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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스티지고릴라 Aug 21. 2018

무심코 지나쳤던 활주로,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이야기

긴 대기시간, 활주로가 지루하게만 느껴진다고?  

지난번 비행기 궁금증에 대한 콘텐츠를 쓰다가 문득 ‘활주로’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여태 수십 개의 항공 콘텐츠를 썼음에도 활주로를 주제로 글을 쓸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에게 활주로란 비행 전 지루한 대기시간을 함께 하는 콘크리트 바닥 그 이상 이하도 아니었다. 이렇게 재미없는 주제를 누가 재미있어 할까? 그런데 한 번 호기심이 생겨 이것저것 찾아보니 꽤 재미있는 것 아닌가?


나처럼 활주로를 지루하게만 생각했던 사람들을 위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알면 알수록 재미있는 활주로 이야기를 들려주려 한다.



 활주로(滑走路)란?


비행기가 이륙 전 속도를 높이거나 착륙 후 속도를 줄이기 위해 긴 직선으로 제작된 특수 목적 도로로 공항의 필수 요소 중 하나이다.


인천 국제공항 공식 페이스북

주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로 포장되며, 비행장으로 불어오는 바람의 방향과 일치하도록 설치하는 것이 통례이다. (예외적인 경우도 있음)


*영어권에서는 Runway, Airstrip, Landing Strip 등으로 칭함


그럼 이제 활주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날씨가 더워지면 비행기는 활주로를 더 오래 달린다


한국의 여름은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며칠 전 Navy 에디터는 방콕 여행에서 돌아와 이런 말을 했다. “어떻게 한국보다 방콕이 더 시원할 수가 있어…?”


더위에서 탈출하기 위해 급 비행기 티켓을 끊었는데 오늘따라 왜 이렇게 비행기가 늦게 뜨는지… 기분 탓일까 싶겠지만, 사실 정말 비행기가 더 늦게 뜨는 것이다. 비행기도 더위를 먹는다고나 할까?

아메리칸항공 비행기

표현이 웃기지만, 정말 비행기도 더위를 먹는다. ‘기온’은 비행기가 활주로에서 비행 추진력을 얻는 데에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비행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는 우선 엔진이 활주로에서 많은 양의 주변 공기를 빨아들인 뒤 이를 여러 번 압축해서 고압의 압축 공기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고압축 공기에 연료를 분사-혼합해 폭발시켜 엔진을 돌리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기온이 오르면 공기가 상승하면서 활주로 부근 공기 밀도가 크게 떨어지게 된다. 즉, 공기 밀도가 떨어지는 탓에 비행기가 한 번에 빨아들일 수 있는 공기의 양이 적어진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추진력을 얻기 위해 더 오래, 더 멀리 활주로를 달리며 충분한 양의 공기를 빨아들여야 한다.


아시아나항공 A380

기온에 따른 실제 활주 거리를 비교해 보면 그 변화를 더 크게 체감할 수 있다. 기온 20도일 때 B777-300의 활주 거리는 2700m, 그보다 몸집이 큰 A380의 경우 3020m이지만, 기온이 40도까지 상승하면 각각 3230m, 3540m로 활주 거리가 약 500m 이상 증가한다.


*항공기 제작사에서 고열로 인한 엔진 손상을 막기 위해, 미리 제작 단계에서 외부 온도 30도가 넘을 경우 엔진으로 유입되는 공기 양을 일부러 제한하게 설계한다는 이야기도 있음



 지구온난화가 활주로를 길게 만든다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날씨가 더워지면 비행기가 활주해야 하는 거리가 더 길어진다. 특히나 몸집이 큰 비행기들은 더 큰 추진력이 필요하므로 활주하는 거리가 더 길 수밖에 없다.


샤를 드골 공항 공식 페이스북

앞으로도 지구온난화가 심화된다는 가정 하에 2050년에는 지구 평균 기온이 지금보다 약 2~3도 더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A380이 한여름에 3540여 m를 움직여야 하는 걸 고려해볼 때 앞으로 기온이 계속 오른다면 활주 거리가 4000m까지 늘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이러한 이유로, 대형 항공기가 많이 모여드는 대형 공항들은 일찍이 활주로를 길게 뽑기도 한다. 인천공항의 경우도 이 점을 감안하여 3 활주로를 4000m로 설계했다.


세계에서 가장 긴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는 공항은 미국의 ‘덴버 국제공항(Denver International Airport)’으로 그 길이는 4877m에 육박한다. 이외에도 프랑스 파리의 샤를 드골 공항(Charles de Gaulle Airport)을 포함해 전 세계 약 20여 개의 공항이 4000m 대의 활주로를 보유하고 있다.


