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에서 테킬라까지.
아이고 결혼식이 드디어 내일로 다가왔다. 이 날이 오긴 오는 구나, 싶었다.
엄마 아빠와 지낸 몽글몽글한 하루를 뒤로하고, 아침에는 언니와 나와서 좀 걸어다니며 여기도 맛있겠고, 저기도 맛있겠고를 연발했다. 언니는 나에게 푸념을 시작했는데, 에어비엔비에 주방이 있어서 못쓰겠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고 했더니, 첫 날에 구매한 조미료와 식재료가 남았고 주방이 꽤 괜찮다 보니까 나가서 사먹질 않고 언니는 엄마 아빠에게 갇혀서 아침 저녁으로 김치찌개와 밥을 먹고 있었던 것이었다ㅋㅋㅋㅋㅋㅋ 나가서 먹자고 해도 아이 이거 남았는데 먹어야지 하면서 하와이까지 와서 김치찌개만 먹고 있다고 울상을 썼다. 그럼 그렇지, 우리 엄마 아빠가 어딜 가시나. 나는 언니에게 그런 줄은 몰랐다고 하고 언니 편을 들어주기로 약속했다.
방으로 돌아가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짐을 다시 싸면서 아 나 여기서 이것도 먹어봤는데 그것도 맛있고 어디에 뭐도 맛있고 이거 저거 먹으러 가자고 자꾸 꼬셨다. 엄마는 첫날에 언니가 맛집리스트에서 보고 온 버거 집에 갔는데 비싸기만 하고 너무 짜서 못먹겠더라- 하는 걸 보니, 그 이후로 썩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아마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부모님과 함께 여행할 때 받아야 할 금지 서약서" 같은게 딱 맞는데, 예를 들어
"이 돈주고 이걸 여기와서 먹냐" 금지
"이걸 왜 이렇게 줄 서서 먹냐" 금지
"집에서 김치찌개에 밥 해 먹는게 낫겠다" 금지
등등 이었던 것 같다ㅋㅋㅋㅋㅋㅋㅋ 이럴 때는 엄마 아빠를 자꾸 데리고 다니면서 꼬셔야 한다. 여기는 원래 이런 거라고 자꾸 맛있고 재밌는 걸 시켜드려야 저런 말이 쏙 들어간다. 저 때는 엄마 아빠도 미국에 와 본지 2 번째 밖에 안되었으니 아직은 조금 어색했을 법 하다.
나는 엄마 아빠를 살살 꼬셔서 아 저기 내가 옛날에 하와이 대학생프로그램 왔을때 먹었던 우동집 있는데 엄청 싸고 맛도 괜찮더라- 하며 데리고 나오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엄마가 원래 우동을 좋아하기도 했고, 엄마아빠가 화 내지 않을 만큼 가격이 나쁘지 않기도 했으며, 거기 체인이지만 나는 꽤 맛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엄마 아빠도 결국에는 좋아했다. 언니는 내가 가자 그럴 떄는 안 가더니 하고 조금 뾰루퉁 했다. 아마 나는 이미 미국에 살고 먹어 본 애니까 믿었던 건지 어쩐 건지 잘 모르겠지만, 그 이후로 하와이 지내는 동안 엄마아빠도 숙소에서 김치찌개를 좀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들렸으니 어쨌든간 언니도 기뻐했다.
그날의 큰 일정은 두 가지. 하나는 결혼식 세레모니 리허설이고 또 하나는 저녁에 있을 리허설 디너였다.
일단 짐과 필요한 걸 다 챙겨서 리허설을 하러 카할라 리조트로 향했다. 리허설에 참여하는 사람은 결혼식 세레모니 자체에 입장을 하는 사람들인데, 나와 남편 (당연히), 양가 부모님(과 여동생은 그냥 왔다), 남편 들러리 2, 내 들러리 2, 화동과 링베러를 위한 오페어 패밀리, 당일 도와줄 플래너가 모였다.
생각해 보니 양가 가족이 다 같은 자리에서는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남편쪽 아버지는 카타마란 파티 (4화, 브라이덜샤워 대신 보트를 전세냈다)를 할 때 만났지만, 남편 어머니와 여동생은 처음이었다. 그냥 한국인 상견례를 해도 떨릴텐데, 냅다 내일 결혼식을 한다고 모인 부모님들은 어떤 기분일까 궁금했다. 뭐, 사위도 결혼식 4일 전에 처음 만났는데, 괜찮겠지?
날씨가 좋았다. 모두가 파란 하늘 아래의 반짝거리눈 바다가 보이는 푸른 잔디에 모였다. 양가 부모님은 짐짓 세상에서 제일 친절한 사람인 척 하는 얼굴을 착용하시고는 인사를 나눴다. 다행인건지(?) 두 집 사이에는 언어장벽이 있었기 때문에 서로 체면 치례만 하시고 좋은 인상을 남기며 적당히 인사를 마쳤다. 언어장벽이란 게 그렇게까지 나쁘지 않다. 말이라는 게 사람을 엮기도 하지만 그 연을 꺾기도 한다. 어차피 두 댁은 서로 마주칠 일이 거의 없는데, 서로 웃는 얼굴로 좋은 인상을 남기고 딱 거기서 끝나는게 좋은게 좋은 것 아니겠는가.
모든 이들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플래너가 어떻게 될 건지 브리핑을 했다. 의자는 어디 있을 거고, 각자 사람들은 어디에 있다가 어디로 나올 거고. 나는 열심히 통역을 하다가 플래너의 명령으로 따로 떨어져 나왔다. 신부는 저어 멀리 딴 데 혼자있다가 걸어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나 없는 동안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친구가 아마 통역을 했을 것이다.
