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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r 12. 2024

현지인도 처음 멈추어 보는 곳

풍경을 지나치지 않을 용기 - 갓생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는 목표를 향해 일한다.


'욜로'가 유행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키워드는 '갓생'으로 바뀌었다. 욜로도 딱히 좋아하진 않았지만 갓생은 꽤나 부담스럽다. 얼마나 열심히 살아야 '신' 레벨의 삶이란 말인가?


나는 여타 한국사람들에게 뒤지지 않게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한다. 대학교를 다닐 땐 아르바이트며, 근로며, 멘토링이며, 동아리 활동에 해외 연수프로그램에.. 어느 학기 시간표는 정말로 월-금 9시 1교시 - 저녁 9시 12교시까지 점심시간도 없이 가득 차기도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도, 미국에 와서도 비슷했다.


우리는 살면서, 여러가지를 동시에 전부 잘 해야 한다는 부담감에 시달린다. 직업이나 작업을 하면서 다른 무언가를 공부하고,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서류를 쓰고, 시험을 보고, 이력서를 넣고, 공모전에 참여하는. 나는 지금도 매일 이런 마음과 싸우고 있다. 세상에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이렇게 많은 것들을 하는 사람이 많은데. 퇴근 후에도 이러이러한 프로젝트를 해서 성과를 냈다는데. 무언가를 플러스 알파로, 여러가지를 끊임없이 하지 않으면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 같고, 뒤쳐지고 있는 것 같아서 괴롭다. 왜 나는 언제나 목표를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가.













이 작은 나들이의 목적은 샌프란시스코 근교의, 줄여서 '마운트 탬'이라고 주로 부르는 좀 높은 산 이었다. 사실 5년 전에도 한 번 가 본 적이 있는 이 곳은 1900년대부터 근교에서 인기 있는 여행지였어서 기차?트롤리?가 중반 정도까지 이어져 있었고, 호텔 등의 숙박시설도 있었다. 


지금도 안내 센터에서 기차 레일, 기차 모형 및 역사를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역사를 알아보고 그 때의 삶을 상상해 보는 게 참 재미있다. 그 당시의 광고를 보면 뭐를 어떻게 타고 와야하는지 무엇이 포함이고 아닌지가 꽤나 상세히 적혀있다. 금문교가 없던 시절이라 샌프란시스코 쪽에서 오는 사람들은 페리를 타고 기차로 갈아타거나 자동차 서비스를 이용했다. 그 덕분인지 지금은 도로가 꼭대기까지 이어져 있어 차를 타고 정상 근처 주차장까지 갈 수 도 있고, 하이킹 트레일을 이용해 등반할 수 도 있다. 자전거 이용자에게도 유명한 곳이라서 자전거로 타고 오르고 내리는 사람도 많다. 인기가 많았던 (지금도) 이유는 다름아닌 경치다.


정상까지는 구불구불한 도로를 한참이나 운전해서 올라가야한다. 가다가 오 여기 멋지다, 하는 곳이 있었는데 멈추지 않았다. 사람을 피해서 이미 오후 시간에 와서 조금 촉박했고, 정상을 보러 온 거니까, 거길 가야했다.


꼭대기 주차장에 가면 '자발적으로' 주차 비용을 내야하는데, 참 미국답게도 다 수동이다. 한 켠에 작은 박스가 있고, 그 안에 귀엽게 생긴 작은 봉이봉투가 잔뜩 들었다. 그 봉투에 주차비용을 넣고 겉면의 폼을 작성한다음 밀봉에서 상자에 넣어야 한다. 앱이 있다고 큐알코드가 있긴 했는데 우리가 갔을 때 자꾸 휴대폰번호 에러가 나면서 승인이 안 되어 현금을 넣었다. 잔돈이 없으면 어떡하냐고? 우리가 그랬는데, 그냥 10불짜리 넣었다. 괜히 레인저가 와서 조사하다가 돈 모자라다고 걸리면 문제니까.


주차장에서 뷰를 볼 수도 있지만 정상까지는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된다.


샌프란시스코 북쪽의 마린, 샌프란시스코 만과 이스트베이까지 한 눈에 보이는 절경.



조금 더 확대해 보면 이렇다.



