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닭이 이상할 수도 있다.
나는 물에 빠진 고기 요리를 좋아한다. 근데 잘 생각해 보면 미국음식 중에는 물에 빠진 닭 요리가 거의 없다. 아마 따지자면 치킨누들수프가 가장 가까운 요리일 것 같은데 잘 생각해 보면 닭고기는 별로 안 들었고, 서양식 국물베이스 용 채소 (mirepoix-미어퐈- 라고 부르는 당근, 양파, 샐러리)와 면(라고는 하지만 에그누들이나 파스타 푸실리 같은 것들)같은 건더기가 더 많아서 삼계탕과는 상당히 느낌이 다르다. 다른 요리에서 닭이 들어가는 국물요리라고 하더라도, 미리 기름에 한 번 구운 다음에 미어퐈 같은 채소나 다른 것을 넣고 기름에 함께 볶은 후, 육수를 넣어서 국물이 자작하게 만드는 수프 정도. 한국에서 살면서 고기를 냅다 물에 넣어서 오랜시간 끓이는 종류의 탕/곰탕에 익숙해서 나야 친근했지만, 생각보다 삼계탕이라는게 외국사람 입장에서는 좀 이상하게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얘네는 소고기/치킨/채소 육수를 옛날부터 우유팩 같은 데에 넣어서 팔았는데, 여기다 그냥 닭 담가먹는 느낌이 아닐까.
삼계탕은 어렸을 때 엄마가 해주던 요리중에 가장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닭 한마리가 뽀얀 국물과 함께 커다란 냄비에 담겨 상 한가운데에 놓였을 때. 엄마는 닭 살코기를 떼어 아빠, 언니, 나에게 국물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두 개 뿐인 닭다리는 하나는 언니나 나에게, 하나는 아빠나 엄마에게 돌아갔다. 나는 닭다리가 너무 먹고 싶었는데, 항상 나만 먹을 수 없으니 가끔은 닭날개로 만족해야했다. 나는 어린 마음에 공평하게 먹는다고 생각했지만, 아마 지금 생각하면 그래 제일 어린 놈 너 먹어라, 하고 가족들이 양보해 주었을. 후추를 섞은 소금에 찍어 먹으면 그저 너무나 맛있었던 쫄깃쫄깃 닭다리.
고기를 어느 정도 먹고 나면 엄마가 남은 것들을 얇게 찢어 찹쌀을 넣고 닭죽을 끓여주었다. 아, 고소하고 달큰한 국물을 머금은 보드라운 죽. 세상에 이만큼 맛있는 것이 없었다. 영원히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맛. 나는 닭고기를 내 그릇에 조금 더 아껴두었다가 죽에 더 섞어넣고 아껴 먹곤 했다. 엄마는 잘게 썰은 파를 넣어주었는데 그 때는 그 파가 싫어 얼른 먼저 먹어치웠다.
나중에 부모님이 가게를 시작하시면서, 엄마는 밤에 도보-전철-전철-버스 거리를 매일 출퇴근하다 이내 지쳐 가게에 달린 방에서 아빠와 같이 대부분을 지내셨다. 주에 한 번 정도 엄마는 집에 와서 반찬과 먹을거리를 채워주고, 엉망이 된 집을 정리해 주고 갔다. 언니와 나는 집에서 일어나 알아서 학교를 갔다. 나는 학교 마치면 돌아와 알아서 숙제를 하든 컴퓨터를 하든 친구들과 놀든 하다가 엄마가 채워준 것들로 저녁을 먹었고, 언니는 학원이든 야자든이 끝나고 늦게 돌아왔다. 그 때 엄마가 해다 주던 음식들 중 자주 닭죽이 있었다. 김치통에다가 가득 채워 만들어 온 닭죽이 나는 너무 좋아서 양껏 먹고, 추가로 밥을 더 넣어 말아먹기도 했다. 이 닭죽의 빈도가 잦아지면서 닭죽은 내 '최애'에서 '그냥 맛있음'단계로 내려왔다. 지금은 닭죽을 보면 그저 좀 아련하고 외로운 느낌이 든다. 아무리 닭죽이 맛있어도, 혼자서 저녁에 그릇에 덜어 전자레인지에 돌려먹어야 할 것 같으므로.