멀리 떨어져 나와서 내 순서를 대기하며 저쪽을 보는데, 참 신기했다. 저들은 나와 남편이 아니라면 평생 서로 존재도 모르고 살았을 사람들이다. 나와 남편을 축하해 주겠다고 결혼식 뿐 아니라 리허설까지 모여서 저렇게 복작복작 뭘 열심히 재 주고 있는 게 비현실 적이기까지 했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사각사각 소리가 나는 것 같았고, 나지막한 바람에 야자나무 잎사귀가 흩날렸다. 바다가 빛나는 만큼 고마운 사람들도 빛이났다.
리허설을 무사히 마치고, 나는 가지고 온 소품들을 조립하러 실내로 들어갔다. 혼자 하려고 했는데 내 들러리 두 명이 따라와서 도와줬다. 레몬에 이름표를 꽂고, 가지고 온 병이며 오만가지를 다 꺼내어 늘어놓았다. 플래너에게 설명도 했다. 그녀는 내가 가지고 온 어마어마한 양의 소품과 빈 병에 깜짝 놀랐다... 후후.. 그럴테지.. 다시 한 번 어떻게 할 지 계획을 맞췄다. 플래너가 내일 추가로 노란색 꽃을 사 가지고 올 거고, 내가 준비하는 동안 테이블세팅과 손님맏이 방명록 테이블 세팅, 웨딩아일에 걸 꽃병과 액자 세팅까지 마치기로 했다. 준비는 완벽했다. 내가 계획하고 디자인 한 결혼식이지만 나는 막상 결혼식을 해야하니, 플래너가 계획을 완벽히 숙지하고 있어야 했다.
정신없이 리허설 디너 시간이 되었다. 안내를 받아 사람들이 한쪽에 마련된 룸으로 모였다. 우리가 아주 마음에 들어했던, 원래는 피로연으로 쓰고 싶었던 레스토랑! 3면으로 야경이 휘둘러싸 아름다웠다. 시어머니는 꽃까지 주문해서 테이블 센터피스까지 장식을 해 둔 상태였다. 저녁을 먹기 전 호스트인 남편의 부모님이 한 마디 씩을 하셨고 모두가 어울리며 저녁식사를 했다.
메뉴는 16oz 스테이크. 이게 얼마나 커다란지 감이 안 오신다면, 흔히 우리가 한국에서 레스토랑 갔을 때 나오는 필레미뇽 스테이크는 6oz 정도다. 커 봐야 8-12oz. 커다란 스테이크는 모두에게 웃음을 안겼고, 소수만이 그걸 다 먹는 기염을 토했다.
센터피스의 꽃은 어차피 버려야 하는 거라서 시어머니가 손님들에게 억지로 쥐어줬다. 내 쪽 손님들은 아니 이걸 어쩌지 하면서도 그냥 호텔에서 예쁘게 보겠다며 예의상 받아갔다. 나중에 알았지만 시어머니가 쓰신 꽃 값이 내가 결혼식에서 쓴 꽃 값보다 더 비쌌단다 (재활용 만세!).
양쪽 일가친척 및 게스트가 모두 모였기 때문에, 이리 저리 인사를 다니고 이야기를 나누느라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사진도 하나도 없다. 늦게까지 식사를 하고 떠드느라고 진이 다 빠질 무렵, 마침내 리허설 디너가 끝이 났다. 빨리 가서 자고 싶었다.
같은 호텔에서 묵는 시어머니와 함께 우버를 타고 호텔로 돌아갔다. 결혼식을 할 호텔 혹은 그 근처에 내 손님들이 많이 묵고 있었는데, 남편의 친구무리도 마찬가지여서 로비에 모였다. 너무 피곤해서 로비 바에서 인사만 하고 올라 갈 요량이었는데, 남편 동생이 굉장히 신이 난 상태로 잠깐 방으로 올라갔다 오겠다며 스쳐지나갔다. 막상 바 근처에서 친구들을 마주치자 복잡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남편 동생이 테킬라 샷을 인원수대로 주문을 넣고 잠깐 방에 갔다는 것이다.
남편과 나는 뜨악 해서 (?? 제정신 ??) 하는 얼굴로 친구들을 바라봤다. 워낙 매일 매일 신경쓸 일이 너무 많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다 보니, 나는 이 시점에서 이게 결혼식 여행인지 행군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 돈을 두껍게 펴바른 결혼식이 내일인데 여기서 테킬라를 퍼마시고 있을 처지가 못 된단 말이다.
그 친구들도 아.. 술 마시기 싫은데.. 그것도.. 테킬라 샷을??? 이러더니 그 중 언제나 웃는 낯의 긍정왕 친구가 벌떡 일어나 "나 너무 피곤해서 술 마시기 싫어. 너네도 결혼식이 내일인데.. 내가 바 가서 술 다 취소하고 옴" 하더니 척척척 바 쪽으로 가서 취소를 하고 왔다ㅋㅋㅋ 그 친구의 빠른 추진력에 어찌나 감사하던지.
여동생은 삼촌과 어른들 무리와 함께 전세기를 타고 다른 섬에서 며칠을 보내다가, 방금 넘어왔는데, 그 동안 계속 엄마/할아버지 뻘 친척들과만 있으며 너무 지루했다가 자기도 잘 아는 남편 친구들을 보니 너무 신나서 파티를 즐기고 싶었던 듯 했다.
친구들은 여동생이 돌아오기 전에 내일 결혼식에서 보자며 다들 자기 숙소로 돌아갔다. 우리도 우리 방으로 돌아왔다. 안타깝지만 이건 내 결혼식이라서 어쩔 수 없단다. 나는 자야겠는걸.
내일은 진짜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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