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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Aug 16. 2023

미국 국립공원 폭포 맛집 치고 빠지는 방법

다음 날 못 걸을 수 있습니다만

캘리포니아 폭포는 눈치싸움이다. 관심이 없어서 잘 몰랐는데, 가뭄이 흔한 캘리에서 멋진 폭포를 만나기는 사실 이 전 겨울 강수량과 여름 내 기후를 잘 관찰해야만 얻을 수 있는 로또같은 것이었다. 설령 눈치싸움에 성공해서 수량이 많은 멋진 폭포 시즌을 만나더라도, 그 이후에는 높은 숙박비와 넘쳐나는 관광객과 싸워야하는 다음 단계가 떡 하니 버티고 있다.


폭포라 하면 캘리포니아 제 1호 국립공원인 요세미티를 꼽는다. 미국에서 가장 높은 폭포중 하나인 요세미티2단 폭포는 굳이 산행을 하지 않아도 떡 하니 버티고 서 있어 감탄을 자아낸다. 여기는 겨울이 우기, 여름이 건기이기 때문에 보통 폭포를 보기위한 최적기는 5월 즈음으로 알려져있다. 나도 남편과 함께, 또 따로 한 2년에 한 번씩은 다녀왔었기 때문에 유명한 것은 대충 봤다고 할 수 있다. 허나, 올해는 겨울과 봄에 강수량이 더 많았는지 여행 전문가인 남편 친구에게서 폭포 보러 요세미티를 꼭 당장 가야한다는 추천을 받았다. 그렇게 갑자기 라스트미닛으로 다녀오게 된 요세미티.  몰려든 사람들을 피해서 최적의 여름 스케쥴로 1박 2일 일정. 급 폭포탐방 핵심만 쏙쏙 다녀왔다.


핵심 포인트는 바로 이것!


1. 극성수기에는 오전 8시-오후2시 사이에 입장은 피할 것

2. 극성수기 내부 탐방은 아침 일찍이나 늦은오후를 겨냥할 것

3. 날씨, 비상식량, 음료, 종이 가이드와 지도 같은 대비를 철저히 할 것

4. 숙소는 국립 공원 내부나 혹은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자, 떠나보도록 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요세미티까지는 차로 4시간 정도 걸린다. 차 막히는 시간만 피해서 잘 간다면 3시 40분 정도로 단축할 수도 있다. 갑자기 예약한 여행이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있다가 갑자기 우리가 가는 딱 그날만 비와 천둥번개를 동반한 돌발스톰이 올수 있다는 예보를 보았다. 갑자기 판초도 챙기고 긴 옷도 챙기고 방수 물품도 챙겨야 해서 차에 짐이 더 늘어났다. 목적지 까지 1시간 정도 남았을까, 구름이 울퉁불퉁 우르릉했다.

곧 비가 마구 쏟아졌다. 우리는 "어 망했나봐 ㅠㅠ" 하며 "그래 비가 조금 부슬부슬이면 그래도 산 타 보자" 하고 위로했다. 내가 "아니면 뭐해? 그냥 숙소에 앉아있어?" 했더니 남편이 "그래야지 뭐.. 비 멈춘다고 했어!" 했다.


1. 극성수기에는 오전 8시-오후2시 사이에 입장은 피할 것

요세미티 홈페이지에 대놓고 커다랗게 써 있다. 아침 8시 전에 오라고. 아침 8시부터는 내부 주차장이 차례대로 차기 시작해서, 주차장이 꽉 차면 차를 그냥 다시 돌려보낸다. 레딧이나 다른 여행 웹사이트에는 올해 왜이러냐고, 아침 10시쯤 갔는데 차에 갇혀만 있다가 되돌아 나왔다는 후기가 가득했다.


오전 8시까지 도착하려면 우리는 집에서 아침 4시에 나가야하는데 그건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차라리 오후 4시쯤 도착하는 것으로 잡고 들어갔다. 들어가서 차만 댈 수 있다면, 그 안에서 이동이야 걸어도 되고 셔틀도 있으니까. 이미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왔기 때문에 도로와 주차장은 여유로웠고, 줄서서 기다릴 일이 없었다. 다행히 비도 곧 멈추더니, 해가 쨍하게 나오기 시작했다. 오예!


