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esidio Library Nov 23. 2023

하와이 결혼식 웨딩드레스 고르기

한국의 스드메가 부러워지는 순간..


커튼이 열리는 순간.
그녀는 새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나타났다.나는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드라마를 보면 드레스는 이렇게 고르더라. 세상에서 제일 성스러운 옷을 운명인 것 처럼 만나고 눈물과 사랑이 넘치는 장면.


한국에서 결혼을 안 해 봐서 잘 모르겠지만, 들리는 말로는 '스드메'패키지를 주로 이용하는 것 같다. 이미 골라져 있는 드레스 샵 몇 곳을 돌면서 돈을 내고 정해진 갯수 만큼을 골라서 입어 볼 수 있고, 다른 컬렉션이나 추가로 입어보고 싶다면 돈을 더 내는. 입어 볼 때에는 보통 남편과 함께 간다. 커튼 뒤에서 고심해서 고른 드레스를 한 두 분의 헬퍼가 붙어 정성스럽게 입혀준다. 머리도 만져주고 장식도 해주고 무대에 올라 커튼을 샥! 열면 남편이 "우와 너무 예쁘다" 하며 감탄을 내뱉(어야한)다!


미국에서는 보통은 드레스를 빌리지 않고 구매한다. 대여 시스템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나 흔하지는 않고 빌렸다는 사람은 실제로 주변에서 못 봤다. 하와이에 드레스와 턱시도, 결혼식 일체를 대여? 해 주는 한국회사가 있었긴 했다. 평생 한 번만 입고 말 거라 빌려 입는 게 정말 편리한 시스템이 맞긴 하나, 또 미국사람들 입장으로는 평생 한 번 있는 중요한 날인데 자신만을 위한 옷을 입는 게 또 맞는 말이기도 했다. 사실 결정적으로는 우리는 샌프란시스코에 있기 때문에 여러가지 입어보고 가봉하고 이럴 수가 없어서 포기했던 게 가장 큰 이유기도 했다.


자, 드레스를 사야한다. 이게 굉장히 난감하다. 차라리 자 여기 1, 2, 3번 가게 중에서 고르세요 하면, 고르겠다. 그런 바운더리가 없는 상황이라 나는 "미국에 존재하는 모-든 웨딩드레스 샵 중에서 골라봐!" 하는 중압감에 시달렸다. 그야말로 30불짜리 부터 300,000불까지 너무나 다양했는데 일단 한 번 입는 것이니 너무 비싼 것을 하기는 싫었고, 대충 1500불 내외 정도로 마음이 잡혔다.


계속 검색을 하다보니 눈에 가장 띈 곳은 Anthropologie의 웨딩드레스. (그 때는 BHLDN 이라고 불렀는데 지금은 그냥 안뜨로폴로지 웨딩 이라고 이름이 바뀐 것 같다). 가격대가 900불 후반대 부터 3000불 정도 였고 모던, 보호 부터 트래디셔널 웨딩드레스까지 다양했다.

오늘 자 안뜨로폴로지 웨딩 사이트. https://www.anthropologie.com/bhldn-bride?q=wedding%20dress

스탠포드에 지점이 있어 그냥 예약만 하면 가서 입어볼 수 있는 것 같아서 혼자 가려다가 그 동네에 있는 친구가 시간이 된다기에 와줬다.


미국에서는 보통 남편이 웨딩드레스 고르는 데에 참여하지 않는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은 결혼식 당일에 처음 보아야 하고, 그 전에 보면 운이 달아난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여자 가족이나 친구들과 웨딩드레스를 입어보러 가는 것 같고, 드레스샵 측에서 즐거운 경험을 위해 샴페인 등을 제공하곤 한다. 다른 곳은 어떤 지 모르겠지만 내가 갔던 모든 드레스샵은 입어보는데 돈을 내지 않았고, 입어 볼 수 있는 갯수가 정해져있거나 하지 않았다. 입어볼 수 있는 샘플은 아주 작은 사이즈와 아주 큰 사이즈가 있는게 보통이고, 아주 큰 사이즈를 입었다면 뒤에 집게를 20개 정도 찝어 사이즈를 맞춰준다. 여자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과 가서 꺄아꺄아 거리며 눈물을 흘리고 "바로 이 드레스야" 하면서 왁자지껄한 시간을 보내는 것 같다.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머나먼 한국에 있는 가족의 빈공간이 느껴졌다. 엄마랑 언니랑 같이 고르러 다녔으면 재미있었을 텐데. 같이 와인도 마시고, 이게 낫네 저게 낫네 투닥투닥. 예쁘다고 반응도 해주고..


