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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n 08. 2024

스위스갔다가 독일 경찰에게 미국인 남편 여권뺏긴 이야기

삼개 국가 보겠다고

공식적(?)으로 바젤을 돌아보기로 한 첫 날.


아까 나 혼자 걸어갔다 와봤지만 일단 구경을 해보고 싶은 건 시티 중앙에 있는 광장. 유럽 국가에는 중간에 오래된 광장이 있고 (주로 교회가 있음) 사람들이 복작복작 모여들기 때문에! 게다가 작은 마켓이 정기적으로 열린다고 했다. 어디나 동네 마켓이 가장 재밌지 않은가



마켓은 생각보다 더 작았다. 관광객은 우리뿐인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켓을 이용하는 사람들은 동네사람 느낌이 물씬 났다. 햄이며, 소세지, 치즈, 파스타, 꽃, 채소를 팔고 있는 아기자기한 풍경. 시티홀 건물의 빨간색은 지금 생각해보니 금문교 색깔과 아주 흡사하다. 작은 마켓들도 아마, 저 건물 색깔에 맞춰서 붉은 색을 하고 있지 않았나 짐작해 봤다.


밖에 앉은 카페가 넘나 귀여웠으나 이미 빵을 때려먹고 온 우리는 (5화 스위스의 이른아침, 혼자 빵을 사러 나왔다)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빵을 무제한으로 먹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시티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건 따로 투어가 있는 듯 했고, 그냥 내부 중정으로 들어가 잠깐 구경을 했다.

어두운 내벽과 황금색 투구/장식을 한 동상이 대비되어 빛이났다. 1500년대에 시작해서 향후 몇 백년에 걸쳐 더하고 빼고 하면서 지어진 모양인데 현재도 사용중이다. 오래된 건물에 둘러싸여있기 때문에 과거로 시간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이런 오래된 건물에서 그 때의 삶을 상상해 보는 걸 정말 좋아하기 때문에 사실 투어도 해보고싶었으나 시간이 안 맞아 포기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3개국 경계가 만나는 트라이포인트.


발로 그린 국경 ㅈㅅ..

바젤은 프랑스/독일과 국경을 맞대고 있기 때문에, 빨간색으로 표시한 저길 가면! 1타 3피를 노릴 수 있는 거시였다!ㅎㅎ 그것도 그렇지만 궁금했다. 한국은 국경을 넘어 어딜 갈 수 가 없는 구조이고 (국경을 넘으면 총맞..) 미국은 땅덩어리가 워낙 커서 좀 우호적인 캐나다쪽 국경으로 가자면 너무 멀고, 가까운 멕시코쪽 국경으로 가는 건 티후아나 일텐데 거긴 그렇게 안전하다고 알려져있는 곳은 아니다.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는 동네는 어떻게 생겼을까.



보니까 강을 따라 페리를 운영하며 저 포인트에 가는 투어가 많은 것 같았는데, 아쉽게도 우리는 딱 비수기에 걸려서 탈 수 없었다. 우버를 타고 가자니 저기 뾰족한 포인트가 산업단지(?)라서 우버가 들어갈 수 있는 지도 모르겠는 상황. 그냥 트램을 타고 가기로 했다.



초록초록한 트램은 내부도 깔끔하고 배차시간도 꽤 짧았다. 커다란 창문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북적북적한 번화가를 지나 한적한 동네가 나왔다. 잠시 동화같은 생김새였다가 한국이나 미국에서도 많이 본 것 같은 네모네모난 건물의 거주구역이 등장했다. 스위스라고 모든 사람이 다 1500년대 건물에 사는 것은 아니지.


이 트램은 국경을 넘어 독일쪽으로 가는데, 그 전 전 스탑인가에 내려서 걸으면 됐다.


음, 그런데 여기가 딱히 육로로 이어진 관광지는 아닌 것 같았다. 정확히 말하면, 저 뾰족한 부분이 육로로 이어진 곳은 커다란 공단(?) 스러운게 위치해 있고, 그 가생이로 걸어서 샛길로 한참 걸으면 뾰족이에 도착한다. 그게 지도로 보면 별로 안 되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멀어서 20분 쯤 걸었나보다. 한참 여름에는 바쁜 것으로 예측해 볼 수 있는게, 저 때는 문 닫은 파티/클럽 공간을 지나면 크루즈 선착장(?)과 함께 보수중인 크루즈 배들이 보였다. 아마 이 강을 따라 왔다갔다 하는 페리나 크루즈들이 잠깐 멈춰서 '3개국 국경임다' 하고 사진 찍고 가는 스팟이 아니엇나 싶다.


무튼 꼭대기를 도착하면 탁 트인 전경이 보인다.

저 다리는 오른쪽이 독일, 왼쪽이 프랑스다.


ㅅㅡ

트라이포인트라고 구조물이 서 있긴 한데ㅋㅋㅋ 사람도 별로 없고.. 저렇게 포토스팟이 있는 게 전부이다. 트라이포인트라고는 하지만 걸어서 국경을 건널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저길 가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대충 구경하고 다시 걸어나오는 것도 일이었다.


걸어나오자니 뭔가 억울해서, 그럼 저기 보이는 다리까지 가보자고 졸랐다. 원래는 돌아가는 트램을 타려고 했는데 방향을 잘못봐서 간발의 차로 놓쳤고, 놓친 김에 그럼 독일 국경을 건너 저 다리로 가보기로 했다. 아까 타오 올라온 8번 트램을 다시 탔다.


