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가는 겨울이 아쉽다면, 오타루 고라쿠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룻밤에 75만원. 어딘가에서 그저 하루 묵기 위한 돈으로 쉽게 납득할 만한 금액은 아니다.
75만원, 삿포로까지 가는 LCC 왕복 운임이 얼추 24만원이었으니 인천에서 삿포로까지 3번을 왕복하고도 3만원이 남는 돈이다. 생각이 여기 미치니 ‘정말 이 곳을 가는 게 맞는 걸까?’라는 생각이 수십번은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료칸에 대한 호기심과 환상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저 낮은 목조 건물에 무엇이 있길래 1박에 기십만원을 주고도 예약하기가 어려워 사람들이 발을 동동거리는지. 딱 보니 저녁밥 주는 온천 딸린 호텔일 뿐인데.
저녁밥 3만원, 온천 2만원, 호텔 10만원, 도합 15만원이면 셋 다 해결할 수 있을 걸 무려 60만원을 더 주고도 가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건지.
오타루 역에서 차로 20분 즈음, 이 간판을 만난다. 고라쿠엔. 1박에 75만원씩이나 되는 몸값을 자랑하는 곳 치곤 간판이 어딘가 허술하다. 뭐랄까. 어딘가의 대형 관광식당 느낌?
하지만 걱정도 잠시, 이내 시선을 정문으로 돌리면 어마어마하게 넓은 부지가 펼쳐진다. 심지어 정문에서 료칸 건물이 잘 보이지도 않는다.
‘이렇게 부지를 놀리니까 투숙료가 비싼거 아니야?’라는 삐딱한 생각에 정문에서 료칸까지 걸어서 얼마나 걸리는지 재봤다. 3분. 정문에서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부은 뒤 건물에 도착하면 라면이 익어 있겠다.
캐리어를 덜덜 끌고 입구 가까이 다가가니 기모노를 입은 료칸의 여직원 두 명이 종종 뛰어온다. 나보다 체구가 작길래 캐리어를 맡기지 않으려 했는데도 연신 ‘다이죠부데스’를 외치며 캐리어와 가방을 대신 들고 료칸 입구로 도로 뛰어간다. (분명히 휘청했다… 미안했습니다.)
3층짜리 낮은 일본식 건물. 오래된 료칸이라고 들었는데 건물이 나름 새 것 같길래 알아보니 2014년에 화재가 발생해 건물의 80%가 불타 버렸단다. 지금의 건물은 당시 화재로 소실된 곳을 재건한 것이라고 한다.
건물로 들어서면 일단 신발을 벗고(신발 역시 료칸 직원들이 알아서 보관해준다. 건물에서는 신발을 신을 일이 없어 체크아웃 전까지는 신발과 안녕이다.) 조그마한 프론트 데스크 맞은 편에 있는 라운지로 안내된다.
다다미가 깔린 복도와는 달리 라운지는 푹신한 카펫이 깔려 있다. 중앙의 큰 테이블 외에도 2명이나 4명이 앉을 수 있는 테이블도 창가를 따라 쭉 놓여 있다.
테이블에 앉아 있으면 웰컴 드링크를 선택할 수 있다. 다시마 차와 꿀 차 등이 있었는데, 호기심에 다시마 차를 선택했다.
다시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맛있게 마실 수 있다. 난 좋았는데 친구는 다시마가 싫다고 했다.
객실이 준비되길 기다리고 있는데 직원이 다가와 오늘 저녁엔 라운지에서 재즈 기타와 키보드를 이용한 콘서트가 열린다며 친절한 설명을 곁들인다. 또, 9시부터 10시까지는 라운지에서 무료로 간단한 야식도 제공된다고 한다.
어느 덧 객실이 모두 준비되었다며 한 남직원의 안내를 받아 객실로 향한다. 건물 여기저기에서 커다란 잉어나 금붕어가 사는 수조가 있었는데, 그 덕분인지 건물 전체가 일본식 정원 같다는 인상을 준다.
2층에 올라 객실로 가는 길. 복도에서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려서 마음이 점차 편안해진다.
내가 묵었던 객실은 ‘노천탕 포함 메조네트 타입’.
메조네트(maisonette)는 복층 아파트를 뜻한다. 1층엔 다다미 객실과 화장실이 있고, 2층에 노천탕이 있는 객실이다.
고라쿠엔은 크게 4가지 타입의 객실로 구성된다.
- 특별실(2실): 노천탕이 포함된 넓은 객실
- 노천탕이 포함된 객실(26실)
- 일본식 다다미 객실(5실): 노천탕이 없는 객실
- 서양식 객실(1실): 침대가 설치된 객실
전체 객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개별 노천탕이 설치된 객실이다. 노천탕이 포함된 객실은 그 구조에 따라 5가지로 또다시 나뉘는데 이 중 내가 선택한 건 복층형 객실.
