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에 미친 사람은 아닌데요
자는 둥 마는 둥 하고 새벽 4시 반에 깼다.
미국에 살면서는 시차가 나는 여행을 할 일이 많아졌다. 미국 자체만 하더라도 자주 쓰는 시간대만 6개(하와이, 알래스카, 서부, 산, 센트럴, 동부)이다보니 그냥 친척을 보러 갔다와도 시차가 생긴다. 근데 요상하게도 여행을 하면 할 수록 시차가 점점 더 진해지고 맞추기 어려워지는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한국에 가면 첫 주에는 내내 저녁 8시쯤 되면 헤롱헤롱 정신을 못차리다가 곧 잠들어서 아침 4시 반에 깨길 반복한다. 한국의 재밌는 것들은 모두 저녁 8시 지나서 일어나는데 그걸 다 놓치고 원치 않았던 수련에 정진하는 사람이 되버린다고!
남편에 의하면 시차는 하루에 한 시간씩 돌아온다고 친단다. 일정이 길면 상관이 없는데 짧으면 몸의 바이오리듬이 어떻든가 말든가 강제로 때려눕혀 맞춰야한다. 일부러 첫날에 저녁에 도착했어도 숙소에서 쉬지 않고 밖을 돌아다닌 것도 있다. 8시쯤 잠들면 새벽 서너시에 깰 것이 뻔하니, 적어도 밤 10-11시까지는 버텨야했다.
잉 근데 뭐야, 11시까지 버티다 잤는데도 4시 반에 깼다. 그 전날 24시간을 넘게 깨어있었으니 한 3시간만 더 잤으면 좋겠는데 당최 잠이 오질 않았다. 꾸물렁 거리고 있는데 남편도 뒤척이는게 느껴졌다. 나처럼 좀 자다 깬 건지 아예 못자고 뜬 눈으로 지샌건지 궁금해 물었다.
"Did you get some sleep?" (좀 잤어?)
"Naahh, maybe here and there..? (아니,, 자다 깨다..?)
"It's okay still have a lot of time. Try and get some more sleep" (괜찮아 아직 시간 많아. 좀 더 자보려고 해봐)
"Did you get some sleep?" (너는 좀 잤어?)
"Yeah I got some sleep" (응 난 좀 자써)
남편은 곧 이불을 끼고 몸을 둥그렇게 말며 돌아누었다. 나도 잠을 더 자 보려고 누워서 가만히 있었는데 잠은 이미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나 모르겠다.
남편이 새근새근 잠에 든 소리가 들렸다.
조심조심 시계를 보니 6시 45분. 밖에는 스위스의 바젤의 아늑한 도시가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오지도 않는 잠을 기다리고 있노라니 아까웠다. 그렇다고 이제 막 한 두시간쯤 잠든 남편을 깨울수도 없었다.
에잇! 나 혼자 나간다!
나는 조심스레 침대에서 일어나 나와서 문을 닫았다. 오늘 입기로 마음 먹었던 밝은 색상의 미디 청치마에, 추우니까 타이즈를 안에 입었다. 헝클어진 머리 위에 한국 갔을 때 다이소에서 산 넘나 귀여운 '칩앤 데일' 벙거지모자를 눌러썼다. 점퍼도 입었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그래. 나가서 빵을 사오자. 구글지도에서 빵집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마침 빵집들은 7시면 문을 열었고, 숙소에서 가까운 빵집 하나를 찾아냈다. 방 카드키를 챙기고, 조용히 문을 닫고 나왔다.
날씨가 반짝반짝 쨍하니 맑으면 좋겠지만, 일기예보를 봤을 때 저번 주 까지만 해도 비가오고 엄청 추웠던 것을 감안하면 비가 오지 않는 것에 감사해야할 일이었다. 차가운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방향을 보며 골목길에 진입하니 비탈길이 나왔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과 학교가는 어린이들이 눈에 띄었다.
개구쟁이 초딩이 어린이들은 다채로운 색깔의 책가방을 메고 꽤 비탈진 이 길을, 헬멧도 무릎보호대도 없이 씽씽이를 타고 직활강했다. 미국은 어른이 학교까지 데려다주는게 국룰이라, 초딩이 친구들끼리만 뭐라뭐라 지껄이면서 사이좋게 학교를 가는게 새삼 대견하게 느껴졌다. 아차, 내가 미국에 오래 살긴 했구나.
아침을 시작하는 동네사람들 사이를 혼자서 걷는데 무한히 행복해졌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 처음 와보는 골목을 내 마음대로 걷는 것이 한없이 자유로웠다.
