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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y 24. 2024

명품은 없고요, 비지니스는 탑니다

비지니스 라운지, 기내식 코스 - 어디까지 먹나 보자


나는 속히 말하는 '명품'이 없다. 한국 이야기를 들어보니 30대쯤 되면 당연히 프라다? 구찌? (브랜드 잘 모름..) 정도 되는 가방 하나씩은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미국인 시누도 저번에 프라다 가방을 하나 들고다니던 걸 보니 그건 딱히 한국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잘 모르다 보니 사실 얼마인 지도 모른다. 구찌 아기양말이 너무 귀여워서 그걸 보러 웹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마음에 드는 신발을 하나 발견했는데 생각보다 얼마 안 했다. 백 몇십 만원? 나는 다 막 오백만원 천만원은 하는 줄 알았다. 라스베가스에 놀러갔다가 매장이 있길래 사 볼 요량으로 들어갔다. 막상 신어보니 신발은 발 뒷굽을 갉아내는 것 만큼 불편했다. 외형이 내 취향이라 정말 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신발이 불편하면 신지도 못하고 모셔둘 수도 없으니 아쉽지만 그냥 나왔다.


나에게 신발, 가방, 옷 같은 것의 대략의 가격 적정선은 한 30만원 정도 인 것 같다. 엄청 저렴한 곳이더라도 "뭐 그런 싼 걸 사" 하고 무시하지 않고, 그냥 내 마음에 들고 질이 좋다고 하면 사서 쓴다. 30-50만원 선이면 좀 고민을 더 하고, 그 이상을 넘어가면 별로 사고 싶은 마음이 안 든다.


이유를 따져보자면, 아마 직업에서 온 버릇이아닐까 싶다. 영유아와 일했다보니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들은 부러진 크레용, 뭐 닦은 휴지, 어린이가 만들었다고 준 '예쁜 쓰레기' 정도고, 옷에도 뭐가 묻기 십상이어서 그런가. 좋은 건 사 봤자 맨날 까먹고 안 입은 채로 옷장에 쳐박혀있게 되고, 맨날 입는 건 똑같았달까. 그러다보니 '안 입을 텐데 뭐 하러 삼' 이 된 건지.



한국과 비교해 미국 사람들은 저축을 훨씬 안 한다. 바꿔말하면, 돈을 쓰는 데 좀 더 너그럽다. 남편이 그랬는데, 오랫동안 같이 살면서 아마도 좋은쪽으로 서로가 닮아갔다. 남편은 아시안여자(나)에게 말로 뚜드러 맞으며 절약하게 되었고, 나는 미국남자에게 spoiled (찾아보면 버릇이 나빠지는 정도로 나올 거 같은데 긍정적인 의미로 쓰일 때는 좀 행복/장난스럽게 돈으로 너그러워지는 의미도 있다) 당해서 좀 덜 절약하게 됐다. 아마 샌프란시스코의 비싼 물가가 한 몫 한 듯 하지만.


비행기 덕후인 남편은 나를 만나기 전에는 비즈니스만 타고다녔다. 둘이 합치면서 처음에는 엄청 뭐라고 했는데, 나도 종종 비지니스석에 노출될 기회가 많아졌고 타다보니 편안해졌다. 그래서 요즘엔 장거리 비행기이면 종종 비지니스석, 혹은 프리미엄 이코노미를 탄다. 탈 때, 내릴 때 빠른 것 (특히 해외여행일 때 이득임) 외에도, 긴 비행 자체도 뭔가 즐길 거리를 던져줘서 좋다. '아 비행기 10시간 구겨져서 가야해'가 아니라, '와 비지니스에서는 또 뭘 먹으라고 줄까' 해서 여행 시작 전부터 과정을 즐기게 된다.

비행시간이 6시간이 넘어가면 프리미엄이코노미나 비지니스를 찾게 되는데, 남편은 씨익 웃으며

“Look who wants the business class now”

(인제 누가 비지니스 찾는가 보시지) 하고 놀린다. 괜히 분함… ㅋㅋㅋㅋ


애초에 스위스를 가게 된 것도 여기서 시작한다.


