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유명한 집 거의 없을 수 있음 주의
나는 여행을 갈 때 한국에서 유명하다더라 하는 집이나 장소는 잘 안(못) 가는 편이다. 일단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찾아보는 데 소질이 없다. 무슨 메뉴가 먹고 싶으면 그 메뉴로 그 근방에 검색을 해서 평점 높은 곳을 골라 가거나, 발길 닿는 곳에 괜찮아 보이는 곳이 있으면 가거나, 아니면 갔다온 이/살고 있는 이가 있다면 물어서 가는 정도. 그래서 홍콩 여행 중 친구가 어디어디 가 봤느냐, 아직도 사람 많느냐 하고 물었을 때 "거기가 어디야..?"했다.
홍콩에 오래 산 남편 사촌이 추천해 준 엄청나게 긴 리스트 + 있는 동안 마음에 들었던 먹을 곳을 몇가지 써놓으려고 한다 (센트럴과 완차이 위주). 이전 글과 연결되는 부분이 좀 있습니당.
1. 香港魚蛋皇. 309-314 Hennessy Road, Hennessy Rd, Wan Chai, Hong Kong
약간 늦은 저녁 즈음 도착해서, 지난 글에서 그 사촌의 초대를 거절하고 깨 있으려다 뭔가 먹을 게 없을까 밖에 나갔는데 늦은시간이라 그런가 닫은 곳이 많았다. 맥도날드나 졸리비(필리피노 패스트푸드 체인인데 사실 여기 치킨이랑 스파게티 맛있음)는 가기 싫었다. 뭔가 로컬스러운게 먹고 싶은데 하고 계속 돌아다니다가 열려있길래 그냥 들어간 집. 사실 이름도 위치도 알고 간 곳이 아니었더랬어서 지금 글 쓰느라고 구글 지도와 사진을 눈 빠지게 찾았다.
뭔가 흔한 국숫집? 인 것 같고, 메뉴도 엄청 많다. 대충 그림을 보고 나는 내장과 고기가 들어간 쌀국수를 시켰고, 남편은 고기와 채소가 올라간 완탕면을 시켜줬다. 주문을 받고 아주머니가 내역서를 냅다 테이블로 던져서 화가 났나 하고 쫄았는데, 앉아 있자니 모든 테이블에 주문서를 던지더라ㅋㅋ. 햄버거는 비할 데도 없는 엄청난 빠른 속도로 음식이 나왔다. 고기가 꽤 많고 국물이 짭쪼름, 잡내도 안 나는 것이 맛있었다! 샌프란 기준은 물론이고 한국 기준으로 꽤 저렴한 가격이었다 (다 합쳐 만 이천원? 이정도였던듯). 사람들이 빠르게 들어와 빠르게 주문하고 순식간에 먹고 나가기를 반복하던 곳. 아무 생각없이 그냥 들어 간 것 때문인지, 처음 와보는 홍콩의 밤거리 버프를 받은 것인지 아주 마음에 들었더랬다.
2. Yat Lok Restaurant. Hong Kong, Central, Stanley St, 34-38號G/F
남편 사촌이 자기가 센트럴근처에서 일 할 때 아주 자주 다녔다고 추천해 줬던 곳(여기가 바로 그 사촌이 갑자기 점심에 부하직원까지 해서 초대했을 때 밥 먹고 있었던 식당이었다 ㅋㅋ). 보니까 미슐랭 가이드(별 말고)를 거의 매년 받아온 작은 식당이었다. 아침 열시 반인가에 연다고 해서 조금 일찍 도착했는데 이미 여행객이 한 팀 기다리고 있었고, 5분인가 일찍 열어서 사람들을 들여보냈는데 내부가 바로 가득 찼다. 로컬과 여행객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관광객에게도 꽤 알려진 장소인 듯했다. 영어메뉴가 없을까봐 구글맵 사진으로 열심히 보고 갔는데 있었어서 다행. 거위고기+돼지고기반반에 밥, 굴소스+채소, 나이차 차가운 것을 시켰다.
