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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r 10. 2024

나는 당최 단호박 수제비를 왜 만들고 있는가

분명히 좋아하지도 않았는데


작년에 한국에 갔을 때 남편이 넷플릭스 보고는 사찰음식이 먹어보고 싶다고 해서 사찰요리 수업을 들으러 갔었다. 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었는데, 재미는 없었다. 영어로 번역하는 과정에 말이 계속 겹쳐 정신이 없었고, 얼만큼 장을 덜어야 되는 지 몰라서 좀 더 가지고 왔다가 엄청 혼났으며, 수업 시간이 짧은데 시연 과정이 지연되면서 실제로 요리하고 먹을 시간이 굉장히 촉박해져서 아무렇게나 대충 들이키고 나왔다.


무튼 그 떄 만들었던 메뉴가 단호박 수제비였다. 나는 수제비를 한국에 살 때 별로 안 좋아했다. 반죽맛을 덩어리로 먹는 것 같아서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것 외에는 밖에서 사먹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 반면 남편은 탄수화물/반죽으로 된 것은 다 좋아하는데, 그 때 수제비를 만드는 과정이 새로웠는지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반죽을 만들어서 손으로 뚝뚝 떼어 바로 냄비에 던져넣고 끓여먹는 게 좋다고 했다. 나는, 이건 딱히 사찰 음식이 아니고 한국에서 그냥 자주 해 먹는 음식이니, 레시피 찾아서 집에서도 해 먹을 수 있다고 잘 달랬다.




물론 당연히도 나는 수제비를 반죽부터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좋아하지도 않고 찾지도 않았으니 당연하지. 수제비를 만들 게 된 이유는 간단했다. 저녁 먹고 나서 남편과 산책 겸 걸어서 홀푸즈(미국 마트체인)를 돌아다니다가, 남편이 단호박을 발견하고, 저건 뭐냐고 물었다.


여기서 단호박은 "Kabocha Squash"라고 부른다 (자꾸 콤부차랑 헷갈림). 미국에는 '호박과'에 속하는 채소의 종류가 더 있는데, Pumpkin, Squash, zucchini 대충 이렇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정확한 학명이나 뭐 그런 건 찾아보지 않았지만, 살면서 느끼는 바로는 '펌킨'은 주황색 호박, 늙은호박 같은 짧둥한 애들, '주키니'는 애호박 같은 기다란 애들이다. 문제는 '스쿼시'인데, 아마 스쿼시는 주키니를 포함하는 상위 단어 이면서 호박보다 덜 둥그런, 조금 더 길쭉한? 느낌의 것들이다. 영어따위란 다 그렇듯, 단어가 다 짬뽕되어서 이게 저거고 저게 이것인 상황으로, 문제의 단호박은 어째 펌킨과 똑같이 생긴 외형에도 불구하고 '스쿼시'다. 생긴것도 호박인데 왜 단호박을 '호박'이라고 부르지 못하는가.


어쨌든간 뭐냐고 묻는 남편에게 (아니 자기가 여기서 살아놓고 나한테 왜 이름을 묻는거냐) 그냥

"It's 단호박. Remember you had it with 수제비 from the temple food class"

(이거 단호박. 사찰음식 수업에서 수제비 해 먹었잖아)

하고 답했다. 남편은 또 기억 못 하고 갸우뚱 거리길래 조금 구박을 하면서 3번 정도 더 부연설명을 해 줬더니 한다는 말이,


"Oh, I remember! That was really good. We should get it. Maybe I should make it"

(아, 생각났다! 그거 맛있었어. 우리 이거 사자. 이번엔 내가 만들어볼게)


모르면 용감하다고 하겠는데, 얘는 도대체 그 때 수업에서 만드는 걸 봐놓고도 어떻게 저렇게 쉽게 단호박 넣은 수제비를 자기가 만들겠다고 하는 지 모르겠다. 저 저거 자르는 게 칼도 안들어가고 얼마나 힘든 지 아냐고 묻자, 못 들은 척 했다. 본인이 요리를 잘 하면 모르겠는데, 음, 요리에는 정말이지 소질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하긴, 그 때 수업에 반죽은 내가 만들었고, 남편은 옆에서 나물을 다듬고 저 쪽에서 다른 걸 했다.


