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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May 26. 2023

우리는 귀엽고 소파를 파괴하지

네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2019년 초, 드디어 집으로 데려온 야옹님들.



야옹님들 입양스토리는 다음 글을 확인하시라

https://brunch.co.kr/@c39a98fae8d84a9/13



첫 며칠은 아무래도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셸터 직원분들의 말씀에 따라 야옹이 분들께 거실 한 구석에 거처를 마련해 드리고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캐리어에 들어가 잘 나오지 않아서 묵묵히 내버려 두었다. 혹시 숨고 싶으면 소파 밑이나 뭐, 숨겠지.


첫 날 저녁에는 의외로 많이 나와서 돌아다니고 오히려 둘째 날에 움직임이 줄었는데, vet 테크니션인 호맘이 첫날엔 진정제 약기운이 남아서 그런거라고 했다.


후추가 확실히 더 활발해서 먼저 돌아다니고 이걸 본 생강이가 뒤따라 나오는 식이었다. 왜 본디드페어(짝꿍) 였는지 알겠는게, 생강이는 후추가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기웃거리며 따라 나왔고, 그런 생강이를 발견하면 후추가 가서 아주 친한척을 했다. 후추는 돌아다니다가도 생강이를 찾아 얼굴을 부비며 확인했다. "괜찮아?" 하는 것 같이. 무튼 두 분은 며칠 간 열심히 몰래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 전부 냄새를 맡으셨다.


생강이를 반기며 타다닷 달려가서 친한척 하는 후추





후추는 잘 안보여서 표시. 팔 뻗고 기어나오는 생강이 귀엽따

보통 하루의 대부분은 소파 밑과 뒤에 숨어지내다가, 저녁에 우리가 잠자러 침실로 들어가면 슬금슬금 천천히 몰래 나와서 조금씩 돌아다녔다.

소파뒤에서 나오는 생강이와 후추의 마중



그런데 며칠 후 아침, 거실에 나왔는데 아무리 소파 밑과 뒤를 찾아봐도 야옹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원베드룸 집에서 하늘로 솟았나?


알고보니, 소파 밑 레이어를 파서 그 속에 들어가 있었다.

다들 소파 밑 들어간 줄 알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위한 소파 속 투시도

소파 밑 면은 대부분 부직포같은? 재질(그림에서 초록색 선) 으로 마감이 되어있는데, 가생이를 뜯어낸다음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부직포 바닥면에 앉으면 꼭 이게 해먹같이 된다. 솜도 좀 신나게 파헤쳐서 빼 놓고 공간을 만든 다음에 거기에 사이좋게 한 칸씩 자리를 틀어잡고 앉아있었다. 소파 밑을 보면 이놈들 무게때문에 양쪽이 불룩하게 밑으로 처져있는 형태. 캄캄하겠다, 인간이 볼 수 없겠다, 해먹(?)이니 편안하겠다 아주 최적의 휴식장소가 되었다.


아니.. 소파 밑 공간으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소파 으로 들어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산 지 2년 밖에 안된 소파를.. 이눔시끼들이.. 성이났지만 뭔가 웃겨서 남편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야옹이들을 밑에서부터 쿡쿡 찔러 빼내었다. 테잎으로 붙여서 구멍도 막아보았지만 그냥 또 얘들이 뜯어서 새 구멍을 내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못들어가게 해야 했다. 우리가 고양이가 들어있는지 모르고 소파에 앉으면 아주 위험하고, 또 위기상황에. 그 안에 숨으면 우리가 잡을 수가 없으므로.


최후의 해결책은 소파 밑을 스토리지박스로 빈공간 없이 채워버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침대밑용 스토리지박스가 딱 들어맞았고, 박스를 반대편으로 밀어내고 들어갈 수 없게 양면테이프로 아예 고정을 해 버렸다. 이내 고양이들은 들어가기를 포기했다 (다행히도). 대신 숨을 곳을 위해 캣타워를 사줬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가구를 고르는 기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의자나 소파를 고를 때는 무조건 '밑을 뚫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를 먼저 확인한다. 저 소파는 아직도 거실에 있긴 한데 밑면이 아주 너덜너덜..하다. 지금도 가끔 저 때 만들어놨던 구멍을 어떻게 헤집어서 솜을 다시 잔뜩 빼 바닥에 흩뿌려놓곤 한다.


지금은 자기 기분 좋을 때 소파 위에서 맘 놓고 디비져 주무신다.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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