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서원 Aug 13. 2022

고래불해수욕장

파도타기를 맛보다

율이가 방학을 했다. 어린이집이라 방학이 일주일이다. 짧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여름휴가를 4월에 앞당겨 제주도에 다녀왔기에, 방학이라고 해도 어디 갈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도 방학 기간에 주말이 끼어 있어서 남편과 1박 2일로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주말을 며칠 앞두고 펜션을 찾으니 모두가 예약 완료로 떠 있었다. ‘여기어때’를 비롯해 ‘네이버’에서도 찾고 또 찾았다. 하지만 우리가 묵을 펜션은 구할 수 없었다.     


7월 30일 토요일. 남편은 평소보다 조금 일찍 퇴근했다. 결국, 숙소 예약을 못한 채 우리는 캠핑용품을 챙겨 떠나기로 했다. 모든 짐을 챙기니 오후 2시가 훌쩍 지나 3시를 향해가고 있었다. 우리는 남쪽으로 내려가다 아래 지방의 비 소식을 듣고 핸들을 돌렸다. 동해안 해안도로를 따라 위로 올라가며 나는 계속 검색을 했다. 어느 해수욕장이 좋은지, 주변의 편의시설은 있는지를 살피며 가는 내내 손이 바빴다. 다행히 율이는 잠이 들어 검색하기가 수월했다. 점심을 거르고 가볍게 군것질만 한 상태라 배가 고팠다. 나는 멀지 않은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길 원했다. 너무 늦어지면 율이가 제일 힘들 것 같아서이다. 영덕을 지나갈 때쯤이었다. ‘여기에 자리 잡자!’라고 다급히 나는 말했다.

고래불해수욕장이라는 표지판을 보았기 때문이다. 남편은 재빠르게 핸들을 틀었고 우리는 해수욕장 방향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캠핑장과 해수욕장이 나누어져 있었다. 두 곳을 둘러보며 그나마 편의시설이 많이 있는 해수욕장으로 장소를 정했다. 5시가 넘어가는 시간이었지만 생각보다는 많이 붐비지는 않았다. 아이의 화장실 문제로 우리는 텐트에서 하룻밤을 자는 것이 무리라고 생각했다. 행여나 주변에 민박이라도 있을까 해서 해수욕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모두 다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고래불해수욕장의 상징인 음악 분수가 보였다. 그리고 그 맞은편 제법 큰 모텔이 보였다. 여행하면서 펜션만을 고집하던 우리였지만, 텐트보다는 모텔이 낫지 않을까 해서 전화를 해 보았다. 그리고 가족룸 1칸이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평소 15만 원인데 한 칸 남았으니 그냥 12만 원에 해준다며 얼른 가져가라는 말씀이었다. 나는 얼른 하겠다고 말하며 키를 전해 받았다. 방을 구경해 보려 키를 들고 들어갔다. 정말 허름했다. 왠지 바가지 같았다. 가족룸이라 침대도 없었다. 그래도 하룻밤인데 씻을 수 있으니 그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우리는 우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바닷가라 온통 횟집뿐이었다. 좀 더 골목 안으로 들어가 다른 식당을 찾아보았다. 중국집 두 개가 보였다. 그중 깨끗해 보이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맛있게 먹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잡채밥과 짜장면을 그냥저냥 먹고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것도 휴가 시즌이라 야시장이 펼쳐져 있었다. 아이들을 위한 다양한 시설도 있었다. 율이는 너무나 신나 하며 야시장의 품바 노랫소리에 맞춰 몸을 들썩이며 춤을 추었다. 야시장 옆엔 간이 수영장을 만들어 놓고 아이들이 탈 수 있는 배가 띄워져 있었다.

“엄마, 우리 내일 저거 꼭 타자!”

“그래, 내일 사람 많으면 타자. 저것도 혼자 타면 재미없으니까.”     


우리는 해변을 거닐며 내일 자리 잡을 곳을 살폈다. 그리고 율이는 조개껍질을 모으며 해변을 뛰어다녔다. 신기한 것은 포항과는 다르게 조개껍질들이 귀엽도록 자그마했다. 거칠게 밀려오던 파도에 율이의 옷이 물에 젖어 버렸다. 젖은 김에 마음껏 뛰어놀라고 말했다. 율이는 신이 나서 여기저기 뛰어다녔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랑스러워 촬영을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동영상에 음악을 깔아 인스타그램 릴스에 올렸다. 내용으로 ‘우리, 지금 바다’라고 붙이며 사랑스러운 율이의 모습을 올렸다. 누군가가 보기를 원해서 올리는 건 아니다. 그때그때의 감정과 기분을 기록하고 오래도록 보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SNS를 활용한다.      

