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와중에난 메인주의 총기난사 사건
사실 미국 동북부 메인 주에서 제일 유명한 국립공원은 아케디아 국립공원으로, 가을 언젠가에는 '미국에서 가장 먼저 뜨는 멋진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캘리포니아에서 합류하는 시아버지와 고모/고모부도 모두 그 곳을 다녀오셨으나, 왕복 8시간이 넘는 거리에 우리는 다음에 가자고 쿨하게 포기했다.
대신 선택한 곳이 비교적 가까이 있는 '워싱턴'산. 얘는 근데 뉴햄프셔 주에 있다. 숙소에서 2시간 반 정도 거리로 당일치기로 다녀오기 좋겠다 싶어서 선택했다. 뉴 햄프셔 가는 김에 REI(스포츠용품 전문점)에 들러 사고 싶었던 하이킹용 운동화도 사기로 했다.
사실 REI는 우리동네에도 있고 보스턴에도 있으나 굳이 거길 선택한 이유는 따로있다. 바로 뉴햄프셔는 세일즈택스가 붙지 않는 주이기 때문!!! (쏴리질러!!!) 그러니까, 100불짜리를 샌프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산 마테오 카운티에서 사면 텍스 9.38%를 덧붙여 $109.38가 된다. 한화로는 만 원 이상을 더 내는 셈인데, 뉴햄프셔는 그게 안 붙는다. 같은 제품을 같은 브랜드, 같은 가게 지점에서 사더라도 그 만큼 돈을 절약하는 셈.
택스프리 이야기 하다가 너무 신나서 말이 좀 샜다. 사실 당일까지도 갈까 말까 고민을 좀 하게 된 것이 갑자기 난 메인 주의 총기난사 사건. 모두가 정말 처참하게 충격을 받았는데, 메인주는 정말 평화롭기로 (한국사람 입장에서는 지루한) 소문난 동네이기 때문이었다. 그런 메인주에 왔는데 우리가 지내는 곳에서 차로 고작 2시간 정도 거리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났다는데 충격을 받았고, 그 범인이 아직 잡히지 않았다는 것에 더더욱 충격을 받았다. 보통은 총기랜덤난사 사건이 나면 온갖 사람들이 출동해서 범인을 바로 잡거나 사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active shooter on loose' 라고 하니 다들 겁이 나 어쩔줄을 몰랐다. 범인이 차를 타고 이동할지, 어디 건물에 꽁꽁 숨을지, 사람과 수색을 피해 숲이나 산으로 숨을 지 알 수가 없는 상태였으므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했다.
뉴스에서도 이런저런 카더라를 제외하고 특정 지역에서의 'shelter in place' (자기 있는 곳에서 꼭꼭 숨는 것) 외에는 다른 곳까지 넓히지 않았으며, 그 외의 다른 세세한 사항은 함구했다. 괜히 어디를 어떻게 찾고 있는지 말 했다가 범인이 도망가기라도 한다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도 무언가 집중해서 찾고 있는 지역이나 방법이 이미 있다는 뜻이리라. 게다가 도로며 여러 구역에 경찰과 기타 인력이 쫙 깔렸으므로, 우리는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항공기로 야경/생체탐사까지 하고 있는 마당이었으니. 사실 범인이 돌아다니고자 한다면 그게 우리 숙소일 지 주 경계를 넘은 뉴햄프셔 산속일지 어디가 더 안전하다고 내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
어두운 얘기를 뒤로하고, 첫번째 목적지는 Wolfeboro 라는 호숫가의 작은 마을. 사실 그 동네에선 꽤 큰 마을이란다. 아침 겸 점심도 먹을 겸 별 생각 없이 들렀는데 아주 귀엽고 힙한 느낌이 났다. 도착했을 때에는 식사를 할 만한 곳이 많이 문을 안 열어서 가장 작고 로컬스러운 카페 (Lydia's Cafe of Wolfeboro)로 들어갔다. 계산대 앞에는 동네의 행사 프로셔가 여기 저기 붙어있고 테이블이 3-4개 밖에 없는 협소한 내부. 허름하진 않지만 손때가 묻어난 테이블과 의자. 20대쯤 보이는 젋은 여직원?사장?이 발랄하게 주문을 받았다. 나는 일반적인 아침 메뉴에 베이컨을 추가했다.
