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 리뷰
동남아에는 스콜이 내린다. 볕이 물조차 태워버릴 듯 내리쬐다가도 모든 것을 잠기게 하겠다는 각오라도 한 듯 천둥번개를 동반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진다.
말레이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쿠알라룸푸르에 머무는 동안 잠깐이라도 하늘에서 관심을 거두면 방금 전까지와 180도 다른 날씨가 눈앞에 펼쳐졌다. 화창한 날씨를 확인하고 아웃도어풀에서 수영을 하기 위해 수영복을 챙기는 짧은 시간 동안 그 쨍쨍하던 하늘이 잿빛이 되어 쉴 새 없이 번개를 내리꽂는 황망한 광경을 목격하는 날도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운이 좋았다. 도저히 밖으로 나갈 만한 상황이 되지 않아도 걱정 없는 호텔을 만났다.
■ 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 (Four Seasons Kuala Lumpur)
포시즌스는 호텔 체인 중에서도 균일한 품질을 유지하기로 유명하다. 즉, 어느 나라를 가든 포시즌스에 머물면 다른 지점과 동일한 수준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을 가능성이 크다. 다양한 도시를 오가며 업무를 해야 하는 비즈니스맨들이 포시즌스를 선호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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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포시즌스가 2018년 7월, 쿠알라룸푸르에 111번째 호텔을 오픈했다. 쿠알라룸푸르의 랜드마크 페트로나스 트윈 타워 옆 우뚝 솟아 눈에 띄는 빌딩이다. 총 65층 규모로, 말레이시아에서는 세 번째로 높은 건물이라고 한다. 클래식한 이미지를 좇기보다는 때가 되면 리노베이션을 거듭하며 발전을 게을리하지 않는 포시즌스이기에 ‘신상’ 지점의 모습이 더욱 궁금했다.
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의 리셉션은 6층으로 올라가야 있고, 그 아래는 쇼핑몰이 입점해 있다. 호텔은 177개의 기본룸과 32개의 스위트룸, 27개의 레지던스 아파트먼트 객실을 보유하고 있다. 객실수가 많은 편은 아니라 500여개의 객실이 있는 만다린 오리엔탈에 비해 상당히 한가롭게 체크인할 수 있었다. 리셉션 층 전체를 가장자리 외에는 모두 비워둔 동양식 여백의 미가 돋보인다.
■ 단정하고 세련된 객실
객실로 향하는 복도는 매우 정적인 분위기다. 그레이 톤의 벽과 낮은 채도의 네이비 컬러 카펫이 몹시 절제된 느낌을 내뿜는다. 설레임에 활기찬 걸음으로 복도를 걷게 되는 호텔이 있고, 최대한 발소리를 죽이며 옷매무새를 가다듬게 되는 호텔이 있다. 이곳은 후자다.
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의 일반 객실은 전망에 따라 시티뷰, 파크뷰, 풀가든뷰, 프리미어 파크뷰로 나뉜다. 이번에는 KLCC 파크가 내려다보이는 파크뷰 객실로 예약했다. 직관적인 이름답게 창밖으로 푸른 KLCC 파크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리셉션과 복도에서 엿보았던 것처럼 객실도 모던하고 세련된 디자인이다. 킹베드 하나와 업무용 데스크, 발받침을 갖춘 1인용 소파 등이 구비되어 있다. 서랍장 아래, TV 아래 등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부분에 간접 조명을 적절히 활용해 기분 좋은 은은함이 객실을 감싸고 있다.
TV는 삼성. 미러링 기능으로 스마트 디바이스와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 오락가락한 날씨 탓에 밖에 나갈 수 없을 때 요긴한 기능 중 하나로, 요즘 가는 호텔마다 확인하는 버릇이 생겼다. 호텔까지 와서 커다란 스크린의 TV를 두고 조막만한 아이폰 화면으로 넷플릭스를 봐야 한다면 억울하니까….
지난해 오픈한 호텔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내는 객실 내 최신 스마트패드. 물이나 수건, 베개 등 객실 비품 요청부터 레스토랑 예약, 인룸 다이닝 등을 모두 해결할 수 있다. 웬만하면 대부분의 시시콜콜한 요구사항을 모두 패드로 전달하는 편이라, 객실에 스마트패드가 구비되어 있지 않으면 그렇게 갑갑할 수가 없다. 물론 기계는 질색이고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편한 투숙객을 위해 전화기도 바로 옆에 따로 비치되어 있다.
객실 내 스마트패드 비치는 일반 투숙객의 편리성 증진에도 큰 역할을 하지만, 청각 장애인 등 기존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없는 투숙객들에게는 옵션이 아니라 필수적인 아이템이기도 하다. 문고리에 ‘DO NOT DISTURB’ 팻말을 거는 것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닌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적지 않다.
