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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양희 May 06. 2024

책, 그리고 커피

검은 새

작년 10월. 텍사스 휴스턴에서 일 년 간의 신혼 생활을 한 나는, 시댁이 있는 샌프란시스코로 거주지를 옮겼다. 시어머니가 한국으로 출국하신다는 말에 남편이 결혼하기 전 부모님이 형제들의 이름으로 사주신 집에 들어가 살면 되겠다 싶어 옳다구나 하며, 샌프란시스코에 왔었다. 그때만 해도, 어머님이 시내에 있는 본인들의 집을 팔고 우리와 함께 살겠다는 생각을 하시는지 몰랐었다. 물가가 텍사스보다 2배 비싸도 주거비를 아낄 수 있고, 자생적 문화와 자유가 펄떡거리며 숨 쉬는 샌프란시스코라면 미국이라도 살고 싶은 도시가 될 수 있을 거라 꿈꾸면서.

휴스턴발 비행기에서 내려 대강 짐을 정리하고, 주변을 둘러볼 겸 드라이브를 나온 우리 부부는, 해변이 있는 선셋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블랙버드를 만났다.



이름부터 우아한 블랙버드. 검은 새는 서점이자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였다. 내가 좋아하는 서점에 커피까지 있는 그 힙함에 취해 내 발은 나도 모르게 커피 주문 창구로 향하고 있었다.

커피를 주문은 서점 입구 옆 창문에서 가능했고, 그 옆은 커피와 곁들일 수 있는 페스츄리가 나무 진열장에 정갈하게 놓여있었다. 커피 향을 좋아하지만 카페인에 취약해 커피를 잘 마시지 못하는 나와 남편은 라테 한잔, 피치 갈레트 하나를 사서 서점 안으로 들어갔다.


서점은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다. 알록달록한 책들이 전면에 놓여있고, 보통의 로컬 서점과 다르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책들이 있는 코너를 지나 옆을 보니 로컬 아티스트들이 만든 소품들도 함께 판매하고 있었고, 뒤편으로는 어린이 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왁자지껄한 소리를 따라 계속 서점 안쪽으로 들어갔을 때 펼쳐진 광경에 나와 남편은 정말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 왔음을 실감했다.

서점 뒤편에 마련된 뒷마당 야외의 작은 데크에는 한 여성이 동화책을 들고 일고 있고, 스무 명 정도가 되는 3-5세 정도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녀가 읽어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서점 앞의 각종 유모차와 킥보드의 소유자들이었다. 같이 온 부모들도 사랑스러운 아이들이 햇살아래 빛나는 모습을 웃으며 지켜보고 있었다. 너무나 여유롭고 너무나도 자율적이었다.


휴스턴의 경우 뜨거운 기온으로 야외 활동은 꿈도 못 꿀뿐더러, 자생적으로 문화적인 수요와 공급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적었다. 시 차원에서 아주 유명한 오케스트라나 세계 각국의 예술가들을 불러들여 무료로 공연해 주었지만, 단일 창구에서 이루어지는 고급 예술은 혁신을 만들기 어렵다. 샌프란시스코의 다양성과 독창성의 뿌리가 사적이고 작은 그룹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을 동네 서점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알고 보니, 서점 자체적으로 토요일마다 어린이를 위해 동화 작가를 모셔 책을 읽어주는 코너를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 아빠들은 커피를 한잔씩 마시며 아이들을 지켜보고, 자신이 읽을 만한 책 역시 살펴보고 있었다. 커뮤니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모아 공동체에 소속되어 있는 느낌을 주면서, 지역 예술가들에 대한 노출과 아이들에 대한 교육 활동서비스까지 제공하는 책방 겸, 커피숍은 너무나도 매력적인 공간이었다.

정말 놀라운 사실은, 이곳에서 파는 커피가 나와 내 남편이 샌프란시스코 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커피라는 것, 그리고 피치 갈레트 역시 지금까지 먹어본 갈레트 중 최고라는 것이다. 직접 만드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어디에서 물건을 떼오는지 묻고 싶어 혼났다.



날씨가 좋은 어느 날, 남편과 또 함께 블랙버드를 찾았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라테 한잔과 프루트 갈레트를 사들고 뒷 정원의 그늘 벤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여유를 즐겼다. 그때, 한 여성과 남성이 각자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뒤뜰로 들어왔다. 아이들이 장난감 기차를 가지고 놀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해야 할 말들을 하나씩 읊어주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 내 이름은 데이브야. 너의 이름은 뭐니?라고 말해”

“나는 해리야.”

엄마, 아빠들의 간접소개로 아이들은 함께 기차를 가지고 놀았다. 아이들이 함께 놀자 어른들도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점에서 사람들이 만나서 어울리다니 정말 멋지다. 그렇지?”

남편과 나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 서로 어울릴 수 있는 이 공간이 너무 좋았다. 책과, 예술, 커피와 함께 하는 곳. 멋진 이름까지. 만약 내가 비즈니스를 한다면 나도 이런 걸 운영해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맛있는 커피를 홀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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