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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Feb 08. 2024

에필로그_내 결혼식은 나에게나 특별하지

남에게는 뷔페임

어렸을 땐 엄마 아빠 따라서 결혼식 가는 게 참 좋았다. 부모님의 친척이나 지인이니 나는 사실 결혼하는 그 사람들과 가깝지 않은 경우가 많았으니, 잘 모르는 누굴 축하해 준다는 의미도 그다지 크진 않았다. 반짝거리는 신부 구경도 나쁘지는 않았지만 어린이의 입장에서 지루하기 그지 없는 주례의 말씀을 견뎌내고, 노력은 가상하지만 영 들어주기 민망한 축가도 감내해야하는 결혼식은 더 커다란 목적을 향한 인내의 시간일 뿐이었다. 바로 뷔페.


결혼식이 끝나고 뷔페로 가서 음식 가짓수를 처음 돌아볼 때에는 그렇게 신이 났었다. 일단 쭈욱 돌아보고 마음에 드는 것들을 몇 가지씩 덜어서 온 다음, 그 중에 또 더 마음에 드는 것들을 추려 그 것들만 집중공략했다. 부모님도 그 날 만큼은 골고루 먹어야 한다는 핀잔을 주지 않았으므로 나는 한 마리의 육식동물이 되어 회나 육회, 고기 요리를 집요하게 팠다. 그 때는 개구리 다리 튀김 같은 게 있는 곳도 종종 있었다. 음, 맛있는 개구리다리 튀김. 지금은 어디서 파나 모르겠다.


그렇게 고기를 먹고 나면 아이스크림을 공략했다. 뷔페 아이스크림은 타이타닉도 충돌해 잠길 만큼 아이스크림은 너무 꽝꽝 얼어서 어린이의 힘으로는 퍼 내기가 어려웠다. 어린이 몇 명이서 난감해 하고 있으면, 그 중 누군가 어른을 데리고 왔고 그 사람이 졸지에 줄 서있는 애들 너댓 아이스크림을 다 퍼주곤 했다. 음~ 결혼식이란 바로 이거지. 둥둥 만족스럽게 부른 배와 입에서 사르르 녹는 달콤한 것.









성장기가 지나고 위장의 용량과 프로세싱이 함께 줄어들면서 어린이의 목표였던 결혼식의 뷔페는 더이상 그렇게 멋진 것이 아니게 되었다. 다행히도, 결혼하는 커플이나 나를 초대해 준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원래의미의 비중이 더 올라갔다. 사실 이것도 내가 성장하고 철이 들어서라기보다는, 내가 20대 중반에 미국에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국인 결혼식 참석을 놓친 탓,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크게 하는 결혼식이 줄어들었던 이유라고 본다. 사회생활 상 반드시 가야하는 청첩장의 굴레에서 태평양 거리 만큼 벗어나 있다보니 '돈 냈는데 뷔페라도 먹고 온다' 하고 한국 결혼식을 갈 일이 거의 없었다.



그렇게 내 머릿속의 결혼식과 뷔페의 상관관계는 멀어져갔다. 내 결혼식을 하와이에서 하기로 하고, 손님들이 말 그대로 '바다건너'에서 온다고 했을 때, 좋은 걸 대접하고 싶었다. '차려 놓은 건 많은데 먹을게 없다' 거나 '어차피 두 접시 이상은 먹지도 못 할 거' 가 되기엔 너무나 멀리서들 와 주셨다. 그렇게 내 결혼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른 코스요리가 되었다. 질 좋은, 맛있는 고오급 음식으로.




얼마전에 하와이 결혼식 5주년을 맞았다. 사실 이 글을 쓰면서 기억력의 부재에 허덕였다. 1-2년 전 일도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벌써 5년이나 된 일의 디테일을 끄집어 내려고 하니 자주 희뿌연 안개에 휩싸였다. 다행히 아직도 그 때 공유했던 계획 문서나 영수증이 남아있어서 다시 들여다 볼 수 있었다. 테크놀로지 만세. 결혼식이니 예쁜 사진을 기대하고 들어오신 분이 계셨을 것도 같은데, 아쉽게도 사진에 대부분 사람얼굴이나 개인정보가 포함되어있어서 거의 사용하지 못했다.