밥과 고기, 채소에 차갑고 달콤한 나이차는 맛이 없을 수 없는 조합인 것 같다. 샌프란에서도 저런 돼지고기 구이? 바베큐? 무튼 껍질이 바삭한 돼지고기는 쉽게 먹을 수 있는데 대부분 좀 질기거나 딱딱하다. 이 식당의 저 돼지고기는 연한 동시에 씹는 맛도 좋았다. 거위 고기도 맛있었는데 뼈가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다음에는 다리를 통째로 주는 것을 먹어봐야겠다. 다 합쳐서 홍콩달러 $116 나왔다 (2만원 좀 안되는 듯). 카드결제가 안되니 주의.
3. Bake House. 75J3+M7 Central, Hong Kong
꽤 유명한 베이커리 체인? 같았는데, 홍콩 내에 지점이 여러 곳 있다. 다른 지점은 모르겠으나 요 지점은 장소가 협소해 앉을 자리는 없었다. 개인적으로 많은 종류의 눈이 돌아가는 베이커리 아이템이 많아 그냥 저기 앉아서 계속 빵만 바라보고 있어도 행복할 것만 같았던 곳. 점심을 먹고 바로 가서 나는 작은 에그타르트를 사먹었는데, 2불?3불 쯤 했던 것 같고 맛도 괜찮았다. 커피도 판다. 다음에 가면 다른 걸 먹어보고 싶다.
4. Waso Cafe Wan Chai 75HH+M2 Wan Chai, Hong Kong
그 뭐냐, 백종원님이 홍콩가서 맛있는 거 먹는 유투브를 보면 저 연유?우유?를 쓰는 집은 저 컵에 나이차를 준다는데, 저게 너무 귀여워서 가본 집. 체인 인 것 같은데 약간 느낌이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김밥천국 같다. 밥, 국수, 간식, 디저트, 차 까지 메뉴가 너무너무 많아서 정신없었다. 주문도 영어로 써있는 메뉴판이 아닌 큐알코드를 이용해 온라인으로 하는 방식인데, 거기에는 한자만 써있었다. 아는 한자를 총 동원해서 원하는 메뉴 주문 성공!
연유버터 토스트와 뜨거운 나이차. 컵이 너무 귀여워서 사오고 싶었다 (살 수 있나?). 빵은 뭐, 말해 뭐해. 버터가 짭쪼름하고 연유가 달콤한데 빵이 따뜻바삭하다. 한 입 먹고 나이 차 한 잔 먹으니 여행하는 느낌이 들었달까. 주변에는 국수도 먹고 밥도 먹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맛이야 그게 그거겠지만, 우리도 뭐 제육볶음을 제육볶음 전문점에서만 먹는 것 아니지 않나, 그냥 김밥천국에서도 먹고 백반집에서 먹어도 맛은 그냥 중간은 하듯이, 그런 느낌인 듯 싶다. 나이차가 진하니 연한 것 좋아하신다면 아이스로 드시는 게 좋을 수 있다.
5. Yard Bird. Winsome House, 154-158 Wing Lok Street G/F, Shops A and B, Sheung Wan, Hong Kong
하이엔드 모던 야키토리집이다. 사촌 피셜 샌프란에 유행하는 모든 획기적인 모던 캘리포니안 셰프들이 다 여기서 배웠거나 배껴왔다고 할 만큼 셰프들 사이에서 유명한 집이란다(사촌은 여기서 낸 책도 가지고 있었다). 모던한 에피타이저와 메인메뉴, 엄청난 종류의 일본식 닭꼬치 부위가 준비돼 있다. 정해진 양의 닭을 매일 직접 손질하기 때문에 특정 부위는 금방 다 팔리고 없을 수 있다는 점.
