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옹지마를 이야기로 쓰면 바로 이거다
화/목 두 가지 연재를 한 지 몇 주가 지났다. 쓰고 싶은 이야기를 반강제(?) 적인 브런치 연재 힘을 빌려 쓰고 있는게 좋긴 한데 중간중간 쓰고 싶은 다른 것들이 치고 들어왔을 때 쓸 겨를이 없다. 쓰고 싶은 이야기는 많은데 몸뚱이는 게으르다. 그렇게 이야기 바구니가 쌓여가고 있다.
에라, 모르겠다. 웹툰도 웹소설도 명절에는 휴재를 하는데!! 나는! 왜! 휴재를! 못하겠단 말이다. 그러니까 명절기념 휴재 대신 이번엔 쓰고 싶은 걸 쓰겠다. 헤헤 (라고 했지만 이 글을 쓰고 결국엔 연재도 썼다...ㅋㅋㅋ 못 건너뛰겠는걸 ㅠㅠ)
남편과 함께 한 지 꽤나 여러 해가 지나가는데, 새해에는 서로 다른 문화 둘이서 만들어나가는 명절풍습?의 재미가 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에 파티 (혹은 연애) 느낌이고 새해에는 가족과 보내는 느낌이라면, 미국에서는 그 반대다. 크리스마스는 가족과 함께 보내고 새해 전야에는 파티를 하는 느낌이다. 뉴욕에서 카운트다운 하면서 성대하게 행사를 여는 걸 생각하면 비슷하다.
땡스기빙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명절은 아무래도 한국의 설/추석 느낌이 나서 일가친척을 방문해야하는 관계로 우리끼리만 뭘 해 나가거가 하긴 어렵다. 반면 우리는 새해에는 자유다. 크리스마스에 이미 홀리데이 듀티는 끝마쳤다. 선물사러 안다녀도 되고! 누구 만나러 전쟁통 같은 공항을 뚫지 않아도 되며! 누구는 뭘 먹을 수 없고 누구는 뭘 먹고 싶어서 당최 합의점을 찾기가 어려운 레스토랑 검색과 예약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몇 년 째, 반드시 두 가지를 하려고 한다.
1. 12월 31일 밤 새해 카운트다운 불꽃놀이보기
뉴욕같이 본격적인 행사를 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대도시에서는 1월 1일이 되는 자정에 불꽃놀이를 한다. 샌프란시스코도 마찬가지다. 샌프란시스코에는 2개의 다리가 있는데, 하나는 유명한 금문교로 노스베이와 샌프란시스코를 연결하고 다른 하나는 베이브릿지로 이스트베이랑 연결한다. 베이브릿지 근처에서 매년 불꽃놀이를 하는데 인파가 만만치 않다. 몇 년 전 까지는 그 근처에 살아서 별 생각 없이 슝 걸어갔다오기가 참 좋았었다.
그런데 이사를 오고 나서는 좀 쉽지 않다. 차를 몰고 가자니 댈 데가 없고, 버스는 자정이니까 없고, 사람이 많으니 우버를 타기도 힘들고, 걷기는 좀 멀다. 사실 최근 2년은 꾀를 부리고 안 갔더랬다. 올해는 다른 곳을 가보고 싶었다. 남편이 어디 누군가의 포스팅 "샌프란시스코 새해 불꽃놀이 보기 좋은 스팟 열 가지" 같은 걸 보더니 트레져 아일랜드가 좋더라 했다. 트레져 아일랜드는 샌프란시스코와 이스트베이 사이에 있는 섬인데, 과거에는 군사 관련 시설이 있었다가 최근에 더 개발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다. 도시가 한 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지만 평소에는 아직 아무것도 없다. 집에서 차가 안 막히만 한 20분이면 간다.
"Sure! We maybe leave like 11?" (그래! 한 11시쯤 출발하면 되겠지?)
