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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ug 13. 2024

호텔 조식은 안 좋아하는데

미국사람들은 아침에 왜 맨날 똑같은 걸 먹는지

미국사람들은 참 번거롭게도 아침에 뭘 먹어야 맞다는 걸 정해놨다.


보통은 계란, 베이컨, 토스트 (혹은 팬케이크/베이글 등 비슷한 빵종류), 머핀, 소시지, 요거트, 시리얼, 오트밀, 주스, 그래놀라 정도로 정해놨다. 누가 정해놨냐고? 물론 그런 건 아니지만 대략 1900년대 초중반에 '정해졌'다. 아침에는 빠르고 간편하고 속에 부담이 없는 걸 먹는게 대부분 문화권의 아침식사 특징인데, 역시 미국은 언제나 그렇듯 좀 더 자극적이고 기름진 쪽으로 기울어 정착해버렸다.


'단백질이 필요해'라는 핑계로 베이컨을 아침식사에 더하기 시작했다는 썰을 들은 적이 있다. 대표적인 미국아침식사는 정말 건강에 해롭기 그지 없다. 팬케이크에 메이플시럽/버터 듬뿍, 기름이 자글자글하고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소시지, 스크램블에그나 계란프라이, (보통은 설탕이 잔뜩 든) 시리얼, (보통은 설탕이 잔뜩 들어 엄청나게 단) 페이스트리. 베이컨 기름이 몸에 해롭다며 베이컨을 바싹 구워서 바삭바삭하게 먹는데, 그럼 버터는 왜 먹고 시럽은 왜 먹고 .. 뭐, 앞뒤가 안 맞는 거 하루 이틀 아니니 생략하겠다.


아, 정석대로(?)라면 채소는 금물이다. 과일은 사이드로 나오거나 곁들일 수 있는 경우도 있지만, 채소는 없다. 사이드 샐러드가 나오는 곳은 다른 문화권이 영향을 끼친 곳이다. 아시안계가 많이 가는 곳 정도는 되야 사이드로 샐러드가 나온다.


이쯤되면 '아침식사' 라는 명목과 핑계로 설탕과 기름진 것, 탄수화물을 맘껏 먹겠다는 의지다. 다이너나 레스토랑에 가면 위의 특정 '아침식사' 메뉴는 특정 아침 시간에만 팔고 점심 즈음엔 샌드위치나 다른 메뉴로 갈아타는 경우도 많다. 'Breakfast all day (하루종일 아침식사)' 라고 걸어놓고 브렉퍼스트 메뉴를 하루종일 파는 곳도 있고.



여행을 가도 호텔의 조식은 많은 경우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내놓는다. 미국 내 호텔들은 물론이고 외국 호텔들도 마찬가지 (미국 밖에서는 종종 색다른 음식을 내놓는 곳도 있긴하지만).


그래서 조식에는 대체로 흥이 안 난다. 여행을 가면 거기서 먹을 수 있는 특유의 경험을 해야하는데 호텔조식이라는게 다 미국조식 틀에 갇혀 비슷비슷하다보니 될 수 있으면 피한다. 한국에서는 호캉스 때문에 부모님 모시고 가서 인당 몇 만원씩 주고 먹어보긴 했지만, 마음에 들긴 쉽지 않다.


그래서 역시나 스위스 여행 내내 우리는 조식이 없는 곳으로만 다녔는데, 라우터브루넨의 작은 호텔은 아침식사가 포함으니 먹어보기로 했다. 분명히 호텔 조식 안 좋아하는데, 설레였다.



로비에서 한 켠으로 들어가면 저녁에는 식당으로 운영하는 곳에서 조식을 제공한다. 실내가 아늑했고, 몇몇 여행자들이 벌써 아침식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구석으로가 창가 바로 옆에 자리 잡았다.



작은 꽃들로 초록이 덮혀가는, 야트막한 언덕과 그 너머로 보이는 설산, 폭포뷰가 한 눈에 들어왔다. 새들이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다. 음식이 특별하지는 않았다. 미국식 조식아이템과 스위스의 콜드컷 햄, 치즈 등이 곁들어진 형식. 다만 미국과 비교해 전반적으로 덜 달고 페이스트리의 퀄리티도 괜찮았다. 유제품 강국답게 치즈나 우유가 참 고소했다.


