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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스티지고릴라 Dec 24. 2018

전직 연예부 기자가 파헤치는 아이돌 공항 수난기

홈마들은 항공편명을 어떻게 아는 걸까.

대한항공이 출국장 통과 후 항공권을 취소하는 고객들에게 20만 원의 할증을 부과하기로 했다. (링크)


“아니, 도대체 누가 출국장까지 나갔다가 항공권을 취소한다고 그러나? 

만약 그러는 사람들이 있다고 해도, 피치 못할 사정 때문 아닐까? 대한항공 야박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아니다. 인천공항공사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출국장 보안구역까지 들어갔다가 출국하지 않고 돌아와 역심사를 받은 건수는 1만 2843건에 달했다(조선일보).


생각보다 어마어마한 숫자. 어떤 사람들이 저렇게 탑승을 번복하는 걸까?


이들 대부분은 ‘홈마’다. 아이돌을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는 팬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자신이 찍은 사진을 올리는 개인 ‘홈’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홈 마스터(Home Master)’, 줄여서 ‘홈마’라고 한다. 대포만 한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고 ‘대포팬’이라 하기도 한다. 


이들의 목적은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진을 찍는 것이며, 그곳이 무대든 출근길이든, 심지어 공항이든 개의치 않는다.  


주제와 무관한 이미지


공항에서 몰려든 팬들 때문에 곤란해하는 인기 연예인들의 모습은 사실 익숙하다. 하지만 보안검색대를 통과해 출국장 안까지 들어와서 사진을 찍고 심지어 같은 비행기를 탄다니? 해외 스케줄이 많은 연예인들을 일일이 따라다니려면 항공권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 그 비용을 모두 부담하고 따라다니는 것이라면 참사랑이라는 생각도 든다. 


아니, 그들은 항공권 요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말하면, 샀다가 환불한다. 이들이 돈을 쓰지 않고 공항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고, 같은 비행기를 타며 아이돌 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는 과정, 알아봤다. 


✖ 항공스케줄 파악하기




아무리 공식 스케줄이라도 특정 아이돌 그룹이 언제 출발하는 항공편을 타는지는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법이다. 그렇다면 홈마들은 어떻게 매번 귀신같이 파악하고 때맞춰 공항에 모여 있는 것일까?


1)    소속사가 알려줍니다 (정말?)


연예인 소속사에서 공항 스케줄을 공식 일정이라 간주해 연예부 사진기자들에게 사진 촬영을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이경우 연예인들의 스케줄이 공공연하게 알려진다. 연예부 기자였던 시절, 한주에 한 두건은 날짜와 편명, 사진 촬영을 위해 대기할 장소와 정확한 시간 등이 적힌 메일을 받았다. 


공항패션 등 협찬 물품을 홍보하기 위한 경우도 있고, 단순 화제성을 위한 경우도 있다. 기자들에게만 공개하는 정보이긴 하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뿌려지는 정보이다 보니 팬들도 쉽게 접할 수 있다. 


2)    불법으로 판매되는 정보 구매하기



트위터 같은 SNS 등지에서 ‘아이돌 그룹명+공항 정보’를 검색어로 서치하면 항공 정보를 판매하는 계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이 판매하는 정보는 출처도 정확도도 알 수 없다. 이렇게 판매되는 항공 정보는 왕복 편명을 건당 1만 원대(에누리도 가능)로 ‘건질’ 수 있다. 아이돌의 개인정보가 음지에서 사익을 위해 거래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심지어 5천 원~1만 원 대에 ‘공항 서치법’을 판매하기도 한다. 공항 서치법이란, 아이돌의 신상정보를 통해 항공편명을 검색하는 방법을 뜻한다. 이 또한 확실한 방법인지 알려진 바가 없다. 보통 항공권 예약 조회를 하기 위해서는 예약번호가 필요하며, 이는 예약을 하지 않은 사람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3)    날짜 맞춰 무작정 기다리기


정보가 빈약한 팬들은 출국하는 날짜에 맞춰 공항에서 기약 없이 기다리기도 한다. 가장 쉽지만 힘든 방법이다. 이경우 날짜만 맞춰 가장 싼 항공권을 구매해 해당 연예인과 함께 보안 검색대 통과와 출국 심사를 거친 뒤, 탑승 게이트 앞까지 따라가는 식이다.


4)    괴담: 여권정보와 휴대폰 번호로 조회하기


아이돌 그룹의 일거수일투족을 좇다 보면 습득할 수 있는 정보들이 많을 것이라는 추측에서 떠도는 루머 중 하나로, 연예인들이 공항에서 체크인 수속을 밟을 때 홈마들이 카메라로 그들의 여권 내부를 촬영할 것이라는 소문이 있다. 그렇게 알아낸 여권번호와 주민등록번호 등을 토대로 2)의 ‘항공서치법’을 사용해 편명을 조회한다는 것. 


그러나 앞서 말했듯 편명 조회에는 예약번호가 반드시 필요하기에, 편명을 조회하기 위해 여권 내부를 일부러 촬영한다는 식의 괴담은 사실 확인이 어렵다.


✖ 출국장 들어가기



1)    높은 등급의 티켓을 구매한다



어찌어찌 편명을 알았다면, 함께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홈마들은 이코노미석이 아닌 높은 클래스의 좌석을 예약한다. 장거리 노선일 경우 몇 백만 원이 훌쩍 넘는 비즈니스, 퍼스트 클래스의 티켓을 턱턱 구매한다고? 완전 금수저들 아냐?