앞서 말했듯 남편이 비행기 덕후이기 때문에 어떤 에어라인이 어디에 어떤 노선을 취항했는지, 증설했는지 이런 쓸 데 없는 걸 꿰고 있는데, 갑자기 샌프란-리스본 직항 비지니스가 엄청 싸게나왔다고 호들갑을 떨면서 가자고 했다. 나는 리스본을 가는 줄 알고 열심히 리스본을 찾아보고 구글지도에 마킹하고 있었더니 한 며칠 지나서 ‘아니다, 비슷한 가격에 비지니스 석으로 스위스행을 찾았다‘며 스위스를 가자고 했다.


나는 대학생 때 유럽 배낭여행 중에 스위스를 잠깐 다녀왔기 때문에 일단은 리스본이 더 땡겼지만, 남편이 스위스를 더 마음에 들어했다. 나도 짧은 스위스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으니 그러자고 했다. 그러니까 순전히, 스위스를 가게 된 건 비행기 비지니스 석 때문이었다.




남편은 어느 여행사끼리 어디 라운지를 공유하는지 뭐 그런 걸 다 알고 있는 편인데, 샌프란에서 출발 할 때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유나이티드 폴라리스 라운지란다. 여긴 제일 안쪽으로 들어가면 뷔페가 아닌 풀서비스 다이닝으로 식사를 할 수 있다.



평일 낮이다보니 붐비지 않아서 좋았다. 주문을 하면 메뉴는 금방 나온다.



스파클링 와인을 한 잔 시켜먹고 잔이 예뻐서 기분이 좋아졌다. 잔을 찾아보니 24개 들이로 팔아서.. 구매는 할 수 없었다. 와인은 맛있고, 라운지는 한적하고. 하늘은 꾸물꾸물하지만 여행가는 기분이 들었다. 메인 메뉴 연어는 맛있었는데 디저트는 맛이 없었다. 서비스가 굉장히 좋았다.


(오) 화장실 앞 복도 천장 데코가 저렇게 예쁠 일인가


식사를 마치고 뷔페도 있기에 둘러보다가 무슨 소바랑 치오피노 새우를 가져다 조금 맛보았다. 이미 배도 부르거니와 맛은 별로(특히 소바는 정말 노맛). 라운지는 매번 넘나 신이 나지만 아쉽게도 맛은 그냥 그렇달까. 그리고 나는 매번 여기에 걸려들어서 라운지에서 뭘 잔뜩 먹고 비행기에서 배불러서 다 못 먹는다.





비행기에 탑승했다. SAS 비지니스는 처음 타보는데 좌석이 모던하고 테이블탑 이나 선반 등 뭘 올려 놓을 공간이 많았다. 북유럽 식이라 그런가 의자는 '마사지'기능이 있는데 마사지라기보다는 그냥 시트가 좀 오르락 내리락 움직이는 정도였다. 나는 키가 작아서 더 그렇겠지만 공간이 넉넉했다.


앉는다고 그냥 막 찍었다 내 다리 왜때문에 먼지투성이..


어매니티랄 건 별로 없었다. 눈마개, 귀마개, 치약칫솔, 립밤, 로션, 양말, 그리고 주머니. 안에 들은 건 그냥 구색 맞추기고, 주머니가 질이 좋아서ㅋㅋㅋ 제일 쓸모있다. 여행갈 때 신발주머니로 쓰려고 집에 쟁여놨다.



그리고 나면 메뉴판을 준다. 뭘 먹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밥 먹기 전에 가장 설렌다. 아까 잔뜩 먹어서 배도 안고픈데 그냥 설레는 건 어쩔 수 없다. 따뜻한 너트를 주면서 음료를 고르라길래 특산품이라는 사과음료(링기?)를 골랐다. 도수가 있는 건 줄 알고 시켰는데 아니고, 그냥 사과주스였다. 일반 주스보다 훨씬 가벼웠다. 파란 잔디들판과 안개 같은 맛이났다.


너트 다 못 먹었는데 테이블 세팅하고 빵을 고르라고 준다. 음료도 또 준다. 사실 코스가 나올 때 마다 이번에는 뭘 마시겠냐고 계속 물어봤다. 아아.. 귀찮아서 그냥 계속 같은 주스를 마셨다. 여기는 신기했던 게, 셰프 복장을 한 크루가 카트를 밀고 와서 친절하게 응대하고 음식을 준비해준다.


전채요리는 양고기샐러드, 주요리는 소고기를 먹었다. 전채는 맛있었는데 소고기는 너무 질겼다. 남편은 주요리로 닭고기요리를 먹었는데 그게 훨씬 맛있었다.



