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프라우 뮈렌의 고양이님
라우터브루넨으로 그냥 내려가기는 아쉬우니 초록이 보이는 다다음 역 즈음에서 내려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멋진 경치가 보이는 카페에 앉았으면 좋겠다고.
문제는 비수기라는 점에 있었다. 음식점이나 카페도 성수기가 아니니 거의 쉬어가는 타임이었는지, 들어갈 곳이 없었다. 열렸다고 써 있어서 가봤더니 문이 잠겨있는 경우도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너의사랑 나의 사랑 쿱에서 간단히 요깃거리를 구매해 경치를 보며 밖에서 먹기로 했다.
기차역 옆에 자리잡고 점심을 먹었다. 1달러도 안 하는 초콜릿 우유에 빠져서 저걸 많이 사 오고 싶었다. 의외로 제일 맛있었던 건 저 감자샐러드! 스위스 음식이 대부분 헤비하다보니 좀 상큼한 게 먹고 싶어서 파스타 샐러드만 집었다가, 스위스 감자가 맛있으니 곁들어 먹자 하고 생각없이 더했던 것. 마요네즌지 크림베이스인지 분명히 헤비해야 되는 재료들인데 머스타드가 들어가 새콤하고 발랄한 맛이 났다.
기차시간이 좀 더 남아 동네를 걸어다녔다. 호텔이나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았고 사람도 거의 없어서 정말 마음대로 쏘다녔다. 이런 경치는 정말 반칙이 아닌가.
더 멀리 계속 내려가 보고 싶었는데, 경사가 꽤 되서 올라오기 너무 힘들어질까봐 되돌아왔다. 다음에 오면 여기를 묵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기차를 타기 전에 아까 보아두었던, 얼마 안 되는 문 연 가게들 중에 베이커리를 털었다. 먹고 싶은게 정말 많았는데 다 집을 수 없으니 아쉬웠다. 저 버터링 같이 생긴 초콜릿 쿠키가 제일 맛있었다.
라우터브루넨에 도착해서는 빠르게 뮈렌으로 향했다. 호텔에서 바로 나오면 뮈렌으로 가는 케이블카였기 때문에 이동 효율이 끝내줬다. 케이블카 위로 올라가면 여기서 더 올라갈 게 있을 까 싶은데, 다시 열차를 타고 한참 더 가야 뮈렌이 나온다. 라우터 브루넨이 잘 안 보일 정도로 높다. 느낌상 라우터 브루넨 꼭대기에서 다시 한 단을 더 올라온 것 같다.
눈이 펑펑 쌓여있다고 볼 순 없지만 푸르다고도 할 수 없는 4월 말. 눈이 녹아 여기저기 비 온 후 같은 느낌이 났다.
다운타운은 귀여울 테지만 비수기라 한산했다. 걸으며 여기저기 구경을 하다가, 고양님을 만났다.
세상 멋진 절경을 등지고 절벽 끝에 앉아 한가롭게 졸고 계신 고양님.
목걸이에 '쓰다듬지 마시오' 하고 써 있어서 (물론 싫어하셨겠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손 모으고 앉아계신게 너무 귀여운데, 자꾸 사진을 찍어댔더니 영 귀찮으셨는지 마징가 귀를 보이셨다. 문득 처음에 여길 어떻게 올라온 걸까 궁금해졌다. 얘도 케이블카 타고 기차를 갈아타고 왔을까?
그렇게 하루종일 돌아다녀놓고도 내려와서 그냥 숙소에서 쉬기는 아쉬웠다. 방 창문으로 보이는 폭포를 가까이서 보고 싶어서 걸어가기로 했다.
라우터브루넨 다운타운도 귀여웠다. 여기는 그래도 사람이 많았다.
이 큰 폭포만 있는게 아니라 옆에 있는 작은 폭포도 잘 보인다. 가까이에 가면 관광객이 많은데, 솔-직히 폭포는 멀리서 보는 게 멋있었다. 이미 또 2만보에 가까워진 우리는 털레털레 돌아오다가 헛헛해져서 뭔가 먹을걸 찾았다. 그러다가 먹은건 난데없는 한국식 핫도그.
구글 평점도 엄청 좋고, 먹으려고 했던 건 품절되고 없어서 다른 걸 먹었다. 라우터브루넨에서 까지 보는 한국식 핫도그의 인기..! 모짜렐라 대신 라끌렛을 넣어서 만드는게 특색있고 좋았다. 맛은 뭐, 치즈를 튀겨서 매운 마요 뿌렸는데 맛이 없을수가 있나. 단지 먹는데는 좀 불편해서 냅킨이 필요하다.
가만있어보자. 저녁을 뭘 먹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테라스에 앉아 경치를 보며 아까 사온 베이커리 아이템이랑 와인을 마신 기억은 난다. 그냥 해가 질 때 까지 계속 경치를 봤다. 해가 움직이며 절벽의 다른 면면, 또 다른 폭포를 비추었다.
이 날의 풍경은 사진따위로 담을 수 없을 만큼 대단했다. 그저 할 수 있는 건 아까 본 고양이 처럼 차분히 앉아 쉬며 눈에 담는 것 뿐. 융프라우에서의 마지막 밤. 여행의 마지막은 어찌나 빨리 다가오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