중상부에 위치한 다리가 베이브릿지로, 오른쪽의 샌프란시스코와 왼쪽의 이스트베이를 잇는다. 다리 앞쪽에 보이는 건 '더 록'에 나온 유명한 감옥 알카트래즈 섬. 푸르른 산과 섬들, 샌프란시스코의 스카이라인, 다리, 외곽지역의 넉넉한 집들과 푸른 바다, 바쁘게 오가는 배, 하늘까지 다 볼 수 있는 최적의 스팟 중 하나다. 옛날부터 인기가 있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이건 5년 전 정상에 올라갔을 때의 사진. 꼭대기에 가면 이런 표시가 붙어있다. '가드너 전망대, 1937년 5월 9일'. 가드너라는 이름의 소방대장을 기리는 동판. 여기에는 1934-1936에 지어진 초소가 하나 있는데, 주변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보니 맑은 날에는 360도로 주변이 다 보이기 때문에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무려 뜨신물/찬물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오고, 전화까지 연결되어 있는  '캘리포니아 내 초호화' 산불감시 초소였다고. 지금도 아직 동일 목적으로 사용한다고 하긴 하는데, 진짜인지는 모르겠다.






여기에 자리잡고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았다. 목적을 이루는 것은 기쁘다. 그런데 뭔가 허전했다. 멋지긴 한데, 이게 끝이군. 헛헛한 마음을 붙잡고 곧 해가 넘어갈 것 같아서 아쉽지만 차를 타고 내려오기 시작했다.








내려오는데, 아까 올라갈 때 봤던 예쁜 곳이 자꾸 눈에 밟혔다. 차를 세울 곳이 있는지, 내릴 수 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멈췄다 가기로 했다. 다행히 주차장도 있었고 자리도 있었다.



초록초록한 언덕이 뭉게뭉게 모여있는 곳. 주변이 조금씩 오렌지빛으로 물들었다. 나무가 많지 않은 잔디 언덕이 지는 해를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언덕 중 하나에 올라, 이게 무슨 풍경인가 싶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주변에는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모양인 여자애 하나와 그 애의 엄마, 그리고 사진사 하나가 딸내미 개인 사진을 찍는지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새하얀 드레스와 카우보이 부츠를 매치한 전형적인 백인 십대의 스타일. 그 애는 눈부신 노을 해와 초록 언덕을 배경삼아 한 껏 멋짐을 선보였고, 그녀의 갤러리들의 탄성과 함께 더 신이 나 보였다.


해 질 시간이 가까워지자 사람이 점점 더 많아졌다. 트럭을 세워놓고 의자를 빼서 앉아있는 중년 부부, 삼삼오오 떠드는 젊은이 그룹, 1살 즘 되어보일까 하는 아이와 까르르 웃으며 있는 젊은 가족까지. 아장아장 걷는 아이는 엄마 손을 잡고 기우뚱 기우뚱 하는데 용케도 넘어지지는 않았다. 노란 햇빛을 받은 귀여운 볼따구가 포동포동. 조그마한 손을 꺼내 작은 돌맹이를 하나씩 손에 담았다가 내려놓기를 반복하며 그 작은 놀이에 집중했다.




해가 넘어간다. 앉을 거라도 가지고 올 걸, 싶었지만 그게 대수랴. 해 지는 반대편은 점차 분홍빛으로 물들어갔다. 망할 오래된 휴대폰 카메라. 이 뷰와 햇살을 전부 담을 수만 있다면.





들르길 정말 잘했다. 오히려 정상보다 더 여운이 짙게 남았다. 정상은 맛있는 급식 메뉴였다면 여기는 지다가다 발견한, 간판도 없는 재야의 고수 붕어빵집. 




샌프란시스코 사는 동안 왜 여기를 몰랐을까? 아마도 정상을 가야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으리라. 목적을 달성하는 것에만 눈에 멀어 멈추지 않았더라면 보지 못했던 것들. 모르고 우연히 마주친 것들은 새로움과 감동이 배가 되었다. '갓생'을 산다면, 삶은 너무나 바쁘다. 그 작은 틈에도 무언가가 빼곡이 정해져있고, 모든 것을 잘 하고 싶어서 무던히도 애쓰는 이 삶으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것들을 놓친다.





잠시만, 아주 잠시만 멈춰서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눈을 뜨면,

이런 노을과 풍경이 왜 이제 왔냐며, 쉬었다 가라고 당신을 반겨 줄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에는 돗자리와 간식도 싸가지고 와서 아예 즐기다 가야지.


당신도 시간을 좀 내 보시라. 함께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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