들어가자마자 체크인을 먼저 했다. 이번에 선택한 곳은 국립공원 내에 위치한 '캠프 커리'의 캐빈 (커리는 사람 이름이다. 먹는 커리 아님). 숙박인용 주차장은 가득차서 자리가 없었다. 극성수기가 맞긴 맞구만..


나름 귀여운 외관에, 난방도 되고 전기코드도 있다. 샤워실/화장실은 캠프 공용을 사용해야 한다. 미국 국립공원 캠프장의 공용 샤워실 화장실이므로 그냥 저냥 쓸 수 있는 수준일 뿐이지 기대는 하지 말아야 한다. 대신 새로 지은 푸드코트와 산악용품가게, 수퍼, 그냥 행아웃 할 수 있는 로비까지 필요한 시설은 다 있다. 여기 묵어보는 것은 또 처음인데, 최대 장점은 바로 위치. 걸어서 하프돔-미스트 트레일 시작점이 바로 가까이 있다. 우리는 미스트 트레일을 갈 작정이었기 때문에 완-벽.



미스트 트레일은 3개의 폭포를 포함하고, 하프돔까지 연결된다. 우리는 3개의 폭포를 목표로 했지만 중간에서 적당이 돌아오자-하고 떠났다. 알고가야 할 점이 있다. 처음부터 끝가지 거의 계속 오르막길이다. 초반에는 포장된 도로였다가, 두번째 폭포 이후에는 돌계단+일반트레일.


첫 번째 폭포는 크게 감흥이 있진 않다. 메인 이벤트는 두 번째에 만나게 되는 Vernal Falls.


수량이 어마어마 했다. 얼음이 녹아 그대로 쏟아지는 물줄기는 그야말로 장관. 구글맵에 쳐보시면 알겠지만 보통은 이렇게 풍성한 폭포가 아니다. 게다가 타이밍이 완벽했다. 5시 즈음 해가 정통으로 폭포를 비추면서 무지개가 나타났다. 차갑고 보드라운 물안개가 얼굴을 감싸안았다.


그다지 산행을 원하지 않는 분들은 여기서 되돌아가시는 것을 추천한다. 저 폭포 오른쪽으로 돌계단이 나 있고, 이를 올라가면 폭포 물이 떨어지는 지점으로 올라갈 수 있다. 문제는 여기다.


혹시 '반지의 제왕'이라는 영화를 보셨는가 모르겠다. 거기서 골룸이 호빗 두명에게 길을 안내한다고 모르도르의 숨겨진 돌계단으로 안내한다. 말이 계단이지 기어올라간다. 여기 계단이 그렇게 생겼다. 폭포 미스트로 계단이 굉장히 미끄럽고, 가드레일 같은 것도 거의 없다. 하이킹용 신발이 아니라면 올라가지 마시라.


그 계단을 올라가면, 또 말도 안 되는 경관이 기다린다.


꼭대기에는 물이 편평하게 흐르고, 고여있는 곳이 있어서 꼭 들어가서 수영하면 좋게 생겼다. 워터슬라이드 같이 생긴 곳도 있다. 하지만 물살이 보는 것 보다 어마어마하게 빠르므로, 들어가면 황천길행 슬라이드다. 절대 들어가지 말라고 써 있다. 실제로 요세미티에는 매년 수영하지 말라는 폭포나 물에 기어코 들어가서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올해도 유월인가에 2명의 사망사고가 있었다. 나는 소심하게 물이 잔잔한 가에로 가서 손만 씻어봤다. 헤헤. 시원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좀 고민을 했다. 이미 올라오는데 힘들었고, 벌써 여섯시 반 쯤 되었는데 다음 폭포 (Nevada Falls) 까지 얼마나 가야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일단 경사가 좀 잦아들어서 조금 더 가 보기로 했다. 멀리서라도 보이기라도 하면 보고 올 수 있는 데 까지만이라도 가기로. 여기쯤 되자 산행객이  확연히 줄어 거의 없었다. 꽤나 높이 올라왔는지 요세미티의 상징 하프돔의 뒤통수가 가까이 보였다 (오오)! 다음 폭포 쪽으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커다란 바위를 돌아서 들어가야 하는데, 걷는 동안 오히려 폭포 소리가 멀어져서 더 오래 가야 할 까봐 걱정이 됐다.



