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값에 720만원을 쓸 수는 없다
이건 뭐 신경쓸 게 전방위로 너무 많았다. 예를 들어,한국이라면 플래너가 데코 패키지에서 스탠다드-디럭스-프리미엄의 가격과 뭐가 포함됐는지 보여주고 고르세요-, 근데 프리미엄이 낫겟죠? 하며 거기서 고르면 될 것이다.
그러나, 플래너도 없고 미국에 덩그러니 놓여진 나는 정보의 바다와 무한대의 가짓수에서 고통받았다.
뭐가 옳은 선택인지 몰라서 불안했다.
이쯤 되면 왜 처음부터 웨딩플래너를 안 꼈는가를 물으실 것 같다.
물론 우리도 하와이 웨딩을 결정하자마자 웨딩 플래너를 알아봤었다. 결혼식 준비를 하던 때에는 대학원 2년차. 일을 하면서 논문을 준비하고 쓰고 있는 단계였으므로 당연히, 바다 건너 하는 결혼식에 웨딩플래너가 있으면 모든 것이 훨씬 쉬웠을 것이다. 내가 알아볼 줄 모르는 건지 원래 가격이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이건 뭐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을 지불해야했다. 몇 백이 아니고 천 단위(달러 아니고 만원)을 넘어갔던 걸로 기억한다. 액수가 너무 터무니없다보니 포기하기는 쉬웠다. 물론 그 대신 오롯이 다 내가 (남편도) 감당해야 했지만.
모든 것을 우리가 한다고 해도 대신 결혼식장으로 예약한 카할라리조트 측에서 추천해 준 당일 플래너를 고용했다. 딱 결혼식 당일 하루와 그 전날의 준비 정도만 도와주는 분인데, 내가 다 주도한 가내수공업(?) 형태의 웨딩에서 막상 나는 드레스입고 결혼식을 해야하니 나 대신 전반적으로 흐름을 알고 도와주실 분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분도 이틀에 200만원 좀 안되는 금액으로 저렴하진 않았다. 다만 이 분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일단 당시 카할라리조트 결혼식 패키지(?)에 포함된 것들은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으니 고르기가 쉬웠다.
세레모니(결혼식) 음악은 하프연주,
식장/리셉션 의자는 기본 (추가비용으로 꾸미는 게 가능했으나 천이나 꽃을 덕지덕지 다는게 싫었다. 그냥 흰색 의자가 예뻤음),
Officiant (결혼식 해주는 사람. 주례 권위가 있는 주례쯤 된다)는 거기서 준 리스트에서 한 여자분을 대충 골랐다.
그 외에 대체 뭐가 필요해? 라고 묻고 싶으시겠지만.. 그건 한국 웨딩홀 시스템에 익숙해서일 것이다. 이제 보니 웨딩홀은결혼식을 찍어낸다고 욕을 먹긴 하더라도 원스탑 서비스가 가능한 천국같은 곳이다. 자, 어서오시라 가내수공업 웨딩현장에.
1. 색깔 테마 + 웨딩파티 복장
이건 쉬웠다. 노랑과 회색(흰색도 괜찮음). 내가 노랑색을 좋아하기도 하고, 노랑과 회색은 우리 커플이 뭘 할 때 마다 자주 고르는 조합이었다. 앞에서 보신 분들은 Save the date카드도 회색+노랑 조합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에는 결혼커플과 함께 하는 '웨딩 파티'라고 부르는 그룹이 있다. 여기서 파티는 잔치의 파티가 아니고 그룹이나 단체를 의미한다. 남자쪽에서 한 명 씩 골라 '베스트맨', 여자쪽에서 '메이드 오브 아너'를 지정하고, 그들이 대부분 결혼식 대부분을 담당해서 도와준다. 그 외에도 적게는 2명에서 열 댓명 까지 웨딩파티라고 지정하고 그들에게는 드레스와 양복을 따로 맞추거나 지정해준다. 신랑 신부 입장 전에 그들이 입장해서 들러리로 서 있어주고, 베첼러(베첼러렛)파티같은 걸 하면 그들이 같이 가기도 한다.
