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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an 18. 2024

정말로 한다, 하와이에서 결혼식.

그것도 국제결혼을.

미국에는 Wedding vow라는게 있다. 결혼식에 서로에게 하는 사랑의 맹세라고 하면 되겠다. 사랑의 맹세라니. 듣기만 해도 손발이 오그라들어 어떻게 써야 할 지 모르겠더라. 앞서 결혼한 친구에게 물었더니 구글링을 해 보란다. 그래서 검색을 해 봤다.


아우씨. 직접 검색을 해 보시기 바란다. 뭐랄까, 2000년대의 전쟁같은 사랑의 발라드 가사를 총 집합해 놓은 느낌이랄까. "내 목숨을 다 바쳐 너를 영원히 사랑해" 라든지, "정녕 상상도 못해 본 사랑으로 너는 나를 완성해" 라든지. "신이 너와 나를 맺어주었고 우리는 운명이야" 라든지. 나는 곧 검색을 마치고 그냥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쓰기로 했다. 게스트를 위해서 한국말로도 쓰려다가, 에이. 이건 서로에게 써 주는 말이니, 그냥 영어로만 하기로 했다.





호텔에서 결혼식 한다고 우리 방은 업그레이드를 해 줘서 꼭대기 방을 받았다. 아침의 눈부신 햇살과 바다가 기억이 난다.



오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솔직히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피로연 및 결혼식 장소에 가서 둘러보고, 음향장비도 왔다길래 마이크 테스트도 해보고 왔다. 플래너와 만나서 추가로 사 온 장식용 꽃도 보고 그랬던 것 같다. 이 쯤에는 큰 흐름 말고는 디테일에는 크게 신경 쓸 겨를도 없었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각자 맡은 걸 알아서 잘 하겠지.




결혼식을 몇 시간 남기고 꽃이 도착했다.


나와 신부 들러리 부케 2, 신랑 부토니에, 양가 아버님 부토니에 2. 양가 어머님 꽃 손목장식 2, 그리고 내가 쓸 화관. 나머지는 아마 결혼식장 꾸미러 바로 보내졌을 것이다.


고용한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도착했고 우리 방으로 와서 남편과 나의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았다. 보니까 사람들은 돈내고 미리 받아보는 것 같기도 했는데 나는 하와이에 사는 게 아니니 대충 후기가 좋은 사람을 골랐었다. 한국에서는 신부화장 하면 아이돌 처럼 예쁘게 만들어 준다는데, 나는 이 사람이 미국식으로 교포 화장만 안 해 놓고, 화장과 헤어가 중간에 무너지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부탁했다. 최대한 자연스럽게 해 달라고.


이 분은 굉장히 빨랐다. 슈슈슈슉 헤어와 메이크업이 순식간에 끝났다. 화환도 얹고 고정했다. 드라마틱하게 예뻐진 것 같지는 않았지만 요상하게 만들어놓지도 않았기 때문에 순순히 마음에 들었다. 원래는 신랑신부 외에도 웨딩파티인 들러리들이나 부모님과 가족도 메이크업을 같이 하는 것 같았는데, 그럼 준비할 때 부터 너무 북벅북적 한 게 싫고 일이 커져서 안했다. 다만 한 명 더 부탁한 것은 귀여운 화동 소녀. 오페어 하느라고 1살 반 부터 봐 온 나의 작은 어린이는 내 방으로 올라와서 조금 쭈뼛쭈뼛하며 메이크업과 헤어를 받았다. 나보다 더 설레어하는 그 웃음은 숨길 수 없었다. 히히. 귀여워라.



참, 남편은 이미 우리 방에 없은 지 좀 됐다. 먼저 머리를 하고 나갔던가 그랬던 것 같다. 앞서 말했다시피 식장에 들어설 때 까지 신부를 보면 안 되니까. 웨딩드레스까지 입고 준비를 마쳤다. 엄마도, 언니도 모두 준비가 되었다. 곧 1층에서 불러서 내려갔다.



1층에 내려가면 나선형으로 떨어지는 계단 구간이 있는데, 거기서 신부가 내려오면 신랑이 처음 보고 '어머 너무아름다워' 컨셉의 사진을 찍는다. 거기서 모든 들러리도 만난다. 신랑측 들러리와 링베러(반지를 나르는 아이) 복장이 너무 귀여웠다.

나중에 보니까 자기들끼리 귀여운 사진도 많이 찍었더라. 저 귀여운 양말은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서 돌아다니다가 너무 귀여워서 단박에 구매했었더랬다. 다 큰 청년들에게 멜빵에 노란 보타이에 노랑 양말까지 신어달라고 했는데 군말 않고 따라준 두 장정에게 감사하다.



자, 이제 간다.