특별할 것 없는 아침상에 사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가격. 베이컨을 추가하기 전에는 계란과 토스트가 $4.75였다! 택스도 안 붙는다는 것을 감안하고, 샌프란시스코에서 4.75로는 카페에서 머핀도 못 사먹는 가격이기 때문에 눈을 몇 번이고 비비며 가격표를 다시 확인했다. 별 특별할 것 없는 메뉴지만 베이컨은 바삭바삭, 계란도 내가 딱 좋아하는 정도로 알맞게 익었다. 의외로 아주 맛있었던 것은 토스트였는데, 가염버터를 아낌없이 발라 구워내어 버터향이 가득하고 짭쪼롬했다. 이만큼의 버터는 누가 발라서 구워줘야지 스스로는 살 찔까봐 바르기 어렵다ㅋㅋㅋ 커피도 꽤 맛있었다.
옆에 앉았던 수다쟁이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우리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왔다고 하니 놀라며 (메인/뉴햄프셔에서 캘리는 미국대륙의 대각선 끝과 끝이라 사람들이 자주 놀랐다) 자기도 샌프란에 갔었다는 70년 전 전쟁 즈음 이야기를 해 주었다. 십대의 어린 나이에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자유시간이 나면 버스에 올라타 샌프란시스코 언덕을 오르내리며 가슴벅차게 구경을 했노라며. 아주 멋진 도시라며. 나를 보더니 '물론 차이나 타운도 엄청 멋지지' 하고 말을 더했다 (아이고 할아버지 좋은 말 해주시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는데 거기가 아닙니다 ㅋㅋㅋㅋㅋㅋ) 나는 그냥 그렇다고 하고 웃었다.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제일 좋은 카페를 골랐다며, 여행을 잘 즐기라고 인사해주었다.
아침을 먹고 나오니 동네 가게들이 문을 열어 좀 더 활기차졌다. 여기 'Yum Yum Shop'이라는 젊어보이는 디저트/베이커리 집이 바로 앞에 있어 들어갔는데 먹고 싶은게 너무 많아서 눈이 돌아갔다. 아주아주 힘겹게 고르고 골라 나는 초콜릿칩 우피파이를, 남편은 나폴리탄 파이? (페이스트리에 커스터드 크림 같은 게 레이어드 되어 있는 케익 같이 생김)를 골랐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작은 가게들을 구경했다. 좀 더 호숫가쪽 골목으로 가자 새로 생긴 젋고 힙한 카페들이 즐비했다. 아침 10시가 되니 연 모양이었다. 10시가 지나서 왔으면 우리도 그 중 한 곳을 갔을 것 같은데, 오히려 아침 일찍와서 아주 작은 로컬 카페를 경험할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할까. 그리고는 호숫가를 산책했다.
호수 너머로 울긋불긋하게 단풍이 물들어 있다. 호수가 아주 잔잔하고 마음이 평안해져왔다. 이런 귀여운 타운이 있다니!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차에 올랐다.
다음에 도착한 곳은 REI. (ㅋㅋㅋㅋㅋ) 신나가지고 사고 싶었던 신발을 사고, 세일을 하고 있던 요가팬츠도 하나 사고, 남편도 뭐를 골라서 결국은 플렉스를 때렸다는 이야기. REI는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매장인데, 30불을 내고 회원가입을 하면 그 이후에 구매하는 가격의 10%를 매년마다 적립해서 돌려준다. 가입하면 30불을 기프트카드 형식으로 당장 돌려(?)준다. 어차피 택스를 냈으면 30불을 더 냈어야 했고, 저 날 구매한 금액의 10%로 30불을 나중에 돌려 받는 셈이니 결론적으로는 30불 이득이랄까?
