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갑자기 소리를 빽 질렀다
이 날은 결혼식 일정 유일하게 행사가 잡히지 않은 날. 아직도 우리는 여기저기를 분주히 다니며 결혼식 준비를 하기에 바빴다. 일단 검색해서 찾은 현지의 포토그래퍼를 만나 대충 어떻게 일정이 진행될지, 어떤 식으로 사진을 찍을 지 얘기를 나눴다. 결혼식 시작 전 준비부터 피로연이 끝나는 9시쯤 까지로 잡았고, 적당히 자연스럽게 찍어달라고 했다 (나중에 이게 어떤 결과를 낳을 지 알지 못했다..). 한국에는 이 사람들 먹을 간식도 준비하고 그런다는데 미국에는 딱히 그런게 있는 거 같진 않았다. 이 사람들 식사를 어떻게 했더라 기억이 잘 나질 않는 거 보니 적당히 샌드위치 같은 걸 먹였거나 신경을 별로 쓰지 않았나보다.
다음에는 초를 넣을 등과 불붙이는 작은 토치도 사야했다. 엥? 토치와 등이 결혼식에 왜 필요해?
세레모니라고 부르는 미국 결혼식은 한국 결혼식과 비슷한 듯 싶어도 작은 차이가 있다. 바로 "부모님"의 비중차이. 미국의 흔한 결혼식 세레모니에는 양가 부모님들이 돈을 내는 것, 신부와 함께 입장하는 것 외에 식 자체에 포함되는 요소가 잘 없다. 혼주석도 따로 없다. 잘 생각해 보라, 당신의 결혼식에 혼주석이 따로 없고 부모님도 아무데나 손님 자리에 앉는다면? 한국인이라면 뭔가 이상하다. K-자식들은 이 상황이 영 불편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식으로 부모님들을 포함시키고 싶었다. 앞쪽에 양가 혼주석을 따로 마련했고, 어머니들이 초에 불을 붙이는 화촉점화를 하기로 했다. 그렇다. 화촉점화는 한국에서 대부분 예식장에 다 포함이 되어 있으므로 따로 뭘 준비할 필요가 없다. 여기선 하고 싶으면 다 내가 준비해야 한다. 초도 사야되고, 초를 꽂을 예쁜 등도 사야하고, 불을 붙일 토치도 사야했다. 플래너나 주례와도 다 얘기하고 이게 뭔지 처음부터 설명해줘야 했다.
와이키키 내에 가구 및 인테리어 잡화점을 전부 뒤졌다. 와이키키 자체가 관광지라 이런 가게가 딱히 많지는 않았고, 이거다! 하고 마음에 드는 것도 없었다. 일단 하와이 해변은 바람이 많이 불기 때문에 등은 바람을 약간 막아줄 구조물이 필요했다. 너무 크거나 무겁거나, 옮길 때 불안하거나 해도 안 됐다. 한 번 쓸 건데 너무 비싼 것도 싫었다.
결국 적당한 것을 찾은 곳은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간 Ross. Ross는 미국 내에 꽤 유명한 대형 할인 체인점인데, 옷-가방-생활잡화 까지 여러가지를 떨이(?)로 판다. 물건이 있으면 있고 없으면 없는 곳.
적당하게 바람을 막아주고, 안에도 잘 보이며, 손잡이도 달렸다. 쇠 재질인데 손잡이는 또 끈이라 의외로 해변 웨딩에도 나쁘지 않게 어울렸다. 가격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로스 특성상 아마 하나에 20불 안쪽이 아니었을까 싶다. 초도 있어서 거기서 다 때려 담았다. 우리는 싸게 조건을 만족하는 걸 찾아서 기분이 좋았고, 신랑 측 들러리에게 입장하면서 들려 보내면 되겠다고 손뼉을 짝짝 쳤다.