농땡이를 피우다가 차가 막힐 수도 있으니 10시 50분 쯤 출발했다. 구글 맵은 20분이면 간다고 했다. 그래, 도시를 빠져 나오고 베이브릿지를 타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중간에서 오른쪽 출구를 타면 바로 트레져 아일랜드인데, 그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11시 05분. 분명히 20분 걸린대서 출발했고, 이제 출구만 나가면 2분 거리인 곳이 구글 맵은 15분이 걸린다고 빨갛게 표시가 됐다. 차가 아주아주아주 느릿느릿 움직였다.
왼쪽에서 차들이 쌩쌩 달렸다. 고속도로 터널 안, 서 있는 차에서 듣는 옆 차들 달리는 굉음이 끝도 없이 들렸다. 아직도 55분이나 남았는데, 괜찮겠지 뭐~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느릿 느릿 움직이는 불안감을 달랬다. 10분, 20분. 시간이 갔다. 고속도로 출구에 가까이 왔다.
빠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여기저기서 경적소리가 들려 앞을 보니 끼어들기를 하는 차들이 꽤 있었다. 어쩜 저렇게 안면몰수 하고 끼어들 수 있는지 놀랍기만 했다. 우리도 같이 빵빵거렸다. 들은 체도 안하고 고속도로 한가운 데 서 있는 저 미친 자들. 차 안이 보였는데 다 멀쩡해 보이는 인간들인데? 지들도 못할 짓이라는 걸 아는지 얼굴이 민망해 보였다. 남편은 곧 죽어도 우리 앞에는 못 끼어 들게 하겠다고 앞 차에 풀이라도 붙인 양 바짝 붙여서 따라갔다. 우리는 괜히 20분이나 기다린 줄 알아?! 계속 위협적으로 고개를 들이밀던 흰 차는 결국 우리 뒤로 끼어들었다. 저런 망할 놈들. 새해에 심보를 저따위로 썼으니 한 해가 불행할 것이다! 예끼!
고속도로를 나왔어도 돌아서 들어가는 길 전부가 꽉 막혀서 거의 안 움직였다. 앞으로 20여분 남은 상황. 행복회로를 돌려, 목적지에 제 시간에 도착하지 않더라도 저기 코너만 돌아서 남쪽을 향해 있으면 차에서 기가 막힌 뷰를 볼 수 있을 거라고 서로를 격려했다. 코 앞, 요기만 돌면! 하는데 갑자기 차가 좀 잘 빠지기 시작했다.
앞을 봤더니 들어가는 길을 막고 경찰이 차를 우회시키고 있었다. 이 우회로로 가면 그냥 다시 섬 밖으로 나가는 루트가 될 터였다. 에라이. 차에만 갖혀있다가 그냥 가는구먼. 우회로도 곧 구불구불 길을 따라 차가 막혔다. 거의 기어갔다. 앞으로 10분.
남편과 나는 그래 이것도 어드벤쳐 아니겠어?ㅎㅎ 나름 재밌어 ㅎㅎ 하며 웃었다. 왼쪽엔 철제펜스, 풀이 무성한 높은 언덕인 차 안에 갇힌 채, 11시 59분이 되었다. 내가 크리스마스 선물로 사준 남편 시계 초침을 바라보며 카운트 다운을 했다.
"5, 4, 3, 2, 1! Happy New Year!"
같이 웃으며 외치고 뽀뽀를 쪽 했다 (미국애들은 해피 뉴이어 카운트 후에 새해에 커플이면 뽀뽀를 한다) 차들이 축하하는 느낌으로? 빵빵거렸다. 차들은 아예 움직이지 않았다. 불꽃놀이는 이미 시작했을 터였다. 나는 그럼 혹시 걸어나가면 불꽃놀이를 볼 수 있나 걸어나가 보겠다고 했다.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앞차의 사람들도 내리더니 그 앞차의 사람들과 함께 얼싸안으며 해피뉴이어를 외쳤다. 우리차 한 10미터 앞에 있는 차들은 이미 비어있었고, 그나마도 있던 사람들은 전부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다. 앞에 있는 젊은 여자애는 전화에다 대고 "아, 나 차에 지갑 버리고 왔는데ㅋㅋㅋ!" 하면서 열심히 뛰었다. 나도 내 앞에 있는 웬 라티노 가족을 따라 수풀을 뛰듯이 걸어 올라갔다. 남편에게 영상통화를 걸어 여기 사람들 다 차 버리고 나와서 차 못 움직이니까, 괜찮으면 그냥 나오라고 했다. 불꽃놀이 소리가 가까워져 온다!
