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부의 사유

돈이 많아질수록, 사라지는 돈의 가치

by 김현재


인플레이션은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 합니다


풍요로운 세상입니다. 돈도 많은 세상이고요. 요즘 세상에 돈이 부족하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시중에 풀린 돈은 이미 4,300조 원을 넘어섰고, 정부와 중앙은행은 여전히 각종 부양책을 통해 유동성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가 부자가 된 듯하지만, 사람들의 삶은 오히려 더 팍팍해졌습니다. 돈의 양이 늘어날수록 돈의 가치는 떨어지고, 이는 경제 현상을 넘어 사회적 신뢰의 문제로 번지고 있어요. 화폐는 믿음의 상징이기 때문이에요.


인플레이션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그 피해는 조용하고 치명적입니다. 특히 저소득 약자에게 가장 먼저 타격을 줍니다. 물가가 오르면 명목상 소득은 그대로여도 실질 구매력이 줄어듭니다. 같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죠.


이 과정을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세금’이라고 부릅니다. 누구도 내 주머니에서 돈을 빼앗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로 내 자산의 가치가 떨어진다면 그건 세금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런 세금은 표를 잃지 않고 걷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정부가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돈의 증가로 심화된 불평등


시중에 돈이 많아지면 자산 가격이 오릅니다. 그리고 그 자산을 이미 가진 사람만이 그 혜택을 누립니다. 실물자산을 가져야 합니다.


반면 노동으로 버는 사람은 인플레이션에 취약합니다. 월급이 오르기 전에 물가가 먼저 뛰기 때문이에요. 결과적으로 같은 돈을 벌어도 삶의 질은 낮아지고, 돈의 흐름은 생산이 아닌 자산으로 집중됩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부의 격차가 벌어지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산가들은 화폐 가치의 하락을 미리 알고 대비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오른 가격을 감당하느라 뒤늦게 따라잡기에 급급합니다. 인플레이션이 장기화될수록 세상은 조용히 두 부류로 나뉩니다. 돈을 ‘쌓는 사람’과 돈에 ‘끌려가는 사람’.


같은 경제 안에 살지만 완전히 다른 게임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보다는 시스템의 속도에서 비롯됩니다. 돈이 빠르게 돌수록 그 흐름을 먼저 잡은 사람은 부자가 되고, 뒤늦게 합류한 사람은 언제나 비싸게 사게 됩니다. 결국 인플레이션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기회의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장치가 됩니다.





부자는 돈이 아니라 신뢰를 가진 사람


결국 우리가 믿어야 할 것은 돈의 숫자가 아니라, 그 돈을 둘러싼 신뢰입니다. 화폐의 본질은 언제나 신뢰의 증표였고, 국가는 그 신뢰를 지키기 위해 세금을 걷고 중앙은행은 물가를 조절하며 사회는 제도를 통해 질서를 유지해왔습니다.


그러나 신뢰가 무너지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돈을 찍어내도 경제는 돌아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소비 대신 저축을 택하고, 투자 대신 회피를 선택합니다. 돈이 돌지 않으면 경제도 멈춥니다. 그렇기에 부자는 돈을 모으는 사람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불확실한 시장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업을 세우고, 시간의 복리를 믿으며 기다릴 줄 압니다.


결국 부를 지키는 힘은 돈의 크기가 아니라 신뢰의 깊이에서 나옵니다. 돈이 많아질수록 그 가치는 사라집니다. 오늘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은 더 많은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 신뢰가 복리로 쌓이는 구조 속에 자신을 두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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