그걸 네가 무슨 수로 만들거냐고 어이가 없어서 웃다가, 그럼 그냥 내가 만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그냥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나라 단호박 만큼 작지가 않고 생각보다 좀 더 커서 개중에 제일 작은 걸로 샀다.





영어로 'make from scratch' 라는 표현이 있다. 이는 무언가를 만들 때 완성품이나 기성품을 사용하지 않고 원재료를 가지고 처음부터 다 만드는 걸 뜻한다. 엄두가 안 나고 시간이 없어서 재료를 사 놓고도 2-3일 동안 손도 못 댔다. 3일차에는 파가 시들해 지는 것 같아서 결단을 내렸다. 그래, 해보자.


나는 닭한마리 스타일로 하고 싶어 사온 닭다리 한 팩을 냅다 냄비에 올리고 끓이기 시작했다. 단호박을 조심스럽게 반으로 갈랐다. 겉 껍질이 두꺼워서 칼이 안들어가가지고 무서웠다. 반을 가른 단호박을 어떻게 찔까 하다가 밥솥에 물을 넣고 만능찜 15분을 돌렸다. 단호박이 쪄 지는 사이 볼에다가 밀가루를 준비하고, 닭 육수의 불순물을 건져냈다.




삑삑삑- (칙칙칙) 쿠쿠가 맛있는 취사를 완료하였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열어서 젓가락으로 쿡 찔러보니, 오 , 잘 익었다. 뜨거운 걸 잘 꺼내서 껍질을 까고 잘게 잘라 조금 먹어보니, 음!!!! 맛있었다. 사실 같은 채소더라도 여기서 파는 건 약간 종이 다른 경우가 있어서 맛이 다를까봐 걱정을 했는데, 아주 포슬포슬하고 약간 달콤한, 단호박 그 자체였다. 찐 단호박을 얼마만에 먹어보는 거지? 5년? 7년?


막 주워먹다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 먹을 위험이 있었다. 이대로 으깨자니 너무 퍽퍽해서 물을 좀 넣고 으깼다. 어차피 반죽에 물 들어가니까? 그리고 반죽에 올리브오일, 소금, 으깬 단호박을 넣고 반죽을 시작했다.



하다가 단호박이 너무 적은 것 같아서 좀 더 넣었다. 물을 많이 넣으면 밀가루를 더 넣으면서 반죽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으니, 물을 조금씩 넣으면서 적당한 되기로 겉이 뺀들해 질 때 까지 치댔다. 키가 작아서 힘을 더 주려면 아일랜드보다는 바닥에 두고 반죽을 하는게 더 편했다. 적당히 된 반죽에 랩을 씌워 냉장고에 넣고 숙성을 시켰다.




반죽이 숙성되는 동안 수제비에 들어갈 채소를 썰고 닭국(?)을 준비했다. 감자는 미리 익어야하니 감자를 먼저 넣고 익히다가, 국이 너무 많아서 절반은 밀폐용기에 넣어 보관했다. 반죽도 2 번 쓸 양이니 이 국물도 다음에 써야지.


국이 잘 완성되어서 반죽을 냉장고에서 꺼냈다. 끓는 국물에 채소를 넣고, 반죽을 조금씩 뚝뚝 떼어 넣었다.




1시간 반 만에 그럴싸한 닭한마리 스타일 단호박수제비가 완성되었다.



이게 굉장히 맛있었다. 채소에서 나온 달달한 맛과 깔끔한 닭 육수 맛이 잘 어울렸고, 수제비도 몰캉한 것이 꽤 괜찮았다. 남편과 맛있다고 흡입을 했다. 음, 해 볼만 한데??