나는 쓰고 버리고(?) 올 생각을 했는데, 결혼식이 끝나고 남편이 버릴 수 없다고 우겨서 사실 하와이에서 떠나기 전에 우리 집으로 택배를 보냈다. 그 택배비가 본 물품 구매비용 보다 더 나왔던 건 기억이 난다. 이후에 이사를 두 번이나 다니면서도 결혼식 때 쓴 거라 차마 버리지 못하고 계속 들고다녀서 아직도 집 창고에 있다. 지금은 녹이 많이 슬었는데, 저 때는 반짝반짝 했구나.
이리저리 할 일을 마감한 후에 도착한 남편 친구들을 만나 저녁을 먹고 친구의 생일축하를 했다. 입을 들러리 소품도 전했다. 거기서 남편과 나는 각자의 가족에게 향했다. 엄마 아빠가 마침 근처에 있어서 나와서 바로 만났다.
이 날은 내가 제안해서 각자 자기 가족들과 함께 하루만 묵기로 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미국에는 결혼식 전에는 커플이 따로 지내다가 결혼식날 입장할 때 처음 봐야한다는 오래된 믿음 같은 게 있다. 물론 꼭 지켜야한다거나 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커플들은 자기 마음대로 한다. 무엇보다 이게 좋은 핑계였던 이유가, 나는 결혼식 전에 마지막으로 엄마 아빠 언니와 함께 가족끼리 하룻밤을 지내고 싶었다. 네일아트가 취미인 우리 언니가 웨딩 네일도 해 주기로 했다. 그 동안에 내 싱글 친구들이 우리가 묵었던 에어이벤비에 묵을 수 있으니, 일석 3조였다. 시아버지가 먼저 도착해 우리가 결혼식 할 리조트에 이미 묵고 있었으므로, 남편은 거기서 자기로 했다. 그 다음 날 어차피 우리도 리조트에 체크인 해야 했으니까, 남편이 필요한 짐도 다 들고 갔다.
그 날 마침 와이키키에서 파머스마켓이 열렸다. 어쩜, 또 우리 왔다고 이런 것도 열리냐고, 신이 나서 엄빠언과 함께 거리를 구경했다. 반짝반짝 불이 켜져 있는 부스에, 음악에, 푸드트럭까지 축제 느낌이 났다. 가판대를 구경하다가 깔끔한 귀걸이를 발견했는데, 결혼식 때 쓰면 딱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귀를 뚫으면 그냥 바로 막혀버려서 결혼식 때만 쓰려고 귀를 또 뚫어 왔었더랬다). 패물도 아니고, 그냥 내가 마음에 드는 걸로 하는 결혼식이 좋아 사려고 하는 찰나에 엄마가 우겨서 사줬다. 본인이 사주고 싶다고 우기는 엄마에게 그럼 고맙게 쓰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푸드트럭에서 새우와 갈릭누들을 사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입맛에 잘 맞았는지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잘 먹었다. 모두 그 양에 놀라긴 했지만.
저녁이 되어서 가족들이 묵는 에어비엔비로 돌아왔다. 시간이 늦는 줄 모르고 뭐라고 수다를 떨고, 언니는 내 손톱을 칠하기 시작했다. 막 떠들고 있는데, 갑자기 방 침대에 누워있던 아빠가 씨끄럽다고 소리를 꽥 질렀다. 갑자기? 왜? 하고 봤더니 자기는 속이 너무 안 좋은데 시끄럽다고 화를 냈고, 곧 화장실로 뛰어가 토했다. 놀라서 물어보니 속이 안 좋은 지 몇 시간나 되었는데, 걱정할까봐 말도 못하고 끙끙 거리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이, 나는 그냥 침대에서 쉬는 줄 알았지, 속이 안 좋은 줄은 몰랐네. 아빠를 잘 다독여서 증상이 어떤지 물었는데, 보아하니 아까 먹은 푸드트럭 저녁에 체한 듯 싶었다.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빠르게 움직였다. 12시에 와이키키에 위치한 ABC마트 (신발가게 아니고 편의점? 같은 곳임)는 다 문을 닫기 때문에.
