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몰웨딩이면 책임을 져야한다
한국 결혼식에 인원이 많은 이유는 어쨌든간에 비용적인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오시는 손님들은 좋든 싫든 축의금을 현금으로 들고오는 것이 관례이고, 받은 만큼 또 주며 축하해주는 나름의 상호협력관계가 있는 셈이다. 우리네 부모님들은 나중에 자식들이 많은 손님과 축의금을 받으며 결혼식을 했으면 하는 바램에 그동안 열심히 일가친척과 친구분들의 결혼식에 다니셨을 것이다. 결혼식에 오시는 부모님의 손님도 내 손님인 것이 그런 이유일테고.
실제로 많은 손님들과 그에 따른 축의금은 결혼식 비용 커버에 도움이 되는 듯 하다. 주변에 흔히 들어보면 적어도 절반에서 전문용어(?)로 똔똔이 흔하고, 돈이 남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복잡하고 정신이 없어도 그 순기능이 꽤나 긍정적인 셈이다.
한국에서 스몰웨딩을 하겠다는 말은 그래서 철 없이 들릴 수 있다.
1. 부모님이 그동안 열심히 쌓아왔던 소셜 네트워킹을 부정하는 말인 동시에,
2. 스몰웨딩은 비용도 스몰일 것이라는 로맨틱한 허상. 그리고
3. 그 비용은 축의금의 도움이 없을 것과
4. 부모님의 손님도 받지 않으므로 그쪽에 손 벌릴 생각도 하지 말고 내가 다 막아야한다는 현실
- 이 모두를 아우르기 때문.
미국이라고 다 결혼식을 커플 뜻대로 하지 않는다. 사람 사는 데가 다 비슷하지 뭐. 결혼식이란게 워낙 큰 행사라서 가족들도 다 하고 싶은 게 있고, 비용과 손님초대에 대한 여러가지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전통적으로는 여자쪽 가족에서 결혼식 비용+리셉션(피로연)비용을 내고, 신랑 측에서는 결혼식 전 날 먹는 '리허설 디너'와 그외 결혼식 날 부대비용, 신혼여행 등을 낸다고 한다. 현대에는 누가 뭘 내는게 크게 정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어찌됐든간에 결혼식 비용에 부모님이나 가족의 도움을 기대하는 것은 아주 보통의 흔한 일이다.
처음에 결혼식을 계획하면서, 나와 남편이 함께 상의하여 선을 그은 것이 있다. 결혼식은 부모님의 도움 없이, 우리 돈으로 알아서 할 것. 이는 지극히 합리적, 이성적인 선택이었다. 1화에서 언급했듯이, 한국/미국에서 각 각 총 두 번 결혼식 하면서 소수 국적의 손님이 꿔다논 보릿자루같은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한국과 미국 전역에서 오는 사람들을 전부 상대해서 수백명을 진행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남편쪽 미국인들 결혼식문화에는 축의금 받고 식권을 주는 문화도 없고, 까짓거 축의금 되시는 만큼 주시면 좋지만 안 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손님은 38명 밖에 안되고 하와이 호텔 결혼식 밥값은 네이버에서 추천하는 축의금 비용을 훨씬 넘어서서 결혼식 비용은 커녕 술값 커버나 되면 다행이었다.
우리가 원한 건, 한 번의, 그 누구도 부담 없이, 양쪽이 동등하게 즐기다 가셨으면 하는 결혼식이었다.
보통 비용을 받으면 그 쪽의 의견이나 요청을 무시하기 어려울 텐데, 우리는 그래서 결혼식을 준비하는 동안 손님문제나 기타 문제로 각각의 부모님과 다툴 일은 없었다. 나는 한국에서 그 동안 부모님께서 쌓아오셨던 계(?)를 회수하지 못하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남편 측 부모님도 뭔가 가끔 원하는게 있으신 것 같았으나 남편이 잘 막아왔었다.
그러다가 온 시어머니한테 온 연락.
우리만 괜찮다면 리허설 디너를 남편쪽 부모님께서 부담하고 싶으시다고 했다. 리허설 디너라 함은, 결혼식 전날 커플과 가족이 모여 리허설을 해 보는 경우가 많은데 그 날 저녁에 다들 모여 미리 얼굴도 좀 익히고 식사도 하며 즐기는 전야제(?) 같은 느낌의 행사다 (여기 사람들은 결혼식 앞뒤로 뭘 많이 한다). 우리는 또 괜찮다고 하려다가 문득 마음을 고쳐먹었다. 어쨌는 남편 쪽에서도 처음 장가보내는 자식인데 뭐라도 굉장히 도와주고 해 주고 싶으셨을 것이다. 결혼식 자체에 관련된 일에 참여하기에는 그동안 우리가 막아왔으니, 아마 시어머님 입장에서는 결혼식이 아닌 뭐가 부담도 안되고 괜찮을까로 고민하다가 넌지시 던지시지 않았을까.
고민 끝에 우리는 감사히 받겠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신이 나셨다. 괜찮은 식당 없었냐고 물으시기에 전에 리셉션 장소를 보러다니다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The Signature Prime Steak & Seafood' (3화-하와이 결혼식장 찾아 삼만리 참조)를 추천해 드렸고, 본인도 마음이 드신다며 예약을 하셨다. 테이블당 플라워세팅까지 다 하셨고, 메뉴와 초대장을 도와달라고 하셔서 둘 다 2개국어로 뽑아 양쪽 게스트리스트에 다 보내드렸다.
이 소식을 듣고 본인들도 무언가를 하고 싶어하실 내 부모님께는 답례품을 하시는 것이 어떻냐하고 하와이안 쿠키를 보여드렸다. 단박에 수락을 하셨고 내가 대신 쿠키상자 예약주문을 넣었다. 한국에서 꽤 예쁜 전통문양 책갈피세트를 잔뜩 구매해서 들고 오셨고, 쿠키세트에 하나씩 붙여 포장을 했다. 옛날에 하와이에 대학교 연수프로그램으로 있을 때 (1화-하와이에서 결혼식을 하겠다고? 참조) 친구들과 돌아다니면서 샘플을 열심히 집어먹으면 직원이 부서진 것도 가져가서 먹으라고 주곤 했었는데, 그 때는 그게 그렇게나 맛있었다. 그 때 먹은 샘플 값은 충분히 한 듯 싶다ㅋㅋㅋ
결혼식 관련해서 뭐라도 맡아서 하시게 된 부모님들 (특히 어머님들)께서는 신이 나셨다. 아버님들은 딱히 말은 안하셨지만 좋아하신 듯 하다. 우리는 양 쪽 부모님께서 하나 씩 맡아 주셔서 결혼식이 더 풍성해 지는 것 같아 감사했다.
자, 이제 결혼식을 하러 떠난다. 거기 도착해서도 할 일이 산더미다. 우리는 결혼식에 관련한 그 어떤 것도 아직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으며(리허설디너 식당 빼고), 우리만 보고 한국과 미국 각지에서 5-9시간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는 손님들을 챙겨야 한다. 빈병에, 드레스에, 신발에, 갈아입을 옷에, 소품에, 한복까지 짐이 한가득이다.
우리, 잘 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