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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Nov 11. 2023

고민이 몰려올 때에는

패티오에 앉아 햇살을 만져봅시다

햇살이 아주 따뜻하다.


허밍버드가 날개를 빠르게 휘저으며 뽀르르 하고 날아서 올라왔다가 너머에 있는 커다란 소나무로 사라지길 반복한다. 쟤들은 가끔 우리집 패티오에 기웃기웃거리며 유카 나무나 이제는 관리소홀로 거의 죽어가는 작은 파밭을 돌아다니곤 한다. 우리집 고양님들은 처음엔 세상 진중한 사냥꾼이 되어 엉덩이를 씰룩거렸으나 요즘에는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으른 놈들이 되어버렸다.


집에 들어오면서 큰맘 먹고 고르고 골라 구매한 패티오 의자에는 막상 샌프란시스코가 추운 때가 많아 오래 앉아있지 못할 때가 더 많다. 오늘처럼 이렇게 짧은 원피스를 입고도 여유롭게 햇살을 맞으며 패티오에 앉아있는 건 한국에서 봄가을 카디건을 입을 눈치를 보는 것 처럼 흔하지 않은 일이다. 처음에 집을 구매할 때에 이 패티오에서 보는 노을에 홀딱 반했더랬다. 아주 멀리 보이는 바다, 샌프란시스코를 둘러싼 언덕과 산들, 주변 건물들을 둘러싼 5-8층 높이는 족히 되는 침엽수 나무들이 초록초록한 생기를 더해서, 샌프란시스코 도시 한가운데 살면서도 집에서 내다 보기만 하면 어디 교외로 휴가나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름이 지나고 해의 고리가 점점 기울면 저녁에는 겨울에 앉아서 까먹는 귤빛 같은, 나지막히 타오르는 모닥불 같은 찬란한 주황빛의 햇살이 내려 앉는다. 그러면 30분이고, 한시간이고 앉아서 해가 지는 것을 구경한다. 눈앞에 가득히 펼쳐진 하늘은 짙푸른 파란색에서 옅은 연두색, 노란색, 여름쿨톤 라일락색에 가을웜톤 말린장미색까지 총 망라하며 장관을 선사한다.



최근에는 내가 이렇게 고민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이 생각 저 생각이 몰려와 가슴이 답답해 질 때가 많다. 한국사람이라 그런건가? 계속 전진하고 배우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고 인정받지 않으면 인생을 낭비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일들은 또 계속 일어나게 마련인데 그 중에는 또 상식 밖의 사람들이 상식 밖의 행동을 해서 할 말을 잃게 만든다.


그렇게 한 번 생각에 빠지면 생각이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콸콸콸 쏟아진다. 작은 수조에 생각이 가득 차서 그 안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이내 가슴이 답답하고 다 그만 두고 싶어지곤 한다. 꼬로록 하고 생각에 잠겨 잠도 안 오고 밖을 보면 세상 사람들은 참 걱정 없이 척척척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럴 때는 억지로 물을 끈다. 수도꼭지가 고장났으면 수도관을 잠가버린다. 그렇게도 안 되면 벌떡 일어나 수조 밖으로 나를 끄집어낸다. 그것이 운동이든, 게임이든 정리정돈이든 정신을 쏟을 수 있는 다른 걸 한다. 얼마 전 부터 생긴 나의 셀프 정신관리 시스템인 셈이다.


대부분의 걱정이라는 것은 불확실성에서 기인한다. 아직 생기지 않은 일을, 나의 첨단 상상력에 의해 끝도 없이 가능한 상황을 가정해나가면서 일어날 지 아닐 지도 모르는 일에 고민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어떤 일을 했거나 하지 않았거나 상관없다. 나는 어쨌든 그 반대의 상황을 동경할 것이고, 나의 행동에서 후회하는 것을 찾아낼 것이다. 남의 떡은 정말 맛있어 보이기 마련이고 나는 세상 모든 일을 대비해서 준비할 수는 없는데.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을 때 그냥 "그만두자", "진짜 일이 일어나면 그 때 생각하자" 하고 말아버린다. 실제로 인지행동치료에 실제로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너무 모든 것을 완벽히 해내고 싶을 때, 더 잘, 더 높은 곳으로 끊임없이 달려가고 싶을 때, 하지만 내가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당황스러울 때, 이건 나를 이유없이 고문하는 것 밖에는 안된다- 할 수 있는 걸, 다른 걸 하자,회피가 아니다- 하고 되뇌인다.



그러면 이런 날도 보이기 마련인가보다. 이렇게 햇살이 눈부시고 하늘이 맑은. 그냥 햇빛에 데워진 의자에 엉덩이가 따뜻하게 앉아서 헛소리를 쓰고 있을 때. 걱정은 또 몰려오겠지만 이런 행복도 간간히 같이 오지 않겠는가. 행복의 순간이 왔을 때 안고 얼굴을 부비지 않으면 걱정과 고민이라는 까탈스럽고 목소리 큰 놈들이 내 정신머리를 다 빼앗아 가기 마련이니.



오늘도 아름다운 노을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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