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esidio Library May 26. 2023

우리는 귀엽고 소파를 파괴하지

네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2019년 초, 드디어 집으로 데려온 야옹님들.



야옹님들 입양스토리는 다음 글을 확인하시라

https://brunch.co.kr/@c39a98fae8d84a9/13



첫 며칠은 아무래도 적응기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셸터 직원분들의 말씀에 따라 야옹이 분들께 거실 한 구석에 거처를 마련해 드리고 지켜보기로 했다. 처음에는 캐리어에 들어가 잘 나오지 않아서 묵묵히 내버려 두었다. 혹시 숨고 싶으면 소파 밑이나 뭐, 숨겠지.


첫 날 저녁에는 의외로 많이 나와서 돌아다니고 오히려 둘째 날에 움직임이 줄었는데, vet 테크니션인 호맘이 첫날엔 진정제 약기운이 남아서 그런거라고 했다.


후추가 확실히 더 활발해서 먼저 돌아다니고 이걸 본 생강이가 뒤따라 나오는 식이었다. 왜 본디드페어(짝꿍) 였는지 알겠는게, 생강이는 후추가 나가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기웃거리며 따라 나왔고, 그런 생강이를 발견하면 후추가 가서 아주 친한척을 했다. 후추는 돌아다니다가도 생강이를 찾아 얼굴을 부비며 확인했다. "괜찮아?" 하는 것 같이. 무튼 두 분은 며칠 간 열심히 몰래 돌아다니면서 구석구석 전부 냄새를 맡으셨다.


생강이를 반기며 타다닷 달려가서 친한척 하는 후추





후추는 잘 안보여서 표시. 팔 뻗고 기어나오는 생강이 귀엽따

보통 하루의 대부분은 소파 밑과 뒤에 숨어지내다가, 저녁에 우리가 잠자러 침실로 들어가면 슬금슬금 천천히 몰래 나와서 조금씩 돌아다녔다.

소파뒤에서 나오는 생강이와 후추의 마중



그런데 며칠 후 아침, 거실에 나왔는데 아무리 소파 밑과 뒤를 찾아봐도 야옹이들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아니 원베드룸 집에서 하늘로 솟았나?


알고보니, 소파 밑 레이어를 파서 그 속에 들어가 있었다.

다들 소파 밑 들어간 줄 알기 때문에 이해를 돕기위한 소파 속 투시도

소파 밑 면은 대부분 부직포같은? 재질(그림에서 초록색 선) 으로 마감이 되어있는데, 가생이를 뜯어낸다음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부직포 바닥면에 앉으면 꼭 이게 해먹같이 된다. 솜도 좀 신나게 파헤쳐서 빼 놓고 공간을 만든 다음에 거기에 사이좋게 한 칸씩 자리를 틀어잡고 앉아있었다. 소파 밑을 보면 이놈들 무게때문에 양쪽이 불룩하게 밑으로 처져있는 형태. 캄캄하겠다, 인간이 볼 수 없겠다, 해먹(?)이니 편안하겠다 아주 최적의 휴식장소가 되었다.


아니.. 소파 밑 공간으로 들어갈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소파 으로 들어갈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산 지 2년 밖에 안된 소파를.. 이눔시끼들이.. 성이났지만 뭔가 웃겨서 남편과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야옹이들을 밑에서부터 쿡쿡 찔러 빼내었다. 테잎으로 붙여서 구멍도 막아보았지만 그냥 또 얘들이 뜯어서 새 구멍을 내면 그만이었기 때문에.. 어쨌든 못들어가게 해야 했다. 우리가 고양이가 들어있는지 모르고 소파에 앉으면 아주 위험하고, 또 위기상황에. 그 안에 숨으면 우리가 잡을 수가 없으므로.


최후의 해결책은 소파 밑을 스토리지박스로 빈공간 없이 채워버리는 것이었다. 다행히 침대밑용 스토리지박스가 딱 들어맞았고, 박스를 반대편으로 밀어내고 들어갈 수 없게 양면테이프로 아예 고정을 해 버렸다. 이내 고양이들은 들어가기를 포기했다 (다행히도). 대신 숨을 곳을 위해 캣타워를 사줬다.


이 에피소드는 우리가 가구를 고르는 기준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의자나 소파를 고를 때는 무조건 '밑을 뚫고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가?' 를 먼저 확인한다. 저 소파는 아직도 거실에 있긴 한데 밑면이 아주 너덜너덜..하다. 지금도 가끔 저 때 만들어놨던 구멍을 어떻게 헤집어서 솜을 다시 잔뜩 빼 바닥에 흩뿌려놓곤 한다.


지금은 자기 기분 좋을 때 소파 위에서 맘 놓고 디비져 주무신다. 귀엽다.

작가의 이전글 보러만 갔다가 고양님 2마리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