추울까봐 눈 하이킹용 부츠를 신고 왔는데 물에 젖은 수풀을 기어올라가면서 그러길 잘 했다는 생각을 했다. 짧은 오르자, 어마어마한 뷰가 펼쳐졌다.
여기는 전망대도 아니고, 그냥 길가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세상에, 이런 뷰가 있어? 버려진(?) 차들은 얼기설기 세워져 있고, 사람들은 캄캄한 하늘의 불꽃놀이와 야경을 감상하며 사진을 찍기 바빴다. 곧 남편이 나를 찾았고 수풀을 헤치고 올라왔다.
저 다리가 베이브릿지인데,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오른쪽 세 차선에 차들이 그냥 서 버렸다. 삐용삐용삐용삐용 하고 경찰차 사이렌 소리가 계속 들리고 뭐라고뭐라고 방송하는 소리도 들렸다. 아마 고속도로경찰이 불꽃놀이 보겠다고 멈추지 말라고 계속 소리치는 것 같았으나 아무도 못 들은 척 그냥 차로에 서 있는 것 같았다.
20분이 걸린대서 왔다가 차에 한 시간에 넘게 갇혀있었다. 거의 다 와서 고개만 돌면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경찰이 도로를 막고 돌려보냈고, 교통에 막혀 차 안에서 허허허 이게 뭐람 불꽃놀이 못 보네 했다. 그런데 이런 엄청난 뷰를 만날 줄이야! 여기는 전망대가 아니기 때문에 차가 막히지 않을 때 들어오면 세우고 나올 수 없다. 차가 막힌 덕분에, 경찰이 도로를 막은 덕분에 이런 멋진 순간을 맞이했다.
클라이막스로 불꽃을 터뜨리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다같이 박수를 치고 행복을 나누며 불꽃놀이가 끝났다. 자, 여운을 즐길 새는 없다. 고속도로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빠르게 걸으며 소리쳤다.
100불로 인해 사람들은 빠르게 현실로 돌아왔고 썰물 빠지듯 자기 차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앞차가 빠지기 시작했는데 내 차에 도착을 못했으면 큰일이다!
재난상황이 아니다. 불꽃놀이의 즐거움에 업 된 설레는 마음과 아쉬움, 그리고 벌금을 향한 두려움이 빚어낸 달밤의 운동을 뿐. 우리도 차를 향해 뛰었다. 돌아가는 데 한 참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져나오는건 쉬웠다. 뒷 차에서 술에 취했는지 대마초에 취했는지 차문에 매달려서 운전하고 소리지르던 이상한 사람들 외에는 다들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삶이라는게, 참, 길이 막힌 것 같다가도 그로 인해 새로운 좋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재밌다. 그래도 내년에는 한 아홉시쯤 미리 가서 진을 치고 있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ㅋㅋㅋ. 어쨌든 운이 좋았을 뿐이니.
P.s. 나중에 알고보니 최근 트레져아일랜드에 공사가 엄청 많아서 차 델 데가 없다고 못 들어오게 섬을 막았었다고 한다. 이를 모르는 사람들(우리 포함)은 불꽃놀이를 보겠다고 꾸역꾸역 몰려들었던 것. 어째, 차가 막혀도 너무 막히더라.
이 이야기는 다음의 "여행맛집" 의 "당신을 위한 키워드- 외국생활" 탭에 소개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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