"I really love this place" (여기 진짜 좋다)

"What a view. I would eat breakfast forever with this view (뷰좀 봐. 뷰가 이렇게 좋으면 아침식사를 영원히 먹을 수 있을 듯)"


우유를 넣은 커피를 홀짝거렸다. 벌써 바닥을 보이는 커피잔이 아쉬워 머뭇거리다가, 카페인 걱정은 뒤로하고 커피를 한 잔 더 내려 우유를 넣어서 돌아왔다. 부드러운 크로와상도 하나 더 집어와 앉아서 우물우물 삼켰다. 간헐적 단식은 한 켠에 접어두고 먹는 아침식사는 달콤했다. 눈치없이 금방 부른 배가 아쉬워 이미 비워버린 커피잔만 달그락거렸다.

뷰가 맛있었던 건지, 마지막 날이라는 것이 안 믿겼던 것인지,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도 테이블에 한참동안 앉아 밖을 바라봤다.


더 앉아있고 싶었지만 이제는 일어나야했다. 라우터브루넨을 떠나기 전에, 'Trummelbachfalle' 라는 폭포를 보고 가기로 했으니까.

https://maps.app.goo.gl/ScneyZ1upNBLq4EPA




라우터브루넨에는 폭포가 엄청나게 많다. 걸어다니면 크고 작은 폭포가 계속 보이는데, 60개가 넘는다고 본 것 같다. 그 중에서 우리가 보러 갈 Trummelbachfalle는 절벽 사이를 엄청난 양의 폭포수가 뚫고 들어가 동굴 및 협곡을 만들어 낸 곳.


융프라우 패스는 어제부로 끝났고, 참 잘 뽕을 뽑았으니 오늘은 성실히 앱으로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하프페어 카드가 되니 2프랑인가 그랬던듯. 버스를 타고 조금만 달리면 되는데, 이 버스 자체가 동네 폭포투어 같은 느낌이 있다. 양쪽 큰 창으로 뷰가 정신없이 보이니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타고 돌아만 다녀도 투어가 될 것 같았다.


폭포는 정류장에 내리면 티켓을 구매해 들어가면 된다. 역시나 비수기라 사람이 없었으나 우리 바로 앞에 한 40명 되는 인도인 단체관광객이 티켓을 사려고 직원과 씨름하고 있었다. 한참 걸리기에 슬쩍 가서 우리 그냥 2명인데 먼저 살 수 있을까? 했더니 직원이 당연히 그러라며 먼저 티켓을 끊어서 들여보내줬다. 단체관광객이 우루루 몰려오기 전에 우리는 총총총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서 자유롭게 걸어다니며 구경하면 된다. 글레이셔가 녹은 옥색의 물이 톤단위로 떨어지며 굉음을 내는데, 꽤나 장관이다. 긴 세월동안 물이 깎아놓은 동굴과 협곡 사이를 걸어다니는 모험이라니!


아마 물이 돌을 깎아 첫 동그라미를 파고, 그 밑이 무너지면서 다시 또 동그라미를 파고를 반복한 듯 하다.

아쉽게도 사진에는 다 안 담기는 장엄함.


나에게 손짓하는 것 같지만 모르는 아저씨임.

동영상에도 안 담긴다 ㅠㅠ. 물이 머리 위로도 많이 떨어지니 우비나 방수가 되는 겉옷을 입으면 좋고, 동굴과 계단이 미끄러우니 안전한 신발을 신고 가는 걸 추천한다. 계단이 많으니 어르신들은 구석구석 전부는 좀 어려울수 있다. 나도 무릎때문에 (ㅠㅠ 그렇습니다 여행 내내 나를 괴롭힘) 남편이나 난간을 잡고 천천히 다녔다.


폭포를 보고 나오면 이런 뷰가 보인다. 참. 반칙이야. 왼쪽 절벽도 보면 물줄기 여러개가 흐르는 것이 보인다. 여기서 계단을 타고 더 내려가면 또 폭포를 다른 층의 뷰로 즐길수 있다.


