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첫 날 부터 대소동
드디어 하와이에 간다.
뭘 두고 가면 비행기를 타고 다시 가지러 가야 할 판이니 모든 걸 꼼꼼하게 챙겨야 했다.
웨딩드레스, 웨딩구두
턱시도, 구두, 보타이
신랑 들러리용 노란 보타이 *3
플라워/테이블세팅 준비물: 빈병 30여개, 젬 스티커, 플레이스매트 4개, 코르크 줄조명 4개, 손님 이름태그, 레몬에 꽂을 노란 핀, 리셉션 메뉴 40매
케이크 세레모니 준비물 : 고양이피규어, 슈가 조개 데코, 해변의자 데코
결혼식 데코: 파인애플 줄 조명, 남편/나 유년 사진 액자 4개, 금색 리본, 손으로 쓴 주류/칵테일 메뉴, 방명록으로 쓸 사진 퍼즐, 필요 시 글씨 쓸 금색 네임펜
기타 옷가지 등 결혼용품 이외의 짐
동영상/음악을 플레이할 랩탑, 연결 잭
여기까지 챙기고 나니 벌써 들고 갈 수 있는 짐이 가득 찼다. 지금 다시 다 써 내려가 보니 내가 미쳤었구나 싶다. 저기에 추가로 나와 남편의 한복이 남아있었는데, 마침 남편 여동생/어머니가 도울 것이 없느냐고 물어봐서 그걸 좀 대신 들고와주십사 했다. 그 둘은 전세기를 타고 오시는 다른 친척분께서 태워서 함께 오실 계획이라 짐 제한이 없었으므로 어렵지 않게 가지고 와 주셨다.
드디어 간다! 우리는 설레고 비장한 마음으로 비행기를 탔다.
첫 날에 할 일이 많았다.
- 12:45 도착
- 차를 빌린다
- 부모님을 만나 인사하고, 예약해 둔 마사지샵 (2시)에 엄마 아빠를 태워드린다.
- 3시에 숙소 체크인.
- 호텔 결혼식 베누를 직접 가고 담당자도 만난다
- 엄마 아빠를 다시 데려다 주고 함께 저녁을 먹는다
계획은 완벽했다! 단, 이대로만 된다면.
결혼식 때문에 오아후에 머무르는 동안에는 일단 와이키키에 에어비엔비를 예약했다. 결혼식 당일에는 식을 올리는 카할라 리조트에서 묵을 예정이었고, 그 동안에는 빈 에어비엔비에 싱글 여행자인 친구들이 묵기로 했다. 에어비엔비는 모던하고 노란색이 간간히 포인트인 귀여운 아파트였는데 며칠 묵기에 나쁘지 않았다. 오늘 이리저리 써야 해서 한국의 쏘카 같은 시간당 차도 빌렸다. 이제 한국에서 도착한 우리가족을 만나기만 하면 된다.
조금 긴장이 되었다. 엄마, 아빠, 언니는 남편을 영상통화로만 인사해 봤지 실제로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사실 나도 그 때는 미국에서의 삶이 바빠서 가족을 만난 지 3년 이나 됐던 때였다. 사위를 결혼식 4일 전에 처음 만난다니, 그것도 하와이에서. 뭔가 말도 안되는 상황인데? 실제로 처음 만나면 다들 어떻게 인사하려나, 말도 안 통하는데. 두근두근, 반갑고, 기다려졌고, 이상한 긴장감에 카페인 과다복용마냥 떨렸다.
1. 마사지 예약에 늦었다
긴장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네가 늦었다. 마사지가 이미 예약이 되어있는 상황에서 만나기로 한 시간이 늦자 나는 부모님과 남편의 만남으로 인한 긴장이 마사지 예약시간을 못 지킬 걱정에 똥줄이 타는 지경으로 바뀌었다. 아니 왜 늦는거야 발을 동동 거렸다. 우여곡적 끝에 와이키키 길거리에서 상봉에 성공.
엄마도 아빠도 3년 내에 나이가 더 눈에 띄게 보였다. 비행기에 해외에 긴장했을 것이고, 늦을까봐 걱정하면서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3년 만에 처음 보는 내 가족과 당시 피앙세는 하나도 어색하지 않게 서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남편은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밖에 못하지만 인사를 나누는데 문제는 없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는 괜히 마사지에 늦었다며 엄마아빠를 닦달해 마사지샵으로 향했다.
