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에 자리한 상상 속의 수영장
샌프란시스코 만 끝에는 랜드 엔즈 룩아웃(Land ends lookout), 땅이 끝나는 곳이란 뜻의 전망대가 있다. 만 끝에서 태평양과 금문교를 조망할 수 있고, 야생화가 펼쳐져 있는 해안가 옆, 하이킹 코스로 잘 알려진 곳이다. 샌프란시스코 만 지역, 일명 베이 에리어(Bay area)의 다양한 하이킹 코스 중, 이곳에 유독 많은 방문자가 찾는 이유는 바로 수트로 베쓰(Sutro bath), 거대한 수영장의 폐허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수트로 베쓰는 자수성가한 백만장자 아돌프 수트로(Adolph Sutro)가 ‘수트로 하이츠(Sutro Heights)라는 공원과’, ‘클리프 하우스(Cliff House)라는 레스토랑’과 함께 1894년에 만든 바닷가의 거대한 수영장이다. 아돌프는 대중의 건강과 자연과 해양 환경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해수를 채운 수영장을 절벽 사이에 건설했다. 이 수영장의 천장은 돔 형태의 유리로 만들어졌기에 캘리포니아의 햇살을 그대로 받으며 수영을 할 수 있었다. 온도가 다른 7개의 풀장이 내부에 있을 정도로 그 규모가 어마어마해서 한 번에 만 명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수트로는 아주 진보적인 사람이었다. 공중의 건강을 위해 합리적인 비용으로 이용이 가능하게끔 가격을 설정했고, 방문자들에게 교육적으로도 도움이 되고자 자연사 관련 전시나 조각상 갤러리, 아프리카, 멕시코, 아시아 등지에서 공수한 각종 공예품들을 전시했다고 한다. 당시 유명한 밴드들이 공연을 했을 정도로 수트로는 건강, 문화, 예술 모두를 챙길 수 있는 레크리에이션의 장이었다. 1890년대 엄청나게 흥행하던 수영장은 아돌프가 죽고 난 후, 대공황이 오고, 대중들의 운동 트렌드가 바뀌면서 점점 인기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아이스링크장으로 개장했지만 그 역시도 거대한 규모를 유지할 만큼의 수입을 창출할 수 없어서, 이후 고층 아파트 건설을 위해 철거되었다. 하지만 이후 화재와 함께 아파트 건설마저 좌초되면서 오늘과 같은 폐허만이 남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수트로 배쓰의 옛 모습을 사진으로 보면서, 바다 옆 해수 풀장이 얼마나 멋졌을지 상상해 본다. 샌프란시스코의 기온은 평균 21도로 겨울도 그리 춥지 않고, 여름도 그리 덥지 않다. 지상에서 활동하는 데는 천혜의 날씨지만 바다 수영을 하기 에는 추운 온도다. 만약 아직까지 수트로 배쓰가 있었다면, 유리를 통해 들어오는 따뜻한 햇볕아래 바닷 물살을 가르며 수영을 하고, 한껏 몸을 움직인 후 아돌프가 준비해 놓은 각종 전시를 보며 문화적 허기를 채웠을 거다. 100년 전, 거대한 수영장이 있던 곳에 지금은 갈매기와 거위들이 폐허 속 채워진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
랜드앤즈에서 수트로 베쓰의 폐허까지 내려가는 길목에는 야생화가 가득 피어있다. 어떤 억만장자가 대중의 건강을 위한다는 모토로 다시 거대한 수영장을 이곳에 지을 수 있을까? 수익창출과 이익추구를 최선이라 생각하는 기업들만이 떠오르는 가운데, 다시는 그런 멋진 공간을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아쉬움만 차오른다. 수트로가 함께 만든 클리프하우스는 작년까지만 해도 커피숍으로 운영했었는데, 오늘 검색해 보니 영구 폐업이라는 안내가 떴다. 언제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가보지 않아 후회만 남는다. 이젠 수트로의 모든 것이 역사 속에 사라졌다. 그 이름만을 남긴 채. 아이러니한 것은 폐허로 남아 있지만 여전히 빛나고 아름답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