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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Nov 28. 2023

디즈니 영화 엘레멘탈-한국계 미국인 감독의 따뜻함

교육적 입장에서 진짜 다문화 이야기.


볼 게 없어서 디즈니 플러스를 해지하고 나서 나온 디즈니 영화들은 안 본 지 좀 되었다. 마블 원작 우려먹기나 멀티벌스로 차원 왔다갔다하기, 원작 실사로 다시 만들기.. 나야 보는 사람이니까 왜 '인사이드 아웃'이나 '라따뚜이' 같은 창의적이고 멋진 영화를 만들어 내지 못하는가! 말하긴 쉽다. 막상 만드는 사람이라면 아이디어가 항상 솟아나오는 것이 아니니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지 않을까?


영화 엘레멘탈이 개봉했을 때도 별로 기대가 없었다. 물/불/기체/땅(나무?) 각각의 엘레멘트들이 도시에서 겪는 내용이라는게, 아 뭐 또 다양성이나 인종에 대한 이야기려니 하는 생각. 또 비슷한 내용이거니 해서 보러 갈 생각은 없었다. 크게 흥행한 것 같진 않다. 간간히 괜찮더라? 하는 평을 온라인에서 본 정도가 다였으니.


샌프란시스코에서 마이애미까지 가는 5시간의 비행. 보통 영화를 한 두개 정도 보고 낮잠을 좀 자려고 한다. 엘레멘탈은 그냥 항공사에서 제공하는 영화 모음에 있어서 눌러봤을 뿐이었다. 그냥 유치해서 대충 보고 말 줄 알았는데, 정신차리니 주책맞게 비행기에서 울고 있더라.



주인공 앰버는 불 종족. 천재지변으로 인해 앰버가 태어나기 전 부모님이 파이어랜드에서 엘레멘트 시티로 이민을 왔다. 엘레멘트 시티는 불 종족이 거의 없는 도시여서 모든 것이 물, 땅, 공기 위주로 돌아갔고, 불에 타거나 건물의 데미지를 입을 것을 두려워한 기존시민들에게서 전혀 환영을 받지 못한다. 결국 조금 떨어진 버려진 곳에서 따로 터전을 일구어 나간다. 가게를 열어 엠버는 아빠를 도우며 자랐고, 많은 이민자가 모여 이 곳은 불종족이 많이 모여사는 타운이 되어 갈 때 쯤, 앰버는 언젠가 아빠의 가게를 물려받기 위해 열심히 일한다.

어찌저찌 한 디즈니스러운 전개로 엠버는 웨이브를 만나게 되는데, 웨이브는 눈물도 많고 감정에 매우 솔직하다. 영어로는 Vulnerable (자신의 약함을 보일 수 있는)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는 솔직하고 따뜻한 태도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성격이 불같고 이성적인 엠버는 이런 웨이브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물과 불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에 거리를 두려고 한다.


여기까지 보면 단편적인 PC 러브스토리군- 하고 말 수 있다. 아쉽게도 보통은 겉만 핥다 가볍게, 그렇게 끝난다. 영화뿐만이 아니라 이벤트, 교육등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 흑과 백으로다가 이민자(혹은 특정 인종)은 불쌍해! 혹은 나빠! 문화라고 한다면 한국 체험이니 한복 입어보고 김치먹고 사진찍고 끝. 하와이에 가서 훌라 춤 보고 포케먹고 끝. 그런데 내 마음을 녹인 것은, 이 영화가 엠버의 갈등을 어떻게 전개했느냐에 있었다.