거실 바닥엔 전부 다다미가 깔려 있어 일본풍이 물씬 느껴진다. 테이블 뒤에 보이는 벽장이 옷장이다.
객실로 안내를 받아 들어가면 뒤이어 일본 전통식 녹차가 간식거리와 함께 준비된다. 일본 특유의 접대 방식처럼 여직원이 무릎 꿇고 앉아 온천 이용 방법을 비롯한 료칸에 대한 기본적 설명을 해준다. 저녁 식사는 언제 할 건지, 알레르기가 있는 음식이 있는지, 내일 아침은 몇 시에 먹을 건지 등도 이 때 묻는다.
테이블 위에는 료칸 안내서 등이 놓여 있다. 한국인에게 잘 알려진 료칸인 만큼 한국어 안내서도 준비되어 있어 굉장히 편하다. 석식을 먹고 나면 이 테이블을 치우고 이 곳에 이부자리와 잠옷를 세팅해준다.
바로 이렇게! 베개맡에 놓인 게 잠옷이다.
3월의 홋카이도는 아직 한창 겨울이다. 객실 난방 기구와 작동법 역시 료칸 직원이 자세히 알려 준다. 난방기구를 틀면 금방 방이 따뜻해지긴 하는데 온풍기라 그런지 무척이나 건조해진다. 그 탓에 난방기 위에 있는 가습기도 밤새 틀어야 했다.
* 난방기 위에 있는 안내문엔 ‘방에서 향수를 사용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다다미에 냄새가 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객실 한쪽 벽면엔 TV와 블루레이 플레이어가 있고, TV장 아래에 프론트로 연결할 수 있는 전화기도 놓여 있다.
객실에서 가장 마음을 뺏긴 공간은 방으로 들어서자 마자 보이는 바깥의 설경이었다. 3월이라 눈이 다 녹았을 줄 알았는데 아직 오타루는 겨울을 미처 보내지 않았다.
저 낮은 테이블에서 창 밖을 보며 차를 한 잔 마시면 딱 좋겠다고 생각했다.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 사진 속 의자 맞은 편에는 이렇게 전기 포트가 놓여 있고 벽장 안에는 직접 우릴 수 있는 차와 다기가 준비돼 있다.
옷장 안에도 일본식 섬세함이 가득하다.
선반 제일 위에는 료칸 시설 내에서 입을 수 있는 실내복 상의 하의와 타비(엄지발가락과 검지발가락 사이가 갈라진 나막신 양말), 객실 열쇠나 핸드폰 등 간단한 물품을 넣고 다닐 수 있는 작은 가방이 놓여 있다.
그 아래엔 유카타 위에 입을 수 있는 두툼한 하오리(짧은 겉옷)도 있다. 유카타만 입으면 쌀쌀한 날씨라 요긴하게 썼다.
선반 가장 아래엔 금고가 있는데, 료칸 특성 상 직원이 객실에 자주 드나드는 만큼 불안하다면 귀중품은 금고에 보관하는 게 좋겠다.
한편 유카타는 투숙객의 사이즈에 맞춰 객실 바닥에 놓아 뒀다. 유카타에 친숙치 않은 외국인 투숙객들을 위해 유카타 입는 방법 영문 안내서도 준비돼 있다.
노천탕이 있는 객실인 만큼 화장실은 약소하게 갖춰져 있다. 출입문에서 거실로 가는 사이에 자리 잡은 세면대. 크기는 작아도 엄청나게 다양한 어메니티를 확인할 수 있다.
남성용과 여성용을 따로 구분한 어메니티. 남성용은 쉐이빙 워시, 애프터쉐이브 로션, 헤어 토닉 등, 여성용은 리퀴드 클렌징과 모이스춰 로션, 모이스춰 밀크, 바디로션, 헤어에센스 등이 구비돼 있다. 치약, 칫솔도 2세트씩 있고 세면대 아래 서랍엔 헤어 드라이어가 있다.
세면대 옆에는 작은 화장실. 바닥이 목재인 게 신선했고 일본 특유의 섬세함 답게 매너를 위한 룸 스프레이도 선반 위에 있다.
이 곳의 하이라이트인 객실 내 노천탕은 2층에 위치해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출입문 열고 들어오자 마자 왼쪽에 있다.
2층에 올라오면 소파와 작은 테이블이 먼저 보인다. 노천탕 이용 후 노곤한 몸을 여기서 쉬라는 것일까.
문 밖으로 노천탕이 얼핏 보인다. 두근두근
노천탕 출입구 옆으로 보이는 문은 탕 이용 전이나 후에 사용할 수 있는 작은 샤워실이다.