거기에서 끝냈어야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닭육수/닭고기 및 절반의 단호박수제비 반죽이 남아있었고, 반죽이 괜찮을 때 얼른 먹어치워야 했다. 나는 전 날의 성공에 힘입어 새로운 도전을 한다. 그래, 수제비 보다는 칼국수지!


그렇다. 나는 수제비보다는 칼국수가 더 좋다. 그래서 칼국수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집에 밀대도 없었지만 그냥 유리컵을 사용하기로 했다. 밀가루를 넉넉하게 뿌려놓고, 반죽의 반을 떼어서 유리컵 (아니 크리스털 컵..)으로 밀었다. 잘 안 밀렸는데 그냥 계속 밀었다. 그러고있는데 남편이 지나갔다. 내가 끙끙거리면서


"Why am I doing this? Nobody asked me to do"

(나 이거 왜 하고 있음? 아무도 해달라고 안했는데?)


이러자 남편은 웃으며 그러니까 왜 하냐고 했다. ㅋㅋㅋㅋㅋ 나도 모르겠다고 하고는 반죽을 밀었다.



그러다보니 또 되는 듯 했고, 밀가루를 많이 묻혀 썰어냈다. 또 썰으니까 잘 썰렸고, 조심스레 면을 펼쳐냈다.





???응?? 이게 된다고??


제벌 그럴싸하게 면이 뽑혔다ㅋㅋㅋㅋㅋㅋ 남편이 면을 보고 우와 했다.


저대로 국물에 넣으면 밀가루 떄문에 국물이 탁해지니, 끓여서 넣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물에 한 번 짧게 휙 끓였다가 찬물에 헹궜다. 국수가 불어날까 염려하면서 빠르게 어제의 닭국물을 덥히고 채소를 넣어 끓어오를 때 문제의 국수를 넣었다. 그리고는 완성.




맛은 어땠냐고?


음, 면이 쫄깃하지 않고 툭툭 끊어졌다. 이게 수제비일 때는 뭉텅이니 씹는 맛이 그래도 있었는데 면이 되고나니 더 힘이 없는 불쌍한 칼국수 아닌 무언가가 되고 말았다. 반죽은 충분히 한 것 같은데, 아마 밀가루를 제대로 된 걸 쓰지 않은 게 아닌가 싶다. 남편이


"I feel like your mom would know how to fix it immidiately"

장모님한테 물어보면 어떻게 고쳐야하는 지 바로 아실 걸


해서 엄마에게 물어보니 역시나 바로 대답을 해줬다ㅋㅋㅋ 미국마트에는 맨 "All purpose" (일반) 밀가루 밖에 없어서 그냥 그걸 썼는데, 엄마에게 물으니 감자 전분을 넣거나 찹쌀가루를 넣거나 아니면 '찰밀가루'를 사야 한다고 했다.


분명히 면이 쫄깃하지 않고 풀어져서 내가 속상해 하는데 남편은 아주 맛있다고 잘 먹어주었다. "From scrach" 로 만든 거여서 더 맛있다고 했다. 그건 그랬다. 면에서 단호박 맛이 은은하게 우러나와서 국물이 적당히 깔끔하게 달콤한 것이 그건 정말 맛있었다.






엄마는 어렸을 때 수제비를 손쉽게 뚝뚝 만들곤 했다. 나도 언니도 별로 안 좋아했는데, 아빠가 수제비를 좋아해서. 이런 걸 만들면 엄마 생각이 많이 난다. 엄마도 아빠가 좋아하니까 만들었던 것 처럼, 나도 남편이 좋아하니까 이런 사서 고생을 하지 않았나. 수제비란게 여기서는 나가서 쉽게 사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남편에게 한국 관련한 맛을 보여주려면 많은 경우는 내가 사서 고생을 해야 하는 셈.


사서 고생은 재미있었다. 근데 다시 만들지는 모르겠다ㅋㅋㅋㅋㅋㅋㅋㅋ






참, 치우는 건 남편한테 넘기고 도망을 갔다. 칼국수 까지 만드는 건 너무 피곤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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