교육현장에서 다문화에 대한 접근 중 ‘쇼핑/세계여행’ 접근이 있다. 이 방법은 간단히 말해서 수박 겉 핥기로 재밌어 보이는 것만 대충 이것 저것 탐색하는 것을 말한다. 대략 이 문화는 이렇더라, 저렇더라 라는 스테레오타입을 규정하고, 이를 통해 “나는 다문화를 경험했어, 잘 알아!” 이런 접근이다. 음력 1월 1일이 되면 “차이니즈 뉴이어” 라고 해서 다 같이 빨간 봉투를 준비해서 아시아 사람들한테 전부 준다든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다문화 활동’ 이라고 검색해서 나오는 그림을 오려서 아이들에게 색칠하게 한다든가, 뭐 그런것들이 전부 여기에 속한다. 이는 내가 잘 모르는 문화에 대해서 검색해서 대충 배운 것이나나 들은 이야기로 본인이 잘 안다고 생각하면서 그 문화에 대해 말할 때 이런 일이 생긴다.


사실 문화라는 것은 다수의 경험 축적에서 기인한다. 국가에서 지정한 법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속해있기 때문에 한 가지 방법과 이야기만 있을 수가 없다 (만약 무조건 한가지 방법으로만 해야한다면 그건 독재가 아닐까) 가장 authentic한 문화경험 방법은 오랜시간 축적된 개개인, 개인+개인의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를 다양하게 듣는 것이다. 누가 어디서 카더라 하고 들은 게 아니라, 한 개인과 그 개인이 속한 관계 안에서 반복적으로 행해지면서 더하고 빠지고 변하는 총체적인 이야기 전체가 문화이다. 이 이야기 속에는 더 큰 집단의 문화와 그 속에서의 개인의 이야기가 어떻게, 왜 변해왔는지 모두 배울 수 있는 ‘진짜’가 들어있다.


 ’한국에서는 차례를 지낸다’ 를 예로 들어보자. ‘한국인’이라는 역사문화적 배경 속에서는 계속 이어져 온 문화임은 맞다. 그런데 그 속에서 사람들은 실제로 이를 모두 다르게 행하고 있다. 상에 올리는 음식/술 종류도 집집마다 다르고, 누구네 집에서, 몇시에 하는지, 누가 주도해서 하는지, 절은 하는지, 목례만 하는지, 아니면 아예 차례상/차례의 규정을 따르지 않고 가족끼리 식사만 할 수도 있다. 한국을 모르는 외국인이 구글에 ‘차례’를 검색해서 아주 전통적인 방식을 보고 ‘이렇게 하는구나’ 하고 배웠다고 하자. 그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검색해서 배운 것만 진짜이고, 나머지 한국인들이 하는 건 다 ‘진짜가 아닌 것’이 된다. 그렇다면 아주 전통적인 방식으로 하지 않는 그 다른 모든 한국인들은 차례에 대해 이야기 할 자격이 없는 것일까? 하다못해 김치도 그렇다. 한국 사람들은 김치를 담그는 문화가 있지만 단 하나의 배추김치만 맞는 것이 아니다. 지역마다, 집집마다 각각 독특한 식재료가 있고, 레시피가 있고 먹는 방법이 있다. 외국인이 김치를 '장기로 숙성시킨 빨간색의 배추 절임'으로만 배웠다면, 나박김치도, 백김치도, 겉절이도 다 가짜다.


우리는 문화나 콘텐츠도 이런 식으로 만들곤 한다. 내가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스테레오타입에 의지하면 모든게 쉽기 때문이다. 그러면 주인공의 갈등과 고민이 가벼워지고, 그냥 개인간의 러브스토리가 된다든가 신데렐라 스토리가 된다든가, 이민자이기 때문에 불쌍하다든가, 이민자이기 때문에 문제라든가, 뭐 그렇게 이미 30번 정도 본 듯한 내용의 그저 그런 영화가 되어버리고 만다.


엘레멘탈을 보면서 많은 순간 엇? 했다. 왜 그런가 나중에 봤더니 감독의 성이 ‘Sohn’ 이었고, 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부모님에 대한 감사가 올라 갈때 그들이 한국인 이름을 가진 것을 알았다. 아, 이 이야기는 그냥 다양성 타령을 하면서 컨텐츠를 팔고 싶었던 랜덤 1인이 아니었다. 앰버가 겪었던 이 모든 것들은 본인이 자라면서 느끼고 보아온 이민자의 정체성과 고민- 즉, '카더라'가 아닌 '진짜'을 조심스럽게 녹여낸 것이었다. 여기서는 몇가지 갈등을 다루는데, 세대간 (앰버-부모님), 인종간(앰버-웨이브/불-다른종족들), 자아실현의 갈등(앰버 스스로) 로 나눠 볼 수 있다.