3월이지만 아직 오타루의 겨울은 현재 진행 중이다. 노천탕 밖으로 한 가득 쌓인 건 진짜 눈이다.
사진으로 보이는 것에 비해 노천탕 크기는 꽤 크다. 성인 3명은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고 4명 정도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뜨거운 탕 안에 머리만 내놓고 들어가 있으니 세상 부러울 게 뭐가 있을까 싶었다.
섬세한 부분이 돋보이는 건 노천탕에도 있었다. 벽에 걸린 뜰채는 노천탕에 떨어진 낙엽 등을 걷어내는 용도, 노천탕까지 가는 길에 깔린 고무 카펫은 투숙객 발 시렵지 않게 하려는 용도다. 심지어 그냥 고무 카펫이 아니라 따뜻하게 온열이 들어오는 고무 카펫이다.
노천탕 및 샤워 시 사용할 수 있는 수건은 노천탕 출입구 바로 앞에 준비돼 있다. 수건 바구니 밑에 놓인 모자는 눈이나 비가 올 때 방해받지 않고 온천을 즐기기 위한 용도.
노천탕 옆 샤워실의 모습이다. 바디 워시, 샴푸, 컨디셔너가 놓여 있고 보다시피 굉장히 협소하다. 탕 이용 전후로 몸을 간단히 씻기엔 무리가 없다.
객실 입실 시에 석식을 몇 시부터 준비하면 좋을지 물었고, 요청한 시간에 정확히 석식이 시작됐다.
참, 이전에 료칸을 이용했던 경험이 있었는데 그 곳의 석식은 정말 맛이 없었다. 그 곳 역시 객실 내에서 가이세키가 진행되는 곳이었는데 플레이팅도 너무 예쁘고 서비스도 정중했지만 정작 맛이 없었다. 그 때 이후로 내게 가이세키란 눈으로 먹는 음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 가이세키: 다양한 음식이 조금씩 순차적으로 담겨 나오는 일본의 연회용 코스 요리
그래서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저 ‘직원이 무릎 꿇고 음식을 서브해주는’ 이 몸 둘 바를 모를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 만을 바랐다.
내 편견은 첫 번째 코스부터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메뉴판을 보면 각 메뉴의 번호마다 각기 다른 색으로 표시가 돼 있는데 색이 동일한 메뉴끼리 같은 순서에 준비된다. 즉, 첫번째로 나온 메뉴는 1번(식전주 사케)과 2번(스타터), 3번(애피타이저), 5번(생선회) 메뉴다.
일본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회전초밥 가게 정도의 퀄리티는 우습게 뛰어넘는 음식의 맛이다. 오히려 따로 돈을 내고 이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충분히 고가의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을 정도로 훌륭한 풍미를 자랑한다.
뒤이어 나온 참치 맑은 국과 시즈널 플레이트. 시즈널 플레이트에는 연어와 전복, 킹크랩 등이 담겼다.
세번째로 준비된 건 따뜻한 요리(아귀 간과 성게알을 이용한 요리)와 그릴 디쉬. 사실상 코스의 메인에 해당하는 순서다. 그릴 디쉬는 홋카이도 소고기와 홍살치 중에 선택 가능했다.
아귀 간은 일본어로 안키모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쓰이는 고급 식재료다. 어릴 때 즐겨봤던 미스터 초밥왕에는 푸아그라를 능가하는 식재료로 소개되기도 했다. 원래도 아귀 간과 성게 알을 좋아하는 탓에 반색하고 먹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정말 녹진하고 고소했다.
밥과 디저트를 마지막으로 1시간 30분여에 걸친 긴 저녁식사가 끝난다. 각 코스는 적당한 텀을 두고 알아서 서브되지만 디저트는 식사를 마친 후에 프론트 데스크로 전화를 하면 갖다 주는 시스템이라 밥 먹고 배가 많이 부르다면 나중에 요청해도 된다.
가이세키에 가졌던 선입견을 깨뜨려준 아주 고마운 저녁 식사였다. 매번 새로운 음식이 나올 때마다 성심성의껏 각각의 재료와 조리 방법을 설명해주려고 하는 태도도 잊을 수가 없다.
고라쿠엔에는 두 개의 대욕장이 있다. 이와노유와 모리노유야가 그것. 시간대에 따라 각 온천을 이용할 수 있는 성별이 바뀐다.
- 고라쿠엔 대욕장 이용 시간
이와노유: 15시~24시(여성), 익일 6시~10시30분(남성)
모리노유야: 15시~24시(남성), 익일 6시~10시30분(여성)
여성의 입장에선 체크인 한 시점부터 당일 자정까지는 이와노유, 다음날 오전부터 10시반까지는 모리노유야를 이용할 수 있는 것. 남성의 경우엔 반대다.
시간대에 따라 대욕장 앞에 성별이 쓰인 노렌을 달아 놓아서 헷갈릴 염려는 없다.