내부가 꽤 넓고 안쪽에는 끊임없이 야키토리를 구워내는 오픈키친을 볼 수 있다. 우리는 특수부위 야키토리만 잔뜩 먹었는데, 대충 닭 꼬리, 무릎, 목껍질, 심장을 둘러싼 힘줄(?), 닭똥집, 안심, 간, 허벅지 윗쪽(?) 등을 먹었다. 그냥 구워서만 나오는 게 아니라, 각 부위 특성에 맞게 소스나 토핑이 가미되어 나온다. 맛과 텍스쳐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아주 재미있다. 메뉴 당 가격이 꽤 있고 야키토리는 가격대비 째끄만데다가 미국처럼 팁도 요구하기 때문에 비싼 편. 우리는 닭꼬치만 한 8-10종류?+칵테일 한 잔 씩 먹었는데 20만원 정도 나왔던 것 같다.
6. Panda Bakery. 75HH+6P Wan Chai, Hong Kong
뭔가 타르트를 먹고 싶은데 하고 검색해서 대충 갔던 곳. 가게가 아주 작고 타르트+베이커리 아이템 종류가 많지는 않다. 내가 갔을 땐 사람도 아예 없어서 아 괜히 왔나 싶었는데, 직원이 계속 "야미 야미"를 외치며 모든 종류를 다 팔고싶어해서 그냥 두 개만 샀다. 기본타르트와 판단 타르트. 예쁜 상자에 담아주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보기에 타르트크기에 비해 상자가 너무 높아서, "무슨 안에 단을 이렇게 높이 채워놨어 쓸데없이 상자 커보일라고-" 하고 타르트를 꺼냈다가 기절초풍했다.
나만 그런가 저렇게 깊은 타르트는 처음 봤다. 내 손가락 길이가 높이 쯤 될까? 내부에 커스터드 필링이 꽉 차있었는데 한 개가 꽤 무거웠다ㅋㅋㅋㅋㅋㅋ. 타르트 셸이 너무 두껍지도 않고 버터리(buttery)한 것이 꽤 맛있기 까지?! 상자크기로 사기를 치나 하고 잠시 생각했던 나 자신을 반성하며, 직원이 "야미야미"하고 팔고 싶어했던 레몬타르트도 사올걸 하고 후회를 했다. 개인적으로는 판단 맛은 잘 안 나서 기본 맛이 더 맛있었고, 더 사오고 싶었으나 이후 일정에 치여 까먹었다. 가격에 비해 가성비와 맛이 꽤 좋으니 허름해 보이는 내부에 속지 마시고 여러분은 많이 사시길 바란다.
7. 마지막으로, 모두가 아는 Mak's noodle.
막스 누들이야 뭐 이미 굉장히 유명하고 지점도 많아서 추천이고 할 필요가 없다. 나는 저 특유의 꼬들꼬들한 국수의 식감이 너무 좋아서, 저것만 먹으래도 며칠은 신나게 먹을 자신이 있다. 홍콩 내에 완톤누들 파는데는 워낙 많으니까 뭐 굳이 찾아갈 필요는 없는 것도 같지만, 다양한 토핑과 고기를 얹어 다르게 먹는 재미가 있으니 또 나쁘지 않달까. 남편은 족발 올라간 걸 먹었는데 족발도 별미였다. 번화가에 있는 지점들은 굉장히 바쁘고 줄도 길다고 하니, 상대적으로 사람이 없는 곳을 찾고 싶다면 The Peak Galleria 몰 안에 있는 지점이 한산했다. 피크를 갈 일이 있으시다면 올라간 김에 거기서 한산하게 먹고 내려오는 것도 방법.
뭔가 트렌드를 따라가는 것에는 영 소질이 없는 나는 그냥 내가 갔다가 맛있었던 곳이 좋았던 곳이었으려니, 한다. 그냥 골목을 걷고, 내 발길 닿는 대로 가다가 마주친 곳이 마음에 들어서 행복했다. 오, 여긴 뭐야, 하고 돌아다니다가 여기는 어떤가 구경하는게 아주 마음에 들었던 홍콩. 그게 여행이고 그게 행복이지 뭐겠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