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와이 결혼식 수제 청첩장 맛집
결혼식이라는게 문화마다 규칙이 있는데, 청첩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단 청첩장은 두 번 보내야 한다는 게 차이점.
하나는 'Save the Date'라고 하는데, 날짜를 비워두세요! 정도 되는 카드이다.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아직 안 정해졌으면 대략의 지역이라도)이 적혀있다. 대략 올 것 같은 게스트를 위해 정보를 미리 제공해서 시간을 비워둘 수 있도록 배려하는 우편물.
두번째는 우리가 흔히 아는 청첩장이지만 또 조금 다르다. 이 청첩장은 한 장이 아니다.
1) 모든 결혼식 정보와 짧은 인삿말이나 사진 정도 등이 들어있는게 보통 청첩장과
2) 올 건지 말 건지 참석여부, 알레르기 등을 를 체크한 RSVP(프랑스어 "répondez s'il vous plaît." 에서 온 단어. Respond, If you please 뜻이란다)
3) 참석여부 답장을 보낼 카드봉투 (옵션)
한국에서는 대부분 청첩장을 전방위로 뿌리고 시간이 되는 사람이 참석하는 식이다. 미리 얘기하지 않더라도 배우자나 애인, 아이들도 함께 데려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래도 결혼식은 '동네잔치'라는 전통적인 개념과 함께, 또 많이 오면 올 수록 축하/사회적 위치나 지위를 확인하고, 또한 축의금으로 '회수'가 되는 현실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다.
유명한 시트콤 '프렌즈'를 보신 적 있나 모르겠다. 거기 보면 로스의 동생 모니카가 자기는 왜 사촌의 청첩장을 받지 못했는데 오빠는 받았냐며 분개한다. 오빠는 아마 누락됐겠지 하며, 나도 본식은 초대 못 받았고 피로연만 +1 (한 명 더 데리고 올 수 있음) 받았다고 한다. 모니카는 더더욱 화를 내며, 나는 초대도 못 받았는데 오빠는 +1을 받았다고?!!! 하고 소리친다. 결국 모니카는 오빠를 설득해 오빠의 +1으로 함께 사촌의 결혼식에 간다.
미국은 대부분 결혼식을 할 때 어떤 사람의 참석여부, 알레르기 정보와 구체적 인원을 알고 한다. 처음부터 누구를 초대할 지 다 카운팅을 센 후에, 그 사람이 누구를 몇 명이나 데리고 올 지 까지 다 포함해서 청첩장을 보낸다. 모든 연회나 결혼식 베누 장소들이 아주 정확한 인원정보/식사정보를 처음부터 물어보기 때문에 확답이 꼭 필요하다. 간다/안간다를 처음부터 정해서 확실하게 이야기를 해주고 시작해야 다른 사람으로 초대를 하든지 인원수에 맞게 파티준비를 한다.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을 데리고 가는 것은 예의가 없는 행위이다. 초대여부를 안 후에 식사 테이블이나 좌석을 다 미리 배정하고 그 좌석에 사람 이름까지 써 있기 때문에 애초에 그렇게 가면 자리도 없고 밥도 못 먹을 확률이 높다.
우리는 인원을 우리 포함 40명을 잡았기 때문에 내 쪽 19명 남편 19명으로 반반 나눴다. 그걸 다시 카드를 보낼 가구 당으로 세어보니 사실 카드는 20개 정도만 필요했다. 한국과 미국 각지에서 오기 때문에 모든 인쇄물은 2개 국어로 하고 싶었다. Etsy라고 커스텀 제품들 많이 만드는 사이트에 내가 생각하고 있던 디자인을 하시는 분이 있어 혹시 외국어(한국어)가 써 있는 것도 가능한 지 연락을 취했다. 그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고, 나는 Mock up(가본?)을 대강 파워포인트의 애플버젼인 키노트로 만들어 보냈는데 그게 생각보다 괜찮았다. 왼쪽 오른쪽에 각각 한국과 캘리포니아 지도를 넣고 중간에 하와이로 이어져 만나는 형식이고, 양면으로 만들어 각각 한 면은 한국어, 다른 한 면은 영어로 했다.
한국에는 없는 단계이다보니 아래다가 Save the Date 카드의 의미도 써서 함께 썼다. 처음 문의부터 완성본을 받기 까지 2주? 3주 정도 걸린 것 같고, 장수가 적고 커스텀이라 그런가 지금 보니까 가격은 싸지 않았다. 외국어를 넣는다고 15불을 추가로 넣었고(내가 다 써서 사용할 무료배포 폰트까지 보내줬는데 왜 자기가 돈을 더 받는지 모르겠음..) 배송까지해서 112불 들었다. 저 땐 싸게 했다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아마 결혼식 관련 비용들을 계속 보다보니 무뎌져서 그랬던 듯 하다. 어쨌든 완성작은 정말로 마음에 들었다. 대략의 구성은 내가 만든 거니까.