손 왜저럼 ㅋㅋㅋㅋ

다시 아까 내렸던 곳으로 버스를 타러 걸어가는 길도 장관이다. 절벽이 둘러싸고 있는 풍경이 마치 하이마트 티브이관에 가면 고사양 티비들이 여기저기서 하이퍼 리얼리티 장면을 눈 돌아가게 틀어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여기서 하이킹을 했어야 했는데.




같은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이제는 진짜 라우터브루넨을 떠날 시간. 안녕! 라우터브루넨!


다음에는 오면 라우터브루넨이나 벵엔에 묵고 하이킹도 해야겠다고, 아쉬움을 가득 남기며 짐을 찾아 기차를 탔다. 뷰가 멋지다는 글레이셔 익스프레스 (이름이 맞나)를 타고 루체른으로 간 다음, 다시 열차를 갈아타고 오늘의 목적지인 취리히로 가는 일정.


여행을 계획할 때 글레이셔 익스프레스는 예약을 하는 게 좋다기에 돈을 더 내면서도 사전 예약을 했는데 비수기에는 다 쓸모 없었다. 자리에는 좌석 넘버가 없어서, 이미 돈 주고 좋은 자리를 예약했지만 그 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티켓직원한테도 물어봤지만 그런 거 필요없고 아무데나 앉으라고 쿨하게 무시하고 떠나버렸다.


이 와중에 한 중국인 아저씨는 나에게 와 대뜸 표를 내밀며 뭐라고 뭐라고 했다. 미국에서도 중국인들에게서 흔히 겪는 일인데, 너 중국말 할 줄 아냐고 묻지 않고 동아시아인처럼 보이면 냅다 중국말을 난사한다. 느낌상 이 아저씨도 좌석 번호를 찾는 거 같았다. 하지만 어쨌근 나도 모르므로 영어로 “I don’t speak Mandarin” 했다.


아저씨는 이상하다는 듯이 나를 쳐다봤고(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뭐라뭐라고 아저씨에게 말하자 (아마 얘 중국인 아닌가봐 라고 한 듯) 아저씨는 다른 자리에 있던 다른 여자애에게 가서 말을 걸었다. 다행히 걔는 중국애였다.



뭐 어찌됐든,

비수기에 가신다면 예약하지 마시라.



경치를 보면서 쿱에서 산 감자샐러드(흐흐 또 샀지롱)를 먹었다. 예쁜 사진은 아마 남편에게 다 있는 듯 한데, 개인적으로는 인터라켄을 완전히 빠져나와서 다른 산을 다시 올라갔다가 내려와야 보이는 다른 호수들과 그 마을 풍경이 참 마음에 들었다. 확실히 타고 내리는 사람도 훨씬 적고 고요해 보이는 곳들. 비수기라 그렇겠지?


크고 작은 호수가 여러개 지나갔다. 한국도 그렇고 샌프란시스코에서도 그렇고, 바다가 가까운 나라와 도시에 살다보니 근방에 물이 있는게 놀라운 건 아니다. 한참이나 기차를 타다가, 스위스는 내륙에 위치해 있으니 얘들은 전부 호수였다는 걸 갑자기 새삼 깨닫고 신기해졌다. 호수의 수위가 낮아지며 만들어 낸 호숫가의 선이 보였다. 바다가 먼데도 글레이셔가 녹은 물이 만들어내는 생명줄. 아름다운 풍경. 번성하는 풍요로움. 마르지 않는 바다가 익숙한 이의 괜한 걱정. 호수가 마르면 이 아름다움은 어디로 가는가.





그리고 루체른에 도착했다. 엄청나게 북적북적했다. 기차역에 짐을 넣어놓고 다음 기차 시간까지 근처를 둘러보기로 했다. 사람이 너무 많다. 아, 벌써 아까 먹은 라우터브루넨의 조식과 여유로움이 그리워졌다.








이제 단 2화만 남았어요. 4월 이야기를 아직도 쓰고 있으니.. 8월 안에는 끝내야겠습니다ㅋㅋ 메인사진은 라스베가스에서 남편 엄마가 주문했던 방석만한 팬케이크입니다ㅋㅋㅋㅋㅋㅋㅋ 정말 방석만해요..




10,000뷰 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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