사실 나는 그 전에는 뭐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한국은 신부대기실에서 앉아서 손님들 맞이하고 사진찍고 할 것도 많고 바쁜데, 미국에서는 도와주는 들러리나 가족 외에는 등장 전까지 손님 전부를 만날 일이 잘 없다. 나는 말해 준 구석에 혼자 계속 숨어있는데 밖엔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했다.


가만히 숨어있다가 플래너가 시키는 대로 나왔다. 저 멀리 떨어진 건물 뒤에서 보는데, 사람들이 다같이 너무나 예쁜 식장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 말이 맞았다. 비는 오지 않았고, 하늘도, 햇살도, 바다도, 잔디도, 구름까지도 완벽했다. 내가 원한 그대로. 쨍하고 노란 포인트가 너무나 귀엽고 예쁜 곳.



저 멀리까지 거리가 꽤 됐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걸 보는데 울컥했다. 등장도 안 했는데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긴 드레스 레이스를 밟지 않고 뒤꿈치를 들고 걷는데도 하이힐 뒷 굽이 잔디밭에 뽕뽕 구멍을 뚫으며 잔디밭을 혼자 걸어서 등장했다. 도착해서는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입장했다.


어머님들께서 화촉점화도 하시고, 주례가 뭐라고 뭐라고 하며 식이 진행되었다. 사람들이 다 나만쳐다보고 있는데 하이힐 굽은 자꾸 잔디밭에 빠지고, 사진에 두 턱으로 나올지 걱정하면서 입에 경련이 나게 웃었다.


이제 Wedding vow를 읽을 시간이 왔다.


I googled wedding vow examples, most of them pedged 'undying, pure, forever love until the end of time'. You know that I dont agree with these empty promises about everlasting love. Marriage does not complete undying love automatically. Instead, I am so proud of you and me, here together with the real love made out of our trust and adoptations, overcoming our national, cultural and language differences. I promise you that I will be there for you to share all the happiness, obstacles, suprises and loves that we will face together, for many more days. I am excited to learn and explore the world with you.
웨딩바우 예시를 검색해봤어. 전부 '시간이 끝나는 날 까지의 순수하고, 영원하고, 바래지 않는 사랑'을 선서하는 말이더라. 너, 내가 그런 영원한 사랑이라는 텅 빈 약속따위를 믿지 않는 거 알잖아. 결혼은 영원한 사랑을 자동적으로 완성하지 않아. 대신에, 나는 너와 내가 자랑스러워. 우리는 국적과, 문화와, 언어가 다름을 극복하고, 믿음과 서로에 대한 적응으로 만든 진짜 사랑으로 여기에 있잖아. 앞으로 많은 날들을, 우리가 함께 할 모든 행복과, 방해물과, 놀라움과, 사랑을 함께하기 위해 항상 여기에 있을게. 앞으로 세상을 함께 배우고 모험할 미래가 정말 기대돼.


첫 두 줄 쯤을 읽었을 때 손님들은 다들 웃었다. 웨딩바우를 다 읽자, 남편은 잉잉 하고 조금 울었다. 옆에 있던 사람이 티슈를 남편에게 건네고 나에게도 권했는데, 나는 눈물이 안 나서 괜찮다고 하자 손님들도 웃고 남편도 눈물을 닦다 말고 웃었다.


반지를 교환하고, 대답할 거 다 하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했다. 이런 것도 미국결혼식에는 없는 내용이다. 혼주석에 앉아있는 양가의 부모님에게 각각 인사를 했고, 남편에게는 보통 절을 한다고 미리 알려줘서 절도 잘 했다. 엄마 아빠는 나 보다도 노랑 양말 신고 뚤레뚤레 절을 하는 꼬마 신랑 같은 외국인 남편을 더 기특하게 쳐다봤다. 뭐, 그건 내 쪽 손님들이 전부 그러셨던 것 같다. 이 장면 사진이 엄청 잘 나왔다. 엄마아빠의 행복한 표정이 특히.



그리고 결혼식은 끝났다. 박수를 받으며 식장을 나왔다.








화촉점화와 혼주석, 그리고 양가 부모님께 인사는 미국쪽 손님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다.  "앞으로의 미래에 불을 밝힌다"는 의미와, "상대방을 잘 키워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듣고 세상에 그런 너무 아름다운 의미라니 하면서 굉장히 기뻐하셨다. 노란 저고리의 엄마 한복도 미국 분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너무 아름답다며. 엄마가 한복을 정말 예쁜 걸 해 오시긴 했다 (내 거는 마음에 안 드는 걸 보내주고 본인 건 저렇게 예쁜 걸..ㅋㅋㅋㅋㅋㅋㅋㅋ) 한국적인 것을 이질감 없이 정말 잘 녹여내었다고 한국 손님들께 칭찬도 많이 받았다.




이제 밥먹으러 가면 되지 않냐고? 아이, 그렇게 쉽지 않다. 결혼식은 9시까진데 이제 막 6시나 될락말락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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