세이브더 데잇 카드를 보냈으면 이제 청첩장 준비를 해야한다. 청첩장은 또 여권과 비행기티켓 컨셉으로 하고 싶었다. Etsy에서 카드를 잘 만들었으니, 이번에도 여기서 시도하기로 했다. 일단은 파워포인트와 애플키노트를 이용해 여권+비행기티켓 대략을 대충 만들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정말 웃긴게, 저 바코드를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들었다ㅋㅋㅋㅋㅋ 의미가 없는 장식용 바코드이니 그냥 선 굵기를 다양하게 해서 복사+붙여넣기 해서 길게 뽑아서 그룹지정 한 다음에 복사해서 썼다ㅋㅋㅋㅋㅋㅋ
비슷한 디자인을 하는 디자이너를 또 엣지에서 찾아서 가본을 보내고 수정하는 작업을 계속했고, 어찌어찌 프린트 된 것들을 받았다. 억.. 이번엔 왜 이래 퀄러티가 너무 구렸다. 매트한 느낌의 여권 느낌이 아니라 빤딱빤딱한 코팅지 느낌의 재질에 접는 라인이 삐뚤어 여권을 접으면 꼬다리가 맞지를 않았고, 게다가 결혼선물을 보고 고를 수 있게 넣어놓은 큐알코드까지 빠져있었다. 디자이너에게 다시 연락을 하자 여행에갔다왔네 메일을 이제봤네 미안하다며 큐알코드 부분을 수정해서 다시 보내주었으나 아, 그냥 봐줄래도 도저히 여권 느낌이 안났다. 뻔떡거리는 코팅지였을 뿐.
으으, 역시 전자상거래의 한계인가 하고 좌절하고 있으니 남편이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카드 업체 중에서 여권 디자인의 청첩장을 하는 곳을 찾아냈다.Hyegraph Invitation & Caligraphy라는 곳인데 엠베카데로센터 안에 있다. 에잇 눈으로 보기나 하자 하고 갔는데, 직원이 생각보다 친절했고 샘플도 여러개 보여주었다. 오, 샘플이 여권의 그 매트한 겉/속 느낌과 도톰한 두께까지. 언뜻 보면 진짜 여권처러 보이는, 내가 원하던 바로 그것이었다. 역시 인터넷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디테일이랄까. 봉투까지 모두 하와이 느낌의 내지로 골랐다. 하는 김에 호텔 식사 메뉴도 뽑아야 했기에 거기서 샘플까지 다 보고 한꺼번에 일을 맡겼다.
도착한 청첩장은 너무 예뻐서 황홀할 정도였다. 개인정보 때문에 자세히 보여드릴 수 없다는 것이 정말 속상할 정도.
여권에 티켓을 하나씩 꽂아 RSVP용 봉투까지 해서 내지까지 하와이풍으로 아름다운 편지봉투에 쏙쏙 넣어서 보냈다. 주소도 금색 네임펜을 구해서 손으로 썼다.
일가친척들과 손님들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런 청첩장은 처음 받아본다며, 데스티네이션웨딩의 기대감을 아주 잘 살렸다고 호평받았다. 날짜가 지나자 RSVP가 하나씩 도착했다. RSVP는 비행기 티켓 모양이니까 한 쪽을 점선에 따라 접으라고 하고 답신용 봉투도 그 크기에 맞춰 작은 걸 보냈었는데, 손님 중 하나는 봉투를 새로 사서 티켓 RSVP를 넣어서 보냈더랬다. 그 안에는 곱게 참석을 체크한 4장의 빳빳한 티켓과 쪽지가 들어있었는데, 쪽지에는 "RSVP가 너무 귀여워서 접을 용기가 나질 않았어" 라고 써 있었다.
처음부터 업체나 디자이너를 쓰지 않고 가본 작업을내가 하게 된 것은 돈을 아끼려고 한 것 보다는 2개국어로 내가 하고 싶은 디자인을 딱 하는 사람을 여기서 찾을 수가 없었던 게 이유였다. 어디가서 디자이너를 끼고 이러이러하게 만들어주세요 하더라도 한국어에 해당하는 건 결국 다 내 몫이었을테니. 이게 그냥 이미지면 프린트하면 된다고 하지만 텍스트삽입의 경우 그 사람이 한국어를 모르기때문에 띄어쓰기, 문단 끊기, 폰트, 오타 등을 알맞게 시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돈은 아꼈는지 잘 모르겠다. 중간에 Etsy에서 한번 실패하고 돈을 낭비했기 때문에.. ㅠㅠ
지금도 손님들이 보내온 저 모든 RSVP, 여분용 여권 청첩장과 RSVP 티켓, Save the date 카드까지 다 가지고 있다. 액자에도 넣었다. 가끔 꺼내서 보면 아직도 좋은 퀄러티에 감탄한다ㅋㅋㅋ. 손재주가 있다가 말아서 직접 일러스트를 그리거나 어려운 툴로 화려하게 직접 만들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특별한 걸 내 손으로 만들었다는 게 정말 뿌듯하다. 적어도 나에게는, 이보다 더 멋진 청첩장은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장소도 있고, 날짜도 있고, 손님도 있으니 이제 필요한 것은 뭐다?
바로 결혼식의 꽃, 웨딩드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