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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Aug 03. 2022

가는 날이 장날

수요일 아침. 서둘러 흥해로 출발했다. 내게 있어 흥해 글쓰기 수업은 일주일 중의 유일한 공식 외출이다. 고정적인 스케줄이 있다는 건 나의 일정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수요일 오전은 약속을 잡지 않는다. 그 무엇도 방해 할 수는 없다.  

              

흥해에 도착했다. 장날이었다. 주차할 곳이 없어 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어렵게 주차를 하고 햇볕가리개로 앞유리를 가렸다. 이러지 않으면 돌아갈 때 뜨거운 맛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장구경을 하기로 했다. 날씨까지 따라주니 딱 장 구경하기 좋은 날이다. 시장은 도로를 중심으로 갓길을 따라 이어졌다. 오일장이라 그런지 각종 야채를 들고 와 파는 사람들은 대부분 할머니들이었다.

시장은 어르신들로 붐볐고 활기가 넘쳤다. 마스크를 하고 있지만 다들 웃는 모습이 보였다. 장사와는 상관없이 오랜만에 보는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수다 떠는 것이 목적으로 보였다.

분명 오일에 한번, 매번 장날마다 만날 텐데, 마치 정말 오랜만에 보는 듯 너무나 반가워하는 얼굴에 나도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탁! 탁! 탁!

할머니께서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큼지막한 칼이 조금 무섭다. 하지만 할머니는 웃으며 가볍게 칼을 내리친다. 생선 대가리가 잘린다. 나는 고개를 획 돌렸다. 그 앞에서 손질하는 생선을 바라보며 기다리는 손님도 이야기 삼매경이다. 바로 옆에 내가 좋아하는 고구마 줄기가 있다. 할머니께서 열심히 고구마 줄기를 까고 있다. 그 손톱 밑이 새카맣게 물이든 모습이 엄마와 겹쳤다.

엄마는 내가 고구마 줄기를 좋아하는 걸 안다. 그래서 고구마 줄기 철이 오면 가끔 손질 안 한 줄기를 한가득 사 와서 직접 까서 요리해 준다. 다 큰 딸이지만 아직도 못 미더운지 반찬을 자주 해준다. 나는 반찬을 사다 먹는다. 하지만 엄마가 주는 반찬은 거부하지 않고 받아온다. 엄마 솜씨가 예전 같지 않아서 마음이 씁쓸해진다.               

공용주차장에서 나오는 차와 그 앞을 지나던 할아버지가 탄 오토바이가 아슬아슬하게 지나쳤다. 하마터면 부딪칠뻔했다. 할아버지는 욕을 하며 가던 길을 갔다. 자동차도 갈 길을 갔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다행인데 그 모습이 조금은 웃기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모종들이 보인다. 대부분 쌈채소 모종과 대파 모종이 많이 나와 펼쳐져 있었다. 상추 값이 금값인데 상추 모종을 사고 싶어졌다. 그 옆에 대파 모종도 있다. 한 뼘 보다 긴 대파 모종은 단으로 묶어 판다. 상추와 대파를 사고 싶어 발걸음이 주춤거렸다. 하지만 난 심을 곳이 없다. 베란다도 화분으로 가득 찼다. 아쉬워하며 나의 발걸음을 강의실로 옮겼다.      


옥수수빵이 보였다. 지난 시간에 선생님의 지인분께서 가지고 온 옥수수빵이 너무나 맛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간식이 아닌데도 그 빵은 정말 맛있었다. 옥수수빵 앞에 발걸음이 멈췄다. 그리고 저번에 그 빵과 같은 빵인지 빠르게 스캔해 보았다. 너무나 노란것이 저번 빵과는 달랐다. 재발리 발걸음을 돌렸다. 옥수수빵 맛집이었는데, 그 집을 꼭 찾고 싶었다.

     

오일장을 구경한 지가 정말 오랜만이었다. 수업만 아니었으면 양손 가득 무겁게 장을 봤을 텐데. 차도 멀리 있고, 수업도 가야 하고. 돌아서는 발걸음이 아쉬웠다. 하지만 오랜만에 구경한 시장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웃음소리와 활기찬 모습에 에너지를 듬뿍 받을 수 있었다.

딸아이와 같이 왔으면 이것저것 군것질을 하며 재미있게 돌아다녔을 텐데 혼자인 게 못내 아쉬웠다.

다음번엔 꼭 한 번 딸아이 손잡고 다시 와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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