별 수 없다. 드레스골라달라고 미국에 왔다가라고 할 순 없으니..나는 미국에 사는 으른 여자니까, 이 정도는 혼자 할 수 있다! 스스로 되뇌었다.


처음 입어본 드레스샵에서 생각했던 이런 저런 스타일을 입어보면서, 어떤 게 나에게 더 잘 어울리는지 감이 좀 왔다. 하체는 머메이드 스타일 보다는 드레스가 자연스럽게 탁 떨어지는 A스타일, 상체는 브이넥, 오픈숄더 보다는 반팔이나 5부 정도가 마음에 들었다.

친구는 계속 위 사진과 같은 트레디셔널한 레이스 민소매 스타일이 제일 예뻤다고 하는데 (그 날 입어봤던 것 중에는 가장 마음에 들긴 했다), 팔뚝에 컴플렉스가 있는 나는 좀 망설여졌다.


재밌게도 드레스를 입어보는 행위 자체는 전혀 설렘이 없었다. 오히려 머리에 베일을 쓰고 거울을 볼 때. 그 때 기분이 좀 오묘했다. 성당에서 할 만한 차분하고 참한 스타일이었는데, 엄마가 아주 좋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Lace & Liberty라는 샵도 괜찮았다. 상의와 하의를 각각 골라 믹스매치해서 커스텀 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고, SF에 쇼룸이 있어서 입어보러 갔었다. 제품 자체는 아주 마음에 들었으나 딱히 나에게 어울리거나 이거다 싶은 건 없었다.

Lace and Liberty에서 뒷태가 마음에 들었던 하의.


그 밖에도 한 두 군데 정도 더 알아봤던 것 같은데, 결국 내 눈길을 끈 건 Dreamers & Lovers 라는 웨딩드레스 샵 이었다. 좀 보호 스타일 드레스가 많았는데, 첫 눈에 마음을 빼앗긴 드레스가 있었다.





dreamersandlovers.com

적당한 팔 길이에, 독특한 디자인, 가격대도 적당했다. 코르셋 모양의 상의, 허리가 약간 보이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드레스 샵이 LA에 있어서 사이즈를 측정해서 알려주면 만들어서 보내고 입어보고 다시 보내고 뭐 이런 과정을 반복했어야 했는데 다행히 남편 친구를 방문하러 엘에이를 갈 일이 생겼다. 남편과 친구들이 뭔가를 하는 새에 혼자 우버를 타고 조금 떨어져있는 드레스샵에 혼자 가서 입어보고 사이즈를 재고 돌아왔다. 남편 친구들이 "아 우리도 같이 갔을 텐데! 얘기하지!!" 했다. (그룹 중에 여자 두 명이 있고 나도 잘 함께 어울린다) 그래, 같이 갔으면 재밌었을 것 같긴 한데 솔직히 거기까지 생각을 못했다. 어떻게하면 빨리 해결할 생각만 했지.


그런데 문득 집에 돌아와서 입어보고 찍은 사진들을 보니, 치마가 뭐가 이상했다. 자세히 보니 치마가 원래 위의 사진처럼 A라인으로 톡 떨어져야 하는데, 앞 쪽과 뒤 쪽에 두 줄의 봉제선이 있어 엉덩이와 다리쪽엔 약간 머메이드 식으로 폭을 잡고 밑은 퍼져서 떨어지는 식이었다. 아이씨, 입어볼 때는 왜 그걸 몰랐지? 주문한 게 봉제라인 있는 게 오는거야 A라인이 오는 거야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메일로 어떤 것이 오는 거냐고 물었더니 입어보는 샘플과 웹사이트의 사진이 다른 것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한 번 대답을 받기까지는 3일이 걸렸고, 몇 번을 왔다갔다 하며 사진에 화살표로 그림까지 그려 설명했다. 받아보는 제품은 웹사이트대로 A라인이라는 확답을 받고 나서야 정식으로 주문하겠다고 말했다.


