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하와이까지 오셨는데
둘째 날. 결혼식 3일 전.
조금 더 많은 손님들이 하나 둘 씩 도착했다. 남편과 나는 각각 도착하는 손님들과 연락을 하며 변동사항은 없는가 체크했다. 아쉽게도 남편 쪽 한 분이 부득이한 급한 사정으로 못 오신다는 연락을 받았다. 다행히 나머지는 큰 문제가 없는 듯 했다.
결혼식을 하면서 느낀 건데, 미국 사람들은 파티 여는 걸 너무 좋아한다. 결혼식이라는 커다란 파티가 있으면 그걸 빌미로 파티를 무한대로 연성해 내는 게 아닐 까 싶을 정도. 이전에 언급했다 시피 결혼식 전날의 리허설 디너나 결혼식 다음날 브런치 외에도, 약혼하면 약혼파티, 그 다음엔 브라이덜 샤워, 결혼식 전에 하는 베첼러(신랑과 남자인 친구들이나 지인)파티, 베첼러렛 파티(신부와 여자인 친구들이나 지인)가 있으니.
한국에서는 브라이덜 샤워을 호텔이나 이벤트 룸을 빌려 사진찍는게 많아진 듯 하다. 한국에서 언니 결혼식 때 한국식으로 한 번 열어줄까 해서 찾아봤었는데 데코까지 해서 꽤 가격부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한국으로 건너가서 호텔 이벤트가 되어버렸지만 여기서 보통 브라이덜 샤워는 가족 및 친척과 친구/지인이 모여 게임?도 하고 호호호호 하는 좀 더 잔잔한 홈파티다. 뭐 여기서도 돈을 쓰고싶은 사람은 성대하게 하겠지만.
반면에 베첼러/베첼러렛 파티는 보통 유흥을 즐기는 쪽으로 간다. 자기네끼리 간단하거나 클래식한 파티를 하기도 하지만 클럽을 빌려 놀거나, 스트리퍼를 부르거나, 스트립클럽에 가기도 한다. 한국 사람으로서 이 말을 들으면 "어머 미친?" 같은 소리가 나오기 십상이지만, 미국 시트콤 프렌즈에서도 보면 모니카가 본인만 베첼러렛 파티에서 스트리퍼랑 재밌게 놀았더랬어서 나중에 남편 챈들러(RIP)를 위해 스트리퍼를 불러주는 것 처럼 그렇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나와 남편도 뭘 해야 할까 생각을 해 보긴 했으나 그런 것엔 별로 감흥이 없었다. 무엇보다 하와이가 이미 정신없는데 뭘 더 더하고 싶지 않았고, 나는 파티를 한다고 하면 한국에 있는 내 가족과 친구가 빠지는 게 싫었다. 그래서 내가 제안했던 것은 바로 카타마란을 빌리는 것이었다.
1화에서도 등장했던 카타마란은, 와이키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요트다. 지금은 한국에 한강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처음 하와이에 갔을 때 친구 Y와 둘이 타 봤었다. 아마 처음 타보는 요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요트에서는 칵테일을 나누어 주었고, 우리는 그걸 마시며 밤하늘의 별과 불꽃놀이를 구경했더랬다. 마음이 말랑말랑해지며 행복이 찾아왔다. 친구와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의 바다와 하늘은 정말 마법같은 순간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할 수만 있다면 카타마란을 빌리고 싶었다. 마침 금요일은 일정에서 비어있었고, 다녀오신 분들은 아시다시피 매주 금요일 저녁에 와이키키 한 호텔에서는 불꽃놀이를 한다. 어쩌면 나를 미국으로 불러준 20대 초반의 그 마법같은 순간을, 멀리서 와 주신 손님들 전부를 태우고 근사하게 제공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미리 카타마란 회사에 연락해서 물어보니 생각보다 해 볼 만 한 가격에 차터를 할 수 있었다. 남편에게 상의했더니 기분 좋게 동의했고, 우리는 베첼러/베첼러렛 파티, 혹은 브라이덜 샤워 대신 불꽃놀이 프라임 타임의 카타마란을 전세(?) 냈다. 전세라는 말은 뭔가 거추장 스러운데, 'Charter'의 번역이 전세이니 전세인가 보다.
카타마란을 타기 전에 내 쪽 게스트가 모이는 자리를 마련하기로 했다. 엄마아빠 언니가 묵는 에어비엔비의 거실이 꽤 커서, 거기에 시간이 되시는 내 쪽 한국 게스트가 모여 내가 가져갔던 테이블 플라워용 빈병들에 젬 스티커를 붙여 꾸민다는 핑계로 간단하게 이것 저것 먹고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카타마란으로 다같이 이동하기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분들도 계셨다. 모두들 하와이까지 와 주셔서 참 감사했는데, 나 만큼 본인들도 즐겁고 설레어 보여서 다행이었다. 분명히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는데 수다는 꽤 길어졌고, 예의바르신 한국 분들은 우리 엄마에게 딸을 잘 키웠다는 칭찬을 늘어놓으셨는데 어쩌다 보니 우리 엄마의 즐거운 자랑타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나는 민망해서 도망가고 싶은 순간이 참 많았는데 손님들은 또 "결혼식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자식자랑 해 드리는 곳이다" 하며 엄마를 한껏 추켜세워 주셨다.