지금이야 '혼밥', '혼술'이 모두에게 익숙해졌다지만, 한국에서 자라고 대학생이 되는 10년+ 전 까지만 해도, 집 밖에서 혼자서 무언갈 한다는 것은 상당히 낯선 일이었다. 중고등학생때야 뭐 매일 학교-집 뿐이니 그럴 일이 없었고, 대학생이 막 되고 나서도 밥먹고, 공부하고, 여행을 가는 모든게 항상 누구와 함께 해야하는 일인줄로만 알았다. 그리고 뭐, 그 때에는 학교나 동아리에 가면 사람이 많았다. 함께 행사도 하고, 엠티도 가고, 매일 밥을 먹고 코노를 가고 어울려 지내는게 참 좋았다.
처음 혼자 뭘 하게 된건 아마 두 번의 연애와 이별 이후였을 것이다. 언제나 함께 있던 애인이 없어지고 나는 뭘 어찌해야 할 줄 몰랐다. 아마 그때부터 친구들과 함께하는 것들 이외에 점차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것들로 나를 채워갔다. 혼자서 가까운 곳에 여행도 다녀왔다. 지금은 이름도 기억이 안나는 경기도의 어떤 예술마을?이었는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크림색 후디원피스에 니삭스를 신고, 시외버스를 타고, 갈아타고, 마을을 정처없이 걸어다니고 구경하다가 돌아왔다. 오는 길에 역전에서 만두를 사먹다가 혀를 크게 씹어 피가 철철 났던 것도 생각난다.
그 이후에 나는 함께하는 것 말고도 혼자 다니는 것에 거리낌이 적어졌다. 혼자 미국까지 와서 돌아다녔으니 뭐 말 다 했지만. 나만 그런가 모르겠는데 남편이 내 편인게 좋긴 한데 혼자만의 시간은 별로 없다. 혼자 여행을 갈 일은 더더욱 잘 없어서, 어쩌다 혼자 남겨지게 되면 세상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같이 다니는 거 좋지. 좋은데 이 사람은 내가 아니니, 얘 컨디션은 어떤지, 이 사람은 여길 가는게 마음에 드는지, 이 걸 하는게 좋은지 아닌지 어쨌든 신경을 쓰고 맞춰나가야 하는 건 피할 수 없다.
행복감에 젖어 걷다가 빵집에 도착했다.
청록색 외관이 귀여운 동네 빵집. 이제 막 문을 열어 빵을 채워넣고 계셨다. 먼저 들어온 사람은 동네사람인지 반갑게 인사를 하고 빵을 사갔다. 와서 써먹으려고 2-3달 동안 공부한 독어가 무색하게, 내가 알아볼 수 있는 건 Brot(빵), Kase(치즈) 정도 밖에 없어서 도움이 참 안됐고, 주인 아주머니는 친절하게 영어로 대답을 해 주셨다. 마음 같아선 잔뜩 이고 지고 오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고, 치즈타르트 하나, 머리 땋은 모양같이 땋은 둥그런 크리스마스 리스같은 커다란 빵에 굵은 설탕을 올린 것, 또 하나는.. 기억이 안 난다. 아무튼 그렇게 세 개와 우유를 넣은 커피를 주문했다. 서툴게 'Kaffee und milch(커피에 우유)' 라고 하자 주인 아주머니가 (비)웃었다ㅋㅋㅋㅋ. 먹고 또 사러 올지도 몰라요 ㅎㅎ 하면서 나왔다. 총액이 20프랑이 안 되게 나와서 또 기분이 좋았다. 샌프란시스코였으면 어림도 없다. (저번주에 빵집에서 크로와상 두개 커피 하나에 19.점 몇불을 냈..)
봉투 한아름 빵을 사서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남편하고 같이 먹으려고 기대하면서 왔는데, 남편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깨울까 말까 고민하다가, 너무너무 먹고 싶었던 치즈타르트하고 커피만 몰래 먹기로 했다. 저번 화에서 언급했던 아름다운 창가에 앉았다.
기대에 가득 차 치즈타르트를 한 입 베어물었다.
앗, 기대와 아주 다른 맛. 한국에서 치즈타르트라고 하면 주로 단맛이 나는데 (미국도 그런듯), 이건 달지 않았다. 아니 단맛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는게 맞겠다. 고소하고 짭조름한 치즈필링과 파스스 부서지는 타르트가 입에서 녹았다.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켰다. 묵직한 커피에 우유가 치즈의 고소함을 씻어냈다. 아아. 행복해!
다 먹고 싶었는데, 초인적 절제력을 발휘해 가까스로 치즈타르트 절반을 남겼다. 아 이거 한 5개 사올걸. 아쉬운대로 커피만 홀짝였다.
남편은 아직도 자고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또 나왔다.
이번에는 바젤대학 쪽으로 걸어보기로 했다.
신기한게, 깨닫고 보니 길거리에 신호등이 없었다. 초록색, 노란색 트램이 계속 돌아다니고, 자전거와 차가 도로를 달리는데 알아서들 리듬을 타 뒤엉키지 않고 흘렀다.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들 안에 낡은 상점과 새로운 모던 상점이 공존했다. 그렇게 걷는데 아차, 빵집을 또 발견했다.