그러고나면 셰프크루가 다시 와서 또 차가운 치즈와 살라미/햄, 과일을 먹겠냐고 덜어주고, 그 다음에야 디저트가 나온다. 너무 배가불러서 그냥 디저트랑 디카페인 커피만 받았다.


커피가 맛있었다. 잔과 잔받침도 너무 귀엽고.




식사서비스가 아닌 때에는 마음대로 가져다가 먹을수 있는 바가 열려있었다. 맛있어 보이는 북유럽감자칩?을 집어서 자리로 왔는데 막상 앉으니 푹신한 이불에 부스러기가 생기는 게 싫었다. 먹기 귀찮아서 옆에 치워두었다.


잠이 안왔다. 좌석도 엄청 편안하고, 베개도 푹신하니 편하게 누울 수 있는데 잠이 안와서 영화를 보다가 나중에는 그냥 눈 감고 누워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술을 한잔 마셨으면 잠들었을까 싶은데, 시켜먹었을 걸 그랬다.


착륙하기 전에 또 밥을 줘서 그것도 다 먹었다. 커피를 한 번 더 시켰는데, 직원이 기억하면서 "우유랑 맞지?" 찡끗 하고 갖다줘서 고마웠다.


단점이라하면, 이건 직항이 아니고 덴마크 코펜하겐 경유였기 때문에 피곤함을 이끌고 내렸다. 13년 전에 유럽여행 왔을 때도 덴마크 입국이었는데 그 때는 그냥 추웠던 것 밖에 생각이 안 난다 사실. 이미그레이션 직원이 왜 왔냐고 해서 휴가로 스위스 가는데 경유라고 했더니 더 묻지도 않고 도장을 꽝 찍어주었다. 비행기 모양 도장도 그대로구나, 싶었다.


시간이 조금 있는 것 같아서 코펜하겐 SAS 라운지에도 잠깐 들렀다. 아주 모던하게 잘 꾸며놓았는데 사람이 굉장히 많았다. 음식은 콜드컷(차가운 햄)이나 치즈, 빵, 채소와 과일 위주. 너무 배가불러서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앉아서 쉬다가만 나왔다. 심지어 사진도 없다.


비행기를 갈아타려고 걸었다. 코펜하겐 공항은 뭐랄까, 잘 꾸며놓은 한국 쇼핑몰이나 지하상가를 떠오르게했다.

여기저기 벽면에 '코펜하겐 공항에서 쇼핑을 하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가요' 하는 광고판이 즐비했다. 공항에서 쇼핑을 하면 뭘 얼마나 했는데 엇, 여긴 진짜였다. 이렇게 대놓고 쇼핑몰 처럼 생긴 공항은 또 처음 봤다.   돌아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었는데 남편이 시간이 없다고 빨리 가자고 독촉해서 남편 면도기만 사고 게이트로 갔다. 막상 게이트로 갔더니 조금 일찍 도착한데다가 딜레이가 되서 서서 한참 기다렸다. 남편한테 "아까 구경하고 왔어도 됐잖아!" 하고 쏘아댔다.



여기서 다시 스위스 취리히 행을 탔다. 이건 작은 비행기라 비지니스석이 따로 없고, 그냥 맨 앞 몇 줄을 중간 석을 띄고 앉혔다. 그리고 먹을 걸 또 줬다.

그, 그만..


배가 그렇게 부른데 차갑고 산뜻한 게 나오니 그게 또 들어갔다. 일반좌석에 1시간 반 짜리 짧은 비행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잠이 와서 20-30분 정도 잘 수 있었다.





어차피 물건에는 돈을 못 쓰다보니, 편안한 것과 경험 위주로 소비를 하게 된 지금은 비지니스 석이 내가 즐길 수 있는 거라면 나에게는 가치가 있다.


순전히 비지니스석 특가를 찾는 바람에 가게 된 스위스. 잠을 못자서 피곤했지만 그 덕분에 엄청 먹고 있는 영화도 다 보고 가는 길은 참 재미있었는데, 오는 길에는 SAS 비지니스 석에서 인종차별 같은 걸 당한 것 같았다 (그건 나중에 쓰겠지).


여행 연재 3화만에서야 스위스에 도착했다. 잘 먹이고 먹이고 또 먹여서 정말 배가 부른 채로, 잠을 못 자서 피곤한 채로 14시간 만에. 취리히에서 묵는 것이 아니니 쉴 새 없이 바로 이동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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