음.. 받아본 드레스는 사이즈가 약간 컸다. 이렇게 올 거면 치수는 왜 쟀지? 그렇다고 다시 재서 다시 보내서 다시 받기에는 그동안의 의사소통 방식이 띄엄띄엄해서 불안했다. 그래서 돈을 더 주더라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평이 좋은 웨딩드레스 샵에 수선을 맡겼다. 물론 저렴하지는 않았지만, 왔다갔다 하고 걱정하고 하느니 이게 더 낫겠다 싶었다.


며칠 후 완성된 드레스는 몸에 꼭 맞았고 아주 마음에 들었다. 어디였는지 찾고 싶은데 대략의 위치만 기억날 뿐 이름이 생각나질 않는다.. 트랜스어메리카 빌딩에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있는 깔끔한 드레스샵이었다. 드레스비용+수선비용까지 하면 총 2000불-2500불 사이 정도를 지출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니 한국에서 드레스 빌리는 금액이나 피차 비슷하게 들어서 놀랍다. 당시에는 구매가 돈ㅈㄹ 같은 느낌이라 좀 죄책감이 들었는데 결국에는 비슷한 돈 주고식 끝나고 나서도 내 손엔 드레스가 남았으니까, 이득이라면 이득이었나 보다.


마음에 쏙 드는, 독특한 웨딩드레스까지 고르자 얼마나 뿌듯하던지. 하와이 비치웨딩과도 딱 어울렸다! 드레스는 배송되었던 상자에 곱게 접어서 담아뒀다.잘 뒀다가 하와이에 가지고 가야 하니까.


웨딩신발도 웹서핑을 하다가 앞서 언급했던 Anthropology에서 금방 찾았다.

어우, 사진이 너무 크다. 앱에서는 크기 조절이 안 된다.

어차피 드레스가 길어서 잘 안보이긴 할 테지만, 일반 구두모양보다 발 전체를 감싸는 형태라 하루종일 신어도 비교적 발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직도 잘 보관하고 있는 예쁘고 마음에 쏙 드는 신발!


남편 턱시도는 함께 가서 맞췄다 (신부가 보면 안된다는 규칙이 없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 있는 Klein Epstein & Parker라는 곳인데 남편이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신발은 지나가다가 본 독특하게 모던한데 반짝이는? 스타일을 샀다. Aldo 제품이었던 것 같다.



몇 년 후, 언니가 한국에서 결혼을 할 때 드레스를 고르는 데 같이 가서 골라줬다. 아무래도 입어볼 수 있는 갯수가 정해져 있다보니 언니가 부담감이 좀 있었다. 그 날은 이전에 입어봤던 것 중 맘에 들었던 두 개와, 새로운 것 2개를 입어보는 날이었다. 이미 여러개를 고르고 입어봤던 경력(?)자라, 언니한테 어울릴 것 같은 것을 골랐고, 처음 고른 것 부터 여지껏 나 없이 입어본 모든 것을 제치고 가장 예뻐 단숨에 형부의 최애로 자리잡았다. 골라준 게 다 예쁘자 결국엔 4개 전부를 새로운 드레스 피팅을 하기에 이르렀다. 1번을 능가할 것은 없다고 생각했으나 3번이 와, 등장하는 동시에 이게 더 예뻤다! 위에 커버를 더했다 뺐다 할 수 있어서 다른 룩으로 보이는 것도 좋았다. 추가금액이 있었지만 3번으로 확정!


내 결혼식에서도 이렇게 함께 했으면 재밌었을텐데, 하고 내 속에서 작게 속삭였다. 내 옷은 혼자 입어봤으니까 언니 드레스 고르는 건 꼭 같이 하고 싶었고, 그럴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결혼식에서 언니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나도 행복했다.


결혼식장, 손님, 초대장, 드레스, 신발까지! 이제 다 됐겠지? 했는데.







이전 04화 파워포인트로 청첩장 만드는 거 본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