> 앰버-부모님 + 앰버 스스로의 자아실현 갈등(본인이 즐기고 잘 하는 것 보다는 가업을 물려받고 부모님의 희생을 갚고자 하는 마음)

엠버는 부모님의 희생과 자신의 재능 사이에서 갈등한다. 아니, 사실 그녀는 웨이브와 그 가족들을 만나칭찬을 듣기 전까지는 자신이 진짜 잘하고 하고싶은 게 무엇이었는지 모른 채 가업을 이어받는 것 만이 자신의 길이라고 생각하고 사랑했다. 부모님을 너무도 이해하고 사랑하기에 그들의 자랑이되고 싶은 것은 맞지만, 그것이 진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 너무 속상하고 부모님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너무나 다르지만 어느덧 좋아하게 되어버린 웨이드도, 다른 종족인데, 부모님을 배신하는 것 같아 다 놓아버리고 싶어한다. 바로 죄책감. 부모님의 희생, 자식의 효도. 바로 한국인으로서 우리가 겪어온 감정이다. 이는 단순히 엄한 부모님과의 반대 같은 소비하기쉬운 러브스토리가 아니다. 평생동안 자라온 가족과 함께 쌓아온 문화와 삶 자체이므로 진지한 고민과 대화가 필요한 상황을 잘 풀어낸다.


>앰버-웨이브 + 불-다른 종족들(인종?종족? 간, 그리고 사회적 통념 사이에서 화합의 갈등)

물과 불의 만남. 두 인종?종족?은 서로를 만나 볼 생각도 하지 않는다. 아예 서로를 모르던 엠버와 웨이브는 데이트를 하면서 서로 상상도 못했던 다른 능력과 눈부신 장점에 매료되고 만다. 앰버 본인을 포함한 모두가 물과 불이 서로를 만졌다가는 난리가 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웨이드가 시도도 안 해보고 어떻게 아냐고 용기를 북돋아주어 마침내 맞잡은 손. 놀랍게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래, 때로는 모두가 해보지도 않고 겁을 내는 것들이, 사회가 시도할 엄두도 못 내본 것들이 막상 실제로는 아무 일도 아닌 경우가 있다. 밥을 수프에 말았는데 생각보다 맛있었던 것과 같은.


영화에서 가상으로 등장한 ‘Fire’문화는 이러저러한 문화권의 느낌을 잘 버무려서 따뜻하게 만들어냈다. 그 중에서도 ‘엇 저건’ 했던 것은,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최고의 존중과 축복이라는 표현으로 했던, 과 비슷한 동작. 의도적인건지 아닌건지 절의 동작과는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자식이 멀리 떠날 때 절을 하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했다. 물론 동작 자체는 조금 유치해서 손이 오그라 들긴 했지만. 어쨌든 만화니까.




왜 이 만화가 이렇게 따뜻하게 느껴졌는고 하니, 아마 내가 외국에서 외국인이랑 살기 때문인 것 같다. 뭐든 잘 해야해, 손해보지 말아야해- 긴장하고 있는 엠버의 모습이 나 같고, 괜찮아 괜찮아 하는게 남편 같다. 처음에 만나서 결혼하기 까지 서로의 다른 것에 신기해 하고 어려움은 맞춰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언제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가고 극복해 나가는 것이. 그래. 너무 하던 것에만 갖혀 있으면, 뭘 잘 못할까봐, 손해볼까봐 두려워하면 그 너머에 있는 것은 영영 못 본다.




이미지출처 -https://wegotthefunk.com/free-disney-elemental-printable-activity-p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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