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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프레스티지고릴라 Feb 26. 2019

굿바이, A380 : 우리가 사랑했던 뚱뚱한 비행기

에어버스가 A380의 생산 중단을 발표했다. 

| A380의 부고


“고통스럽지만, 노력에도 불구하고 주문이 없어 A380을 생산할 이유가 없어졌습니다.”


에어버스가 A380을 더 이상 생산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예견된 일이다. 


▶A380의 불길한 뉴스들

-에어프랑스 보유 A380 반으로 줄여… 

-에미레이트항공 주문 취소…

-콴타스항공 주문 취소…


왜? 2005년 출시 당시 1200대 이상으로 예상했던 판매고가 234대로 훨씬 부진했다. 


직격탄은 가장 큰 고객사 에미레이트항공의 주문 대거 취소였다. 남은 수주 53대를 14대로 대폭 줄여버렸다. 2021년 에미레이트항공이 마지막 A380을 인도받고 나면 경쟁사 보잉의 B747과 함께 한 시대를 풍미했던 초대형 호화항공기의 시대는 저물게 된다.


| A380이라는 비행기


(출처: airbus.com)


수많은 항덕(항공기 덕후)들에게 A380은 의미 있는 기종이다. 


1. 패기 있는 시작: 

“노장 B747 비켜! 신세대 A380이 제.패.한.다” 


(출처: boeing.com)


에어버스 A380은 대형여객기 시장에서 독주하던 노장 보잉의 B747에 대항하기 위해 제작됐다. 1960년대에 출시된 B747은 무려 50년이 넘게 비견할 점보기 없이 홀로 독주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 에어버스는 A380이 첨단 기술을 장착하고 더 많은 승객들을 태울 수 있어 순식간에 B747의 파이를 빼앗을 수 있을 거라고 봤다. 


(프랑스 툴루즈의 에어버스 공장에서 공개된 A380, 출처: airbus.com)


이에 에어버스는 총 180억 유로라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A380 프로젝트에 투자하며 밀레니엄 시대의 포문을 열고, 2005년 자신 있게 출시하게 된다. 


2. 독보적인 질주: 

“A380 같은 비행기는 어디에도 없어” 


에어버스가 A380 프로젝트에 막대한 금액을 거침없이 투자한 이유는 뭘까. 바로 어떤 여객기와도 같지 않은 스펙 덕일 거다.  

(출처: airbus.com)


이제는 보기 힘든 네 개의 엔진, 80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2층짜리 캐빈이 A380을 대단하게 만드는 첫번째 요인이다. 누구든 일단 A380 앞에 서면 일단 크기에 압도될 수밖에 없다. 


(에미레이트항공 A380)


그저 큰 것뿐이라면 A380의 등장이 화젯거리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 A380의 다른 이름은 바로 ‘하늘 위의 호텔’이다. 호텔에 객실만 있는 것이 아니듯 A380도 좌석만으로 빼곡하지 않다.  


(에미레이트항공 A380 기내바)


우선, A380을 보유한 많은 항공사들에서 2층에 기내바를 운용한다. 승객들은 그저 가만히 앉아 지겨운 비행이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내 바텐더와 대화하며 마티니를 홀짝일 수도 있게 됐다. 



(에티하드항공 퍼스트클래스 '더 레지던스', 출처 에티하드항공)
(에티하드항공 퍼스트클래스 '더 레지던스', 출처 에티하드항공)


몇 항공사의 퍼스트클래스는 심지어 개인 샤워실과 거실 등도 갖췄다. 에티하드항공의 ‘더 레지던스’가 대표적으로, A380 내 거실과 별도의 침실, 전용 샤워실을 갖췄다. 거실에서는 소파에 앉아 식사를 하며 TV를 보고, 침실에서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침구가 있는 3m 길이의 더블베드 침실에서 휴식을 취한다.


착륙 전에는 샤워기와 세면도구, 목욕가운까지 구비된 전용 샤워실을 이용할 수도 있다. 비행기를 타면서 상상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를 A380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싱가포르항공 A380 퍼스트스위트)


▶싱가포르항공 A380 더블베드에서 꿀잠 잔 후기


3. 예상 밖 돌부리: 

“하늘에 ‘비만돌고래’가 필요해?”  

(주위 비행기들을 압살하는 A380의 크기, 출처: airbus.com)


하지만 예측이 빗나가며 문제가 생겼다. 애당초 A380은 사람들을 허브공항으로 최대한 많이 옮기기 위한 여객기로, 경유편에 적합하다. 에어버스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이용하게 되면 다양한 지역으로 가기 위해 우선 대도시의 큰 공항으로 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탑승객들은 허브공항에서 내린 뒤 소도시로 뿔뿔이 흩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소도시에서 소도시로 바로 가는 직항편을 선호했다. 에어버스가 틀렸다.


(출시 전 테스트 중인 A380, 출처: airbus.com)


항공사들은 너무 비싼데다 너무 많은 승객을 태워야 하는 부담을 안기는 점보기 대신 중형기로 눈을 돌렸다. 마침 기술의 발전으로 중형기도 대륙횡단이 가능할 정도로 연료효율이 좋아졌다. 이에 이미 A380을 구매한 항공사들은 기체를 퇴역시키기 시작한다.


맨 처음 A380을 인도받았던 싱가포르항공이 대표적이다. 2007년에 받은 A380을 10년이 된 2017년부터 줄줄이 퇴출했다. 2014년 A380을 인도받은 카타르항공도 10년이 되는 2024년에 퇴역시킬 것이라 밝혔다. 