나는 결혼식도 작은데 뭐 웨딩 파티를 잔뜩 지정하냐, 해서 남편의 친구 2명, 내 쪽은 언니와 내 친구 한명으로 합의를 봤다. 여자 들러리 옷은 노란색으로 골랐다가 그 옷이 부적합하다는 의견에 따라 나중에 회색으로 바꿨고, 남자 들러리는 회색 바지에 회색 멜빵, 그리고 노란 나비넥타이로 정했다. 손님들도 가능하다면 회색이나 노란색을 입어달라고 요청해 두었다. 보통 이들은 예비부부가 꽤나 부려먹(?)는 것 같은데 다 샌프란시스코에 안 살아서 해당사항이 없었다. 도움을 요청할 생각도 못했다 사실.
거기다가 감사하게도 화동과 링베러 (결혼반지를 들고 입장해 주는 이)로 내가 오페어로 있었던 아이들 두명이 와 주기로 했다. 여자아이에게는 노란색 드레스와 장식머리띠를 사서 보내주었고, 남자아이에게는 남자 들러리와 같은 멜빵과 나비넥타이를 보냈다. 링베러가 반지를 얹어서 들고 올 상자? 쿠션? 은 대충 보들보들한 벨벳 재질의 천을 사서 예쁜 상자 안에 채워서 만들었다.
2. 꽃 장식
장식에는 1도 관심이 없던 나는 정말 난감했다. 결혼식 때 내가 들을 꽃이랑 남편 가슴에 꽂을 부토니에 정도만 생각했지 무슨 또 꽃으로 장식까지 해야된다니. 검색을 할수록 점점 더 난감해졌는데, 서양식 파티문화에서 꽃장식은 생각보다 중요한 요소였던 것이다. 대충 보자니 필요한 것은
1) 웨딩아일(결혼식장 입장하는 곳) 장식
2) 웨딩 아치 장식
3) 리셉션(웨딩 피로연) 손님 테이블 플라워세팅
4) 신부 부케, 머리 꽃장식 + 여자 웨딩파티(들러리) 부케
5) 신랑 부토니에 (가슴에 꽃장식) + 남자 웨딩파티(들러리) 부토니에
6) 신랑신부 부모님 네 분 꽃장식
7) 화동이 던질 생화 꽃잎
정도로 압축이 되었다. 물론 더 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뺐다. 생화를 쓰고 그걸 화분 채 손님들에게 답례품으로 보내는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들었으나 손님들이 전부 비행기타고 떠나는데다가 하와이에서 살아있는 동식물을 가지고 나오는게 불가능 했으므로 포기했다. 닥치는대로 검색을 시작했고,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찾아 잔뜩 저장해 놓은 후, 이렇게 비슷하게 하면 얼마나 들겠느냐 문의도 많이 넣어봤다.
와, 많이 비쌌다. 어디는 자기네의 최저 금액은 6000불(720만원) 부터 시작한다고도 했다. 죽었다 깨어나도 꽃에다 돈을 그만큼 쓰고 싶지는 않았다. 꽃 장식을 내가 과연 어디까지 셀프로 할 수 있을까.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일단 1) 웨딩아일 장식은 꽃 없이 남편과 나의 아기-유년기 사진을 액자에 걸어 나이 순으로 배치하기로 했다. 그 외에는 10인석 테이블 4개를 장식해야하는 3)번 리셉션 테이블 플라워세팅이 가장 비싼 비중을 차지했다. 가격이 미치지 않으면서도 마음에 드는 곳에서 1번과 3번을 제외한 것들을 주문하기로 했다. 보통 업체에 마음에 드는 사진을 저장해서 보내주고 이런 식으로 가능하냐, 하고 주문했다. 자, 그럼 3번은 어찌하느냐.
세레모니를 하고 나면 웨딩 아치의 꽃은 쓸모가 없다. 따지고 보면 내 부케도, 여자들러리들의 부케도 필요가 없다. 그러면 내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그 꽃을 빼다가 테이블에 장식을 하면 되는 것이다!
어떻게 장식을 할 것이냐, 검색하다가 빈 병과 초를 이용한 장식을 발견했는데, 그게 마음에 들었다. 밑에 깔 플레이스매트와 초, 병 모양 줄조명을 구입하고 집에 있던 빈병과 가짜 꽃 등을 이용해서 Mock up 버젼을 만들었다.
