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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Aug 02. 2022

한밤의 응급실 소동

“엄마, 아빠 오면 드라이브 가자”


드라이브에 맛 들여 밤마다 나가자는 딸아이의 성화다. 하루 종일 집안일과 밀린 과제로 쉬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몰라준다. 퇴근한 남편에게 얼른 미숫가루를 타 주고 가볍게 요기를 한 다음 우리는 주차장으로 나간다. 신이 난 아이는 아빠와 함께 달리기를 한다. 즐거워하는 아이를 보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달리는 아이를 쫓으며 동영상을 찍는다.     


해마다 7~8월이면 경주 연꽃밭에 연꽃이 한창이다. 드라이브도 하고 볼 것도 많은 경주로 우리는 달린다. 아이는 피고 지는 연꽃도 좋아하지만, 그보다는 그곳에 사는 개구리와 우렁이를 보는 것을 더 좋아한다. 아이로 인해 관심 없었던 물속에 나도 호기심이 생겼다.


연꽃은 한꺼번에 폈다지지 않는다. 핑크색 꽃이 지고 나면 흰색 꽃이 다음으로 피고 떨어진 꽃잎 자리엔 연자라는 벌집 모양의 연꽃 씨앗이 맺힌다. 연꽃의 줄기를 타고 내려가다 보면 주황색의 작은 알갱이들이 붙어 있다. 그 색은 마치 멍게를 닮았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주황색 물체를 검색해 보니 우렁이 알이었다. 우렁이는 물속이 아닌 연잎 줄기에 알을 낳고 다시 물속으로 들어간다.      


개구리를 잡고 싶어 물속을 살피던 아이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했다. 화장실 배는 아니라고 하지만 걱정이 되어 배를 어루만졌다. 아이가 갑자기 헛구역질을 해대더니 급기야 토하기 시작했다. 너무나 놀라 등을 두드려줬다. 저녁으로 먹은 소고기와 밥이 그대로 나왔다.

“이젠 괜찮아”

아이는 이제 괜찮다며 걷기를 계속했지만 얼마 안 가 또 토했다. 그러기를 두어 번 더 반복하길래 우리는 아이를 업고 차로 향했다.     


아이가 체했다고 생각했지만, 음식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토했으니 괜찮을 거라 짐작해 집으로 왔다. 하지만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아이는 집에서도 여러 번 토하며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혹시 식중독일까 증상을 검색해 보았다. 구토 증상 말고는 공통점이 없었다. 아이가 자다 깨서 울며 또 배가 아프다고 한다. 새벽 두 시였다. 남편을 깨워 병원엘 가자고 했다. 병원은 싫다며 고집을 부리는 아이를 업고 우리는 병원으로 달렸다.

연꽃밭에서 바로 병원으로 가지 않은 걸 후회했다. 너무나 가볍게 생각을 했었다. 응급실에 접수를 하고 30분 대기했다. 그러는 동안 아이는 무릎을 베고 잠이 들었다. 잠든 아이를 보니 미안한 마음에 죄인이 되었다.   

  

아이는 힘겹게 엑스레이를 두 번 찍었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아이가 평소에 배 아프다는 얘기를 자주 합니까? 저녁으로 무얼 먹었습니까?”

의사 선생님은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을 하며 아이의 배를 꾹꾹 눌러보고는 엑스레이를 보여주었다. 무언가 가득 찬 모습이었다.

“이게 똥입니다.”

한마디로 똥으로 가득 차서 음식물이 소화되지 못하고 구토로 나온 것이라 했다. 믿을 수 없어 나는 물었다.

“혹시 식중독은 아니에요?”

“식중독이라면 조금이라도 함께 먹은 가족도 모두 같은 증상이 나타났겠죠.”

식중독이 아니라 다행이긴 한데, 응가를 못해서 응급실에 오다니.

어쩔 수 없이 관장 처방을 하기로 했다. 좌약을 넣자 바로 신호가 왔다. 아이는 기저귀에 시원스레 응가를 하고는 이제 배 안 아프다며 웃었다. 약을 처방받아 집에 돌아오니 새벽 3시 30분이었다. 어찌나 놀라 허둥거렸는지 우리는 곧바로 쓰러져 잠이 들었다.     


이후 나에게는 또 하나의 일이 추가되었다. 바로 아이의 화장실 체크다. 장 마사지도 배워 수시로 아이의 배를 쓰다듬었다. 아이의 배에 두 손을 올리고 위아래로 양손바닥을 번갈아 가며 배를 쓸어준다. 아이는 마사지를 떠나 엄마의 관심에 마냥 좋아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그 모습에 함께 웃으며 아이에게 간지러움을 태우며 놀아준다.


정말 엄마 손이 약손이 된 것일까? 이제 아이는 배 아픔을 까맣게 잊고 무럭무럭 예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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