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나를 미국에 보낸건 하와이였으니
하와이에 처음 가 보았던 것은 12년 전.
대학생이었던 나는 첫 유럽 베낭여행 이후, 다른 나라에서 공부해 보고 싶어서 학교 교환학생을 알아보고 있었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첫째, 더 일찍 알아봤어야 했다. 이미 3학년이 다 지나가는 상황에서, 최소 6개월에서 1년은 가야되는 교환학생은 4학년 1학기에 교육실습과 보육실습을 앞두고 있는 와중에 졸업이 그만큼 밀릴 수 있었다. 실습이란게 내가 가고 싶다고 턱턱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미리 컨택을 하거나 자원봉사를 나가 놔야 하는게 보통이었기도 했다.
둘째로다가 교환학생은 꽤 비쌌다. 집에 손을 벌리는 것은 나의 선택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휴학을 하고 알바를 뛰든지 해서 돈을 벌어야했다. 이 또한 졸업이 밀린다. 지금 생각하면 왜 졸업 일 년 미뤄지는게 뭐 그렇게 난리라고 생각하고 아등바등 했는지 모르겠다. 주변에 한학기에서 일년 쯤은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해서 여행을 다녀오거나 인턴십을 하거나 시험 준비를 하는 경우가 흔했는데. 그저 용기가 없었던 거겠지.
교수님과 상담 후, 교환학생을 가지 않는 것으로 마음을 잡았다. 아쉬운 입맛을 다시는 나에게 눈에 띈 것은 학교에서 매년 방학마다 보내는 해외연수 프로그램. 필리핀, 중국, 미국 등 여러 나라의 대학교에 있는 2-4주 언어/문화 프로그램을 보내주고, 돌아오면 학점도 주었다. 항공권이나 기타비용은 개인부담이지만 숙소까지 포함한 대학교 프로그램은 장학금으로 절반정도를 지원했다. 아무래도 동남아와 아시아권이 저렴했고, 미국 본토도 한 곳이 있었으나 비용이 훨씬 비쌌다. 그리고 그 해에는 하와이대학교 프로그램이 떴다. 가격은 동남아와 미국 본토 프로그램의 중간정도 되어 내가 충분히 감당할 수 있었다. 나는 친구를 꼬셔서 같이 지원했다. 지원자가 너무 많아 영어시험을 추가로 봤다. 다행히 우리 둘 다 붙었고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준비를 했다.
함께 항공권을 예매하던 중, 오아후 섬으로 가는 항공권을 구매하면 하와이 내 다른 섬으로 가는 항공권이 무료라는 걸 알게 되었다(편도였는지 왕복이었는지 무슨 조건이 있었는지 자세한 건 기억이 나질 않..) 그래서 프로그램 시작 며칠 전에 일찍 출발 해 마우이 섬에서 2-3일을 보내고 오아후로 들어가는 일정을 짰다. 마우이 공항 근처의 작은 마을에 시설은 낡았지만 요일마다 다른 투어를 무료로 해주는 호스텔을 찾아 예약했다.
아무 생각 없이 간 마우이에서 우리는 굉장한 시간을 보냈다.
-동네에서 무작위로 들어간 타이 음식점에서 아이스티를 시켰는데 뭔가 친근하면서도 요상한 맛이었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이게 무슨 맛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 생각해 낸 것. 바로 ‘이벤트 탕’ 맛! 왜 어렸을 때 찜질방 좋은데 가면 탕이 여러가지가 있고, 그 중 이벤트 탕이라고 여러가지 약재나 허브 향이 나는 게 꼭 하나씩 있지 않았는가? 바로 그 향! 우리는 뭐가 좋은지 그게 너무 웃겨 배꼽이 날아갈 만큼 웃었다.
- 할레아칼라 화산이 뭔지도 모르고 멋진 곳이라고 해서 투어에 참여했는데, 그게 7시간 산 하이킹이었을 줄이야. 구름 위의 산을, 화장실도 없고 그늘도 없는 그 사막의 산을 멋모르고 청바지에 고무밑창 신발로 완주했다. 이건 뭐 너무 힘든데 어쩔수가 없었다. 중간에 관두면 헬기를 타고 와서 날 구해가야하나 싶어 이를 악물고 따라 걸었더랬다. 다음 날 우리는 침대에서 내려오며 다리가 너무 아파 못 걸어서 웃었고, 친구 두피가 타서 머리카락 구멍이 송송 뚫려있는 껍질이 벗겨지는 것을 보고 놀라면서 또 웃었다.