나의 여유로운 계획짜기는 어제에 이어 여기에서 또 조금 삐끗 했다. 나는 나름 여유롭다고 시간을 잡아놨는데, 수다가 이렇게 길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병을 꾸밀 시간이 없어 그냥 어서 가자고 했는데 손님들은 다 할 수 있다며 호다다닥 젬스티커를 붙이고 마 끈을 묶어대기 시작했다. 그래, 이 사람들, 내가 잊고 있었는데 거의 다 교육쪽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라 이런 일에는 손이 엄청나게 빨랐다. 손들이 일제히 공장같이 움직였고 그 많은 병들이 순식간에 척척 끝났다ㅋㅋㅋㅋㅋ
남편은 본인쪽 손님들을 모아서 카타마란을 타는 곳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늦을까봐 마음이 급해 내 쪽 손님들을 양처럼 몰아 배를 타는 곳에 다행히 시간 맞춰 도착했다. 오기로 한 사람들을 체크하는데, 내 친구 커플이 빠져있었다. 바로 함께 하와이를 왔던 그 친구 Y네 커플.
하필이면 데이터플랜도 안 해왔다고 해서 연락이 안됐다. 배가 떠날 시간이 거의 다 되어 가는데 안 오기에, 이리저리 연락을 해보려 동동거리다가 거의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카타마란을 탔던 같은 추억을 공유하고 있던 Y는 내가 배를 빌린다고 했을 때 굉장히 기뻐하면서 꼭 오겠다고 했었단 말이다! 너무 속상했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서 돌아봤더니, Y네 커플이 해변을 걸어오고 있었다. 대학 동아리 동기인 이 친구들은 내가 정말 힘들 때 담담하게 언제나 나를 챙겨주었던 이들. 저렇게 상냥한 짓(?)을 아무런 내색 없이 베푸는 애들이다. 미국을 오고 나서 한 번도 못 봤으니 거의 4년 만이었다. 아아, 나는 정말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마구 달려가서 부둥켜 안았다. 들어보니 만나기로 한 주소가 아마 배 타는 해변 말고 사무실 주소가 뜬 모양이었다. 갔더니 아무 것도 없었고 연락할 길도 없어 이리저리 헤매다가 에이 망했다는 느낌으로 해변이나 걸으려고 나왔다고 했다. 그러다가 만난 거다!
모두가 모였고, 카타마란을 탔다. 남편쪽 게스트 들도 많이 오셨으면 좋았으련만 절반 정도가 일정 때문에 그 다음 날 도착이셔서 못 오시는 분들이 많았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한국에서 온 내 쪽 게스트 들은 정말 신나게 놀았다. 뭘 딱히 했다기 보다는 사진도 찍고, 그물망에 앉아서 밤하늘과 폭죽놀이를 즐겼다. 비가 좀 부슬부슬 떨어지는 때도 있었는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마실 술을 가져가긴 했는데 다들 술을 거의 안 마시고도 술 마신 것 처럼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부모님들도 참 좋아하셨다.
카타마란을 타고 있는 20대의 나에게, 누군가 "너 나중에 하와이에서 결혼식 할 때 이 배 전세내서 너 손님들 태워줄거다ㅋㅋㅋ" 라고 했다면 나는 미쳤냐고 되물었을 것이다. 아냐, "오, 그랬으면 좋겠다" 라고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글을 보시는 분들께서도 "돈 지랄 하는 구만" 하고 말씀하시면 사실 할 말은 없다.
일가친척과 카타마란을 타면서, 이건 꿈인가 싶었다. 미국에 살고,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모두를 하와이로 초대하는, 상상으로만 그려왔던 즐거운 꿈. 사람 인생 참 어떻게 될 지 모르는 일이다. 막연히 너무나 비싸겠지, 나는 할 수 없겠지 했는데 오히려 모두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것 보다 훨씬 저렴했고, 그래봐야 한 두 시간이었지만 독특했고, 멀리까지 와 주신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것이 너무나 좋았고, 무엇보다 나에게 의미있었다.
짧았던 세일링이 끝나고, 한국손님들은 내 덕에 하와이에서 전세보트까지 타 봤다며 기분좋게 숙소로 항했다. 나와 남편은 배가 고파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웃긴건, 이 맛있는 저녁 사진은 있는데 뭘 정신없이 할 때에는 내가 뇌 용량이 없었는지 사진이 하나도 없다는 점이다. 다 같이 모여서 즐겁게 수다떨고, 병 꾸미고 하는 사진은 정말 한 장도 없다. 보트 탄 사진은 흔들리는 깜깜한 사진들 뿐이다. 에이, 사진 좀 많이 찍어둘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