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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Dec 07. 2023

그 돈이면 TV를 사서 버리고 오겠다

하와이에서 결혼식 하려다가 티비 살 뻔 함

우리가 필요한 건 동영상을 볼 스크린/프로젝터 하나, 스피치/노래 할 마이크 하나, 음악을 틀 스피커 하나면 족했다. 인원도 적고 공간도 크지 않아서 큰 셋업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호텔에 연결된 음향기기 담당자는

46인치 TV, 무선 마이크 1개, 랩탑 오디오 패치 (개인기기 연결해 주는 박스인듯), 오디오 믹서, 스피커 1개 견적으로 1000불 이상 (130만원)을 보내왔다. 그나마 이게 호텔 연계 35% 할인을 한 가격이라는 걸 보면 원래는 1350불 (170만원쯤)이 넘는다는 말이었다.


잠시 회로가 멈춘 나와 남편은 이게 맞나? 생각해 보기 시작했다. 그냥 우리가 프로젝터를 사서 들고가고 어디서 하얀 스크린만 빌려볼까? 무선마이크/무선스피커 아마존에 많은데 다 싼거 사서 들고 갈까? 별 생각을 다 해봤는데 아무래도 드레스에 빈병 30개에 소품에 음향장비까지 들고가기는 (6화 참조) 이미 짐이 너무 많았다. 하와이에 결혼식 하러 가는 거지 보따리 장사하러 가는게 아니지 않나.


누가 먼저 말 한 건지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남편인가 나인가 입을 뗐다.

"You know what? If we buy a big new TV in Hawaii and just leave it there, that's cheaper"

(그거 알아? 우리 하와이에서 새로 큰 티비를 사서 쓰고 버리고 오면 그게 더 싸)


ㅋㅋㅋㅋㅋㅋㅋㅋ우리는 말해놓고 어이가 없어서 둘 다 웃음이 터졌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맞는 말이었다. 비슷한 크기의 저렴한 새 티비는 한 300 불이면 살 수 있었다. 티비는 들고 갈 수가 없으니 하와이에서 사서 쓰고 누구한테 버리고(?) 오면 그게 더 이득 아닌가? 아니 아예 마이크와 스피커까지 다 새로 사도 1300불은 안 나올 것 같았다.


우리는 괘씸해서 결국 우리의 결혼식 당일 코디네이터에게 일렀(?)다. 그녀는 자기가 아는 다른 업체에게 연락을 해 보겠다며 기다리라고 하더니, 저 위와 다 같은 구성으로 600불에 해 주겠다는 사람을 찾아왔다!  물론 600불도 싼 건 아니지만 이게 어디야, 하고 바로 예약을 했다.


우리가 예약한 이 분, 본인께서 뮤지션인지 뭐 하시는 분인지 모르겠으나, 나중에 내가 피로연에서 노래하면서 느낀건데, 가수를 위한 음향 세팅을 정말 기가막히게 해 주셨다. 살아 생전 그렇게 아름답게 목소리 담아주는 마이크세팅으로 노래 처음 해 봤다. 전문 뮤디션이 되어 콘서트 하는 같은 느낌이었달까. 비싸긴 했지만 그 값을 톡톡히 했다.


(이 전 글에서 이어지는 결혼식 디테일 열전)

5. 웨딩케이크

웨딩케이크의 세계도.. 찾자면 끝이 없다. 별로 로망이 없기 때문에 열심히 이미지 쇼핑을 한 끝에 하고 싶은 디자인을 골랐다. 바로 하얀색 바탕의 비치의자 케이크. 일단 기본 케이크가 필요한데, 시트와 크림의 맛을 골라서 호텔 베이커리에서 주문 가능해서 그냥 그렇게 했다. 엄청 비싸지 않았다. 비치모래 용으로 쓸 그라함 크래커 (다이제과자)를 부셔서 모래처럼 준비해 달라고 했는데 그걸로 추가비용이 20불인가ㅋㅋㅋㅋㅋ 나중에 우리끼리 '아이씨 그냥 다이제 우리가 사서 부셔서 갈걸' 했다.


그리고는 꾸밀 것을 가져가 우리가 케이크를 꾸미는 세레모니를 하기로 했다. 미리 작은 해변의자, 조개모양 설탕장식, 그리고 작은 고양이 피규어들 몇 개를 샌프란시스코에서 (또ㅋㅋㅋㅋㅋ) 들고 갔다. 세레모니(결혼식)이 끝나고 리셉션 사이에 기다리는 동안 옷을 갈아입고 웨딩케이크를 꾸미며 사진을 찍는 것이다. 겉에만 화려하고 비싼 웨딩케이크 보다 우리가 직접 꾸민 케이크가 의미있고 좋았지만, 나중에 당일 플래너분이 자기는 처음 봤다며 본인이 더 마음에 들어 하셨다.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던 코너(?)



