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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pr 18. 2024

북한인이 될 확률 50%

손 끝에 기를 모아봐

"북에서 왔어요 남에서 왔어요? (North Korea or South Korea?)"


요즘은 덜 하지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예전에는 종종 이렇게 묻는 이가 있었다. 워낙에 미국사람들이 "AMERICA!!(어뭬~리카! 하는 특유의 국뽕식 외침) 마인드에 갇혀있는 사람들이 많다보니, '미국이 최고고 다른 나라는 다 구리다' 라는 최면에 빠져 해외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경우를 많이 봤다. 몇 년 전 트럼프가 통칭 '제 3세계'국가 몇몇을 일컬어 "왜 우리는 이런 *발그지소굴(shit hole) 사람들을 받냐" 라는 망발을 공공연히 했던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아무리 그래도 북한이냐 남한이냐 이 질문은 좀 난감하다. 한 번은 연수에 가서도 저런 질문을 받은 적 있이 있다. 시골이나, 나이드신 분이나 이랬으면 또 이해를 하겠는데 캘리포니아 한가운데의 대학교고 대학원이고 다닐 만큼 다녀서 교육 수준도 높은 사람.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꾹 참고, 좋게 좋게 얘기했다.


"I am from South Korea. North Koreans are not allowed to be out of their country freely. If you see Korean, chanses are they are liekly from the South Korea. If you see someone from North Korea, they probably escaped the country risking their lives. You probably should not ask that questions in general.


(나는 남한에서 왔어. 북한사람들은 자유롭게 나라를 떠나지 못해. 만약 한국사람을 본다면 거의 한국인 일거야. 만에 하나 북한사람을 본 다고 해도, 그 사람들은 아마 목숨을 걸고 거기서 탈출한 사람들일거고. 어디가서 그 질문은 되도록이면 안 하는게 좋겠다)


그러자 그 사람은 "오, 그래? 미안해, 몰랐어." 했다.


나도 다른 나라를 다 아는 건 아니다. 그러면 음식이나 날씨 같은 좀 더 일반적인 주제를 묻거나, 그냥 "와, 나는 잘 모르는 데 거긴 어떤 곳이야" 하고 물어 본인이 직접 설명해 주도록 한다. 굳이 처음 보는 사람과 싸울 이유는 없고, 내가 모르는 것을 배우는 것이 대화의 즐거움 아니던가. 굳이 북한과 남한이 궁금하다면, "북한과 남한을 둘 다 들어봤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해?" 같이 열린 질문도 있는데.



나이드신 분들은 더 쉽게 말을 꺼내신다. 차라리 "그래서 넌 한국사람으로서 북한을 어떻게 생각해?" 라든지, "요즘 사람들은 그래서 통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라든지의 질문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변에 한국인이 별로 없고, 궁금한 점을 물으며 대화를 시도하시는 것이니, 나는 성의껏 내 생각을 대답하며 대화를 이어간다. 다만 무대뽀식은 정말 싫다. 남의 결혼식에 갔는데 냅다 어떤 할아버지가 와서 "그 북한은 우리가 쓸어버릴 테니까 걱정하지마! 핫핫핫" 했다. 남의 결혼식에서, 처음 보는 사람한테 저런 얘길 한다고?



시어머니는 반대의 걱정을 한다. 한국을 간다고 하면 "어머.. 위험하잖아..", "북한이랑 너무 가깝잖아..", 혹은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안전한 것 같아?" 하고 걱정을 한다. 한국에 대해 전혀 모르시는 분이니, 그래 그 입장에서 보면 북한이 허구헌날 폭탄을 쏘겠다 말겠다 하면서 뉴스에 나오니 위험해 보일수 있겠다 하고 이해를 하면서도, '아니 나 거기서 자랐고 일가친척 다 거기에 잘 살고 있는데 무슨 얘길 하는거야' 하고 조금 얹짢기도 하다. 그래서 항상 전세계 치안지도 같은 걸 보여주면서, '미국보다 훨씬 안전한 나라' 라는 걸 확인시켜드리곤 한다.






문제의 상황은 며칠 전에 발생했다. 곧 남편과 스위스로 여행을 가는데, 스칸디나비아항공에 여행자 정보를 입력하고 있던 남편이 갑자기 소리를 쳤다.


"Oh no!"


나는 이를 닦다가 뭔일인가 싶어서 달려갔다. 남편은 머리를 싸메고 허탈하게 웃으며 보고있던 아이패드를 보여줬다.


"This really happned"

(그 상황이 발생하고야 말았어)





내 정보에 국가를 선택하는데, 'Korea' 가 똑같이 두 개가 뜬 것이다. 하나는 한국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일 텐데!


남편은 낄낄거리며 "Oh my god, you will be a North Korean if I choose the wrong one" (아이고야, 이거 잘못 선택하면 너 북한인 된다ㅋㅋㅋㅋㅋ)" 했다. 나도 이를 닦다가 빵 터져서 웃었다. 얼마전에 비슷한 상황을 누가 어디 커뮤니티에 올린 걸 본 거 같은데 - 그 사람은 뭘 받으려고 주소지를 적다가 '택배를 받을 확률 50%'라고 해서 올렸던 것 같다.


일생 일대의 선택. 잘 못 고르면 나는 졸지에 북한인이 되어서 여행을 못 가게 생겼다ㅋㅋㅋㅋㅋㅋ


나는 보통은 위의 것이 맞을 거라고 그냥 위에 걸 고르라고 했다. 어느 명칭으로 해도 보통은 알파벳 순으로 북한이 먼저 나온다. 공식 명칭으로 하면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가 북한이고 Republic of Korea가 한국이니 D로 시작하는 북한이 먼저나오고, South Korea / North Korea로 해도 N이 먼저 나오니.




그치만 만약 알파벳 순 정렬이 아니라면? 등골이 오싹했다. 비행기는 못 타는 건 물론이고, 한국여권 가지고 있으면서 왜 북한사람이나고 했냐고 세컨더리로 가서 조사받으면 어떡하지?




이럴 때 남편이 빛을 발한다. 남편은 컴퓨터쟁이가 업이니. 그는 인스펙터(웹페이지 프로그램 언어 창 정도라고 보면 되겠다) 를 펼쳐서 각 항목이 어떤 국가코드에 해당하는지 찾아냈다. 쓸모있는 내 남편.




 여기 살면서 국가를 선택해야 하는 때가 정말 많았지만 언제나 남북은 따로 명시되어 있었고, 이렇게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이 써 있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남편도 당황스러운데 웃겨하면서 자기 인스타 계정에 올린 모양이었다. 곧 그의 친구에게 디엠이 왔다.


친구 : 당연히 밑에 거가 한국이지

남편: 아, 왜나면 '남쪽'이니까

친구 : Duh (Duh 는 당연한 소리를 할 때 쓰는 슬랭 쯤 되는 소리. 꼭 이렇게 '킹받는'표정과 함께 나온다ㅋㅋ)

https://www.reactiongifs.com/duh-gif/


별것도 아닌 저 농담이 웃겨서 저 친구 천재인가보다 하고 남편이랑 한참을 웃었다.







확실히 몇 년 전에 비하면 한국과 북한을 헷갈려하거나 무례하게 묻는 사람들은 줄었다. K-컬쳐의 힘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아직은 부족한가보다. 유명 항공사에서 이런 유저빌리티 실수를 냅둘 정도면. 본사에 이메일을 보내든지, 체크인 할 때 직원에게 말이라도 해 봐야겠다. SAS(스칸디나비아항공) 이용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조심하시길 바란다. 삽시간에 북한인이 되 버릴 위험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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