금방 국경에 도착했다. 그냥 칙칙폭폭 하고 국경을 넘어갈 줄 알았는데, 갑자기 열차가 옆으로 빠지더니 멈춰섰고, 독일 경찰로 보이는 사람들이 올라탔다.


국경 바젤 스위스 - 독일 국경


우리는 아, 그냥 항상 하는 검사인가보다 하고 가만히 앉아있었다. 경찰 한 명이 이리 저리 사람들과 이야기 하면서 다가왔고 주변 사람들이 주섬주섬 신분증을 꺼냈다. 남편은 허겁지겁 (외국에서 검문 이런 거 무서워 함) 여권을 꺼내서 들고 있었고, 나는 굳이 여행자라고 온동네 광고하기 싫어서 여권을 굳이 미리 꺼내놓진 않았다. 어차피 손 뻗으면 크로스백에 바로 있으니 그럴 이유도 없었지만.



나는 사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시아 사람은 스위스/바젤에 와서 거의 구경도 못 한 터였고, 경험상 이런 경우에는 나는 너무 '나 여기에서 잘 안 보이는 사람이죠, 멀리에서 온 사람 같죠' 하고 티나는 검문 타겟이었다. 독일 경찰이 다가오고, 앞에 앉은 라틴계 아주머니의 신분증을 보는 체 마는 체 하고 지나왔다. 나는 내 여권을 건네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경찰관은 남편 난데없이 백인의 미국인 남편 앞에서 멈춰섰다.


남편의 여권을 받더니 안을 들여다보았다. 우리는 코펜하겐을 경유해서 왔으니 안에는 코펜하겐 스탬프 밖에 없었고, 뭐라고 물어보는 것 같아서 남편은 이러저러 하다고 영어로 대답을 했다. 스위스 바젤에 방문중이라고 했나. 그 경찰관은 영어를 못 하는 것인지 무어라 한 두 마디를 하더니, 저 멀리 다른 칸을 쳐다보다가 남편 여권을 가지고 옆 칸으로 가 버렸다!



당연히 나 일 줄 알고 있던 나는 벙 쪄서 경찰관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남편은 눈에 띄게 당황한 듯 보였다.





잠시 후 경찰관은 다시 돌아와 남편에게 여권을 건네주었다. 열차도 곧 다시 출발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으나, 나는 남편을 약올렸다.

"How does it feel like to be the American white person who get screened? lol"

  (미국인 백인인데 검문당하는 느낌은 어떠냐? 낄낄)


 작은 나라에서 태어나 살면서 외국에 나가서 한국인이라고 특권의식을 부리기 어려운 것과 달리, 미국인들은 약간 외국에 나가서도 미국식으로 하려는 특권 의식 같은 걸 가졌다는 걸 느낄 때가 많다. 미국에 살고 미국에 우호적인 나라를 다녔으니, 둘이 다니면 보통 신분을 엄격하게 검사받는 건 항상 내 쪽이었다. 남편은 'white privilege' (백인특권)과 미국특권을 다 기저에 깔고 살아왔던 터. 이참에 놀려야 한다.


본인은 놀라지 않았다고 급히 부정해 보지만 막 한숨 놓았다는게 얼굴에 뻔히 드러났다. 아직도 궁금하긴하다. 왜 굳이 미국인 남편을 검문해야 했는지. 어디 제보를 받고 특정 인물을 찾고 있었던 걸까?





독일쪽 트라이포인트에서 내렸다. 조금 낡은 쇼핑센터와 식당들이 있는 걸 보니 관광지 인 것 같았다.




다리를 건너명 프랑스. 다리 중간까지 건너가면 아까 우리가 갔었던 트라이포인트가 보인다.


아까 우리가 서있던 뾰족한 부분이 저기. 뒤로 공단지대(?)가 보이고 정차해 있는 크루즈쉽 몇 대가 보인다. 왼쪽은 스위스 오른쪽은 프랑스다.

다리 중간에 독어와 불어로 설명이 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새로 지은 듯한 프랑스 아파트 ㅋㅋㅋㅋㅋ 그 앞으로 독일, 프랑스 국기와 우크라이나(?) 국기가 있다.


저 아파트(?) 1층에 카페 비슷한 곳이 었어서 조금 쉬다 오고 싶었으나 아쉽게도 문이 닫혀있었다.


다시 걸어 돌아오면서 독일쪽에 있었던 관광객 많을 것 같은 카페. 유럽연합, 독일, 프랑스, 스위스 (맨 끝은 뭔지 모르겠다) 플래그가 서 있다.



뭘 좀 마시고 먹고 하면서 쉬고 싶었는데 마땅한 곳이 없었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어디가 프랑스고 어디가 독일이고 어디가 스위스인지 사실 알 수 없을만치 똑같이 생긴 곳. 그래서 관광지일 필요도 없는게 아닌가 싶었다. 국경이라는 것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나 이 곳이 신기하지, 아마 저기 사는 사람들에겐 옆 동이나 구나 매한가지가 아닐까. 무튼 궁금했다. 만약 국경 너머에서 일하는 사람이면 세금은 어디에다가 내지? 내 국가? 아니면 내 직장의 국가? 그럼 그건 유로로 내나 프랑으로 내나?




여름에 배 타고 가면 재밌을 것 같기도 하지만, 관광지를 기대한다면 굳이 가지 않으셔도 괜찮을 듯 싶었다. 짧은 3개국 셀프투어를 뒤로하고, 우리는 다시 8번을 타고 바젤로 향했다. 돌아갈 때는 아무도 검사를 안했다. 벌써 만 보를 넘은 지 오래였다. 피곤했다. 왼쪽 무릎이 요상하게 삐걱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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