그리고, 다행히 다음 폭포는 생각보다 금방 나타났다.













사람이 없는, 우리만 있는 곳에 폭포와 햇살이 만나 만들어낸 무지개. 이거 진짠가? 싶었다. 아마 챗 지피티한테 가장 아름다운 폭포를 표현해 보라고 하면 이런 이미지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생각했다. 선녀든 요정이든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아까 더 갈지 말지 고민했었는데, 여기까지 오길 잘 했다고 생각했다. 간단히 견과류를 먹으면서 폭포를 바라보다 아쉽지만 발길을 돌렸다. 해가 요세미티 절벽들 뒤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으므로.





아, 내려오는 길이 정말 힘들었다. 올라갈 때는 2시간 20분, 내려올 때는 1시간 10분 여가 걸렸는데, 차라리 올라가라면 계속 올라가겠으나 가파른 비탈길을 계속 내려오자니 무릎과 발가락이 버텨내질 못했다. 게다가 아까 그 모르도르 닮은 계단에서는 내려 올 때 미끄러지거나 헛발을 딛지 않기 위해 온 몸, 발가락, 무릎에 텐션이 훨씬 심하게 들어갔다. 다 내려왔을 때에는 발과 무릎이 너덜너덜해졌다. 신발을 크록스로 갈아신었는데도 아팠다. 원래 다음 날 다른 비슷한 트레일을 가려다가 상태를 보니 가능하지 않을 것 같아 포기했다.


한동안의 단식 때문인지 격한 하이킹 후에도 배가 고프지 않았는데, 그래도 먹어야 할 것 같아 피자를 사 먹었다. 아아아. 산행 후 먹는 피자란.. 참, 여기 피자 (캠프커리 안에 있는 '피자 덱') 참 저렴하고 맛있다. 기름이 좔좔 흐르며 햄의 짠맛 꿀의 단맛이 따귀를 철썩 때리는 딱 그 아는 맛!(영어로는 hit the spot 이라고 하겠다) 꼭 드셔보시길 추천한다. 세 조각이 남아 방으로 들고 들어왔다. 차나 텐트에는 곰이나 야생동물들이 쳐들어 갈 수 있으므로 놔두면 안된다.



빠르게 샤워를 하고 작은 캐빈으로 돌아왔다. 시간이 늦어서그런가 샤워장도 한가해서 좋았다. 이 작은 캐빈은 엄청나게 좋은 시설은 아닌데, 꽤나 아늑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오프너도 없는데 맥주를 한 병 까서 나눠 마시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결국 내가 여는데 성공했다. 오랜만에 먹는 맥주는 미지근했다ㅋㅋㅋㅋ


오늘 본 폭포는 단연 최고로 꼽을 수 있다며, 오늘 하이킹만으로도 이번 여행의 의미가 차고 넘쳤다며, 타이밍, 날씨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자축했다. 정말이다. 이런 조건의 수량과, 햇빛과, 무지개는 뭐 돈과 시간이 많다고 볼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남편이 시월에 하프돔 하이킹 갔을 때 같은 트레일을 일부 지나가면서 찍었던 2번 폭포사진을 보여줬는데 수량이 현저히 적어 그 위용이 반의 반도 안됐다.


왜 이렇게 다리가 아픈가 방 안에 있는 안내책자로 봤더니 우리가 갔던 코스는 왕복 4-5 시간짜리였다. 우리는 중간에 멈춰 사진도 찍고 견과류도 먹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3시간 반 만에 주파했던 것이다. 양쪽 새끼 발가락이 빨갛게 퉁퉁 부어올랐고, 왼쪽 무릎 안쪽과 오른쪽 무릎쪽이 너무 아팠다. 눕는데 아이구아이구 앓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불을 끄자 캄캄하고 조용했다. 알찬 하루를 보낸 기분 좋은 피곤함에 잠이 들었다. 인체는 신비로우니 다음 날에는 다리가 그래도 조금 괜찮아 질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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