실제 테이블은 하얀색 테이블보 배경일 것을 고려하면 그럴 듯 했다! 나는 좀 더 예쁜 병을 찾으러 돌아다녔고, 아이싱 막걸리를 열심히 마시며 병을 모아뒀다 (아이싱 막걸리 병이 포장을 벗기면 꽤 예뻤다). 내가 식을 끝내고 옷을 갈아입으러 간 사이, 플래너 분이 아치에서 꽃을 빼다가 한 두개씩 병에다가 꽃아 테이블 위에 세팅만 해 주시면 되는 것이다. 이 사진을 당일 플래너 분께 보여드리며 내 계획을 말씀드렸더니, 할 만 하다고,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했고, 오히려 꽃이 모자랄 경우를 대비해 본인이 당일에 마트에 가서 노란 꽃들을 사 오겠다고 하셨다. 초도 그 분이 준비하기로 했다. 나는 참고용으로 몇 개인지 숫자까지 적힌 사진을 만들어서 보냈다.
테이블이 4개니까 매트 4개, 코르크마개 모양 줄조명 4개, 다양한 크기의 빈 병 7X4=28개가 필요했고, 나는 그걸 다 모아서 하와이에 결혼식 할 때 다 바리바리 싸가지고 갔다. 병에는 젬 스티커를 약간 붙여서 꾸미기로 했고 그 스티커까지 마이클스에서 사서 들고 갔다. 빈병을 캐리어에 싸던 순간이 아직도 생각난다. 내 결혼식가는데, 하와이가는데 빈병 28개를 싸고 있는 내가 너무 웃겼다.
들고간 병을 이용해 꽃을 재활용하는 방식 + 플래너가 필요한 것을 마트에서 저렴하게 사오는 것으로 나는 꽃 값을 터무니없이 아꼈다. 기억에 1000불 안쪽으로 들었던 것 같다. 이전에 견적 받으면 2500-6000불 정도 나왔던 것을 감안하면 정말 혁신이 아닐 수 없다.
3. 테이블 세팅
앞서 말했듯이, 미국 결혼식은 대부분 누가 올 지 게스트 리스트를 다 알고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각자의 게스트는 리셉션 시 테이블에 어디에 누가 앉을 지 미리 다 지정해 놓는다.
자, 우리의 테이블은 10명 씩 4개. 보통 신랑신부+웨딩파티는 테이블을 따로 상석에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그건 생략. 남편쪽 19명과 내 쪽 19명을 4개의 테이블에 어색하지않으나 동시에 공평하게 넣어야 한다. 이게 좀 골치가 아팠다. 아무래도 한국과 미국 전역에서 오는지라 손님들끼리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언어나 문화, 한 명/커플/가족손님, 서로의 관계까지도 고려해야 했다. 내 직계가족을 비롯한 내쪽 손님으로 한국인 테이블 하나, 남편 쪽에도 직계가족 + 어르신 친척 등을 비롯해서 하나. 우리 커플과 웨딩파티 무리가 앉을 테이블 하나, 그리고 영어가 적절히 되는 한국인과 젊은 미국인을 섞어 또 한 테이블을 어찌저찌 완성했다.
기본 테이블세팅 (접시위에 접시, 냅킨, 포크 나이프 등등)은 호텔에서 제공하는 것을 쓰기로 하고, 리셉션은 바닷가 잔디 세레모니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홀로 정했다. 한쪽 면이 통째로 열려서 바다를 잘 볼 수 있었고, 둥근 테이블 4개가 딱 들어갔다. 각 테이블에 누가 앉을지 이름을 써 놓는 것도 인터넷에 보면 이미지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내가 선택한 것은 레몬.
작은 태그를 주문해서, 손님의 이름을 각각 한 땀 한 땀 손으로 썼다. 손님들이 자기 이름은 물론 상대편의 손님 이름도 읽을 수 있도록 영문과 한글을 모두 병기했다 (나중에 남편쪽 어르신 친지들께서 한글로 쓴 자기 이름을 재밌어하셨다). 노란 핀도 주문해서 다 가방에 실었다. 레몬은 당일에 플래너분께서 사다 주시기로 했고, 결혼식 전에 내가 일찍 와서 레몬에 하나 하나 꼽았다. 혼자 하려고 했는데 내 웨딩 파티 두명이 함께 도와줘서 금방 끝냈다. 완성한 레몬 자리 이름표는 세레모니 끝나고 꽃을 세팅할 때 플래너분께서 해 주시기로 했다.
4. 음향기기 세팅
리셉션에서는 영상을 보고, 스피치도 하고, 내가 노래도 할 예정이었으므로 2시간 정도 스크린과 마이크가 꼭 필요했다. 호텔측에서 이미 필요한 기기를 모두 가지고 있고 이미 진행하고 있는 서비스에 더할 수 있길래 견적을 문의했다. 이메일로 견적서를 본 우리는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