대욕장은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곳이라 사진 촬영은 절대 금지다. 욕탕 안팎으로 이에 대한 주의사항이 붙어 있다. 따라서 대욕장 이미지는 홈페이지 사진을 대신 소개한다.
이와노유는 앞에 전망이 펼쳐지는 노천탕은 아니다. 노천탕 크기도 모리노유야에 비해 작다. 하지만 노천탕 2개, 족탕 1개가 있어 다양함을 자랑하며 내부엔 암반사우나도 있다. 이 사우나가 굉장히 특이하니 꼭 이용해 보시길!
모리노유야는 노천탕이 하나뿐이고 사우나도 없지만 이와노유보다 훨씬 크고 앞에 정원이 꾸며져 있어서 전망이 좋다.
참, 두 곳 모두 온천을 끝내고 나오면 락커가 있는 라운지 미니 냉동실에 아이스크림이 준비돼 있다. 온천 끝나고 먹는 과일맛 하드의 맛이란!
한편, 공동으로 사용하는 대욕장 외에 전세탕도 한 곳 있다. 전세탕은 요금을 지불하고 일정 시간동안 단독으로 쓸 수 있는 온천이다. 노천탕이 딸린 객실에서야 전세탕을 사용할 일이 없지만 객실 내에 노천탕이 없는 경우 가족 등 일행과 사용하기 좋다.
전세탕 ‘코카게노이데유’. 요금은 45분에 2,000엔이다.(세금 별도)
료칸이라 온천과 식당, 객실 뿐인 줄 알았는데 곳곳에 휴게 공간이 눈에 띈다.
옛 오타루의 정취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한다. 지극히 일본스럽다.
요청할 경우 무쇠주전자로 끓인 커피나 차가 제공된다. 궁금했으나 료칸 내에서 온천을 즐기느라 커피 마실 시간이 없었다. 하루만 더 있었으면...
심지어 탁구를 할 수 있는 홀도 있다. 이용 시간은 오후 3시부터 오후 8시 30분까지. 이용 시간 내엔 무료로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아, 정말 하루만 더 있었으면.
조식 역시 언제 먹을 건지 입실 시에 정한다. 조식은 객실로 서비스 되지 않으므로 시간 맞춰서 1층 프론트 데스크 옆에 위치한 식당으로 가면 된다.
조식당은 여러 명이 이용하지만 구획이 나뉘어 있어서 부산하거나 혼잡하진 않다.
전 날의 저녁식사가 너무나 훌륭했기에 조식도 기대가 한가득이었다. 그럼에도 식당에 내려가 이 풍경을 보는 순간 조식 역시 기대 이상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생선 구이나 밥, 국 등 온도감 유지가 필요한 음식들은 투숙객이 자리에 앉은 이후에 준비된다. 덕분에 따끈따끈한 밥과 촉촉한 생선구이를 먹을 수 있었다.
조식에도 가리비 회가 나올 정도로 전반적인 가짓수도 많고 질도 높다. 심지어 밥 외에 죽까지 제공될 정도로 료칸을 떠나기 전까지 투숙객을 위한 세심한 배려를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다.
아침밥 치고 양이 너무 많지만 정말 싹싹 긁어 먹었다.
식당 한 켠에는 삶은 계란과 수란, 우메보시, 조미김, 낫또 등을 마음껏 가져갈 수 있게 해뒀고 우유와 주스를 비롯한 음료도 마련돼 있다.
1박에 75만원. 지금 생각해도 결코 만만한 액수는 아니다. 다만 이 료칸을 떠나면서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비싸지만 납득 가능한. 그것이 이 곳 고라쿠엔을 정의할 수 있는 말이자 세계 각국의 관광객이 일본의 료칸으로 향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곳에 머무르는 20여 시간 동안은 장단점을 따지는 게 무의미할 정도로 값진 시간이었다. 공간 자체에 베어든 섬세하면서도 은근한 배려부터 직원들의 밝은 얼굴과 상냥한 접객, 환상적인 음식과 도저히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은 온천에서의 몽롱한 시간까지.
이 모든 것들은 전통가옥이라 어쩔 수 없을 법한 사소한 단점들을 잊게 할 뿐만 아니라 내게 질투나 원망까지 불러일으켰다. 우리나라에 그 많던 한옥은 어디로 간 걸까. 아니, 그나마 남아 있는 한옥 형태의 숙박업소에서는 왜 이런 양질의 경험을 할 수 없는가. 내 눈엔 한옥이 훨씬 아름다운데.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건 마냥 값싼 가격이 아니라 비싸더라도 내가 그 곳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의 가치일지 모른다. 75만원은 전혀 아깝지 않았다. 다만 왜일까,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뒷 맛이 괜시리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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