이들이 이렇게 비싼 항공권을 망설임 없이 구매하는 건 놀랍게도 비행 내내 앉아서 애긔들을 관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숨겨진 의도는 뒤에서!


2)    보안검색대와 출국심사를 통과하는 애긔들의 사진을 잘 찍는다 



이제 공항에 내추럴한 모습으로 등장한 아이돌 멤버의 사진을 체크인, 보안검색, 출국심사에 걸쳐 잘 촬영하기만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연예인들은 극도로 예민해진다. 레드카펫을 방불케 하는 현란한 플래시 불빛과 함성에서 오는 스트레스, 인파로 인한 진로방해까지 다양한 피해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아무나 들어올 수 없는 보안검색대와 출국 심사에서까지 플래시 세례가 쏟아져 함께 출국 수속을 밟는 일반인들에게 덩달아 민폐를 끼친다.


공항 직원들이 홈마들의 출국장 입장을 제지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앞서 항공권을 구매했기 때문이다. 촬영을 자제해달라는 요청은 가능하겠지만, 퇴장 등의 조치를 통해 탑승 자체를 거부할 수는 없으니 소극적 대처만 가능할 뿐이다. 


3)    비행기에 잘 타는지까지 확인한다  


여기서 안녕이다.


게이트 바로 앞까지는 열심히 따라가겠지만, 탑승구에서 홈마들은 이제 사랑하는 아이돌 멤버들을 놔준다. 물론 비행기까지 함께 타고(이 같은 행위를 ‘같은 비행기를 탄다’는 뜻의 ‘같비’라고 부른다) 그쪽 공항에서도 열심히 촬영하며 열일(!)하는 홈마들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홈마들은 여기서 마지막으로 애긔들의 뒷모습을 본다. 


이때쯤 홈마들의 트위터 계정에는 ‘ㅇㅇ아 잘 다녀와. 아프지 마.’ 같은 아련한 멘트와 함께 과보정된 사진들이 올라온다. 그렇게 비싼 항공권을 사놓고 왜 타지를 않냐고? 애초에 그 티켓은 타기 위한 티켓이 아니었으니까.


4)    잘 나온 사진을 확인한 뒤 나가서 환불한다 


그렇다. 이제 누구보다 빠르게 환불 신청을 할 시간이다. 상식적으로 탑승 직전에 환불을 요구하면 취소수수료가 엄청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홈마들이 앞서 왜 클래스가 높은 좌석을 예매했을까? 취소수수료가 적거나 없기 때문이다. 항공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출발 24시간 내에 구매한 티켓이라면 정말 취소수수료 아예 없이 전액 환불을 받을 수도 있다.


예약부도위약금이라는, 출국 수속을 밟은 후 티켓을 취소하는 사람들에게 부과하는 위약금이 따로 있긴 하지만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현행 대한항공 기준 단거리 노선에서 5만 원, 아시아나 10만 원 정도. 퍼스트 또는 비즈니스클래스 티켓 수준 공항서비스를 5만 원에 이용할 수 있는 꿀팁(…)임에 틀림없다.


✖ 언제까지 지켜만 볼 텐가



‘이런 나쁜 꿀팁을 공유해버리면 어떡해~! 악용의 소지가 있잖아!’ 싶은 독자들, 고정해도 좋다. 이번에 벌어진 ‘비행기를 탑승하고 나서 내리겠다고 떼를 쓰고 심지어 환불까지 받아간 사건(링크)’ 때문에 예약부도위약금이 대폭 올랐으니까.


앞서 출국장에 들어갔다가 환불하고 나오는 과정을 무척 간결하게 서술했지만, 사실 비즈니스나 퍼스트 클래스는 좌석수도 적고 라운지 등 공항에서 제공되는 서비스도 많아 한번 취소될 경우 피해가 무척 크다. 공항 보안 인력도 하지 않아도 되었을 검색을 하느라 낭비된다. 5만 원으로 퉁쳐질 피해 규모가 아닌 것이다. 


(사진: 대한항공 홈페이지)


이번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할증으로 새해부터는 허위 수속을 했을 경우 20만 원이 넘는 예약부도위약금을 지불해야 한다. 한 번에 턱턱 지불하기는 다소 어려워진 금액이다. 이로 인해 2019년부터는 꼭 타야 할 사람들이 허위 예약 때문에 비행기를 못 타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공항이나 항공사의 인력이 쓸데없이 낭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돌 그룹의 팬들 사이에도 공항에서 찍힌 사진은 소비를 자제하자는 움직임이 있다. ‘공출목’, 즉 공항, 출근길, 길거리 목격 사진은 사생활이니 찍지도 보지도 말자는 운동이다. 대부분의 홈마들이 촬영한 사진으로 포토북 등을 판매해 수익을 내니, 이런 보이콧 운동은 확실히 영향력이 있다. 유의미한 수의 홈마들이 프로필에 ‘공출목X’를 내걸고 공식 스케줄에만 모습을 비추고 있다. 


제도와 문화가 시너지를 만들어 더욱 성숙한 팬문화가 정착될 수 있기를, 이상 럭셔리 항공 호텔 전문 미디어 프레스티지고릴라의 주제에서 살짝 벗어난(…) 팬문화 집중 탐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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