미니바의 인상적인 점은 컵과 잔들이 매우 넉넉하다는 것. 유리컵, 와인잔, 온더락잔과 커피잔이 빼곡히 준비되어 있다. 미니바 구성은 탄산음료, 샴페인, 맥주, 과일음료, 와인 등으로, 특별한 점도 부족한 점도 없다. 호텔 유료 미니바가 흔히 그러하듯 탄산음료 2000원대, 맥주 5000원대로 현지 물가에 비해 비싼 편이다. 대신 커피 캡슐이 6개, 커피잔이 4개나 되니 카페인 섭취를 게을리하지 말자.
데스크에는 랜선이나 HDMI선을 연결할 수 있는 포트와 USB 포트 두 개, 콘센트 자리 두 개가 있었는데, 보다시피 말레이시아 전압에 맞춰져 있어 한국에서 가져온 충전기를 그대로 쓸 수 없었다. 침대 맡도 마찬가지로 말레이시아 전압의 콘센트 자리가 하나씩만 마련되어 있어 전자기기 충전이 불편했다. 따로 객실로 어댑터를 요청해 받았다.
이전에 묵었던 만다린 오리엔탈의 경우 객실에 이미 어댑터가 준비되어 있었고, 침대 맡에도 USB 충전 포트가 있었다. 물론 해외에 갈 때 전압을 확인하고 그 나라에 맞는 어댑터를 준비하는 것은 기본이고 필요에 따라 요청하면 될 일이지만, 당장 충전할 수 있는 포트가 없다면 당황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욕실은 욕조 없이 가운데 세면대 하나를 두고 샤워실과 화장실이 나누어져 있는 형태다. 조명의 강도를 세 단계로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 비슷한 급의 호텔들에 비해 샤워 공간이 넓은 편이고, 앉을 수 있는 벤치도 마련되어 있다.
대부분의 포시즌스는 어메니티로 이탈리아 브랜드인 로렌조 빌로레시(LORENZO VILLORESI FIRENZE)를 사용하지만, 쿠알라룸푸르의 경우 로자(ROJA)를 비치했다. 샤워젤, 샴푸, 컨디셔너, 바디로션의 구성이다. 평소 거의 무향의 바디 제품을 사용하는 탓에 호텔 어메니티의 향에 거부감이 드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브랜드의 경우 향수 브랜드인데도 향과 사용감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매끈한 올블랙 패키지가 이곳의 정적인 무드와 잘 매치된다.
욕실 문 맞은 편에는 캐리어를 올려놓을 수 있는 수납대와 포토스팟스러운 거울이 삼면을 두르고 있다.
침실로 향하는 양쪽 벽도 모두 전신거울이다. 거울을 못 봐서 난처한 일은 없었다.
방을 둘러보고 있자니 역시나 스콜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이곳 쿠알라룸푸르의 스콜은 천둥번개가 약 3~5초에 한 번씩 치며 앞을 볼 수 없을 정도의 세찬 비를 들이부어 외출할 생각을 원천봉쇄하는 막강한 힘을 가졌다. 길어봐야 3시간이면 그칠 비지만, 그동안 가만히 앉아있을 수는 없으니 객실을 나선다.
■ 샵스 앳 포시즌스 플레이스 (Shoppes at Four Seasons Place)
앞서 언급했듯 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는 쇼핑몰을 갖추고 있다. 밖으로 나갈 필요 없이 호텔 로비에서 연결된 문을 열면 쇼핑몰이 펼쳐진다. 지하 1층은 식품관, G층부터 L3층까지는 로빈슨 백화점이 입점해 있다. 규모가 작고 아기자기한 브랜드들이 많아 편집샵 같은 분위기다.
한국인을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1층의 이가자 헤어비스.
프라이탁(Freitag)이나 스메그(Smeg)같은 브랜드들이 입점한, 전반적으로 영하고 힙한 느낌의 라이프스타일 몰이다.
지하 식품관에는 다양한 식재료를 구매할 수 있는 마켓과 다국적 레스토랑, 카페, 그리고 데카당 바이 포시즌스(Decadent by Four Seasons)라는 디저트샵이 있다. 포시즌스 소속 셰프들이 직접 만든 패스트리, 케이크, 초콜릿 등이 진열되어 있어 홀린 듯이 흡수되면 다시 빠져나오기까지 상당히 큰 정신적 고통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 인 룸 다이닝: 혼자만의 만찬
호텔과 바로 연결된 쇼핑몰의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해도 좋지만, 번쩍거리는 하늘을 친구삼아 혼자만의 만찬을 즐기는 것도 나쁜 생각은 아니다. 스마트패드를 통해 인 룸 다이닝을 주문했다.
메뉴는 오늘의 파스타. 한화 만 원대로 저렴한 편이다. 따뜻한 식전빵 두 개와 버터, 후추, 소금이 기본 세팅된다. 돼지고기와 주키니 호박이 들어간 담백한 파스타였는데 풍미가 몹시 좋았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크게 비싸지 않은 가격에 정성스러운 맛이라 날씨가 좋지 않고 모든 것이 귀찮은 날에 시도해봄직 하다. 작은 꽃병도 함께 준비되어 두 사람이 먹는다면 로맨틱한 분위기도 누릴 수 있다.