>노장 점보기 B747은 어떻게 됐을까? 대한항공이 2017년 8월 마지막 B747-8i를 인도받으며 한발 앞서 퇴역했다. 


| A380만한 비행기 


그렇다면 이 A380 수요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1. 보잉 B777X


(보잉 B777-9, 출처: boeing.com)


카타르항공은 2014년 도입한 A380의 10주기가 되는 2024년에 모든 A380을 퇴역시키고 이를 B777X로 대체하기로 했다. B777X은 2020년 등장할 예정인 보잉의 최신 기종으로, B777-9에는 최대 425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다.


중형기가 득세하는 상황에서 대량수송기를 내놓았다는 것이 의아하지만, 운명을 저버린 두 점보기가 엔진이 네 개인 사발기였던 것에 비해 B777X는 쌍발기라는 점에 메리트가 있다. 이미 A380의 총 판매량을 넘긴 300대 이상의 주문이 들어왔다. 


(출처: instagram.com/emirates)


에미레이트항공은 이 B777X에 전면 통유리로 된 스카이라운지를 도입하겠다고 만우절 장난을 치기도 했다. A380으로 뽐내던 ‘럭셔리’ 이미지를 B777X로 가져가겠다는 의도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었던 유쾌한 농담이었다.


2. 에어버스 A350


(에어버스 A350-1000, 출처: airbus.com)


얼마전 에미레이트항공은 A380 주문량 중 일부를 A350으로 변경했다. A350은 기체의 대부분이 탄소복합소재로 이루어져 매우 가볍고 연료효율이 높아 장거리노선에 유용하다. 


(싱가포르항공 A350-900ULR, 출처: airbus.com)


현존하는 지구상 가장 긴 노선인 싱가포르항공의 싱가포르-뉴욕 구간이 바로 이 A350-900ULR로 운항되고 있다. 현재는 A350-900, A350-1000, A350-900ULR 등이 생산되고 있는데, A380 퇴역 후 B777X가 점보기 시장을 독점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존 기종보다 약 45개의 좌석을 추가한 A350-2000의 출시도 고려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늘을 주름 잡는 A350 리뷰 모아보기

[캐세이퍼시픽 ‘A350-1000’] 홍콩-마닐라

[캐세이퍼시픽 ‘A350-900’] 인천-홍콩

[싱가포르항공 ‘A350-900’] 홍콩-싱가포르

[아시아나항공 A350-900] 인천-오사카

[아시아나항공 'A350-900'] 인천-런던 

[아시아나항공 ‘A350-900’] LA-인천

[베트남항공 ‘A350-900’] 인천-하노이 

[베트남항공 ‘A350-900’] 호치민-인천

[타이항공 ‘A350-900’] 인천-방콕

[필리핀항공 ‘A350-900’] 마닐라-방콕

[핀에어 ‘A350-900’] 인천-헬싱키


3. 보잉 B787


(보잉 B787-10, 출처: boeing.com)


A350과 대표적인 차세대항공기로 언급되는 B787은 A350과 마찬가지로 탄소복합소재로 제작됐다. 최대 290명의 적절한 수용량과 매우 긴 항속거리로 어떤 노선에도 부담없이 배치하기 좋은 팔방미인이라 ‘드림라이너’로도 불린다. 


(대한항공 B787-9, 출처: boeing.com)


우리나라에서는 대한항공만 B787-9를 운항하고 있는데, 항공면허 취득을 앞둔 신생항공사 에어프레미아 현재 최신기종은 B787-10이다. 


▶프고의 드림라이너 리뷰 모아보기

[싱가포르항공 ‘B787-10’] 마닐라-싱가포르

[에티하드항공 ‘B787-9’] 싱가포르-아부다비 

[대한항공 ‘B787-9’] 인천-후쿠오카 

[ANA항공 ‘B787’] 김포-하네다

[일본항공 'B787-8'] 김포-도쿄

[에어캐나다 'B787-8'] 상해 푸동-몬트리올


| 아듀, A380 


사람들은 A380이라는 이름을 들으면 형편에 안 맞게 사치 부리는 허세 가득한 모습을 떠올린다. 연료는 연료대로 먹지만 효율은 낮으니 도태는 당연한 일이라고 응징하듯 이야기한다. 그도 그럴 것이 A380 앞에는 언제나 ‘럭셔리’니 ‘초호화’, ‘하늘 위의 호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에미레이트항공 A380)


하지만 효율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항공사 입장 아닌가. 탑승객으로서는 A380보다 비행경험이 쾌적한 기종을 찾기 어렵다. 그러니까 타는 사람으로서 A380은 이렇게 팔면 남긴 남을지 걱정되는 인심 좋은 식당 주인 같은 거다. 높은 임대료를 견디다 못해 폐업해버린.


(출처: airbus.com)


다시 A380 같은 비행기가 나올 수 있을까? 출시 10년이 조금 넘어 단종되어버린 A380을 두고 사람들은 ‘불명예 퇴직’이라고 비웃지만, 이앞에서 나는 애도하고 싶은 마음이다. A380과 함께 붐비는 공항과 웃음소리가 날아다니는 즐거운 캐빈과 만남을 기뻐하는 가족들의 포옹이 한데 섞여 사라져 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는다. 


그러니까 여기서 '이래서 경쟁에 실패했다'느니, '시대를 읽지 못했다'느니 그런 씁쓸한 말로 마무리를 짓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뒤뚱거리며 뒷길로 사라진 A380의 포부에 대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고 싶다. 


"잘 가, A380. 우리가 사랑했던 뚱뚱한 비행기."



프고의 애정이 담긴 A380 후기 모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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