- 호스텔 침대나 시설은 굉장히 낡아서 불편했다. 밤에 잠이 안와서 그냥 친구와 호스텔 앞길로 나왔는데, 거기서 우리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밤하늘을 봤다. 별이 쏟아질 것 같다는 게 이런 의미구나. 우리는 거기 앉아서 참 좋다고 한참동안 하늘을 봤다.
삼일이 지나고 마우이를 뒤로하고 오아후로 향했다. 원래는 오아후에 도착하면 학교 프로그램측에서 픽업을 했어야 했는데 아무도 없었다.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니, 미안하다고 택시를 타고 오면 비용을 환급해준다고 했다. 약간 겁을 먹고 택시를 타러 나갔는데 웬걸, 리무진 택시가 잔뜩 서있었다. 택시 기사인지 업체직원인지가 그걸 타라고 했다. 우리가 질겁을 하고 안 탄다고 하자 일반택시 가격과 똑같이 받겠다고 걱정말라고.. 우리는 그래서 갑자기 생전 처음 리무진을 탔다ㅋㅋㅋㅋㅋㅋ 놀랍게도 가격도 그냥 일반택시만큼 받았다. 지금도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오아후에서의 매일은 정말 좋았다. 학교 기숙사 같은데서 묵는 줄 알았더니 와이키키의 한 괜찮은 호텔에서 3인 1실을 썼다. 일과는 이랬다.
-아침이 되면 다같이 일어나서 호텔 조식을 먹었다. -시간이 되면 노란색 스쿨버스가 와서 픽업을 해서 하와이대학교로 데려다 주었다.
-오전에는 미국 정치/문화/사회 수업을 듣고,
-점심이 되면 카페테리아가 있는 건물로 가서 무언가를 사 먹었다. 카페테리아에는 피자헛과 타코벨이 있었는데, 그 때 미국피자헛은 한국피자헛과는 달리 싸고 편하게 대충피자 먹는 곳 인걸 알았다. 밥을 먹고 시간이 남으면 캠퍼스를 걸어다니고, 커다란 나무 밑 벤치에 널부러져 있었다.
- 오후가 되면 각자 배정된 레벨의 반으로 가서 영어수업을 들었다. 프로그램 대부분은 일본인이었고 약간의 중국인과 한국인이 섞여있었다. 짧은 영어로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나름대로 친해졌다. 그냥 수박 겉 핥듯이 관광지만 노는 것이 아니라 하와이/미국 역사와 문화재건 노력을 함께 배우는 것이 좋았다.
-프로그램측에선 이런저런 행사도 했다. 현지 학생들과 사교모임, 발렌타인데이 행사 등. 미국엔 주로 남자가 선물을 주거나 남녀가 둘다 선물과 사랑(?)을 주고 받는 날이며, 여자가 답례를 하는 화이트데이는 없다는 걸 듣고 신기했다. 발렌타인데이에는 캠퍼스에서 말을 걸어오는 남학생들도 있었으나 왠지 모르게 철벽을 쳤다ㅋㅋ
-끝나면 학교측에서 준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고 호텔로 돌아왔다
-여기저기 구경하고 저녁을 사 먹었다.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이 한국보다 훨씬 저렴한데 호텔방에 냉동실이 없어 파인트를 사서 다 먹는다고 애썼다.
하나우마베이에서는 처음 해 보는 스노클링에 내 기어가 고장난 줄 모르고 다니다가 내가 친구들까지 붙잡고 늘어져서 물에 빠지는 사고가 날 뻔 했다. 그 때 체대생 친구가 그 무리에 있었어서 침착하게 우리를 이끌어줘서 다행이었다. 주말에는 학교에서 투어버스를 대절해서 투어도 해줬다. 프로그램 수료식에서는 반 대표로 스피치도 했다. 프로그램이 끝날 때 정이 든 클래스 친구들과 엉엉 울면서 헤어졌다. 일본으로 놀러가겠다고, 한국으로 놀러오라며 다짐하던 그 친구들은 한동안 페이스북으로 왕래를 하다가 곧 끊어졌다. 지금은 무엇을 하고 사나.