'하와이 결혼식'에 관련한 검색으로 유입되는 분들이 꾸준히 있는 걸 보면 비슷한 걸 하려고 생각중이신 분들도 꽤 계신 모양이니, 그 분들께 '결혼식 미리보기' 정도로 작용해도 감사할 일이다.




하와이, 스몰, 야외, 비치, 국제결혼까지. 다시 생각해 보면 야심찬 키워드가 전부 들어갔던 결혼식이었다. 검색어에 '하와이 웨딩 비용'이 꾸준히 뜨는 걸 보면 그게 궁금하신 분들도 많은 것 같다.


아쉽게도 파워블로거 같은 스프레드시트는 없다.

드레스에 2000-2500

웨딩슈즈 250

남편턱시도 1000??

남편신발 100-200?

꽃 1000 안쪽

음향 대여 600

당일 코디네이터 1500정도?

카타마란 전세 2000?

사진사 1500-2000?(사진 거지같이 찍어놓음)

기타소품 및 기억 안 나는 3937389가지 비용

호텔웨딩 베누+식사+술 20000???

+ 하와이 비행기값, 호텔값, 이동수단 값, 밥값

+ 부모님 비행기값, 숙소값

(단위는 $)

37명의 손님에게서 들어온 축의금과 선물을 치자면 커버는 커녕 택도 없었다. 핫해보이는 키워드 웨딩을 원하신다면 이는 감수하셔야 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크게 기대하지 않았기때문에 괜찮았다.


오히려 이 때 엄청 도움이 되었던 것은 그 당시 프로모션이 있던 우버 신용카드. 레스토랑 관련 비용이 4%, 호텔관련 비용이 3% 무제한 캐시백 이었던 것!! 결국 호텔결혼식/식사비용 전부에 적용이 되서 캐시백으로만 백만원 가까이 되돌려 받았다. 결혼식 끝나고 가장 즐거웠던 순간이었달까.


안타깝게도 우리 같은 사람이 많았던가 그 신용카드혜택은 곧 사라졌다. 우리는 갚는걸 밀려본 적도 없고 캐시백 혜택 높은 카테고리에만 사용해서 그들은 우리에게 돈을 꽤 잃었을 것이다. 미안..그때의 우버카드..





신기했던 것은 준비하면서 고생했던 건 상세히 기억나는 편인데, 막상 결혼식 당일은 잘 기억이 안 난다. 그래서 마지막 3회는 좀 드라이하다. 뒷심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순수하게 기억이 잘 안난다. 아름답던 하와이 배경, 손님들이 반갑고 고마워 미치겠는 마음, 맛있었던 음식, 내가 노래부르면서 행복했던 기억이 다였으니, 그걸 풀어나간다고 애썼는데 잘 안 된 것 같다.


그래도 쓰길 잘 한 것 같다. 오히려 좀 더 일찍 써 뒀어야 했다. 5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기억이 가물가물하면, 세월이 더 지나고 나서는 상황이 악화될 것이 뻔하니까. 나에게나 특별했던 결혼식의 이야기를 함께 살펴봐 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결혼식은 나를 위한 날이라고들 세간에서 떠돌아다니는 말은 헛소문이다. 결혼식을 나와 내 남편을 위해 찾아와준 손님들을 위한 날이다. 나에게 의미가 있는 장소가 하와이였으니 더 노력했을 뿐. 결혼식 '주최자' 로서 내가 할 일은 손님들이 나의 어렸을 적 결혼식에 대한 '리뷰'를 느낄 수 있게 해 드리는 것. 이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도 내 결혼식을 함께 해 주신 손님들이시니, 같은 리뷰를 안고 가셨으면 좋겠다.



둥둥 배부르고,
사르르 녹는 달콤한 기억.









- 그동안 부족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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