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영역이 아니올시다
"찰칵", "찰칵"
작은 결혼식의 장점은 사진에도 있다고 본다. 손님 전부가 40명도 안 되다 보니 손님을 모두 모아서도 사진 찍을 수 있고, 개개인과도 다 따로 찍을 수 있다. 나는 사진에 그렇게 큰 의미를 두지 않는 편이지만, 그래도 여기서는 하나하나 가능 한 모든 조합으로 따로따로 다 찍었다. 내 쪽 친구&지인 분들이 말을 아주 잘 듣고 노랑이나 회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와 주셔서 사진이 정말 귀엽게 잘 나왔다.
부케는 곧 결혼을 하기로 한 남편의 친구가 받기로 했다. 차림새 상 그 커플-사람1, 사람 2와 내 친구 한 명이 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구두를 벗고 맨발로 잔디에 서서 뒤로 부케를 던졌는데, 미리 받기로 한 남편 친구 말고 그 남자친구가 중간에서 펄쩍 뛰더니 부케를 인터셉트했다. 너무 완벽하게 잡아채서 모두가 깔깔 웃었다. 나중에 사진을 보니, 내가 맨발로 꽃을 들고 장난기 있게 던지려고 하는 장면과 그 이가 공중에서 낚아채는 장면이 완벽하게 잡혔더랬다. 물론 부케는 바로 반납했다ㅋㅋㅋㅋ 어차피 하와이라 못 가져가고 나중에 리셉션피로연 테이블 꾸미는 용으로 재사용 해야 했으므로..ㅋㅋㅋ
(테이블 데코레이션, 셋업, 행사 단계의 디테일, 소품, 계획 및 준비는 6화 '하와이 가내 수공업 스몰웨딩' 편과 7화 '그 돈이면 TV를 사서 버리고 오겠다' 에서 자세히 보실 수 있다)
사진을 찍는 동안 손님들은 자유롭게 주변을 둘러보거나 바에서 술을 마셨고, 이 때를 위해 고용한 캔디아트 카트에서 커스텀 메이드 캔디 만드는 것도 구경했다. 메뉴가 따로 안 써 있는 바가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들을 위해 한국어로 가능한 메뉴를 만들어 써 놨다. 바에는 와인, 맥주는 기본이고 하드 알코올과 여러가지 칵테일도 주문 가능하다. 대부분 손님들은 하와이안 칵테일을 여러 잔 즐긴 듯 했다. 손님들에게 술은 무료에 무제한이다. 돈은 우리가 나중에 낸다.
퍼즐로 만들어 온 방명록에도 글을 남겨주었다. 방명록을 쓸 테이블에는 플래너가 나와 남편의 어렸을 적 사진(버진로드 양쪽을 꾸몄던 것 재배치), 집에서 가지고 간 파인애플 모양 조명, 그리고 빈병 과 꽃으로 꾸미고, 그 앞에 가져간 사진퍼즐과 2개국어로 쓴 안내문을 늘어놓았다. 아직 글을 작게 쓰는 데에는 크게 익숙하지 않은 나의 화동과 링베러 어린이들은 그림을 그려주었다.
한참 피카츄에 꽂혀 있을 때라 열심히 그려준 피카츄와 고양이. 아유 귀여워.
저 퍼즐은 양면이 투명한 액자에 넣어 지금도 거실에 전시되어 있다. 일반적인 그냥 방명록은 다시 펴 볼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 뻔 하니,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사진을 찍는 동안 부슬부슬 안개비가 조금씩 내렸다. 하늘은 쨍 하니 막 춥거나 불편한 정도는 아니어서 계속 사진을 찍었는데, 갑자기 누군가 소리쳤다.
"무지개다!"
진짜다.