활주로의 길이가 길어진다는 것, 지구온난화가 심해지고 있다는 또 하나의 지표가 아닐까? 왠지 알게 되니 더 씁쓸한 이야기인 것 같다.



활주로에 적힌 숫자, 그곳에 37은 없다


‘언제 뜨냐…’ 중얼거리며 무심코 활주로를 봤을 때,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번호들을 본 적이 있다. 이 번호는 무엇일까? 나는 나름의 추리를 통해 ‘3번 출구로 와’처럼 활주로 위에서 일하는 사람들 사이의 장소 명 같은 게 아닐까 추측했다.


창이 국제공항 공식 페이스북

그러나 모든 활주로에는 37 이상의 숫자가 없다는 걸 알게 된 순간, 보통 숫자가 아님을 알고 굉장히 흥미로워지기 시작했다.


ㅡ전 세계 어느 공항을 가도 활주로 번호는 1~36까지만 사용할 수 있다


그럼 이 번호들의 정체는 뭘까? 다름 아닌 나침반의 방위각을 나타낸다. 36이란 숫자는 나침반의 최대 방위각인 360도를 나타내는 셈(방위를 10으로 나눠 소수점을 제외한 정수로 표시한 것). 


활주로에 적힌 숫자는 나침반 사용법과 동일하게 북쪽을 기준으로 활주로가 가리키는 방향의 각도에 따라 번호가 부여된다. 따라서 북쪽엔 활주로 번호 36(방위각 360도)이 있고, 맞은편 남쪽엔 18번(방위각 180도), 서쪽엔 27번(방위각 270도), 동쪽은 09번(방위각 90도)이 자리 잡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는 이 번호를 보고 방향을 살펴 안전하게 이·착륙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큰 공항의 경우 같은 방위에 여러 활주로가 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경우엔 방위가 같으므로 동일한 번호를 쓸 수밖에 없다. 이때 번호가 겹치는 것을 막기 위해 왼쪽(Left) 활주로에는 L, 중간(Center)에는 C, 그리고 오른쪽(Right)에는 R을 함께 써주어 구분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제는 이 숫자를 바꿔야 할 때가 왔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지구의 자기장이 계속해서 바뀌고 있으므로, 언젠가는 나침반의 방향까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 항공청은 5년 주기로 나침반의 방향을 확인하고 있는데, 나침반 바늘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고 한다.



동물 절대 출입 금지? 동물이 출입하는 활주로도 있다


‘동물이 활주로에 돌아다녀 어쩔 수 없이 사살했다.’는 기사를 종종 본 적이 있다.


이는 실제 공항의 대응 매뉴얼에도 명시되어 있는 사항이라 비인도적이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조그만 실수에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활주로에서는 어쩔 수 없는 대처라고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ㅡ그런데 개를 활주로에 아예 상주시키는 공항도 있다


체리 캐피탈 공항 공식 유투브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인가 싶겠지만, 바로 ‘활주로를 지키는 개, 파이퍼(Piper)’의 이야기다. 만화에서만 봤을 법한 비주얼! 경찰견 조끼와 신발, 고글까지 착용한 파이퍼의 모습이 꽤나 늠름하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강아지로도 유명한 보더콜리 종으로, 현재 파이퍼는 미국 미시간 주 ‘체리 캐피탈 공항(Cherry Capital Airport)’에서 가드 독(Guard Dog)으로 근무하고 있다. 파이퍼가 가드 독으로서 하는 임무는 활주로에 있는 조류나 동물을 쫓아 내는 것! 매해 버드 스트라이크(Bird Strike)로 인한 비행기 사고가 잦은 만큼 그 임무가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버드스트라이크: 조류가 비행기에 부딪히거나 엔진 속에 빨려 들어가 항공사고를 일으키는 현상


파이퍼가 공항에서 일한 시간 동안 조류를 쫓은 횟수는 무려 2,450건(ㄴ…누가 센 거지?)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공항 소음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가지만, 파이퍼는 어렸을 때부터 공항에서 자라며 담력을 키워왔다고 한다. (외부 자극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장비도 확실히 장착했다)


파이퍼의 나이는 올해로 9살. 사람으로 치면 조류를 쫓기엔 꽤나 힘들 법한 나이- 아쉽게도, 2015년 조류를 쫓다 다리가 다쳐 더 이상 가드 독으로서의 임무는 할 수 없게 됐지만, 여전히 공항의 마스코트로 자리 잡고 있다.




비행의 설렘에 빠져 무심코 지나치기만 했던 활주로! 하지만 알고 보면 비행기 만큼이나 재미있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이젠 긴 대기 시간 동안 멍 때리고 있지 말고, 활주로를 유심히 보며 색다른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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