두고, 구독이나 멤버십처럼 자잘한 비용은 실사용이 없으면 과감히 정리하는 것이죠. 소비가 줄면 주의력 낭비도 함께 줄어듭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관심 끄기’입니다. 알림은 필수적인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하루 두 번만 묶어서 확인하세요. 부동산, 자녀 교육, 커리어 비교에 몰두하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일정 기간 절식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비교를 끊으면 소비가 줄고, 소비가 줄면 돈과 시간의 피로가 동시에 줄어듭니다.
마지막으로 관계를 재배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업무 중심의 인간관계만 유지하다 보면 정서적 회복이 어렵습니다. 동네 기반의 작은 모임, 주간 운동이나 독서 모임 같은 생활형 관계를 하나만 꾸준히 가져도 지탱하는 힘이 생깁니다. 이미 퇴근하고 집에가면 지쳐서 뭔가 하고싶은 생각이 없죠. 요새 제가 그런데요, 에너지가 소진되어 멍하니 앉아서 게임하거나 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도시는 앞으로도 더 빠르고 복잡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도시의 속도를 삶 전체에 그대로 적용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기회는 취하되, 속도는 선택하는 것. 도시는 전부가 아니라 일부로만 다루는 것이 지치지 않고 살아남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