까스활명수가 없는 미국에서는 '펩토비즈모' 라고 하는 더럽게 맛 없는 분홍색 알약을 대신 먹는다. 급히 신발을 신고 언니와 뛰어 나가면서 그걸 타이레놀과 함께 먹어도 되는지 남편에게 전화해 의사인 시아버지에게 물었다. 먹어도 된다고 했고, 다행히 아직 마트가 문을 열어서 펩토비즈모와 타이레놀을 사가지고 돌아왔다. 몇 번 토하고 배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쓰고 있는 아빠에게 약을 먹였다. 민망할 아빠를 위해 웃으며 달랬다.
"에이,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알지요. 침대에 그냥 누워있는 줄 알지 내가 말을 안하면 어떻게 안대? 미리 말했으면 나가서 약을 사왔을 텐데 12시 가까이 다 될때 까지 혼자 참고 있어서 약도 못 사올 뻔 했네. 아플 수도 있지, 다음엔 그냥 아프다구 말 해줘요. 그래야 해결책을 찾지."
아빠는 멋쩍게 "괜찮아 질 줄 알았지.." 했다. 다행히 약을 먹고 아빠는 곧 괜찮아졌고 주무셨다.
나는 밤새 언니와 잠을 자는 둥 마는 둥 했다. 바로 네일 때문에.
언니는 네일을 발라주며 잘 때 손도 해달처럼 자고 하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내가 네일을 하러 다니지 않아서 잘 몰랐는데, 이거 뭐 기계 없이는 몇 번을 바르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뭘 붙이면 풀이 마르기도 기다리는 동안에 손을 꽁꽁 묶어놔야 하는 아주 고된 작업이었다! 언니는 움직이지 말라고 혼내면서도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다. 비즈도 하나 하나 붙여줬다.히히, 결혼식에 언니가 해 준 네일이라니. 이보다 더 특별할 수가 있을까! 네일을 받고 여기 저기 보이는 데 마다 가서 언니가 해 줬다고 자랑했다. 언니 기분 좋으라고 더 그러고 다녔지만, 사실 내가 제일 고맙고 뿌듯했다.
그 날 저녁에 답례품으로 드릴 쿠키상자에 엄빠가 한국에서 가져온 전통문양 책갈피를 꽂아서 포장하고 정산(?)을 했다. 사실 그 쿠키값을 안 받아도 됐지만, 양가 부모님이 맡기로 한 거니 절차상(?) 받았다. 그리고 엄마가 와서 봉투를 하나 더 건넸다. 빳빳한 새 달러로 받아온 2천불이 조금 넘는 현금.
"딸내미 결혼식 할 때 도와준 것도 없고, 보태준 것도 없는데, 언니랑 같이 했어. 보태서 필요한 데 써."
윽.
고마웠다. 위험하게 현금을 이만큼이나 들고 왔냐고 괜히 멋쩍게 타박을 했다. 아무 것도 안 받을 거라고 못박아놨기 때문에 생각도 못했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족이 생각나는 순간이 많았다. 나는 그냥 오늘 만이라도 같이 놀면서 준비하는 것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도, 아빠도, 언니도 그랬었나보다. 도와주고, 챙겨주고 싶었나보다. 딸래미 주겠다고 새 지폐로 받아서 저걸 들고다녔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찌르르 떨렸다. 미안하고, 고맙고, 뭉클했다. 그래서 받았다. 툴툴맞게, 고맙다고 했다.
정신이 없었고 나는 손을 꽁꽁 묶인(?) 채 소파에서 잤지만, 좋았다. 아주아주 오랜만에, 엄마와 아빠와 언니와 같이 하룻밤을 보내면서 사랑을 채웠다. 미국에 살게 되어서 평소에는 너무너무 멀지만,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주는 가족이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