사람들이 계속 들어가고 엄청 바빠보였다.
'아까 빵 잔뜩 샀는데.. 아.. 안돼.....'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들어와 있었다..
'둘이서 여기 3일밖에 안 있는데 빵을 뭘 얼마나 먹겠다고 또 사?' 이러면서도 '아 이번엔 또 뭘 먹지.. '가 곧 내 뇌를 지배했다. 뭐.. 어쩌겠어.. 이렇게 아늑해 보이는 빵집을 어떻게 지나치냐구.. 내 앞에 줄 선 한 엄마는 4살 쯤 되었을까 하는 딸내미한테 빵을 이것저것 가리키며 저건 이런 빵이고, 이건 이런 빵이고,, 이건 어때? 하며 골라주고 있었다. 그 딸내미는 고민을 했고 나도 그랬다. 고심 끝에 살구가 든 크로와상과 넛+초콜릿이 든 크로와상을 골랐다.
저 멀리 보이는 게이트 밑으로 지나가보고 싶었는데 공사중이라 막혀서 코너를 돌아나갔더니 대학이 나왔다. 대학 중간의 푸르른 공원을 가로질러 걸었다.
산책을 하며 곰곰히 생각해보니 빵집 봉투에 써 있는 'Ass Bar' (A와 A에 점 두개는 다른 글자지만 어쨌든)는 영어로는 영 좋지 못한 뜻으로 보여서 웃겼다. 'ass'는 엉덩이를 속되게 이르는 비속어. 'Bar'는 카운터나 술집, 막대기 정도가 되겠으니.
무슨 뜻인가 찾아보니 이건 'edible(먹을 수 있는)' 이란 뜻이란다. 지속가능한 소비를 지향하는 가게로, 음식물 낭비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다른 가게들에서 어제 남은 멀쩡한 빵을 모아다가 파는 곳이라고. 내가 흔히 이용하는 'Too good too go'와 비슷한 느낌이다. 어찌나 좋은 생각인지! 이름을 보고 웃겼던 나를 급히 반성해야겠다.
계속 걷다보니 남편과 함께 가려던 강가와 시티 센터까지 닿았다. 피곤해져서 숙소를 향해 돌아섰다. 어느 골목에 길이 막혀있어서 봤더니 사람들이 도로를 아름답게 색칠하고 있었다. 하늘이 조금 꾸물꾸물한데, 쨍하고 푸른 바닥히 하늘을 대신해 사진을 밝혀줬다.
숙소로 돌아오니 9시가 넘었다. 두시간을 넘게 혼자 돌아다닌 셈이다. 이번엔 남편이 일어났다. 나는 신이 나서 바젤의 아침을 혼자 돌아다니는 것이 얼마나 멋졌는지 재잘재잘 떠들어댔고, 어쩔 수 없이(?) 빵집에 두 번이나 갔다왔다는 것을 듣고 남편은 빵을 얼마나 산거냐고 얼굴을 감싸며 웃었다.
"Of course you went another bakery" (그래 너 당연히 빵집 또 갔지 ㅋㅋㅋ)
놀리는 남편 등짝을 때리며 잔말말고 나와서 빵먹자고 남편을 끌고 나왔다. 식탁 그득한 빵들에 남편은 싱글벙글했다.
두 번째 가게에서 산 빵들. 어째 조금 건조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싶었더니 ‘Ass Bar’를 검색해본 이제야 이해가 간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엄청 묵직하고 커다랬다.
남편의 최애도 나처럼 아까 그 치즈타르트. 두 번째로는 크리스마스 리스 처럼 생긴 커다란 빵이 마음에 들었다 (사진이 없다니..). 보드랍게 찢어지고 위에 토핑으로 올린 굵은 설탕이 아삭 아삭 씹히며 단맛과 식감을 더했다.
남편과 사이좋게 빵을 먹으며 오늘은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비가 오지 않으니, 오늘은 바젤을 돌아보자고 마음먹었다. 잘 먹고 치우면서 남편이 말했다.
"Thank you for getting those lovely pastries. They were very nice" (멋진 빵 사다줘서 고마워. 정말 맛있었어)
혼자 돌아다니는 게 좋았던 것도 맞지만, 그건 빵을 사서 돌아왔을 때 내 얘기를 들어주고 뭔 빵집을 이렇게 많이 사왔냐고 빵에 미친거 아니냐고 나를 놀리면서도 함께 먹으면서 고맙다고 얘기해 줄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첫날 산 저 빵들은 양이 너무 많아서 (ㅋㅋㅋ) 다다음날 까지 아침에 일용할 양식이 되어주었다. 아침에 고민할 필요없이 간단히 먹고 나가면 되서 편리하니 좋았으나, 치즈타르트를 더 못 먹고 온 것이 한이다.
남편과 다시 빠르게 나갈 채비를 했다. 나는 몰랐다. 그 때 옷을 갈아입었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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