다 먹고 난 접시를 치워 달라는 요청도 물론 스마트패드로 전달할 수 있다. 인 룸 다이닝은 24시간 주문이 가능하기에 늦은 밤 아직 시차에 적응하지 못하고 출출함을 호소하는 위장을 달래주기에도 적절하다(물론 쿠알라룸푸르와 서울은 시차가 1시간밖에 되지 않는다).
■ 호텔 안에서 바깥과 교감하기
변화무쌍한 쿠알라룸푸르의 날씨. 볕을 놓칠 세라 야외 수영장으로 향한다. 스파와 아웃도어풀, 짐은 모두 7층에 위치한다.
풀은 크지도 작지도 않은 적당한 규모에 선베드와 카바나가 구비되어 있다. 선베드 개수가 많지는 않지만 이용하는 사람도 적다.
넓지 않은 공간에 운동기구들이 빽빽하게 들어가 있는 짐. 트레드밀을 사용하면 공원뷰를 감상할 수도 있는데, 사실 KLCC 파크가 코앞인데다 러닝 트랙도 마련되어 있으니 날이 좋다면 나가 뛰는 편이 좋다. 짐 입장을 위해서는 출입문에 객실 카드키를 태그해야 한다.
■ 근심 없이 잠들 수 있도록
날이 저물 때쯤 객실에 돌아오면 미묘하게 달라진 룸 컨디션을 확인할 수 있다. 얼핏 보면 물건들이 정리되었다는 인상 정도만 받을 수 있겠지만, 탐정처럼 메이드의 흔적을 따라가보자.
복도에 놓여있던 신발을 흰 천 위에 곱게 뒀다.
커튼을 쳤고, 조명을 어둡고 편안하게 조절했고, 바로 누울 수 있도록 침대 아래에 발깔개와 여분의 슬리퍼를 준비했다. 포시즌스 베드가 훌륭하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 고단한 하루를 천국 같은 포시즌스 침대에 다이빙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 눈이 즐거운 정성스러운 조식
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의 조식은 리셉션이 있는 6층의 curate에 준비된다. 클럽룸 이상 투숙객의 경우 클럽 라운지 조식을 이용할 수도 있다.
포시즌스는 꽃을 잘 사용하는 호텔 중 하나로, 조식 레스토랑에서도 다소 밋밋할 수 있는 플레이팅을 세련된 생화 장식으로 살려낸 경우가 많았다. 레스토랑은 넓은 편이고 음식 동선과 테이블 동선이 잘 분리되어 있다.
조식 메뉴 구성은 샐러드, 베이커리, 메인 메뉴, 디저트 정도였고 매우 정갈했다. 쿠알라룸푸르의 웬만한 호텔 뷔페들은 대부분 말레이식, 중식, 인도식 요리를 모두 갖추고 있어 말레이시아의 다양성을 실감하게 된다. 이곳은 뷔페 구성 자체는 심플하지만 음식 하나하나의 개성을 살린데다 음식이 갖고 있는 고유한 색감을 잘 사용해 입과 함께 눈도 즐겁다.
■ 호텔을 나가지 않고 즐기는 진짜 호캉스
날씨 때문에 여행 계획이 엉망이 되었을 때, 호텔 안에서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저 날이 개기를 기도하며 하릴없이 스마트폰을 껐다 켜는 것, 알아듣기 어려운 현지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며 침대에 누워 흥미로운 장면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의 가장 큰 강점은 호텔과 바로 연결된 쇼핑몰이 있다는 것이다. 샵스 앳 포시즌스 플레이스에는 특히 톡톡 튀는 개성 있는 매장들이 입점해 몰링(malling)의 묘미를 한층 살렸다.
객실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기 싫다면 TV와 스마트폰을 동기화해 보다만 넷플릭스 시리즈를 이어볼 수도 있고, 스마트패드로 파스타 한 접시, 와인 한 잔을 주문해 빗방울을 세며 맛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며 내린 결론은, 이곳 포시즌스 쿠알라룸푸르는 왁자지껄하고 들뜬 느낌의 가족여행보다는 혼자나 두 명쯤이 와서 조용하고 평화롭게 머무르기 좋은 호텔이라는 것. 친근하기보다 격식 있는 서비스부터 차분하게 가라앉은 인테리어까지 스스로에게 집중할 시간이 필요한 투숙객들에게 꼭 맞는 분위기다. 말레이시아 출장 숙소가 필요한 직장인들에게, 방해받지 않을 단 둘만의 조용한 공간을 찾는 커플에게, 몸과 마음의 휴식이 모두 필요한 나홀로 여행객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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