무슨 동화에서나 볼 법한 무지개가, 그것도 완벽하게 우리가 하진 찍는 뒷배경으로 떴다. 사진을 함께 찍던 친구가, 무슨 이렇게 완벽하게 하와이 해변 웨딩에서 무지개 까지 뜰 일이냐며 기뻐했다. 흐엉, 감사해라. 결혼식에는 그 무엇도 공짜가 없는데, 무지개를 무료 옵션으로 달아주다니!
손님들과 사진찍고, 남편과 단 둘이 몇 장 더 찍고 난 뒤에 우리는 한복으로 갈아입으러 들어갔다. 이러는 사이 플래너는 내 꽃과 결혼식 아치의 꽃을 빼어 약속한 대로 줄 조명과 빈병을 이용해 손님 식사 테이블 센터피스 장식을 했다. 미리 만들어 간 자리배치도 대로 개인 식사메뉴, 레몬에 꽂은 네임태그도 놨다. 그동안의 계획이 착착 현실이 되는 순간이다.
한복으로 갈아입는 것은 꼭 하고 싶었다. 엄마에게 미리 부탁해서 받아 놓은 한복인데, 나 없이 엄마가 골라서 보내다 보니 내 건 저고리 사이즈가 잘 안 맞았고 팔 부분이 파스텔 톤이지만 소매부분이 웬 색동 디자인이라서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별 수 있나, 샌프란까지 소포로 보낸 건데 마음에 안든다고 다시 보낼 수도 없고.. 그래서 그냥 입었다ㅋㅋㅋㅋㅋ
엄마는 한복 저고리를 하나 더 가지고 와서 갈아입었는데, 그게 또 엄청 예뻤다. 시가 쪽에서 엄마 한복입은 것 정말 예쁘다고 칭찬을 많이 해 주셨다. 시어머니는 아직도 결혼식을 떠올리면 엄마 한복 얘기를 하신다. 아마 남편쪽 게스트는 일부를 제외하고 한복을 거의 처음 봤을 테니, 신선했을 것이다.
사진을 찍고 나서 케이크 꾸미는 세레모니를 했다.
아이 다시 보아도 마음에 안드는 한복..
저 모래(?)가 바로 25불이나 추가 비용이 든 문제의 그라함 크래커다..ㅋㅋㅋ 그라함 크래커를 가져가서 뿌셔뿌셔 하는 걸 저기서 했었어도 재밌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3불로 막을 수 있기도 하고..ㅋㅋㅋ 어쨌든 의자를 놓고, 슈가 조개 등으로 꾸민다음, 게을러 보이는 작은 고양이 피규어 두 개를 각각 의자에 앉혀놨다 (누워있는 주황색 고양이가 남편..ㅋㅋㅋ).
크게 많은 것을 꾸미는 것은 아니지만 굉장히 재밌었다. 사진도 잘 나왔고, 우리가 만든 디자인의 케익이니 화려하진 않지만 의미도 있었다. 폐백을 대신해서 한복을 입고 할 만한 핑계도 되었으니. 플래너는 이런 코너(?)는 처음 본다며 굉장히 좋아했고, 손님들도 즐거워하셨다. 케이크는 저녁 식사후 디저트 먹기 전 까지 전시되어 있었는데, 우리 어린이 화동이 키가 작아서 케이크 위쪽이 잘 안 보이자, 아빠에게 안아달라고 해서 고양이를 가까이 들여다보는 사진이 있다. 엄청 귀엽다.
케이크 세레모니가 끝나고 나서는 다시 들어가서 드레스와 턱시도로 갈아입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고, 플래너는 사람들을 모아 피로연 자리에 앉혔다.
세레모니에서 리셉션 사이는 손님에게 자칫 지루한 시간이 될 수 있다. 소소한 개인 웨딩은 본인이 여러가지를 넣고 빼고 마음대로 꾸며나갈 수 있다는 게 정말 좋다. 물론 그게 다 돈이고 품이고 노동이지만.. 열심히 했다고 무지개를 덤으로 받았나보다.
그럼 이제 밥 좀 먹자. 그치만 밥만 먹지는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