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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Jan 23. 2023

밀린 과제하기

휴일이 싫은 나

설날연휴가 장장 4일이다.

하지만 남편은 연휴 내내 출근을 해야 한다.

한마디로 딸과 나만 전쟁을 치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해야 할 나의 과제들이 산더미이지만 딸아이가 쉬는 날엔 모든것이 올스탑이 된다.


그림을 그리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

글씨를 쓰고 싶어 손이 간질간질

작업실 가고 싶어 엉덩이도 간질간질     


하지만 딸아이를 데리고 작업실에 가면 거의 아무것도 못하고 딸 응석을 받아주다 돌아와야 하는 상황이 불 보듯 뻔하다.     


아침을 먹고 설거지하고 집을 정리한 다음 딸아이 그림책 만들기 과제를 함께 수정했다.

엉망진창인 선들을 지우고 정돈해 주고, 글을 적어 주었다.

내일 줌수업을 할지 안 할지는 모르지만 숙제를 미리 해 두어야 마음이 편하니 일찍 끝내 놓았다.  

   

다음으로 딸아이가 어린이집 생일파티에서 선생님께 받아온 헤어디자이너 놀이인형을 가지고 함께 놀아주었다. 세 가지 색으로 염색을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같이 해보았다.

보라, 파랑, 주황으로 알록달록 염색을 해주다 주변을 살펴보니 바닥이 엉망이 되어 있었고, 딸아이 손과 내 손이 같이 염색되어 있었다. 


나는 더 물들까 걱정이 되어 일회용 장갑을 끼자고 했고 우리는 다시 작업에 돌입했다.

인형이 알록달록 예뻐질수록 집은 엉망이 되었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져 주변은 걷잡을 수 없게 되었다.     

도저히 안 되겠기에 그만하고 치우기로 했다.     


함께 정리를 하고, 그림책을 읽어 주었다. 물론 주위가 산만한 딸아이는 이리저리 움직이며 들었고, 나는 열심히 읽었다. 이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도 멈추지 않았다.     


설날 음식으로 가볍게 점심을 먹고, 딸아이는 물놀이를 하겠다며 화장실에서 놀고 있었다.

나에게 혼자만의 시간이 생긴 것이다.

기분 좋게 고양이 영상을 정리하며 힐링하고 있는데 톡이 왔다.

딸아이 친구 범이의 엄마였다.     


“내일 뭐 하세요?”

“특별한 일 없어요”

“그럼 같이 여기 놀러 갈까요?”     

톡과 함께 링크가 걸려왔다.     

하이코키즈월드였다.

나는 처음 보는 곳이라 톡을 했다.     

“실내예요?”

“네~”

“그럼 같이 가요”

“그럼 예약은 각자 하기로 하고 내일 오전에 10시 30분에 갈까요?”

“네 좋아요. 아침에 출발할 때 전화할게요”     


나는 내일 전화하겠다는 말을 끝으로 마음이 바빠졌다.

내일은 딸아이를 할머니집에 데려다 놓고 작업실 가서 캘리그래피 과제를 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내일 하지 않으면 수요일이 엄청 바빠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딸아이를 불렀다. 엄마 내일 너와 함께 재밌게 시간을 보내주려면 지금 작업실 가서 과제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딸아이가 같이 가겠다고 서둘러 물놀이를 정리하고 나왔다.     


시간이 3시가 막 넘었기에 가서 얼마 작업 못하고 와야 하는 상황이지만 서둘로 집을 나섰다.

작업실에 도착해 난로를 켜고 딸아이를 얌전히 있으라고 말한 다음에 먹물을 따르고 화선지를 폈다.

마음이 급하니 글씨가 예쁘게 나오지 않았다. 

딸아이는 계속 주편에 서성이며 손은 치기가 일쑤였다. 짜증이 났다. 하지만 참고 쓰고 또 쓰며 과제를 했다.

마음에 드는 게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다. 


괜히 왔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지만 내일 마음 편히 놀려면 끝내야 하는 일이다.     

딸아이가 갑자기 응가가 마렵다고 한다.

큰일이다. 

나는 서둘러 정리를 하고 작업실을 나왔다.


기침을 하기 시작하는 아이에게 찬물을 왜 그리 많이 마셔서 기침을 하느냐고 소리를 질렀다.

속으로는 나의 불찰임을 알고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겉과 속은 다르게 나타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이는 계속 기침을 했다.

내일 아침까지 기침이 나오면 놀러 가는 거 취소라고 말했다.     

아이는 내일은 안 나올 거라고 큰소리로 말했다.


하필 내일 엄청난 한파가 찾아온다고 주의 문자가 계속 날아온다.

작업실에 있는 가습기 물을 빼고 온다는 걸 깜빡해서 계속 걱정이 되었다.


그리고 친구엄마에게 추운데 다음날로 미루자고 하고 싶은걸 꾹꾹 참았다.

내일 재미있게 놀 거라는 기대에 찬 딸아이의 얼굴을 보니 차마 미룰 수가 없었다.     

행여나 감기라도 걸려서 돌아오게 될까 봐 걱정이 되긴 한다.

그래도 약속을 했으니 가야지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사이 남편이 퇴근을 했고 우리는 설날음식인 삼색나물을 몽땅 넣어 맛있게 비벼 먹었다.

딸아이는 내일 놀러 간다는 것을 아빠에게 자랑하며 같이 검색해서 살펴보자고 말했다.     

내일 갈 곳의 사진들을 보며 들떠서 이건 무서워서 못하고 저건 아기들 타는 거고...

완전 신이 나서 아빠에게 설명하고 있었다.     


아빠와 종 치기 보드게임을 한판하고 난 후 내일을 위해 서둘러 목욕을 하고 잠을 청했지만 겨우겨우 10시 전에 잘 수 있었다.     


내일을 위해 나도 이제 쉬어야겠다.  

   

아.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펼쳐질지.


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하지만,

즐기자. 즐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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