문제는, 하와이의 쇼핑몰들은 2-4층 으로 되어있는 경우가 많아서 샵을 찾기가 복잡했다. 가르쳐 준 주소로 갔는데 마사지샵을 찾을 수가 없었고, 나는 마음이 조급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엄마 아빠도 졸지에 같이 뛰어다니며 고생했는데, 샵 주인 분께서 2층에서 손을 흔드는 것을 발견하고 겨우 찾아갔다. 이미 예약에 늦은 상황이었고 엄마아빠도 너무 힘들게 땀을 뻘뻘 흘리셨는데, 그래도 모두 기분 좋게 대응해 주셔서 다행이었다.
2. 우리는 결혼식 때문에 바쁘다
엄마 아빠가 마사지를 받는 사이, 언니는 숙소에서 체크인을 하고, 나와 남편은 우리 숙소 체크인 후 호텔에 결혼식장을 보기로 한 예약이 있어 바로 허겁지겁 그 쪽으로 향했다. 직접 보지도 않고 예약했으니 참 겁도 없지. 도착해서 담당자를 만났고, 우리가 사용할 곳들을 여기 저기 보여주었다. 호텔은 와이키키 보다 훨씬 붐비지 않았고 생각보다 괜찮은 시설에 마음이 놓였다. 마침 그 날의 결혼식이 진행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날씨가 심상치 않았다. 우르릉 우르릉 하더니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졌다. 꽃집에서 이미 꽃을 가져와 웨딩 아치를 꾸몄고 신부는 이미 드레스를 입고 스텐바이에, 손님들도 전부 우산을 들고 모였다. 날씨가 으슬으슬 너무 추워서 옷을 여몄다.
"Oh my gosh, it's pouring. How are they going to do the ceremony outside?" (세상에, 비가 이렇게나 많이 오는데. 밖에서 결혼식 어떻게 하려고 하는 거지?)
내가 얘기했다. 우리는 바깥의 야외 식장을 나가서 둘러보려다 비가 와서 지붕 안쪽에서 바라봤다. 여기저기를 둘러보고 다시 바깥을 바라보자, 아뿔싸. 이 빗속에서 야외 결혼식을 하고 있었다. 신부는 아름다운 드레스와 머리에 메이크업까지 다 마치고 그 추운데 민소매로 비를 맞으며 입장을 하고 주례 앞에 섰다. 예쁜 꽃장식도 모두 비를 맞았다. 저 사람들도 멀리에서 결혼식 하러 온 걸까? 우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호텔을 나왔다. 세상에, 우리 결혼식때도 비가 저렇게 오면 어떡하지? 2-3화에서 언급했듯이 공영 비치공원에서 결혼식 하려고 했다가 날씨가 걱정 되어서 호텔로 바꿨는데, 정말 잘 했다 싶었다. 혹시 비가 오면 실내에서 하자 했더니 남편은 아냐, 우리 하는 날에는 날씨 좋을 거야, 걱정하지마- 했다.
3. 엄마아빠가 없어졌다
이제는 돌아 나와서 마사지가 끝난 아빠 엄마를 픽업해야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엄마+아빠+언니는 당시 와이파이 포켓 하나를 서비스 해 와서 공유하고 있었는데, 엄마 아빠가 마사지를 받으니까 와이파이는 언니가 가지고 있었다. 그 말인 즉슨, 엄마 아빠와 연락할 방법이 로밍 전화 외에는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래서 마사지 샵에 내려줄 당시 나는 끝나고 절대 아무데도 가지 말고 거기에 가만히 있으시라고 신신당부를 해 둔 참이었다.
비가 오는데, 가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와이키키 메인 도로에는 차를 댈 곳이 별로 없다. 아니 주차는 커녕 정차할 곳도 별로 없다. 남편이 차를 가지고 도는 사이 내가 내려서 마사지 샵에 갔는데, 엄마 아빠가 없었다. 아이고오오오오오오오오오오 여기 가만히 있으시라니까! 또 우릴 찾는다고 나오신 모양이었다. 나는 빠르게 나오며 주변을 스캔했으나 엄마아빠가 어디까지 갔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차에 다시 돌아와 타자 남편이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물었고, 우린 놀래서 차를 타고 주변을 뒤지며 엄마 아빠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비도 오는데! 어디까지 간 거야!!! 상황이 이렇게 되니 걱정과 화가 뒤섞여 남편과 큰 소리가 오갔다.
비도 오고 사람도 많고, 차를 댈 곳은 없어서 차를 타고 뱅글뱅글 돌았다. 다행히 엄마 아빠는 큰 길의 티파니 상점 앞에서 서 계셨고 차에 태웠다. 안도감과 함께 화가 나서 왜 가만히 있으라니까 비도 오는데 연락할 방법도 없구만 혼자 돌아다니냐고 화를 냈다. 엄마 아빠는 우물쭈물 하며 우리도 찾는다고 하고 나왔지- 했다. 화를 내고 또 금방 후회를 했다.
