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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Dec 27. 2022

04 율이 이야기

화내는 부모

58개월 5살 딸아이가 툭 내뱉은 말에 충격으로 시작한 하루다.


키우지 막 3개월에 접어든 길고양이가 아침마다 등원을 방해하며 현관으로 따라 나와 힘들게 만든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고양이에게 화를 내는 건지, 딸아이에게 화를 내는 건지 짜증 섞인 말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아빠가 있을 땐 아빠가 화내고, 아빠 없을 땐 엄마가 화내고.."


충격적이었다.

딸아이에겐 엄마아빠는 화내는 부모였던 것이다.

100번 잘하며 웃어주어도 한번 아무것도 아닌 일에 화를 내버리면 화내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물론 그건 남편에게 해당되는 얘기이다.


나는 화도 많고, 짜증도 많은 사람인 거 인정한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일단 짜증부터 난다.


딸아이를 키우며 5년 동안 많이 내려놓아 고쳤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난 여전히 짜증과 화를 달고 살고 있었다.

나만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침에 딸아이가 던진 말에 머리를 한 대 맞은듯한 느낌 때문에, 나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이제 다섯 살인데, 그동안 너무 어른처럼 대했던 것 같다.

한마디 하면 바로바로 실행하고 고칠 수 있는 어른. 아니 어른도 힘든 것을 나는 다섯 살에게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항상 해맑게 잘 웃고, 사람들을 좋아하고, 활동적인 아이기에, 난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말이 통하는 4살부터는 거의 어른처럼 대한 것 같다.

이제 고작 58개월 살았을 뿐인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면서, 왜 가족에게만 이렇게 예민하게 대하는 건지.

이러고 좋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고 산다는 게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작업실 문을 열어놓고 난로를 켜고 환기를 시켰다.

매일 찾아오는 길고양이가 문 앞에서 '냐옹~'하고 자기가 왔다고 알린다.


"잠깐만 기다려 밥 줄게~"


맛있게 밥 먹는 모습을 조금 떨어져서 지켜본다.


난 이 고양이에게도 너무나 친절한 사람인 것이다. 온갖 배려를 다 해가며 밥을 주고 있는 나이다.

그러나 가장 배려해야 하는 가족에게는 정작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당장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말 한마디도 배려하도록 노력을 해야겠다.

내 의지와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나와 버리는 거친 말들을 꾹꾹 누르며, 한숨 고르고 말을 하는 연습을 하자.


지금 딸아이에겐 가장 필요한 건 따뜻한 말 한마디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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