6. 리셉션 전 엔터테인먼트

결혼식 이후에 리셉션 전까지는 신랑신부만 바쁘다. 한복도 입기로 해서 그걸 갈아입었다가 다시 드레스로 갈아입고, 사진찍고 저녁이 시작하기 전까지 그 동안 손님들이 시간을 보낼 것이 필요하다. 물론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고 대부분은 무제한인 (손님에게 무제한이고 내가 나중에 돈 내는..) 바에서 술을 마시고 게스트 북도 쓰며 어울리지만 뭔가 즐길거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남편이 Yelp (미국판 네이버리뷰사이트라고 보면 좋을 듯)에서 캔디 아트 업체를 찾아왔다. 작은 카트를 시간 당 빌려 만들고 싶은 캐릭터나 모양을 주문해 주면 직접 눈앞에서 막대캔디를 만들어주는 거란다. 두 시간 서서 40개 정도 다양한 캔디를 만들어주고 40만원 정도 받았던 것 같다.

우리는 옷 갈아입고 인사하고 사진찍고 바쁜 사이에 남편쪽에서 우리 것도 주문해서 받아주셨다.


7. 리셉션 저녁 메뉴

저녁메뉴는 호텔에 물어보면 대부분 가능한 메뉴를 전부 보내준다. 뷔페식으로 할 수도 있고, 정해져 있는 코스를 고를 수도 있고, 다 따로 골라 스스로 메뉴를 구성할 수도 있었다. 정해진 메뉴에는 이러저러하게 마음에 안 드는게 섞여 있어서 직접 메뉴를 하나하나 골랐다. 처음엔 샐러드 + 애피타이저 + 메인메뉴 + 디저트의 조합으했다가 그간 결혼식들을 가 보니 디저트 까지 먹은 다음에는 이미 너무들 배가 불러서 케이크를 못 먹고 두고 가기에 나중에 디저트 메뉴를 빼고 웨딩케이크를 넣었다.

메뉴도 2개 국어로 뽑았다. 이 메뉴는 손님의 자리마다 다 세팅이 되어있도록 했다. 메뉴는 비싸더라도 맛있는 것, 대접하기 좋은 것으로 했다. 미리 받은 RSVP (4화 참조)에 적혀있던 개인 음식선호도를 통해 한 명은 전채와 메인메뉴를 채식으로 바꿨다. 나의 사랑 화동과 링베러는 어린이용 메뉴로 바꾸어 주었다. 음식이 아주 맛있어서 나중에 호응이 좋았다. 나는 드레스 입고도 스테이크와 바닷가재를 순삭했다..


8. 리셉션때 틀 영상과 지인의 스피치

은근히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던 것은 모든 것을 2개국어로 만드는 일이었다. 미국 결혼식에서는 대부분 양 가에서 각 각 한 두 명씩 나와 스피치를 하는데, 그걸 미리 양쪽에서 다 받아서 번역해서 자막으로 만들어서 스크린에 띄웠다. 내 결혼식의 완성도를 위해서라면 스피치 내용의 스포 쯤이야 괜찮았다.


동영상은 내가 남편과 나의 어렸을 적 사진 + 우리 둘의 그동안 사진을 모아서 만들었다. 배경음악은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음악의 전개를 잘 맞물리게 해서 가사가 사진에 찰떡이 되도록 만들었다. 남편 아기때 사진이 먼저 등장하는데, 전주가 끝나고


"It's too good to be true" (진짜이기엔 너무 굉장해)


"I can't take my eyes off of you" (너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는걸)

"You'd be like Heaven to touch" (너는 마치 만질 수 있는 천국과도 같겠지)

"I wanna hold you so much" (너를 너무너무 안아주고 싶어)



이런 식으로 아기 때 부터 사진이 등장하자 시어머니가 눈물을 펑펑 쏟고 시작하셨다. 1절로 남편이 끝나면 2절에는 같은 방식으로 아기인 내가 차례로 등장한다. 내가 만들었지만 보고 또 봐도 너무나 귀여운 동영상.











여기서 결혼식을 앞둔 신부를 'Bridezilla' 라고 놀리기도 하는데, 이는 Bride(신부)+ -zilla(괴수 고질라의 질라)가 붙은 말로, 대부분은 극심한 결혼식 준비 스트레스로 인해 엄청나게 짜증을 내거나 극도로 예민한 신부들을 향한 말이다. 아니.. 이해가 되는게 여기 지금 큼지막한 날짜+식장+청첩장+드레스 를 제외하고도 9가지나 적었는데 아직도 기타 다른 디테일이 잔뜩 남았다. 대충 할까 싶어도 손님들이 비행기까지 타고 와 주시는데 적어도 와 주신 보람은 있어야 했다.




그 와중에 어느 날 시어머니가 남편에게 연락을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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