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숲속을 벗어나봐요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전형적인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쾌활하고 붙임성 좋고 도전적인, 햇빛에 약간 그을리고 호리호리하며 빛나는 눈을 가진 사람의 모습이 단번에 그려진다.
글쎄, 백면서생에 낯선 사람과 말을 섞는 일을 즐기지 않으며 카페에서는 무조건 구석자리를 찾고, 너무 활기찬 세상과 종종 불화하는 사람들은 짐을 싸고 문밖으로 나서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걸까?
화려하고 시끄러운 바깥세상을 피해, 고요한 내면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려 떠나는 것을 사랑해 마지않는 당신을 위한 국내호텔 세 곳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외관만 보아도 숨을 멈추게 되는 남해의 사우스 케이프 스파앤스위트. 정재봉 회장이 풍광에 매료되어 ‘물위에 비친 달의 아름다움에 취해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어느 시인의 마음과 같이’ 앞뒤 안 가리고 짓기 시작했다는 이곳. 배용준 부부가 유수의 해외 휴양지를 제치고 신혼여행지로 선택했을 만큼 프라이빗하고 럭셔리한 공간이다.
‘휴식이 예술이 된다’는 카피에 맞게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작품들이 리조트 곳곳에 전시되어 있다. 톰 프라이스, 리차드 애드먼부터 홍동희와 황형신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작가들이 만든 작품들이 리셉션, 카페테리아 할 것 없이 눈에 걸려 걸음이 바빠질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직선과 곡선이 절묘한 조합을 이루는 7개 동의 객실 건물은 보기만 해도 감탄이 나온다. 울퉁불퉁한 리아스식 해안선을 고려해 노출 콘크리트를 케이크 썰 듯 자유롭게 겹치고 비운 감각적인 연출이 돋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남해바다를 두 눈 가득 채울 수 있는 룸들도 있지만, 에디터가 픽한 오션 그린 스위트는 초록과 물빛이 함께 어른거린다는 점이 포인트다. 세계 100대 코스에 이름을 올린 사우스케이프의 골프코스와 함께 찰랑거리는 남해 바다의 물결을 바라볼 수 있다.
바다에 닿을 것 같은 인피니티풀에서의 여유도 빼놓을 수 없다. 남해의 짠 바람을 피부로 느끼며 유영하면 커다란 질문 앞에 해답을 선사하는 깨달음의 순간이 올 것만 같다.
마무리로는 이태리 트레버틴 대리석과 일본식 히노끼 자재로 품격과 편안함을 동시에 풍기는 사우나로 피로를 풀 것을 추천한다. 계절에 따라 남해산 친환경 유자 등을 탕에 띄우기도 한다. 바이오더마 클렌징워터와 화장솜을 비롯해 이솝 토너, 로션, 바디로션이 모두 구비되어 있다.
서울 광진구에 위치한 그랜드 워커힐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마법처럼 나타나는 아차산 속 비밀스러운 별장 아지트 '더글라스 하우스'. 아기자기하고 따뜻한 분위기에 저절로 마음이 산뜻해진다. 전객실 노키즈존으로, 바로 옆 그랜드 워커힐이나 비스타 워커힐에서 느껴지는 활기와는 거리가 있는 차분한 공기가 흐른다.
나를 발견하기 위해 호텔에 왔다면, 굳이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커다란 해먹에 폭 안겨 사색에 잠기거나 공들여 큐레이션한 양서들로 빼곡한 책장에서 ‘인생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누리자. 더글라스 라이브러리는 24시간 운영하며, 매주 1회 명사와 함께하는 문화살롱이 진행된다.
에디터가 픽한 더글라스 하우스의 ‘트레디셔널 스위트’는 온돌 객실로, 침대의 높이가 낮고 테이블과 의자도 좌식으로 준비되어 있다. 자연의 안락함과 한국의 정서가 듬뿍 담겨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을 제공한다.
온돌이나 좌식이 영 편하지 않다면, ‘공중식’은 어떠한지(…) ‘더글라스 스위트’에는 룸 한 켠에 해먹이 자리해 프라이빗한 캠핑 느낌을 낼 수 있다. 미니바의 주전부리를 꺼내 먹으며 흔들거리다 보면, 한 달치 피로는 날아갈 듯.
3층에는 셀프 쿠킹을 위한 인덕션과 조리기구들을 갖춘 키친이 있다. ‘아니, 치킨 사들고 와서 치맥파티 하는 사람들이라도 있으면 휴식과는 거리가 멀겠는걸…’ 싶지만, 외부 음식이나 식자재는 반입할 수 없다.
가평에 위치한 100% 회원제 리조트 아난티 펜트하우스 서울. 속세의 바깥으로 떠나왔다는 느낌을 진하게 받을 수 있는 푸른 초목으로 둘러싸여 있다. 회원권이 있어야 숙박할 수 있으니, 프라이빗함은 보장된 셈.
객실 안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독채 ‘더 하우스’부터 히노끼탕이 있는 ‘무라타 하우스’ 수영장이 포함된 ‘풀 하우스’ 두 가족이 머물 수 있는 ‘테라스 하우스’ 중. 가장 많은 에디터의 표를 받은 것은 ‘무라타 하우스’다.
무라타 하우스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다다미방과 프라이빗 히노끼탕이 있다는 것. 다다미방에 정좌로 앉아 챙겨온 책들을 탐독하다 숲과 강으로 둘러싸인 창밖을 바라보며 따뜻한 물에 담겨있는 시간이란. 도시에서 쌓아온 고민거리들은 모두 떨쳐버리고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구조다.
책을 안 챙겨왔다고? 책장에 놓인 여러 권의 책들 중 관심 가는 한 권을 뽑아 읽으면 그만. 바깥세상이 피로하다면, 여가시간에도 늘상 몸으로 부딪히며 모험할 필요는 없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마음에 더 많은 것을 쌓는 일도 당신을 성장시키기에는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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