현재로 돌아와서, 나는 아직도 삼계탕을 좋아한다. 녹두나 누룽지나 들깨가 들어가 국물이 녹진한 종류를 특히나. 그리고 역시나 여기엔 내가 좋아하는 그런 특정 삼계탕은 찾기가 힘들다. 나는 흔히 '닭 먹는날'로 알려진 복날의 의미를 남편에게 주입시켰다. 솔직히 삼계탕이 남편의 최애 한식은 아니다. 한국에 갔을 때도 서울에 유명하다는 삼계탕집에서 나만 맛있게 들이키고 남편은 배부르다며 1/3은 남겼다. (그냥 자기 최애가 아니면 적당히 먹고 배부르다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만든다. 사실 처음부터 내가 만드는 삼계탕이 들깨삼계탕이었던 건 아니다. 닭을 사다가 쿠쿠밥솥 만능찜 기능에도 익혀보고, 냄비에 넣고 끓여도 봤지만 뭔가 밋밋했다. 뭐지? 뭘 넣어야하지? 뭐가 국물을 녹진하게 만들지? 하다가 냉동실에 넣어 놓은 들깨가루가 보였을 뿐이다. 이상하게 들깨가루는 한인마트에서도 찾기가 어려운데, 유일하게 구매할 수 있는 이 브랜드?는 껍질을 깐 건지 가루가 새하얗다. 들깨가루를 그냥 적당히 쏟아붓고 다니 국물에 닭에 이리저리 엉겨붙어 이상했다. 그렇다면 갈아버려야지 하고 블렌더를 이용해 국물을 갈았더니, 엇?! 국물이 뽀얗고 진해졌다. 맛있다! 원래 이렇게 하는건가?
그래서 그 이후에는 무조건 들깨삼계탕을 만든다. 원래 이런지는 잘 모르겠다. 레시피를 찾아본 것도 아니고 그냥 내 마음대로 하는 것이므로. 내 마음대로 하니까 통 닭을 사지 않고 허벅지가 붙은 통닭다리를 6개 샀다. 어른이 된 느낌이 든다. 닭다리만 들은 삼계탕이라니?! 사실 미국 닭은 좀 많이 커서 통닭다리 하나만으로 충분하고, 더 커다란 통닭은 저걸 뭘 어떻게 해야하는지 감이 안 와서 그렇기도 하다. 닭을 씻은 후 물에 잠길 만큼 넣고 마늘, 파, 맛술을 넣고 한 시간쯤 끓였다. 중간중간 불순물을 건져준다. 닭기름이 떠오르고 고기가 야들야들하게 익었을 때 들깨가루를 넣고 블렌더로 간다. 이 때 잘못해서 닭다리도 좀 뜯겨 갈렸다ㅋㅋㅋ 무튼, 이렇게 하면 아까 넣었던 마늘과 파까지 곱게 갈려서 국물에 녹아든다. 파까지 곱게 썰어 얹어주면 완성. 6인분이 완성되었다.
엄마가 주던 대로, 소금에 한국후추를 섞어 찍어먹었다. 남편은 파의 양이 맘에 들지 않는 듯 했다 (ㅋㅋ) 닭다리는 잘 익어 보드랍고 쫄깃했다. 한입 베어 물면 뜨거워서 후하후하 하면서도 입안 한 가득 넣고 우걱우걱 씹어먹는 고소한 맛. 남편은 다섯 손가락을 다 사용해 닭다리를 들고 뜯었다. 기름 묻은 손으로 숟가락을 들어 국물도 맛본다. "아, 사실 이 파를 많이 넣은 게 좋은 생각이었어" 한다. 숟가락으로 밥을 한 술 떠 국물에 푹 담가 함께 떠먹는다. 밥이 없어질 때 까지 또, 또 한 술. 남편은 순식간에 닭다리에 밥에 국물까지 해치웠다. 음식을 마셔버리는 것 같이 해치워서 중간중간 "씹어, 씹어야지" 하고 상기시켜야했다.
남편입장에서는 이상할 수도 있는 음식을, 잘 먹어주니 고맙다. 내가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음식들을 공유할 수 있어서 기쁘다. 남편에게는 이런 것들이 나와 살면서 가족이 되어 만들어가는 독특한 추억과 전통이 되어가는 거겠지.
역시 나머지 4인분은 소분해서 냉동실 행. 그리고 어김없이 나타나 주시는 야옹님.
물렁뼈나 살만 조금 발라서 던져드렸더니 (손으로 직접 드리면 본묘 마음이 급해서 문다) 야옹야옹 아주 난리다. 너도 좋아해 줘서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