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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서원 Jan 22. 2023

설날을 앞두고

장보기 위한 작은 소동

설날을 하루 앞둔 토요일.

남편은 출근을 했다. 이번 연휴 내내 출근을 해야 한다.


회사에 외부 공사팀이 와 있기 때문에 책임자인 남편이 항상 가서 자리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난 나와 딸아이는 뭐 할까 고민을 하다 할머니집에 가기로 했다.

아침을 먹고 준비하고 있는데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할머니집에 안 가면 안 돼?”

“왜? 이유가 있을 거 아냐?”

“그냥, 안 가고 싶은 기분이야”     


한마디로 귀찮아진 모양이다. 아니면 유튜브를 보고 있었는데 계속 보고 싶은 이유도 있을 것이고.

가고 싶어 하지 않은 아이를 데리고 나가기도 싫고, 나도 살짝 귀찮기도 해서 그냥 있기로 했다.     


“그러면 유튜브 조금만 더 보고 우리 대청소하자”

“알았어. 근데 엄마가 장난감 정리 해줘야 해”

“왜? 네가 어지럽힌 건 네가 정리해야지”

“난 힘들어서 많이 못해. 엄마가 같이 해줘”     


맨날 이런 식이다. 

자기가 어지럽힌 건 자기가 정리해야 한다고 일찍이 세뇌를 시켰건만 아직도 제자리다.

결국 정리하는 건 나의 몫이다.     


다섯 살. 아니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여섯 살이 된 딸아이에게 내가 너무 큰 걸 바라는 건가?     

분명 어린이집에서 정리도 잘하고 솔선수범하다고 했는데 어째서 집에선 이모양일까.

칭찬을 잘 안 해주는 것도 아닌데. 인정도 잘해주는데.

하지만 선생님에게처럼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없어서 인 걸까.     


결국 혼자 대청소를 했다.

그리고 하루종일 탭을 끼고 유튜브만 보고 있던 딸아이를 끝내는 혼내고 말았다.

탭을 주면 항상 일어나는 일이다. 그래서 탭을 뺏어서 며칠 숨겨버리면 어찌나 말을 잘 들으며 예쁜 짓을 하고 말 잘 들으니 탭을 달라고 애원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 반복된다.     

아직 적정선을 익힌다는 게 무리인 걸까.     


5시가 넘어 퇴근한 남편과 함께 우리는 마트로 향했다. 

그때까지 엄마에게 혼이나 기분이 상해 있던 딸아이는 나에게 말조차 하지 않았다.     


가던 길에 친구네 집에 들러 혼자있는 고양이를 살펴봐 주는 미션을 받았다.

빈 집에 들어서니 칠복이가 현관으로 나오며 나를 반겨 주었다. 

우선 몇 번 쓰담쓰담을 해 준 다음 응가를 얼마나 했나 화장실을 살폈다. 한 덩어리 밖에 없었다.

사료와 물은 많이 있어 건들지 않았다.

그리고 인증샷을 찍고 동영상과 함께 친구에게 톡을 보내고 나서야 집을 나섰다.

     

차로 돌아오니 딸아이가 엄마를 반기며 얼굴에 뽀뽀해 주며 말했다.

“엄마 미안해, 이제 엄마말 잘 들을게”

“그래 제발 엄마 화나게 하지 말아 줘”라고 말하며 나는 딸아이를 안아주었다.   

  

아마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 것 같았다.

이것 또한 딸아이게게는 사회생활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엄마에게 혼나서 화가 풀리지 않았지만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가지기 위해 먼저 사과하고 다가가는 것. 여섯 살에겐 쉽지 않으리라. 그런 딸아이가 안쓰러워 다시 안아준다.     


마트로 가는 길에 아이는 잠이 들었고, 그런 딸아이를 무릎에 눕혔다.

그리고 남편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동네 과일가게에 과일을 하나 맞춰뒀다고, 들어갈 때 챙겨 가라는 전화였다.

나는 어떤 과일인지 알면 장 볼 때 그 과일을 빼고 살 수 있어 좋을 것 같아 차를 돌려 과일을 먼저 찾아서 가자고 말했다.     


동네 과일가게로 온 우리는 과일을 확인했다. 사과, 배, 한라봉, 샤인머스캣 골고루 들어있는 박스였다. 대박이다. 마트에서 장 볼 메뉴 중 과일을 뺄 수 있었다.    

 

다시 출발해 마트에 도착한 우리는 식당으로 가서 밥을 먼저 먹었다. 

식당은 분볐다. 우리는 돈가스 두 종류를 시키고 사이드메뉴로 감자튀김과 음료를 시켜 배불리 먹고 나서야 장을 보러 들어갈 수 있었다.     


설을 지나고 5일 뒤에 또 시할아버지 제사가 있다. 그래서 항상 설 장을 볼 때는 두 개씩 장만해야 한다. 

그래서 카트가 금방 한가득 찼다.


딸아이는 신나서 마트를 누비다가 금방 지쳐 집에 빨리 가자고 성화다.     

가는 길에 차에서 마실 음료와 딸아이의 필수 코스인 뽑기를 하고 나서야 마트를 나설 수 있었다.  

   

집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었다. 빨리 씻고 자야 하는 시간인데 딸아이는 놀다 자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내가 먼저 씻는 동안 딸아이는 아빠와 보드게임을 한판 하기로 했다.     


다행히도 더 이상의 고집은 부리지 않았고 10시가 조금 넘어 잠이 들었다.     

딸아이가 깊이 잠든 걸 확인하고 나는 밖으로 나와 장 본걸 정리했다. 내일 쓸 것과 5일 뒤에 쓸 것들을 나눠서 담고 시원한 곳에 두었다.     


설날인 내일은 떡국 제사를 지내기로 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탕과 떡국을 끓이면 제사준비 끝!!    

 

전과 나물을 손수 안 하니 이렇게 하루 전에 장 보는 걸로 충분하다.


하지만 5일 뒤엔 전과 나물 모두 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래서 설날은 편안하게 보낼 수 있다.     


5일 뒤를 위해 에너지 충전을 해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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