4. 이번에는 언니가
이제 에어비엔비로 가려는데, 하하, 이번에는 언니가 숙소에 없었다. 그 동안에 언니가 심심하니까 에어비엔비 키를 가지고 어디 돌아다니러 나간 모양이었다. 와이파이 문제인지 언니가 뭘 하는지 연락이 한참 있다가 되었다. 다들 피곤한데 숙소가 눈 앞인데 들어갈 수가 없다니. 게다가 아까 빌린 차 반납시간이 째깍째깍 몰려오고 있었고, 그게 사람을 더 불안하게 했다. 언니와 연락이 되어 엄마아빠를 숙소에 데려다 주었다. 다들 숙소가 꽤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5. 할일은 많은데 차 반납이 계속 쫓아와ㅠㅠ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 되었다. 엄마가 닭 볶음탕을 해주기로 하고 주변에 한인마트가 있어 다 같이 필요한 것을 사러갔다. 차는 반납을 하고 새로 또 빌렸던가, 아니면 시간을 연장을 했던가, 그랬던 것 같다.한인마트에서 얼린닭 밖에 안 팔기에 닭을 사러 Safeway(마트 체인)에 갔다. 간김에 와인도 사야했다.
미국 결혼식 피로연에는 다같이 스파클링 와인을 따라서 건배하는 시간이 있는데 호텔측의 ‘웨딩’이 붙은 와인은 너무 비쌌다. 마트에서 사면 10불대면 사는 싼 스파클링 와인이 웨딩프리미엄이 붙고나면 얼마나 비싸졌나면 와인을 따로 구매해서 가져왔을 때 콜키지 피를 병당 40불 정도로 청구했는데, 그게 더 저렴했을 정도. 손님들 중 와인을 잘 아시는 분들이 꽤 계셨기 때문에 그런 와인을 80불 가량 주고 제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가 좋아하는 나파의 J 와이너리 스파클링 와인을 한 케이스 구매했다. 차가 있을 때 사 두는게 나을테니까. 물론 이 와인은 한 잔만 따르는 건배용. 나머지 와인과 주류는 호텔 것을 썼다.
숙소로 돌아오는데 또 차 반납시간이 지나려고 해서 모두를 정신없이 보채서 돌아왔다. 엄마가 재료도 없이 뚝딱 만들어 준 닭볶음탕을 가지고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했다. 남편(피앙세)까지 둘러앉아 먹는 첫 식사였다. 엄마는 자꾸 닭다리를 남편 그릇에 놔줬다. 남편도 잘 먹었다. 웬 백인 남자애랑 우리 가족과 엄마가 만든 간장닭볶음을 먹고있노라니 말랑말랑한 기분이 들었다.
남편과 나는 그 날 차에서 울고불고 엄청 싸웠다. 남편은 내가 일정을 너무 촉박하게 짜서 그렇다고 하고, 나는 내가 실제로 이렇게 촉박할 줄 알았냐고 하고. 일정이 거의 시간단위로 있었는데, 하나가 밀리고 다른게 다 연쇄작용으로 밀려가면서, 엄마 아빠와 언니가 차례대로 없어지고 차 반납시간까지 촉박해서 하루 종일 계속 긴장하고 시간에 쫓기느라고 기진맥진 했기에.
정말 피곤했다. 나는 일정을 여유롭게 잡았어야 했고, 이것저것 늦는다고 짜증을 덜 냈어야 했으며, 남편은 말을 예쁘게 했어야 했다. 애초에 개인 주의인 미국에서 우리나라처럼 엄마아빠를 '모시는' 상황도 남편에게는 생경했을 것이니와, 본인도 말도 안통하는 처음 보는 처가식구들을 하루종일 실어나르느라고 어렵고 힘들었을 것이다.
그 날 다행히(?) 우리는 화해했다. 그러니까 이 글을 지금도 쓰고 있겠지만.ㅎㅎ 아직 결혼식 시작은 커녕 손님의 절반도 안 만났는데 첫날부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밤이 되어 에어비엔비 방의 창문형 에어컨의 덜덜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다음 날은 조금 더 편하겠지? 했지만, 내일은 내일의 일정이 또 있는걸?
이 글이 이틀만에 삼만뷰가 넘더니 "하와이 스몰웨딩 해보고 싶으세요? " 연재 브런치북이 메인 오늘의 브런치북 차트 10위에 올라왔어요!
하와이에서 수공업으로 결혼식 한다고 머리 쥐어뜯은 보람이 몇년이나 지나서 있네요ㅎㅎ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연재상 아직 식장에는 들어가지도 못했으니 결혼식 이야기도 많이 기대해 주세요ㅎㅎㅎ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