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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Oct 11. 2023

홍콩사는 미국남편 사촌과 한 시간 통화한 썰

난 그를 한 번 본게 다였는데.

남편이 홍콩에 일이 있어 가게 됐다. 


미국에 살게 될 줄 몰랐던 20대 초반의 나는, 상대적으로 먼 유럽이나 미국은 젊었을 때 다녀야 한다는 생각에 그쪽만 열심히 돌아다녔더랬다. 때문에 남들은 주말에도 갔다온다는 아시아 여행을 못 다녀봤다. 미국 오기 전 까지는 유럽 가는 길에 레이오버로 잠깐 몇 시간 시내에 나가 봤던 일본이 전부. 아이러니 하게도 이제 나는 아시아 여행을 가려면 큰 맘을 먹어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홍콩이나 싱가폴은 특별히 더 멀다. 그러니 당연히! 기회가 있을 때는 가야한다.


홍콩에는 남편의 사촌이 하나 산다. 파티를 숨 쉬듯이 쉽게 하신다는 시고모님 글에서 짧게 등장했던 그는, 중국과 그 근처 아시아 국가에서 공부하고 사업하며 산지 십 년이 넘어 중국어에도 능통하고 거의 현지인에 가깝다고 알고 있었다. 이번에 홍콩에 방문한다고, 식당이나 관광지 추천 좀 해 달라고 이메일을 보낸 우리에게, 그는 크게 기뻐하며 여러가지를 길게 적어 답장을 보내주었다. 추천 할 것이 너무 많았는지, 통화를 하기로 했는데 어찌어찌 안 맞았다가 비로소 통화가 연결되었다.


중국의 코로나 제로 정책으로 홍콩에 자물쇠가 걸린 게 거의 3년 정도였고, 이제야 열려서 회복중이라고 했다. 그 동안에는 직계가족을 제외한 그 아무도 놀러 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우리가 방문하는 것이 아주아주 기대된다고 기뻐했다. 막 추천장소를 이야기하려던 참에, 기가막히게도 남편은 필라테스 수업을 가야한다고 나를 그 사촌과 전화에 남겨두고 가버렸다.


나는 그를 한 번 봤다. 몇 년 전 고모님 댁의 파티였나, 고모님 딸의 결혼식이었나. 짧은 몇 마디 외에는 그닥 대화를 나눠 본 적도 없었다. 그냥 나중에 다시 전화를 한다거나 남편이 전화기를 가지고 걸어가면서 통화를 할 줄 알았지 그렇게 나만 대화에 남겨놓고 가 버릴 줄은 몰랐다. 아아이씨.


너무나 어색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일 년 치 인싸력을 끌어올려 하하호호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사촌 자체가 워낙에 수다스러운 초 인싸여서, 대화는 생각보다 재밌게 흘러갔다. 너무 많은 것을 추천해 주고 싶어해서 오히려 내가 그만큼 홍콩에서의 시간이 없다고 에둘러 거절해야 할 판이었다. 이미 하루는 그의 집에 초대해줘서 저녁을 먹기로 정해져 있었으니 남은 시간은 더 없었다. 맛있는 딤섬 식당을 3개에서 시작해서 7개 쯤 추천해주다가 그는 부인에게 물어볼 테니 딤섬도 함께 먹으러 가는 게 어떻냐고 제안했고, 딤섬은 여러 사람과 가야 여러 가지를 노나먹을 수 있으니 나는 좋다고 했다. 그렇게 집 저녁식사에 초대해 주는 날의 아점도 딤섬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나와 남편의 기호나 알레르기도 물어봤는데, 우리가 뭐든 잘 먹을 것 같으니 아주 좋아했다. 나는 로컬이 가는 식당을 가고 싶어서 계속 물어봤는데 막 합석시키고 내부가 정신이 하나도 없겠지만 맛은 있는데 괜찮냐고 했다. 그래! 난 그런 곳이 가고 싶었다. 내가 한국 사람인 것은 알지만 미국에 사는 때문인지 처음에는 미국 사람 대하듯이 하다가 나중에는 아시아 사람이니까 이런 거 맛있는 거 알지 하는 모드로 바뀌어 갔다. 맨날 백인 친구들이 와서 White meat (닭가슴살 같은 희고 부드러운 살. 다릿살이나 안심 같은 한국인 식성 부위는 Dark meat. 미국에서는 이걸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다)이나 찾고 이래서 답답했다며, 맛있는 걸, 진짜 로컬이 먹는 걸 먹어야지! 했다. 레스토랑 중 하나는 굉장히 마음에 들어서 통화 중에 바로 예약까지 했다. (나중에 그 사촌이 추천해 준 맛집 위주로 글을 하나 또 쓸까 싶다)


어찌됐든간, 우리는 1시간을 통화했다. 남편과 연애할 때도 한 시간씩 통화 한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은데. 이게 뭐지 하고 웃었다. 이 때 까지만 해도 나는 그냥 그가 오랜만에 오는 손님에 신이 났다고만 생각하고, 그의 엄청난 인싸력을 알아보지 못했다.



다음 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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