그 때 같이 갔던 친구와 아직도 하와이 얘기를 할 때면 함께 아련해진다. 일어나서 밥먹고 학교가서 수업듣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일상이 좋았다. 주말이나 저녁에는 쿠알로아 랜치 투어도, 카타마란 이라는 세일링보트를 타며 별과 불꽃놀이도 보는 특별함도 좋았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교통카드로 버스를 타고, 음식점에서 팁을 얼마 내야되는지 둘이 이마를 붙잡고 고민하는 것과 같은- 새로운 문화에서 경험해보는 일상적인 것이 매일매일 행복했다.
여행이라기엔 길었고 살았다기엔 짧았던 3주가 조금 넘는 시간. 돌아와서는 이게 다 꿈이었나 싶다가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던 와이키키의 노을과 하와이 대학교의 공강 점심시간.
결국엔 이 기억이 나를 미국으로 다시 불렀다.
그렇게 제 때 졸업하고 대학원이다 직장이다 아등바등하던 나는 그 기억이 그리웠다. 새로운 곳에서 스스로 일상을 만들어 나가는 삶. 유학이나 오페어나 워킹홀리데이나 얼마든 다른 나라을 찾아볼 수 있었지만 나를 미국으로 부른 것은 그 때의 하와이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지금 내가 미국에 있었을까. 그러니 또 새로운 시작을 기념하는 결혼식에 하와이가 문득 떠오른 것은 마냥 하와이가 비싼 낭만의 장소였던 이유가 아니었다.
물론, 하와이는 다른 여러 우리의 상황 면에서도 아주 적합한 위치를 자랑했다. 주변을 보면 국제결혼의 경우 대부분은 이쪽 나라에서 한 번, 저쪽 나라에서 한 번 각 각 하는 경우가 많다. 게스트가 두 나라에 산재되어 있기 때문. 남편도, 나도 부모님 한 분의 형제가 엄청 많으셔서 그 친척들을 다 초대할 수 있는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남편의 손님들은 미국 서부/동부에 골고루 포진해 있고 내 손님들은 대부분 한국에 있는데, 미국에서 하면 남편 게스트만 99퍼센트, 한국에서 하면 내쪽 게스트만 잔뜩있어서 소수가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여기서 하와이가 제 역할을 발휘한다. 하와이는 지리적으로 한국과 미국의 중간에 위치해 있고, 비싸다는 현실적인 핑계로 게스트 인원도 적게 제한해서 신랑쪽 신부쪽 딱 절반으로 나누면 인원수에서 한 쪽이 대다수가 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이 좋아하는 관광지이니 한국인이든 미국인이든 결혼식이라는 좋은 핑계로 다들 휴가겸 오기도 괜찮았다.
남편쪽도 내 쪽도 하와이로 정했다는 사실에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주변에 알리기 시작하면서, 미국에서 하와이 결혼식이라고 하면 부러워하고 기대한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좀 당황했다. 그런 이유가 아니므로 너무 기대하지 않았으면 했다. 그냥 막연한 낭만에서 결정한 일이 아니고, 양 국가의 한중간이라는 지리적인 이유를 이야기하면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맞장구쳐줬고, 나에게 대학생때의 행복한 기억과 의미가 있다는 것에도 대부분 고개를 끄덕였다. 내 쪽 게스트들도 덕분에 하와이를 가보게 됐다며 좋아했다. 그 때 하와이에 함께 갔던 친구도 함께 좋아해 주며 오기로 약속했다.
남편과 나는 대략의 장소를 정했다는 사실에 뿌듯했으나, 그 때는 알지 못했다. 남편은 한국 결혼식을 모르고 나는 미국 결혼식을 모르고. 사실 각자 자기네 나라 결혼식도 잘 몰랐다. 결혼 햇병아리 둘이서, 멋도 모르고 원거리의 비싼 관광지에 국제결혼식을 하겠다고 나선 게 얼마나 순진한 결정이었는지.
* 미국에서 글을 올리고 있는데, 브런치 홈페이지 자체에서 여기 현지날짜와 여기 날짜 사이에서 혼란스러워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 목요일 연재를 위해 여기서는 수요일에 올리는데요, 브런치는 제가 여기 수요일에 올리면 목요일 안 됐는데 올렸다고 자꾸 팝업을 띄우네요. 연재 브런치북 설정에는 목요일로 되어있는데 지금 또 예정 목차에는 11/1 수요일 업로드 예정이라고 뜨고요.. 한국 브런치에서는 이 연재가 무슨 날에 뜨는 지 모르겠으나, 한국시간으로 매주 목요일 연재임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