그 다음에 간 곳은 Cog Railway라고 하는 기차. 메인 목적은 사실 여기였다. 옛날 옛날에 지어놓은 산꼭대기 까지 오르는 기차가 있는데 안타깝게도 저 때는 시즌을 지나서 꼭대기는 가지 않고 중간에 정차하고 내려왔다. 처음부터 직원이 함께 타서 이런 저런 설명을 함께 해준다. 이 산은 근방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원주민에게서 성스러운 지역으로 알려졌으며 그래서 원주민은 등반을 시도하지 않았다고 한다. 보수작업은 하지만 최대한 옛날 그대로 방식으로 기차가 움직이기 때문에 속도는 5마일 밖에 되지 않는다. 유럽 산악기차도 타보고 얼마전에 홍콩에서 피크트램도 타 본 입장에서 쳇 그게 뭐야 할 수도 있지만 덜컹거리는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다.
올라가면서 수목한계선을 지나가는데, 나무가 현저히 점점점 작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개중에 빠알간 알갱이가 알알이 열린 예쁜 나무가 많이 보인다. 알고보니 그 열매는 더럽게도 맛이 없어서 사람은 물론 새들도 안 건들기 때문이라고ㅋㅋ 안개더미가 산 능선을 따라 넘어오며 그 안을 칙칙폭폭 하면서 들어가는데 꽤 운치가 있다. 운행 꼭대기에 도착하면 기차가 돌아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내부의 의자에서 등밭이를 반대쪽으로 돌려 모두가 반대방향으로 앉고 그대로 내려온다. 꼭대기에 가서 내리지 않는 대신 중간에 있는 역에서 내려서 사진도 찍고 쉴 수 있도록 해준다. 꼭대기 까지 갔으면 그 위에는 카페도 있고 전망대(?)도 있고 한 모양이니, 여름에 갔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가격은 아주 사악하므로 또 타 볼것 같진 않다 (2023 가을 기준 1인 67불인가 그랬음). 티켓을 사는데 직원도 불친절했다. 2인 티켓 달라고 했더니 "꼭대기 안 가는 거 알지?" 하고 엄청 퉁명스럽게 쏘아댔다. 내가 어, 아는데? 했더니 다소 누그러지고 멋쩍은 톤으로 "아, 사람들이 웹사이트 안 읽고 오길래.." (웹사이트에 정상에 안 간다고 써 있음) 웅얼거리길래 대꾸를 안 했다. 아니, 티켓이 싼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전부 웹사이트를 읽고 오지 않을 수도 있지, 무슨 미리 공부를 하고 와야한다는 태도가 별로 마음에 안들었다. 열차 시간이 거의 다 되서 남편이 주차하는 사이 나 혼자 뛰어와서 티켓을 구매했는데 아시아에서 온 영어 못하는 관광객이라고 여겨서 무시를 한 건지, 그냥 그 상황에 자기가 짜증이 나 있었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정상에 가는 때가 아니면 굳이 열차를 탈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에 풍경이 좋은 곳에 잠깐 멈춰 아까 샀던 초콜릿칩 우피파이를 먹었다. 약간 베이커리버전 초코파이같이 생겼는데 케익같이 촉촉폭신한 시트? 사이에 많이 달지 않은 마쉬멜로우 크림이 채워져 있다. 미국 디저트는 다 목이 타들어갈 만큼 단 것이 대부분인데, 이건 그렇게 까지 달지 않아서 정말 맛있었다. 우피파이 ㅠㅠ 맛있어 ㅠㅠㅠㅠㅠ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흔히 팔거나 하지 않아서 사 봤는데 ㅠㅠ 샌프란에서 찾아다닐 판이다.
갔다가 오는 내내 차도 하나도 안 막히고, 일단 도로와 풍광이 아주 아름다웠다. 도로는 다 양쪽 1차선 밖에 없는 작은 길에 군데군데 작은 마을도 지나고 단풍이 아름다운 산도, 호수도 지나갔다. 곳곳에 멈췄던 곳도 좋았지만, 드라이브 그 자체가 좋았달까. 돌아오는 길 2.5시간은 내가 운전했는데 스윽-스윽 평탄한 길을 부드럽게 미끄러져 운전하는게 즐거웠다. 이전 글에서 봤듯이, https://brunch.co.kr/@presidiolibrary/69
이 근처는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마을이 많이 있어서 그걸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졌다. 집들의 모양 색깔이 아무래도 캘리포니아와는 또 다른 맛이 있고 단풍과 낙엽에 둘러쌓여 있는 낭만이 있었다.
작은 마을 여기저기를 둘러봤으니 이 동네에서 가장 큰 도시를 구경할 차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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