주변이 온통 어두워졌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려 방향을 틀었다. 고래불해수욕장의 상징인 고래 조형물에 조명이 켜져 너무나 예뻤다. 그리고 음악 분수에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음악에 맞춰 분수는 춤을 추었고, 그 모습을 한참을 감상했다. 율이가 젖은 몸이라는 것도 잊은 채 말이다.

율이가 신이 나 분수를 여러 번 돌더니 그만 들어가자고 한다. 그제야 율이가 추워한다는 것을 인지했다. 우리는 서둘러 자동차 트렁크의 짐을 챙겨 숙소로 들어갔다. 다시 한번 허름함에 할 말이 없었다. 율이도 예쁜 펜션만을 보다가 한 칸짜리 방과 화장실만 있는 곳이 처음이라 신기해하며 말했다.

“여긴 방 하나 펜션이네.”

“그래, 엄마가 예약을 못해서 그러니 오늘만 이런 곳에서 자자.”

“괜찮아. 그래도 화장실이 있잖아.”

숙소에 실망한 엄마를 다섯 살인 율이가 오히려 달래주었다.

“우리율이 다 컸구나. 고마워. 다음번엔 미리 예약해서 율이 좋아하는 키즈 펜션 잡자.”

율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젖은 율이를 얼른 씻겼다. 그리고 우리는 옷을 갈아입고 가볍게 한잔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밖으로 나갔다. 9시가 넘은 시간인데 거리엔 사람들이 많았다. 우리는 치킨과 맥주로 가볍게 한잔하고 돌아와 기절하듯 금방 잠이 들었다.     


다음날 가까운 곳에서 아침 식사를 하는 식당을 찾을 수 있었다. 식당은 분주했다. 우리는 된장찌개 정식을 먹고 서둘러 바닷가로 갔다. 여전히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우리는 숙소에서 나오면서부터 래시가드를 입고 나왔기에 바로 바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어제와는 다르게 물이 차가웠다. 율이를 튜브에 태우고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 율이는 조개를 잡아달라고 성화를 부렸다. 나는 열심히 발을 비비며 조개를 찾고 또 찾았다. 그리고 엄지손가락 한마디 정도의 사이즈인 조개를 잡을 수 있었다. 그 후론 조개를 찾을 수가 없었다. 조개 잡기를 그만하고 수영을 하겠노라고 율이에게 말했다. 아쉬워하는 율이였지만 거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파도를 타는 법을 알려주었다.

바다를 향해 파도의 높이를 바라보며 기다린다. 그리고 큰 파도가 밀려오면 파도의 타이밍에 맞춰 점프한다. 바닷가가 고향인 나에겐 바다에선 파도타기가 일상이었는데, 율이와 남편은 처음이었다. 남편은 바닷가에서 이렇게 큰 파도를 맞아본 적은 처음이라며 얼굴이 상기되었다. 나는 전문가의 면모를 보여주려 했지만, 파도와 타이밍이 맞지 않아 몇 번의 짠맛을 보았다. 남편은 웃었다. 율이도 따라 웃었다.


우리는 신이 나 계속되는 큰 파도를 기다리며 파도타기를 즐겼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늘은 한순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였다. 우리는 서둘러 밖으로 나왔다. 더 놀고 싶어 하는 율이를 설득하며 샤워장으로 들어갔다. 샤워 후 서둘러 자동차로 갔다. 때마침 굵은 빗방울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짧고 굵은 파도타기의 여운을 가득 가슴에 안고서 다음 목적지인 청송으로 향했다.

그곳은 우리 가족이 아주 오래전부터 다니던 단골인 집이 있다. 청송에 있으면서 이름은 “부산식당”이다. 지금은 부모님 세대에서 자식으로 내려와 대를 이어 장사하는 닭백숙 집이다.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굳이 예약하지 않는다. 그냥 긴 시간을 즐기며 기다린다. 그곳엔 큰 순둥이 개가 한 마리 있다. 그런데 이번에 가보니 강아지가 두 마리가 더 있었다. 친어미는 아니지만 어미를 닮아 모두 순둥이들이었다. 귀가 뒤로 넘어가도록 얼굴을 어루만져 주었다. 털이 엄청 빠졌다. 얼른 손을 씻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백숙을 뜯으며 물놀이에 지친 피로를 풀었다. 특히 이 집은 백숙과 함께 나오는 녹두죽이 일품이다. 조금 늦은 점심이어서 더더욱 맛있었다.

내리는 비가 운치를 한층 더해 주었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멋진 파도타기를 경험하였기에 2022년의 고래불해수욕장은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으로 기억에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