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이거 어디서 떼 오세요?
여행을 다니다보면 종국에는 여기나 저기나 번화가가 다 비슷해 지는 상황이 발생한다. 스타벅스 있고, 갭/자라/H&M 같은 패스트패션 스토어, 빅토리아시크릿, 맥도날드. 이건 미국 동부를 가나 아시아를 가나 유럽을 가나 비슷하다. 종종 어머나 귀여운 가게야! 하고 눈에 띄어 들어가보면 카드, 캔들, 소품, 인형 등등 을 파는 곳들이 있으나, 나와서 걷다 보면 똑같은 가게가 한 집 건너 한 집.
아무래도 관광지, 혹은 새로 개발하는 동네에 몰려있는게 특징이다. 게다가 이런 가게는 구경하기는 참 좋은데 편집샵이다 보니 물건은 말도 안되게 비싸다. 오늘 갔던 가게 중 한 곳에서는 정말 마음에 드는 컵을 발견했는데, 2개 세트에 6-7만원 정도 했다. 딱히 생필품이라기 보다는 '어머 이거 귀엽다' 스러운 것들을 팔다보니, 구경은 들락날락 자주 하는데 사실 구매 한 경우는 별로 없달까.
그래서 어디를 가든, 조금 더 로컬의 손때가 묻은 독특한 곳을 찾으려고 애쓴다. 다 똑같은 물건이 아닌 곳, 주인의 색다름이 뭍어나는 곳, 관광객의 주머니를 터는 것이 목적이 아닌 곳.
그런 의미에서 오늘 소개 할 곳은 비슷하면서 뭔가 다른 곳이다. 처음에 들어가게 된 이유는 써 붙여 놓은 책 세일 전단을 보고서였다.
오, 책이 반 값이래. 혹해서 들어간 이 곳은 아직도 무슨 가게라고 업종을 단정짓기가 어렵다.
아까 전 젊은 감각의 기념품점? 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정신이 없는가 싶으면서도 나름대로의 규칙에따라 물건이 잘 정리되어 있다. 뭔가 할머니가 이것 저것 모아온 물건들을 모아 가게를 연 느낌이랄까. 구석구석 잘 살펴보면, 이건 뭐지? 어머 이런 것도 있어? 해서 구경하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여기는 관광지 근처가 아니다 보니 로컬이 주를 이루는 곳이다. 옷, 카드, 아기용품, 책, 주방용품, 문구용품, 소품, 조명, 가방까지 끝이 없다. 신기한 것은 가격인데, 샌프란시스코의 다른 비슷한 가게들에 비해 20%-40%가량 저렴하다. 저 위에 있는 양말은 보통 8-10달러씩 붙어있는데, 여기선 4.50달러였고, 카드도 보통은 5-10달러인 것이 여기는 2-6달러다.
어린이 기관에서 어린이 도서 시스템 재정비 및 개발까지 했었어서 그런가, 나는 어른 책 보다 어린이 책을 구경하고 좋은 책 발굴하는 것을 훨씬 좋아하는데, 여기서는 어린이 책을 보느라고 시간 가는 줄 모른다. 특히나 종종 특정 품목 세일도 하는데, 북세일을 하는 날이면 집에 어린이도 없는데 여기만 가면 어린이 책을 구해오기 일쑤. 주변에 선물도 하고 기부도 한다.
이상한 책만 있는 거 아냐? 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이미 내 눈에 익숙하고 어린이집이나 기관에 흔히 비치되어 있는 베스트셀러도 흔히 발견할 수 있고, 처음 보는 책인데 내용과 일러스트레이션이 정말 좋은 어린이 책들이 정말 많다. 마음 같아서는 한 가득 전부 집어오고 싶을 정도.
더 놀라운 것은 가격이다.
원가가 14.95인 것을 7.50에, 16.99인 것을 8.50에 팔고 있었다.
내가 한눈을 팔고 있는 사이에 남편이 책을 하나 골라잡았다. 어린이 책은 아니고 흔히 '커피 테이블 북'이라고 하는, 쉽게 슥슥 보기 좋은 책.
실내 식물에 관한 상식과 키우는 방법 등을 다뤘다. 일러스트레이션도 정말 귀엽고 내용도 마음에 들어서 구매를 했다.
계산대에는 항상 나이드신 할아버지가 웃으며 맞아주신다. 최소 금액이 5불은 되야 카드로 결제할 수 있는데, 여기서는 카드나 책이 그 것 보다 싼 경우가 많아서 현금이 없는 와중에 괜히 더 구매한 정도 몇 번 있다. 요즘에 흔히 보는 최신 결제기기가 아닌, 네모낳고 알록달록한 버튼을 누르면 아날로그 숫자 기기판으로 가격을 보여주고 나서 '띵'하고 돈을 넣는 서랍이 열리는 기계. 이 결제 기계를 보면서 이 곳에서 얼마나 장사를 해 오신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책이 11.50달러라고 붙어있었는데 결제 금액은 6.40달러.
그렇다, 북 세일 전단을 다시 자세히 살펴보면 '책 전품목, 제일 낮은 가격에서 1/2'. 저 노란 딱지가 최종금액이 아니고 저기서 또 반값이었다! 원가가 23.99였던 책을 1/4 가격에 산 셈. 이런 걸 횡재라고 하나? 그럼 아까 봤던 어린이 책들도, 7불, 8불이 아니라 3-4불 짜리였다! (앗 샀어야 했어..)
항상 궁금한 건데, 도대체 주인 할아버지는 물건을 어디서 떼 오시는 걸까? 대체 어떤 루트길래 이런 괜찮은 내용과 퀄러티의 책과 제품을, 샌프란시스코에서 저런 가격에 팔아도 남는거지?
영업 비밀인지 무엇인지 나는 알 길이 없지만, 할아버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가게를 운영해 주시면 좋겠다.
아, 참. 지금 글을 쓰면서 깨달은 건데, 가게 이름이 'One Half', 1/2 였다.
아, 그래서 가격이 절반 이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